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후기

등록일 | 2017.12.28 조회수 | 10,185

[‘현남오빠에게’ 북잼콘서트] “가부장제 속 고민 ‘아줌마 넋두리’로 폄하 돼”

 

2017년, 올 한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크게 대두됐던 화두를 하나 꼽자면 바로 페미니즘일 것이다. 페미니즘에 관한 담론은 이제 여성에 국한된 문제를 넘어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젊은 여성 작가 7명이 페미니즘을 주제로 7편의 단편 소설을 1권의 책으로 묶었다.

 

지난 12월 2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에 자리한 북파크 카오스 홀에는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주제로 북잼콘서트가 열렸다.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다산북스/ 2017년)에 참여한 작가 7명 중 조남주, 김이설, 최정화, 구병모, 김성중 등 5명이 자리에 함께했다. 17회를 맞은 이번 북잼콘서트의 사회자는 이번 소설집의 발문을 맡은 이민경 씨가 나섰다.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는 여성의 삶을 한가운데 놓고 이야기를 펼친 7편의 단편 소설을 수록했다. 조남주 작가는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현남 오빠에게>를 통해 젊은 여성이 청혼을 거절하는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김성중 작가는 <화성의 아이>를 통해 여성의 출산을 아름다운 우화의 형식으로 그려냈다. 최은영 작가는 <당신의 평화>에서 엄마와의 앙금을 통해 가부장제와 마주하는 30대 여성의 이야기를, 김이설 작가는 <경년更年>에서 사춘기 남매를 둔 40대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조남주 작가


또한 최정화 작가는 <모든 것을 제자리에>를 통해 습진이 생겨 손에 붕대를 감은 채 기이한 강박에 사로잡힌 여성을, 손보미 작가는 <이방인>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에 빠진 여성 경찰의 이야기를, 구병모 작가는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을 통해 낯선 섬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냥꾼들에게 쫓기며 목숨을 위협받는 인물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김이설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을 했다며 “그동안 소설을 쓰면서 여성의 이야기에 천착해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 시선이 남성화된 것이었음을, 제가 그려온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된 것이었음을 깨달았어요. 때마침 이 소설집의 청탁을 받았고, 기존과는 다른 방향의 여성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수락했죠.”라며 이 소설집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최정화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제자리에>와 같은 소설은 결코 쓰지 못했을 거예요. 이 소설은 그동안 썼던 소설 중에서 저를 가장 많이 변화시킨 작품이에요.”라고 소감을 전했고 김성중 작가는 “종류를 막론하고 어떤 ‘주의’가 붙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소설을 쓰기 전에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모든 저울을 내려놓고 즐겁게 쓰고자 마음먹었죠. 덕분에 상상력을 넓게 펼쳐 저 멀리 화성까지 갈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최정화 작가

 

5명의 작가는 각자 자신이 선정한 소설 일부분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낭독 직후에는 사회자와의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현남 오빠에게'라는 소설을 어떤 취재를 통해 썼느냐는 물음에 조남주 작가는 “이 소설은 타인의 감정이나 태도를 자신의 의도에 맞춰 조종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예전부터 이런 내용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계속 공부를 해왔죠. 로빈 스턴의 <가스등 이펙트>를 비롯해 윤단우의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에 수록된 여러 사례를 참고했어요.”라고 밝혔다.

 

이번 소설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김이설 작가는 “가부장제라는 악습 속에서 갈등하는 엄마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키우고 있어서 아이들이 겪는 성차별에 대해 ‘같은 문제를 계속해서 겪게 하는 것이 과연 마땅한 일인가’하는 고민을 늘 갖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가끔 아줌마의 넋두리라고 폄하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이런 고민을 다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에 소설을 썼어요.”라고 자신의 의도를 전했다.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이 남성들을 향한 복수의 서사로도 읽힌다는 사회자의 평에 구병모 작가는 “그리스 신화를 살펴보면 여성을 아름다운 여신으로 묘사하거나 흉측하고 기괴한 괴물로 드러나더라고요. 이런 이분법적인 틀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가 ‘하르피아이’라는 괴물의 폭력적인 성향을 극대화 시켜보기로 했죠. 아마 독자에 따라 이 소설을 남성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해 불편하게 느끼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상한 일을 겪는다는 점이거든요. 사실 이는 여성들의 역사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죠.”라고 강조했다.    

