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1.04.14 조회수 | 864

고등학교에 전해 내려오는 이상한 전설

​<그리고, 유리코는 혼자가 되었다>는 기도 소타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1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U-NEXT・간테레상 수상작이다. 이 상은 영상화 제작을 전제로 17회부터 추가되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동명의 드라마는 2020년에 제작되었고 국내에서는 지금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소설의 무대는 유리가하라 고등학교. 20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고등학교였지만 지금은 공학인 이 곳에는 유리코 님이라는 이상한 전설이 있다. 유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학생은 이 학교에서 거의 초자연적인 힘으로 여겨지는 특권의 신분을 갖게 된다. 하지만 유리코는 흔한 이름이고 학교에 두 명 이상의 유리코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쟁탈전이 시작되고 오직 한 명의 유리코만 남을 때까지 싸운다. 당사자가 싸울 생각이 없다고 해도 계속 자잘한 사고가 일어나 결국 한 명만 남고 자퇴하거나 퇴학당한다. 지금까지 이 학교에서는 쓰쓰미 유리코라는 3학년생이 유리코 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화자인 야사카 유리코를 포함한 몇 명의 유리코들이 새로 학교에 들어온 이후로 유리코들을 겨냥한 이상한 살인사건들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유리코와 관련된 사건 중 살인은 없었다. 그 동안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존 딕슨 카의 전통을 따르는 작품이다. 초자연적인 것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심지어 그 사건의 일부는 밀실 수수께끼와 연결되어 있다.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명탐정이 등장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야사카 유리코의 단짝친구 시마쿠라 미즈키가 그 역할을 맡는다. 단지 완벽해 보이는 논리적 설명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전체사건은 반전도형처럼 여전히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읽힐 여지를 남긴다.


차별화되는 지점은 역시 배경과 캐릭터다. 안개 낀 런던 거리나 고성이 있던 자리에 현대 일본의 고등학교가 들어선다.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오직 일본이어야 완벽하게 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교 문화와 청소년 문화가 소재이다. 이들은 동시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시작되어 자기만의 세계를 이룬 대중문화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학이지만 여자학교처럼 보이고 여자학생들이 주도하는 학교 배경이나 두 주인공의 관계는 일본식 백합물을 의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독성이 상당히 높은 책이다. 속도가 빠르고 도입부부터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리코 님의 전설은 책이 끝날 때까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을 잃지 않는다. 이어지는 사건들의 선정성을 교활하게 활용하는 방식 역시 노련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정통추리소설이다. 끊임없이 반전을 넣으며 추가 설명을 하긴 하지만 소설의 기본 논리는 명쾌하다. 도입부에선 ‘과연 이게 추리소설이긴 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초자연의 향취가 강하기 때문에 이건 상당한 성취이다. 입소문을 거쳐 만들어지는 학교 전설 매커니즘의 교묘한 활용도 주목할만하다. 이 부분은 SNS에서 수많은 헛소문에 노출되는 지금의 우리에게 경고문이 되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정말 쉽게 속고 쉽게 조종당하는 동물인 것이다.


논리가 명쾌하다는 건 이야기가 현실적이거나 이치에 맞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유리코는 혼자가 되었다]를 지배하는 건 현실세계의 논리가 아니라 ‘본격추리소설’의 논리이다. 소설을 구성하는 밀실 트릭, 서술트릭, 변장 트릭은 오로지 퍼즐의 구성을 위해 존재하고 꼼꼼하게 현실성을 따지면 점점 이상해진다. 범인이 지나치게 열심히 과잉 노동을 하고 과잉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할까. 다들 예상했겠지만, 범인의 심리묘사나 동기에서 섬세한 이해나 배려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소설이 ‘이상심리’를 도구화해 다루는 태도는 에도가와 란포 시절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관습적인 설정과 캐릭터 안에 갇혀 글을 쓰는 작가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본격추리소설’이 꼭 사실성을 추구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실제 사람들을 체크하긴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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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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