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21.06.04 조회수 | 3,589

<불량 판결문> 최정규 변호사 “법원의 주인은 판사 아닌 국민”

※ <불량 판결문>(최정규/ 블랙피쉬/ 2021년)가 출간됐습니다. 블랙피쉬 편집부가 최정규 작가와 진행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Q 최정규 작가님은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집필하시며 가장 ‘상식에 맞지 않는 법’이라 여겨졌던 내용은 무엇인가요?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저를 처음 만나시는 분들은 굉장히 과격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실 텐데, 사실 저는 내성적이고 싸움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사법연수원 때 저와 함께 생활했던 동기 연수생들이 이번에 출간된 <불량 판결문>을 보며 “도대체 누가 순딩이 정규를 이렇게 투사로 만든 거냐?”라고 물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저는 원래 기질적으로 싸움을 피하는 성격인데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는 싸우지 않고는 못 버티는 성격이 아주 조금 생겨난 것 같습니다.

가장 비상식적으로 느껴졌던 건 염전 노예 사건을 둘러싼 법과 판결이었습니다. 피해 장애인들은 3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노동력 착취와 학대를 당했는데, 가해자에게 10년분의 임금밖에는 배상 받지 못했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소멸시효 제도’ 때문인데요.

피해 장애인들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노예처럼 가두어놓고 악착같이 이익을 취득한 가해자에게 그런 ‘소멸시효 제도’의 이익을 누리게 하는 게 과연 맞는지, 왜 법원은 그런 불량한 판결을 쏟아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분이 풀리지 않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강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법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고 있고, 법원 또한 그 악용을 저지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불량 판결문을 생산하고 있는 현실을 곱씹으며, <불량 판결문> 책을 써내려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네요.

Q 최근 책에서 다루었던 소액사건심판법과 판사의 말이 의무적으로 기록되지 않는 민사소송법 관련해 국민청원이 개설되었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한 소감과 앞으로 국민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주었으면 하는 또 다른 불량 법 제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책을 읽고 용기를 내어 법원 제도를 개선하자는 데 목소리를 직접 내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책 출간 이후에도 변호사로서 계속 현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량 판결문과 만나게 되는데요. 당사자에게 위로는커녕 오히려 화를 부르는 위자료 액수가 담긴 판결문을 최근에도 또 만났습니다.

위자료는 정신적 충격을 금전적으로 보상하여 피해자를 위로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민사소송에서 위자료 액수는 판사 재량에 맡겨두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비슷한 사안에서도 재판부마다 위자료가 들쭉날쭉이고, 인정되는 금액도 시민들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아 위로는커녕 오히려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사판결에서 재판부마다 다른 양형을 개선하기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양형위원회를 통해 양형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데요. 위자료에 대해서도 판사의 재량에만 맡겨두지 말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기구를 통해 일정한 기준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에 관해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언급해주셨습니다. 이 두 가치 중 올바른 사회를 위해 더 중요시되어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요?

올바른 사회를 위해서는 법적 안정성, 구체적 타당성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 타당성을 위해 법적 안정성은 다 던져 버려야 한다’는 그런 주장을 하는 건 아니고요. 다만 지금까지 이 둘 중에서 법적 안정성이 과도하게 중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죠. 불가피하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그 안정성을 일시적으로 잃더라도 ‘구체적 타당성’을 선택해야 한다는 게 제 주장의 핵심인데요.

앞에서 설명한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에서 가해자의 소멸시효 항변, 즉 “30년 노동력 착취를 했지만 10년분의 임금만 배상해주겠다”는 항변을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라면 다 받아주어야 할 텐데, 그건 상식에 맞지 않겠죠. 그래서 구체적 타당성을 위해서 그런 소멸시효 항변은 배척하는 판결문이 생산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가 불안정하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는데, 저는 일시적인 불안정은 감수하고 상식에 맞지 않는 법은 당장 뜯어 고치는 것이 오히려 우리 사회 전반을 더 안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에 맞지 않는 판결문이 법원에서 대량 생산되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폭발 직전의 가장 위험한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Q 책에서 “악법은 국회에서만 만들어질까? 사법부의 법 해석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라고 얘기하셨습니다. ‘법 해석에 의해 만들어진 악법’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최근에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산재 사망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정부에서 특단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오늘 출근한 3명은 퇴근을 하지 못하고 사업장에서 산재사망을 당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이죠.

