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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6.08.17 조회수 | 3,752

[카오스 강연 뒷이야기 2] 인류에겐 안도 '한 사람'에겐 당혹

※ 2016년 상반기 카오스 강연 ‘뇌가 보는 뇌’ 10회 강연 중, 담당 기획자가 유독 기억이 나는 강연이었던 1강과 5강을 골라서 뒷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두 번째 뒷이야기는 5강 ’자아의 탄생 : 나를 의식하는 나’에 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과학적이진 않습니다. - 필자 말

‘자아’에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5강 ‘자아의 탄생’ 강연자료를 강웅구 서울대 교수(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의사)로부터 받고 사실 담당자인 나도 당황했다. ‘후썰의 현상학, 퀄리아, 글래스고혼수척도, 게슈탈트...’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어만 듣고도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강연자료는 뇌과학과 심리학, 철학 등이 결합된 내용이었는데 좀 심오해서 대중강연으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한편으론 이런 융합 강연이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패널 섭외를 하기 전까지는 이런 시도가 과학계에서 얼마나 드문 일인지 몰랐다. 

강웅구 교수는 재단에 패널을 섭외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패널 중에 한 명은 철학자, 다른 한 명은 인공지능 전문가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철학자는 서울대 철학과 김기현 교수가 선뜻 승낙을 해주었다. 인식론 전문가로 평소 인지과학에 워낙 관심이 많고 관련 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신 분이다. 인공지능이 올해 상반기에 인기를 끌면서, 인공지능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이야기를 해줄 인사가 국내에 드물다 보니 김기현 교수를 찾는 곳이 아주 많았다. 그런 바쁜 와중에 감사하게도 카오스 강연 패널로 참석해주었다. 

 
과학과 철학의 결합으로 난해했지만 새로운 시도로 의미가 깊었던 강웅구 교수의 강연

그런데 인공지능 전문가의 섭외가 쉽지 않았다. 강연 제목 ‘자아의 탄생’만 듣고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러저러하다고 찬찬히 설명을 드려도 함께할 패널이 철학자란 사실에 부담스럽다며 거절을 하기도 했다. 호의적이었던 분들이 ‘자아’ 이야기가 나오거나 철학 이야기가 나오면 곧바로 부정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긴 메일을 드리면서 ‘인공지능 이야기만 해주시면 됩니다’,  ‘굳이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강조를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처음엔 서울권 대학에서 인공지능 연구나 뇌공학 연구를 하는 교수들에게 연락을 했다. 아무도 승낙을 하지 않아서 다음 날은 대전권, 그 다음날은 포항까지 범위를 넓히고, 그 다음 날은 지방 연구소에 전화를 다 걸었다. 그렇게 전국의 인공지능 혹은 뇌공학 전문가 약 30명에게 전화나 메일을 보냈다. 겨우 동의를 해준 교수도 강연자료를 받아보고는 다음 날 어렵겠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자아에 대한 이야기군요, 이 부분은 제 전공이 아니라서...’

섭외를 시작한 지 2주일이 지났다. 강연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관심은 있지만 안타깝게도 강연 날 선약이 있어요’ 하고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조한 와중에 KIST 전자재료연구단 선임연구원인 정두석 박사가 검색되었다. 처음에 연구실로 연락을 했을 때 전화를 받지 않아서 패스를 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그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친절하고도 호의적으로 패널 참석에 응해주었다. 오히려 내가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과학자들은 이미 많이 거절한 상황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꺼리지 않고 오히려 이런 강연 참석을 재밌게 여기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섭외된 정두석 박사는 KIST에서 신경모사 컴퓨팅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인공시냅스회로를 개발하기도 한 뇌과학계의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다. 

뇌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부드러운 결합의 장

한 달 동안 마음을 졸였으나 리허설 때는 이들이 입을 여는 순간부터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과학계의 김동률, 성시경, 하현우, 이선균이 모인 것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실제 강연 때는 이들의 좋은 목소리가 별로 안 드러나던데, 리허설 때는 빈 좌석 때문인지 목소리가 울려서 더 좋았다.