 

구병모 작가

 

엄마라는 가까우면서 보수적인 세계

 

다섯 명의 작가들은 북잼콘서트 현장을 찾은 독자에게 직접 질문을 받아 심도 있는 대화를 이어갔다.

 

Q 집안의 장녀로서 어떤 부당함을 겪을 때마다 반발심을 많이 느끼며 살아왔는데요. 그 원인을 탐구하고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어머니랑 싸울 때가 많아요. 기성세대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구병모 : 어른들을 설득한다는 관점보다는 끊임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느낌으로 접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른들이 그 이야기를 귀찮아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벽을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웃음) 벽은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금이 가기 마련이니까요.

 

김성중 : 딸에게는 엄마만큼 가까우면서 보수적인 세계가 없는 것 같아요. 방법은 가랑비에 옷 젖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저 역시 엄마가 진보정당을 지지하게 만들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끊임없이 속살거리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마도 딸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어디 가서 다시 들으신다면 분명 마음속에 담아놓으실 거예요.

 

Q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굉장히 많이 싸웠어요. 그래서 현재의 남자친구랑은 이 주제로 이야기를 잘 안 하려고 해요. 아무래도 답답한 측면이 많은데 기혼인 작가분들은 남편분과 어떻게 대화를 나누시는지 궁금합니다.

 

조남주 : 저도 남편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많이 싸우는데요. 특히 남성들은 싸우자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멀리서부터 시작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봐요. 옆에 있는 사람과 맨날 싸우면서 내 힘을 소진하는 게 힘들다면 멀리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작하는 거죠. 저는 제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은 어떤 여성의 삶을 소설로 썼고, 제 소설을 읽은 남편은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죠.  

 

김성중 작가

 

Q 저는 남성으로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습작할 때마다 한계를 느끼는데요. 페미니즘 문학을 할 때 한계점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김성중 : 나와 성별이 다른 주인공을 갖고 소설을 쓸 때는 인물을 대상화한다는 말을 듣기가 쉬워요. 그래서 소설을 쓸 때는 인물을 사건 속에서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 보는 것이 중요해요. 사실 한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상상력이 필요하죠. 무엇보다 ‘페미니즘 문학을 할 거야’라는 목적을 갖고 소설을 쓸 때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면 상상력에 제약이 생기면서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일단 자기의 목소리를 갖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춤추고 싶지 않은 리듬이라면 굳이 춤을 출 필요가 없죠. 여성의 수가 많은 만큼 여성주의도 제각각일 것이고 페미니즘 소설 역시 어떤 특정한 형태에 머물러있지 않으니까요. 글을 쓰지 않는 분들도 여성에 대한 생각을 가질 때 ‘진정한’에 너무 애쓰지 말고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사고, 판단, 분별을 가지셨으면 해요. ‘진정한’이라는 말에 너무 사로 잡혀서 페미니즘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다 보면 위축되기 쉽거든요.

 

Q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는데요. 교실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에 대해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어려울 때가 많아요. 

 

김이설 : 제가 이 자리에 나온다고 하니 6학년 딸아이가 이야기를 하나 해주더라고요. 작년에 성교육 시간이 있었는데 보건 선생님께서 “생리대를 변기에 버려서는 안 된다. 만약 변기가 막히면 뚫으러 온 아저씨가 얼마나 창피하겠니”라고 하셨다는 거죠. 아이가 그때는 끄덕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이상하고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올해는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에게 “숫자 6의 영어 철자 가운데가 i야? e야?”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해요. 그 질문의 의도를 안 아이들은 분개했고 결국 교실이 발칵 뒤집어졌어요.

 

담임 선생님이 남자분이셨는데 다행히 성에 대해 의식이 있는 분이셔서 아이들에게 “이건 경찰에 신고해도 될 일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언어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 주셨다고 해요.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성차별은 선생님 개인과 학교라는 구조, 부모님의 의식이 원인일 수 있어요. 아까 성희롱을 한 남자아이의 부모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아들 다 컸네”라고 말했다더군요. 어떤 식으로든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이설 작가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파크도서 북&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조남주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로 황산벌청년문학상을, 같은 해 출간된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82년생 김지영』은 현재까지 27개국 2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 외 장편소설 『사하맨션』과 『귤의 맛』이 있다.

[심현보 북잼플레이] “좋아하는 감정과 좋아한다고 쓰는 건 달라요” 2018.01.08
[이지성 북잼콘서트] “개성공단에 남과 북 함께 하는 학교 짓는 게 꿈” 2017.11.02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