산재피해 사망 노동자들 유족들을 실제 만나고, 소송을 대리하며 “왜 우리는 이런 산재 사망 피해를 막아내지 못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만나게 되는데요. 저는 그 답을 산재 사망 유족들에게 법원이 인정해주는 위자료 액수 ‘1억 원’에서 찾아봤습니다.

법에는 산재 사망 유족들에게 위자료 1억 원을 인정하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건 판사의 재량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판사들이 근무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손해배상실무회에서 그 위자료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요. 그 금액이 현재 1억 원이고 전국 대부분의 판사들은 그 기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또한 변호사로서 산재 사망 노동자들의 유족들을 대리하며 손해배상 청구를 할 때 위자료 청구 금액란에 1억 원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적는 일을 주저하게 되는데요. 법해석에 의해 만들어진 악법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하고, 그 기준에 따라 생산되는 법원의 판결문이 회사의 이익을 중시한 나머지 노동자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이른바 ‘산재공화국’을 지탱해주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섬뜩한 생각이 듭니다.

Q ‘불량 판결은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책에서 다룬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과 더불어 언급할만한 추가적인 사례가 있다면, 함께 구체적인 내용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던 중 장애인 학대사건을 목격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사실대로 말했다가 이를 이유로 시설로부터 여러 불이익을 당한 분이 계셨습니다. 참고로 법은 이런 분들을 공익신고자로 보호하게 되어 있고, 불이익을 준 사용자는 형사처벌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공익신고자보호법으로 해당 사건의 가해자들을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가해자들에게 선고한 형벌이 얼마인지 아세요? 고작 벌금 200만 원이었습니다. 이 판결문을 확인한 시설 측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했을까요? 또 공익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줄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 판결문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공익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았을까요?

법원에서 생산되는 판결문은 단지 그 사건 당사자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Q 법원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이유, 점심시간이면 불 꺼지는 민원실 등 법원의 불편부당한 서비스를 꼬집어 주셨는데요, 이 외에 국민들이 또 불편을 느낄 만한 서비스가 무엇이 있을까요?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정부부처에 궁금한 질문이 있을 경우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라는 사이트를 통해 시민 누구나 질문을 하고 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답이 형식적이고 동문서답이라 가끔 답답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어찌되었든 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그런 시스템이 없습니다. 재판 절차 진행과 관련하여 재판부에 연락을 해도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재판부가 재판을 하는 날이면 아예 “오늘은 재판 날이라 전화를 받지 못한다”는 멘트가 하루 종일 나옵니다. 그리고 직접 법원을 찾아가도 관련 공무원을 만나기가 싶지 않습니다.

여러 행정민원 서비스가 나날이 개선되어 시민들이 아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데, 법원의 서비스는 가장 후진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법에 의한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할 수 있도록 독려의 한 마디를 부탁드립니다.

그 어떤 정부와 국회의원도 법원 개혁을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을 보면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은 대통령과 독대하여 일종의 거래를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국회의원은 또 어떻습니까? 선거 과정에서 참모의 잘못이 밝혀진 경우 국회의원은 공직선거법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때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죠. 벌금이 80만 원 선고되면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벌금이 100만 원이면 그 직을 상실하게 되는 현 상황에서 법원 개혁에 앞장서는 국회의원은 쉽게 만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런 불편하고 부당한 법원 서비스와 불량 판결문을 그저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할까요? 쉽지 않겠지만 저는 우리 스스로 당당하게 그 권리를 쟁취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판사가 주인처럼 군림하고 있는 법원과 법정의 주인은 바로 시민인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불량 판결문>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던져주신 응원과 격려의 힘으로 저는 제가 있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불량 판결문’과 맞서 싸우겠습니다.

- 사진 : 블랙피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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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최정규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믿음 아래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공익 법무관,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로 일하며 부당하고 불공정한 법 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에 국민을 대표해 나쁜 법과 불량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4년 신안군 염전에서 100여 명의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행해졌던 노예 사건을 긴 싸움 끝에 승소로 이끌었지만, 평소에는 판례상 패소할 것이 뻔한 사건에 맞서는 게 일상이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틀에 박힌 판례를 거부한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국경 없는 마을’ 안산 원곡동에 2012년 원곡법률사무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이주민, 장애인, 국가 폭력 피해자, 공익제보자 등 사회적 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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