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후기

등록일 | 2018.09.28 조회수 | 5,172

[공지영 북잼콘서트] “9시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한 소설가는 저일 거예요”

선과 악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선과 악의 불투명한 경계선에 서서 그 얇은 종이 한 장을 붙들고 치열하게 싸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소설가 공지영이다. 보통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악의 얼굴은 거대 권력과 자본의 모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지영 작가는 모두가 생각하는 악과 맞서는 대신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선의 가면을 쓰고 상투성의 틈을 타고 일상 깊숙이 파고든 악을 파헤치기로 나선 것이다.

소설가 공지영이 5년 만에 장편소설 <해리>(해냄/ 2018년)를 들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해리>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계의 비리, 약자들을 향한 인권 유린, 진보적 활동가들의 이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9월 20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는 <해리>의 발간을 기념해 ‘아름다운 것들은 천천히 온다’라는 이름으로 공지영 작가의 북잼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자리는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서도 많은 독자가 찾아와 자리를 밝혀주었다.

문소리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이어진 이번 콘서트는 다양한 즐길 거리로 풍성하게 채워졌다. 공연의 문을 연 최은준 작가는 빛과 모래를 이용한 샌드아트로 <해리>의 내용을 재구성해 보여주며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10분가량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섬세한 손놀림으로 강렬한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성악가 진진은 특유의 저음으로 ‘Donde Voy(돈데 보이)’와 ‘Besame Mucho(베사메 무초)’를 열창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뜨겁게 데웠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석에 앉아있던 공지영 작가가 무대에 오르며 소감을 밝혔다.

“이번 가을은 제가 소설을 발표하고 작가가 된 지 30주년이 되는 때예요. 등단할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죠. 독자분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이번에 발표한 <해리>는 제 기질을 대표하는 작품이에요. 제가 세상을 바라보고 질문하는 방식과 많이 닿아있죠. 제가 질문하는 방식은 이런 건데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병을 낫고자 찾아온 이에게 ‘낫고 싶으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 질문을 보고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왜 우리가 병원에 갔을 때 낫고 싶으냐고 질문하는 의사는 없잖아요. 저는 예수님의 일화를 보고 난 뒤로 저 자신에게 매일 물었습니다. ‘너는 낫고 싶으냐’ ‘너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으냐’ ‘너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정말 원하느냐’ 라고요. 의외로 저의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냥 편한 것이었어요. 누군가 나쁘다고 하면 나쁘다 생각하고 남들이 좋다고 하면 따라서 좋다고 하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예수님의 그 질문은 저에게 매일 큰 도전이었어요. 제가 그 질문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엄청난 상투성에 자기를 맡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래서 오늘날의 악은 상투적인 것에 나를 맡기는 것,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지 않는 것,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속에서 해리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악을 뻗쳐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고요. 저는 소설을 통해 그러한 해리들을 묘사해 보고 싶었고 앞으로도 이러한 저를 말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소리 아나운서가 “작가로 등단한 지 30주년이 된 만큼 의지가 확고해져서 이제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하자 공지영 작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오히려 더욱 흔들리고 있다”는 말로 대답을 이어갔다. 글쓰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것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며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습작 기간 없이 처음 쓴 소설로 당선이 되어 등단한 뒤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썼던 소설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했다고. 그러다 7년의 공백기를 가지면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별들의 들판>, <즐거운 나의 집>을 쓰고 나서야 글을 쓸 지면이 주어진 것의 행복을 느끼고 뒤늦게 철이 들었다고.

문소리 아나운서는 공지영 작가의 지난 책을 읽으며 “결국 행복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가장 힘든 순간에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공지영 작가는 “사람은 고통스러워야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고 답하며 자신 역시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게 됐다고 전했다. 돈이 생기고 생활이 편안해지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반면, 돈이 떨어지고 힘든 일이 생기면 뭐라도 더 쓰고 읽게 된다고. 공지영 작가는 고통이 오히려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다른 사람과 결합하게 도와주는 고마운 것이라고 전했다. 그녀는 이어 <해리>를 위해 취재를 했던 뒷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소설을 쓰면서 사건의 관계자들로부터 직접 고소도 당했었는데요. 제가 경찰에 해명자료까지 제출한 터라 굳이 검찰까지 갈 일이 아니었는데도 송치가 됐어요. 아마 문학이 아닌 걸로 9시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한 소설가는 제가 아닐까 싶네요.(웃음) 그래서 검찰에 갔더니 검사가 그러더라고요. 저를 고소한 사람이 횡령했다는 사실을 직접 밝혀오라고요.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취재를 적극적으로 해봐야겠다 싶어서 사건에 뛰어들게 됐죠. 저는 원래 호기심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 못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크거든요. ‘어떻게 저리 나쁠 수 있을까’ ‘저러고도 마음이 편안할까’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요.

