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1.03.31 조회수 | 842

'빠르고 선정적'... 미치광이 연쇄살인마 추적극

오늘 소개할 <수어사이드 하우스>의 저자는 찰스 돈리라는 사람이다. 이름을 처음 들었고 국내 소개된 책도 이 작품 하나밖에 없다. 2018년에 데뷔했는데 지금까지 스릴러 소설을 일곱 편 썼다. 이 정도면 제임스 패터슨 수준의 다작이다.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이 작품은 로리 무어와 레인 필립스가 등장하는 두 번째 소설이고 다른 책들도 모두 하나의 유니버스로 연결되어 있나보다.

소설의 중심 무대가 되는 곳은 웨스트몬드 사립학교이다. 엄격한 규율로 학생들을 교육하고 졸업생 전원이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록을 세운 곳이다. 그런데 2019년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학생 두 명이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그 중 한 명은 게이트 창살에 시체가 꽂혔다. 80년대 슬래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교사 중 한 명이 살인범으로 지목되지만 자살을 시도했고 지금은 식물인간 상태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사람 시선을 확 사로잡는 도입부인데, 돈리는 조금 더 나아간다. 그 뒤로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한 명씩 철도에서 자살하기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죽은 학생은 심지어 죽는 장면이 목격자에 의해 동영상으로 찍힌다. 그리고 그 학생은 ‘수어사이드 하우스’라는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에게 이 사건의 진상이 따로 있다는 암시를 흘렸다. 팟캐스트 진행자는 폭탄에 의해 살해당하고 사건은 범죄 재구성 전문가인 로리 무어와 남자친구이고 심리학자인 레인 필립스에게 넘어간다.

소설이 집중하는 것은 웨스트몬드 사립학교의 폭압적인 환경이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다. 이 환경은 단순히 학교 -> 학생의 하강 구조가 아니다. 일단 이 책에 벌어지는 사건 대부분의 원인이 되는 것은 상급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비밀 모임으로, 이들은 학생들과 교사 모두에게 비열한 폭력을 휘두른다. 이는 매우 미국적인 소재라 비슷한 배경의 창작물을 접하지 않은 한국 독자들에겐 낯설 수도 있겠다.

돈리는 존 그리셤의 책을 읽고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데, 소설은 앞에서 언급한 제임스 패터슨에 가깝다. 일단 가독성이 엄청 높고 속도가 빠르다. 챕터도 짧아서 100개가 넘는다. 소재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빨리 읽히지만 빨리 쓴 티가 나기도 하는 책이다.

인상적인 도입부를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추리소설은 많지 않다. 심지어 고전 리스트에 오른 책들 상당수가 그렇다. <수어사이드 하우스>가 도입부에 어울리는 만족스러운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건 그렇게까지 놀랍지는 않다. 조금 더 설명한다면, 범인이 왜, 어떤 방법으로 그런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알겠는데, 다 듣고 나도 그렇게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이다. 아, 그리고 범인 찾기가 엄청 쉽다. 범인의 고백만 들어도 소거법으로 엄청 많은 용의자들이 쓸려나가기 때문이다.

추리소설로서 <수어사이드 하우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술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아직 정체가 드러나 있지 않은 범인의 고백, 2019년 범행 전후의 학생들 이야기, 2020 당시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분주하게 오가며 진행된다. 독자가 중반에 가서야 2019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온전히 알게 되는 건 순전히 작가가 그 때까지 기초적인 정보를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낯선 곳에서 살게 된 <레베카>의 화자 같은 사람이 서툴게 정보를 모으는 이야기라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전지적 작가인 돈리는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이는 해결 과정에도 영향을 끼친다. 고정 캐릭터인 명탐정 커플이 나왔으니 우리는 이들이 전문가의 실력을 발휘해 사건을 해결하길 바란다. 하지만 작가가 아까와 같은 속도로 정보들을 풀기 시작한다면 이들이 활약할 구석이 별로 없다. 사건은 거의 저절로 해결되는 수준이고 우리는 범죄 재구성 전문가인 로리 무어보다 아마추어 도자기 인형 복원가인 로리 무어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인형 복원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었으니 불만은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미치광이 연쇄살인마 추적극에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했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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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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