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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6.09.29 조회수 | 2,482

[과학살롱] 홍성욱 "내 책이 세상과 키스 역할 하기를"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같은 대학 석•박사 과정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전공 주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홍성욱 교수님의 새 책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동아시아)가 나왔습니다. 교수님께서 연구년으로 미국에 계시는 바람에 직접 만나지 못하고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예정에 없던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때문에 다 뒤로 밀렸어요”라고 답 주신 것을 읽고 피식 웃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애정을 담아 펴낸 책이기에 재치 있게 답을 주신 거라고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우리 시대 과학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생각 거리를 던지는 책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의 저자 인터뷰, 시작합니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사진 홍성욱 제공)

Q 학부 시절 물리학을 전공하고 석•박사는 과학사를 전공했습니다. 과학사를 전공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뒤 ‘서울의 봄’이 찾아오고, 그 직후 광주학살이 일어나 전두환 군부독재가 권력을 장악했지요. 공부에만 전념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관심이 많은 부분 ‘사회’로 향했습니다.

그러면서 과학과 사회를 연결해 생각하려 했고, 당시 번역되었던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J. D. 버날의 <역사 속의 과학> 같은 책을 읽고 과학기술과 사회, 과학사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과학기술과 사회에 대한 여러 문제를 더 깊게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과학사를 전공하는 프로그램밖에 없어서 1984년에 서울대학교에 막 개설되었던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진학했습니다.

박사를 하고 토론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3년에 서울대로 왔습니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기 위해서 돌아왔는데, 협동과정에는 교수가 소속될 수가 없어서 생명과학부에 적을 두고 주로 협동과정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수이지만 과학사나 과학과 사회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생명과학부 학부 학생들의 졸업논문을 지도하기도 합니다.

Q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합니다.

서울대학교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은 1984년에 개설되어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기술과 사회(STS) 분야의 학자들을 교육하는 대표적인 교육, 연구기관입니다. 지금 재학생들은 석•박사 합쳐 70여 명 정도 되고, 이들은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기술과 사회(STS)’에 대략 3분의 1씩 분포되어 있습니다. 전통과학사, 한국과학사, 서양과학사, 과학기술과 사회, 과학철학 등을 공부합니다.

이런 공부는 과학정책, 과학언론, 과학문화 등의 기초가 되는 공부입니다. 우리 과정은 인문학과 과학기술 모두에 관심이 있는, 혹은 한쪽에만 속하기를 거부하는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박사를 졸업한 학생들이 외국에서 포스트 닥터(Post doctor, 박사 후 과정), 교수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을 정도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 나온 새 책은 과학기술학 전공프로그램을 만들어 10년간 연구하고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라 들었습니다. 출간을 결심한 이유와 목적을 알려주세요.

2015년 말 동아시아 출판사 한성봉 대표님께서, 제가 2008년에 냈던 <홍성욱의 과학 에세이>의 전면 개정판을 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 책이 좀 오래돼서 책에 수록한 에세이들이 지금 시점 사회 현안과 잘 맞지 않아 좋은 제안이라 판단하고 수락했습니다. 원래 ‘기존에 써놨던 글을 조금 손봐서 새로운 책으로 내야겠다’ 생각하고, 2016년 연구년 중 한 달, 많아야 두 달 정도 들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1, 2월 기존의 글을 모으고 정리해서 초고 비슷한 것을 만들었습니다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 길게 두 개 장을 더 써서 추가했습니다. 그래도 책의 구조나 내용이 영 어색했습니다. 다시 두 장 더 쓰고. 이러다 어느 시점에서 기존의 글을 모아두었던 것을 다 버리고, 새로 쓴 장으로만 책을 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12장을 쓰려고 했는데, 자꾸 늘어나서 19장이 됐고, 결국 21장으로 책을 마감했습니다. 이러고 보니 연구년 중 절반을 이 책을 쓰는 데 들였습니다.

Q 책 제목이 독특합니다.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사회(Society)를 도서명에 넣었는데요, 이것의 의미를 짚어주신다면?

STS는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로도, 과학기술과 사회(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과 사회(STS)’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학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지식의 권위로, 행동과 정책의 정당성으로, 또 우리의 삶을 바꾸는 실질적 동인으로, 우리의 삶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과 사회(STS)’는 사회가 과학기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내용과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 또 반대로 과학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과학기술과 사회(STS)’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필연적이라거나 과학기술 자체의 논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습니다. ‘과학기술과 사회(STS)’는 과학기술이 제한적인 사고와 감정을 가진 인간에 의해서, 특정한 시기의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조건 속에서 발전한다는 ‘상식’에서 출발합니다. 과학은 인간의 활동이라는 것이 STS의 출발점인데, 이런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얘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Q 서문이 “과학기술을 테크노사이언스의 네트워크로 생각하기”로 시작합니다. 테크노사이언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기존의 과학기술 이해 방식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건가요?

