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1.04.07 조회수 | 820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의 내면은 어떨까?

지난 3월 25일, 미국 아동문학가 비벌리 클리어리가 세상을 떴다. 104세였다. 그 정도로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1950년부터 작품 활동을 했고, 그 때가 30대 중반이었으니 계산이 맞는다. 단지 1970~1980년대에 나온 클리어리의 대표작들이 도발적이고 현대적이라 늘 작가를 실제 나이보다 젊게 봤던 거 같다. (클리어리의 대표작인 '라모나' 시리즈가 플로팅 타임라인(floating timeline, 작중 시간은 흘러가나 주인공의 나이는 그대로인 경우-편집자 주) 안에 있기 때문에 나이 계산이 힘들었다는 것도 이유가 아닐까. 1950년대 초에 두 살이었던 라모나는 1999년에 겨우 10살이 된다.)

오늘은 클리어리의 '라모나' 시리즈를 소개하기로 한다. 국내에 정식으로 나와 있는 책은 뉴베리 수상작인 두 편이다. 4편인 1977년작 <라모나는 아빠를 사랑해>, 6편인 <라모나는 아무도 못 말려>. 시리즈는 여덟 권이니, 이 정도면 전권을 채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시리즈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클리어리는 1950년, 헨리 허긴스라는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쓰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국내엔 <헨리와 말라깽이>, <헨리와 자전거> 두 편이 번역되어 있다.) 헨리에겐 비저스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별명은 비저스의 동생 라모나가 비어트리스라는 이름을 잘못 발음해서 만들어졌다. 헨리 허긴스 시리즈에 꾸준히 조연으로 나오던 자매는 1955년, <라모나와 비저스>에서 자기만의 책을 갖게 된다. 1964년, 클리어리는 헨리 허긴스 시리즈를 마무리 짓고 1968년부터 <라모나와 비저스>를 잇는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두 번째 책 <라모나 더 페스트>에서부터 시리즈의 중심은 비저스에서 라모나로 옮겨가게 된다. 이 시리즈는 1999년에 <라모나의 세계>로 종결되었는데, 이 작품은 클리어리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아, 헨리는 <라모나는 아빠를 사랑해>에도 잠시 카메오 출연한다. 사전정보 없이는 그냥 넘길 수 있는 작은 역이니 주의깊게 찾아보시길.

라모나는 <라모나는 아빠를 사랑해>에서 7살, <라모나는 아무도 못 말려>에서는 8살이다. 이 시기를 거치는 동안 라모나의 집은 다소 험난한 시기를 거치게 된다. 아빠가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나중에 취직하긴 하지만 미술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 엄마가 집안을 책임지게 된다.  20세기 미국 중서부 중산층 가족의 사실적인 생활과 이 세계가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의 묘사는 클리어리 책의 장점 중 하나다.

이것만 있었다면 책은 어둡고 지루했을 것이다. 하지만 '라모나' 시리즈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책이다. 가장 큰 이유는 클리어리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주인공의 내면을 기가 막히게 정교하고 생생하게 잡아낸다는 것이다. 라모나가 겪는 일들은 대부분 평범하다. 학교에서 아파서 토했다. 삶은 달걀인 줄 알고 이마로 쳐서 깼는데 날달걀이었다. 주일학교 연극에서 양이 된다. 엄마와 아빠, 언니와 친구들과의 갈등 역시 익숙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 작가의 공감 능력과 표현 능력이 결합된다면 그 결과는 환상적이다. 라모나가 깡통 죽마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니는 장면 같은 것을 보라. 정말 별게 아닌, 어떻게 보면 귀찮고 짜증나는 아이들의 놀이인데, 그 나이 아이일 때만 느낄 수 있는 흥분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라모나' 시리즈는 80년대에 캐나다에서 10부작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당시 라모나를 연기했던 배우는 지금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인 사라 폴리였다. 2010년엔 엘리자베스 앨런이 감독한 '라모나와 비저스'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무대는 21세기였고 셀레나 고메스가 비저스로 출연했다. 제목은 '라모나와 비저스'이지만 시리즈 전체에서 이야기를 가져왔고 위에 언급한 두 책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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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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