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1.03.24 조회수 | 1,175

‘차별하게 해달라’ 우경화된 일본 사회 비판

나타도리 게이의 <서술트릭의 모든 것>은 제목만 보면 작법론 책처럼 보이지만 사실 추리소설 단편집이다. 소설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만 제외하면 정직한 제목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모두 서술트릭에 기반을 두고 있다.

종종 이야기했지만 내가 일본 추리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 중 상당수가 황금시대 정통추리소설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라캔스처럼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시기가 길어지다 보면 좀 극단적인 책들이 나올 때가 있다. 밀실추리만 모은 단편집, 알리바이 트릭만 모은 단편집은 그렇게까지 이상하지 않다. 앤솔로지라면 꽤 많을 것이고. 하지만 서술트릭은 어떤가?

원래 추리소설의 트릭이란 마술사의 트릭과도 같은데, 서술트릭은 그중에서 가장 ‘문학적’이다. 여기서 문학적이라는 건 문학으로서 퀄리티가 높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작가가 쓰는 언어만을 이용해 독자들을 기만한다는 뜻이다. 알리바이 트릭이나 밀실 트릭은 쉽게 영상 매체로 옮길 수 있다. 작품이 공평하다면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정보나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정보는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서술트릭을 쓴 작품이라면 이게 거의 불가능해진다. 작가가 결정적인 순간까지 고의로 누락시킨 정보가 영상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최근 국내 작품 중 이 트릭을 효율적으로 쓴 작품은 김보영의 SF 중편 <얼마나 닮았는가>가 있다. 작가가 절대로 영상화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서술트릭의 모든 것>에서 진지한 문학적 성취를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모두 소설 형식의 깜짝 퀴즈이다. 자체적으로 완벽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 서술트릭을 이용해 독자들을 기만하는 게 더 중요하다. 물론 그 기만은 최대한 공평해야 하지만 어차피 작가가 고의로 일부러 정보를 빼먹고 있는 상황에서 그 공평함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책은 엘러리 퀸 스타일의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장’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서술트릭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이 책이 모든 단편에 서술트릭을 썼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최대한 공정해지려고 노력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거짓말은 절대로 아니지만 기만적이기 짝이 없는 힌트를 굵은 글씨로 제공한다. 서술트릭은 영상매체에서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 (마술사이기도 했던) 오슨 웰즈의 고전 다큐멘터리 영화 ‘거짓의 F’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 뒤에 이어지는 단편들은 대부분 코지 미스터리에 속한다. 살인과 같은 심각한 범죄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뻥 뚫어주는 신’은 남들이 입구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변기가 막힌 여자 화장실을 청소한 불가능 선행을 누가 저질렀는지를 찾는 이야기다. ‘등을 맞댄 연인’에서는 수줍은 연애 이야기 속에서 누가 사진 동아리에서 필터를 바꾸었는지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제시된다. ‘갇힌 세 사람과 두 사람’에서는 일본인 두 명을 인질로 잡은 세 악당이 고립된 산장에서 동료를 죽인 범인을 밝히려 한다. ‘별생각 없이 산 책의 결말’은 서점에서 산 추리소설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이고 ‘빈궁장의 괴사건’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사는 기숙사에서 누가 간식을 훔쳤는지가 문제다. 가장 스케일이 큰 ‘일본을 짊어진 고케시 인형’은 거대한 고케시 인형에 낙서하려는 헤드헌터라는 범죄자를 체포하는 이야기다. 그 뒤에 ‘작가 후기’가 있는데... 하여간 이들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 벳시라는 이름의 괴짜 명탐정이라는 것이고 ‘일본을 짊어진 고케시 인형’에서는 벳시 탐정사무소가 정식으로 의뢰를 받아 활동한다. 내용 설명은 여기까지. 사실 지금 이 설명도 어느 정도 기만적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으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책이다.

인위적인 퍼즐 게임북인데도 의외로 정치색이 없는 편은 아니라 신기했다. ‘좋았던 옛날’을 향수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하고, 점점 우경화되어가고 있는 일본 사회를 비판하기도 한다. ‘일본을 짊어진 고케시 인형’에서는 상당히 직설적이다. 내용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음 인용구를 읽어보라.

“그 당연함이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차별하게 해달라’ ‘성추행을 하게 해달라’ ‘약자를 못살게 굴게 해달라’ ...... 그게 본심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긴 아무리 퍼즐 게임이라도 철저한 비정치적 허구 속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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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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