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1.04.21 조회수 | 753

“저 남자가 도대체 왜 저러지?” 내면 깊은 곳으로의 여정

리처드 바크만은 1977년부터 1984년까지 활동했던 미국 작가이다. 뉴욕 출신이고 4년 동안 해안 경비대에서, 그 뒤 10년 동안은 미국상선단에서 근무했다. 뉴햄프셔에 농장을 사 정착한 바크만은 밤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1977년 <분노>로 데뷔했다.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사고로 우물에 빠져 죽었고, 자신은 1982년에 뇌종양에 걸려 수술을 받았지만 1985년에 다섯 편의 장편소설을 남기고 결국 죽었다. 책에 실린 바크만의 사진은 아내 클로디아 이네스 바크만이 찍은 거라고 한다. 아, 사후에 두 편의 원고가 발견되어 출판되기도 했다.

위에 적힌 전기적 사실은 바크만의 소설만큼 픽션이다.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남자도, 클로디아 이네스 바크만이라는 여자도, 둘 사이에 태어나 너무 일찍 죽은 아이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아이 입장에선 다행이라고 할까. 이 모든 것은 몇 년 전 <캐리>로 데뷔한 뒤 <샤이닝>, <쿠조>, <크리스틴>과 같은 히트작을 연달아내고 있던 호러 작가 스티븐 킹의 창작이었다.

여벌의 필명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은 많다. 다작가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창작력이 폭주해서 마구 작품을 낳고 있는데, 이미 저번 잡지에 작품을 실어서 다시 싣기가 민망하다? 그럼 다음 작품을 다른 이름으로 발표하면 된다. 도널드 E. 웨스틀레이크처럼 필명이 거의 자기 소설 주인공 수만큼 많은 작가들도 있다. 예를 들어 웨스틀레이크의 대표 캐릭터 파커가 주인공인 소설은 전적으로 리처드 스탁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리처드 바크만의 리처드는 리처드 스탁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바크만은 캐나다 록밴드 바크만 터너 오버드라이브(Bachman–Turner Overdrive)에서 따왔다고 하고.

스티븐 킹은 세상이 다 아는 다작가니까 필명 하나 정도는 입양할 수 있다. 이 정도만으로도 핑계는 충분하다. 하지만 킹에겐 다른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성공과 명성이 과연 실력만의 결과일까? 같은 소설을 킹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발표했을 때도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이 실험은 스티브 브라운이라는 워싱턴 D.C.의 서점직원이 두 작가의 유사성을 눈치채고 바크만의 정체를 밝히자 끝나 버렸다. 실험의 결론만 말하자면, 바크만의 소설은 호평을 받았지만 킹의 소설만큼 잘 팔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6번째 바크만의 소설로 예정되어 있었던 <미저리>는 결국 킹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지금 바크만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왜 킹과 바크만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그렇게 늦게 밝혀졌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킹은 바크만의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스타일이나 취향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 누가 봐도 킹의 소설이다. 1981년작인 <로드워크>의 경우는 스티븐 킹 소설과의 노골적인 연관성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바튼 조지 도스는 <캐리>에서 캐리의 엄마 마가렛이 일하던 세탁소 체인점 블루 리본 체인의 직원이다. 이 정도 힌트를 뿌렸다면 킹은 이 실험이 그렇게 오래 끌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 그 둘의 관계를 밝히길 원했고 그 사람이 스티브 브라운이었던 거다.

<로드워크>는 바크만의 책 중 스티븐 킹의 개인적인 경험이 가장 많이 반영된 책이다. 이 소설을 쓰기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떴고, 킹은 이 상실의 경험을 책에 투영한다. 킹은 이 소설에 대해 충분히 객관적이지 못했고 결과물에 대한 의견이 오락가락했는데, 이해가 된다.

소위 백인 남자 폭주극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야기다. 주인공 바튼 조지 도스가 살던 집에 직장에 고속도로가 들어선다. 이사를 미루고 조마조마해 하는 이 남자가 언젠가 폭주하게 될 거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도스는 총포상에 들어가 총기를 구입한다. 이 부분만 읽으면 독자들은 언젠가 ‘람보’식 액션이 터질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점은 겉으로만 보면 도스에게 가해지는 압박감이 아주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공사 때문에 자기 집에서 억지로 쫓겨나는 건 슬픈 일이다. 하지만 엄연한 직장이 있는 중산층 백인 남자인 도스는 얼마든지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고 주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소설은 “저 남자가 도대체 왜 저러지?”의 연속이다. 기분을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과하고 어리둥절하다. <로드워크>는 파괴적인 결말에 이르는 여정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지만 이 당황스러운 남자의 내면 깊은 곳에 이르는 독자의 여정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시대물’이기도 하다. 소설은 1981년에 나왔지만 1973년 11월에 시작한다. 제1차 석유 파동이 막 시작되었을 때다. 이 시기는 시발점이 된 가족 상실의 경험과 함께 도스의 행동 동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전세계적인 혼돈이 개인에게 가하는 압박감이 어떤지 알고 있는 코로나 시대의 독자들은 이전보다 도스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4월 23일(금) 밤 8시 듀나와 함께 하는 ‘미스터리 북클럽’이 유튜브 채널 '공원생활'에서 실시간 채팅으로 진행됩니다. 앞서 소개한 <로드 워크>를 읽고 만나서 나누는 시간에 함께 해보세요. - 편집자 주

▶ 미스터리 북클럽 참여 하기 :
https://www.youtube.com/watch?v=3DCZojg987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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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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