이번 취재를 하면서 가장 선한 위치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악을 저지를 때, 사람들은 더욱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 부분을 어떻게 소설로 쓸지 굉장히 고민했죠. 잘못하면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고 약자를 보호하시는 분들까지 피해를 보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상했어요. 저의 소설적 상상력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악을 못 쫓아가는 사실 때문에요. 현실의 악랄함이 저의 상상력보다 두 배쯤 앞서가다 보니 현실이 더욱 궁금해지더라고요. 제 고등학교 동창은 이번 소설을 읽고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다며 한동안 밥맛이 없을 정도였다 하더라고요. (웃음)”

“오늘날의 악은 상투성에 나를 맡기는 것”

이어서 문소리 아나운서가 “사회의 부조리를 취재하다 보면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공지영 작가는 “나에게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평소에도 경찰서와 소방서에 신고를 자주 할 정도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그녀는 죄악을 대놓고 저지르는 곳이야말로 지옥이라 일컬으며 좋은 세상에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세상이 불의하면 아무리 산속에 들어가 산다고 할지라도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기를 바라며 <해리>를 썼다고. 그녀는 이어서 소설의 제목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처음에는 ‘거짓말’로 지으려고 했어요. 악한 사람들이 끝까지 하는 게 거짓말이거든요. 그런데 출판사 측에서 그 제목은 너무 흔하다고 하길래 ‘해리’라고 지었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고, 해리성 인격장애를 뜻하기도 해요. 해리성 인격장애가 예전 이름으로 치면 다중인격인데요. 얼마 전에도 저에게 악성 댓글을 쓰신 분 중에서 10명을 고소한 적이 있어요. 그중 한 분은 귀농을 해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분이더라고요. 그분이 과일이나 곡식을 키우던 눈빛과 인터넷을 하며 저를 바라보는 눈빛은 완전히 달랐겠죠?

예전에는 내면의 어둠이 표출되는 곳이 가족이나 이웃에 불과했는데 요즘에는 익명성의 공간을 통해 더욱 다방면으로 표출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변할 수 있는 거죠. 직장에서는 건실한 청년이 인터넷으로는 일베를 하면서 타인의 인격을 죽이기도 하고, 대외적으로는 청렴한 민주주의를 외치던 정치인이 성범죄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요. 우리는 언제 분열될지 모르는 위험성에 늘 노출되어 있어요. 저는 그것을 소설을 통해 ‘해리’로 명명했고요. 사실 이러한 악을 가능케 하는 원인은 우리의 상투성과 불공정한 사회적 구조에 있다고 봐요.”

문소리 아나운서가 이번 소설이 종교계의 일을 다루고 있는 만큼 걱정되는 부분이 없느냐고 묻자 공지영 작가는 가톨릭 관련 사건을 취재하고 돌아오던 당시의 순간을 전했다.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이 너무 심하게 나오는 탓에 갓길에 차를 세우고 30분 정도를 울었다고. 누군가는 “어떻게 가톨릭 신자가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느냐” “개신교의 작전세력이다”라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공지영 작가는 “잘못한 게 있으면 반성하면 된다” “집안 한번 깨끗이 청소하려고 해도 묵은 것 다 꺼내서 털어내야 하지 않느냐”라며 의연하게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취재를 하는 지난 5년 동안 새벽 미사를 다니며 많은 힘을 얻은 덕에 아직 살도 빠지지 않고 피부도 좋은 상태라며 여유 있는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어서 공지영 작가는 독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Q 어떻게 하면 작가님처럼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비법을 좀 알려주세요. 

첫 번째로는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소설가가 되고 싶으신 분은 물론이고, 영화의 대본을 쓰시거나 만화를 그리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소설은 결국 인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죠. 특히 고전을 읽을수록 좋아요. 신문을 열심히 읽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두 번째로는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데요. (웃음)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 보면 어떤 때에 누가 치사하고, 누가 고맙고 이런 게 다 보이거든요.

마지막으로는 일기를 매일 써보세요. 이건 화가로 치면 매일 데생 연습을 하는 것과 같아요. 화가들을 보면 똑같은 걸 정말 많이 그리거든요. 아무리 많이 읽고 마음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해도 써내는 능력은 결국 손끝에서 나와요. 저는 7년 동안의 공백 기간에도 거의 매일 읽고 쓰는 일을 반복했어요. SNS에 일기를 써서 매일 올리고 저장해놓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죠. 화가들이 데생 연습을 하는 것처럼 계속 무언가를 기록하다 보면 결국 자산이 되거든요.

이렇게 열심히 읽고 쓰다 보면 하늘에서 약간의 신호를 줍니다. (웃음) 그럼 직업 활동을 잠시 멈추고 돈을 빌려서라도 어딘가 틀어박혀서 소설을 써보는 거예요. 소설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큼직한 덩어리의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렇게 글을 쓰시면서 아주 작은 이야기라도 완성을 꼭 해보세요. 어딘가에 응모를 해봐도 좋고요. 사실 그 뒤에 좋은 작품으로 인정을 받느냐 하는 건 운이 따라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일단 그런 부분은 신경 쓰지 마시고 좋아하는 걸 써보세요.

-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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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공지영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1989년 첫 장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뤄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다. 1994년에 『고등어』『인간에 대한 예의』가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명실공히 독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한민국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착한 여자1‧2』『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즐거운 나의 집』『도가니』『높고 푸른 사다리』『해리1‧2』 등이 있고,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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