테크노사이언스의 네트워크는 인간과 비인간(인공물들)이 얽혀 있는 네트워크입니다. “과학은 자연을 다루고 인문학은 인간을 다룬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과학은 인간이 변형한 자연을 다룹니다. 이론, 법칙이라는 것이 복잡한 자연을 이해할 수 있게 바꾼 것입니다. 실험이 강력한 과학의 방법론이지만, 실험을 하기 위해서 과학자는 자연을 실험실로 가지고 들어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은 단순화되고 인공적인 것과 섞입니다. 이렇게 실험실에서 잡종화되고 섞인 자연-인공의 복합체가 테크노사이언스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만들어지고 있는 테크노사이언스라는 것입니다. 교과서에 실린 깔끔한 과학이 아니고요. 교과서에 실린 과학과 만들어지는 테크노사이언스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많고, 이중 어떤 것들은 첨예한 사회적 논란을 낳기도 합니다.
흔히 과학이라고 하면 확실한 것, 진리, 사실의 전범이라고 강조되지만, 만들어지는 과학을 보면 왜 확실해 보이는 과학이 어떤 때에는 논란의 대상이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속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면, ‘과학기술과 사회(STS)’는 그런 속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게 된 과정을 역사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합니다.

 

Q 교수님께서 공동번역(출간 50주년 기념, 제4판)한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는 우리 시대 과학 고전으로 꼽히는 명저입니다. 원서 초판 당시인 1960년대에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 자체가 매우 낯설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이 용어와 개념을 여러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패러다임 개념과 테크노사이언스 개념과의 연결성과 특이성을 설명해주신다면?


쿤이 말한 패러다임은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사회에만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기술이나 의학 같은 분야에는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두 개 이상의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과학혁명기를 제외하면, 한 과학자 사회는 하나의 패러다임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이 과학자 사회를 정의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테크노사이언스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과학과 기술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과학과 의학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과학이 극도로 세분된 현대사회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서로 다른 방법론을 가진 두 개 이상의 과학자 사회가 연구하는 경우도 많고, 이런 경우 마치 두 패러다임이 과학혁명 시기 중에 충돌하는 것과 비슷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여러 현상을 패러다임의 개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테크노사이언스의 네트워크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 개념은 과학기술학의 핵심 방법론인 행위자네트워크이론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제가 노력한 것은 이 개념을 사용해서 쿤의 패러다임, 사회구성주의 등 이전의 방법론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Q 최근 한국사회 여러 현안을 보면 과학의 설명 없이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과학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파급력이 크고, 침투 속도가 증가한 시대,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있어 ‘과학기술’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집니다. 우리 시대 과학기술학의 역할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에서는 테크노사이언스가 낳는 사회적 논쟁을 많이 분석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GMO, 기후변화, 첨단 기술이 낳는 위험들, 화학물질의 위험 등은 불확실성이 지배적인 문제들입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리고, 시민들은 위험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사실과 가치가 융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융합이 과학자는 사실을 만들고 인문학자는 여기에 가치를 주입한다는 식이 아니라, 과학과 인문학이 힘을 합쳐서 사실과 가치가 혼재된 문제들을 풀어나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STS가 이런 협력을 매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과학과 인문학이 융합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보다 전체적인 관점을 얻어 내려면, 우리가 흔히 과학이나 인문학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우선 과학기술이 인간활동의 결과이며, 인간활동은 과학기술자가 살았던 시기의 사회적, 기술적(technological) 요소들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이해하는 ‘과학기술과 사회(STS)’의 ‘안경’을 한번 착용해봄으로써 유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과학과 기술을 이렇게 이해하면, 우리는 사회과학, 철학이나 역사학과 같은 인문학, 문학, 예술에 대해서도 기존에 우리가 했던 이해와는 다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책 마지막에 “STS 키스”라는 재밌는 표현이 나옵니다.

STS 키스는 네덜란드의 과학기술학자 위비 바이커(Wiebe Bijker)가 만든 개념입니다. 보통 과학기술학의 연구들을 과학자들에게 소개하면 과학자들은 거부감을 자주 보입니다. 과학자들은 과학이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그런데 바이커는 과학기술자들을 많이 만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STS에 거부감을 보이던 과학기술자들이 어떤 마법 같은 계기를 거치면서 STS의 주장을 수용하고 이를 환영하는 경우를 여러 번 접했다고 합니다.

특히 설득력 있고 흥미로운 사례를 접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이런 접촉을 STS 키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마법의 키스가 갑자기 잠을 깨운다는 의미지요. 제 책이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있는 일부에게라도 ‘STS 키스’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Q 남은 연구년 기간과 이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훨씬 더 대중적인 에세이집 하나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SNS 등에 올렸던 내용인데요, 과학, 예술, 사회에 대한 에세이들을 모은 책입니다. 그리고 남은 기간 새로운 일을 만들지 않고 밀린 일을 하려고 합니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는 책을 거의 써놨는데 이를 완성해야 하고, 영문으로 쓰고 있는 전기 기술사에 대한 책도 80% 정도 완성한 상태에서 중단했는데, 이것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원래 다른 계획들도 있었는데, 예정에 없던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때문에 다 뒤로 밀렸어요.

글 : 김현기(인터파크도서 과학담당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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