강연자 강웅구 교수, 사회자 김철훈 연세대 의대 교수, 패널 김기현 교수, 정두석 박사, 이렇게 ‘꿀성대’를 가진 네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아이고 좋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게다가 다들 언변이 뛰어나고, 대부분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라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주 드물지만 리허설 때부터 의견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강연이 시작되면서는 5강~8강 사회를 맡은 김철훈 교수의 안정적인 진행이 돋보였다. 국가과학자 강봉균 서울대 교수가 적극 추천을 해준 분이지만 전문 진행자가 아닌 교수가 과연 말솜씨가 좋을까, 진행을 잘할까 걱정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전 미팅 직후 잘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김철훈 교수와는 연세대 그의 연구실에서 사전 미팅을 가졌다. 김 교수는 대화가 끝나고 내가 나가기 직전 별거 아닌 한마디를 했는데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믿고 맡겨도 될 든든한 한마디였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김남식 카오스재단 사무국장에게 “이분은 목소리가 좋고 자신감이 있어서 진행 잘하실 것 같아요!”라고 보고를 했다. 역시 기대대로 그랬다.

여담인데, 사회를 한 2주 정도 진행한 후 김철훈 교수가 했던 말도 나를 기쁘게 했다. 리허설이 일찍 끝나고 대기실에서 잠깐 강연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그는 강연 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아침에 별 보고 집에서 나가서 실험실에 하루 종일 있다가 별 보고 들어오는 삶인데, 강연 날엔 모처럼 햇살 보며 실험실에서 나오게 될 (마음의) 핑계가 생기니 좋다고...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연구에 매진해왔는지 느껴졌다. 그런데 그는 워낙 언변이 뛰어나서 연구자가 아니었다면 아나운서나 기자가 되었을 것 같다.

 
5~8강을 진행을 맡은 사회자 김철훈 연세대 의대 교수

하여간 어렵게 섭외한 패널들이 참여하는 패널토의의 첫 번째 주제는 역시 ‘자아’였다. 보통은 패널에게 토의주제에 대한 상의를 드리나, 이번에는 서로 연구하는 영역이 달라서 재단에서 주제를 정했다. 첫 번째 주제는 ‘자아란 있다? 없다? 혹은 모르겠다?’였다.

여기서 자아의 정의가 먼저 나와야 하는데, 담당자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를 의미해서 썼다. 본인이 알기론 많은 과학자들이 자아 혹은 자유의지란 없다고 생각한다. 아예 없다는 걸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학자들도 많다. 며칠 전에 읽은 <김상욱의 과학공부>에도 비슷한 문제가 나온다. 정확히는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자유의지란 결국 자아가 있다는 걸 전제로 말하는 것이니 유사한 문제로 보인다.

물리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우주에서 자유의지의 존재 유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우주가 결정론적인지에 따라 결정론과 비결정론으로 나눌 수 있고, 각각에 대해서 자유의지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한편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도 저서나 인터뷰에서 자유의지를 부인한다. 

“벤저민 리벳 박사가 자유의지와 관련된 실험을 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몇 백 밀리세컨드 정도의 극히 짧은 시간 전에 뇌에서는 이미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자유의지라고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인데 사실은 나라는 자아가 무언가를 원하기 전에 뇌는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는 내가 무언가를 원해서 선택을 한다. 즉 선호가 있어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대 뇌과학에서 선택을 먼저 하고 선호를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줄임)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기계다.” - 문화일보 2014년 7월 25일자 김대식 교수 인터뷰

그래도 자아는 있다

이처럼 일부 과학자는 인간의 뇌가 ‘결정론적 기계’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나 대중들은 대부분 자아나 자유의지는 당연히 있는 것이고 이것이 인간과 인공지능을 가르는 궁극적 차이라고 여긴다.

대중의 시각이었던 나도 일부 과학자의 극단적 의견(자유의지는 없다는)을 접하고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 나중엔 헷갈리기 시작했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조금 우울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자아란 있고, 우리의 뇌 활동은 양자역학처럼 비결정적 세계를 일으키는 작용이라 믿는다.)

어쨌든 ‘자아란 있다, 없다’ 이런 주제를 잡고선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대중들이 과학자들의 말에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지겠지?’ 생각하며. 그러나 놀랍게도 강연자와 패널들은 모두 자아를 인정했다. 이런 주제를 준비한 담당자가 살짝 김빠진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인공지능 전문가인 정두석 박사나 사회자인 뇌과학자 김철훈 교수는 자아를 부인할 줄 알았으나 그들도 환한 미소로 자아는 당연히 있다고 말했다. 전 인류에게 안도를 안겨준 중요한 순간인데, 담당자는 큰 당혹감이 들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자아를 부정하는 과학자들은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조차 어색했을 것이다. 강연 주제 자체가 ‘자아의 탄생’이니까. 그래서 많은 분들이 거절을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과학과 철학이라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해주고, 우리 인류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준 강웅구 교수와 패널 김기현 교수, 정두석 박사, 사회자 김철훈 교수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글 : 김수현 카오스재단 팀장 / 사진 : 카오스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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