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후기

등록일 | 2018.05.17 조회수 | 8,823

[이해인 북잼콘서트] “언어 습관만 바꿔도 주변에 선한 영향력 줄 수 있어”

 

수도자이자 시인으로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이해인 수녀. 그녀는 일상과 자연을 소재로 한 시와 기도로 많은 이의 가슴을 적셔온 바 있다. 암 투병 이후에도 꾸준한 집필 활동을 통해 따스한 희망을 전해온 그녀. 최근 새로운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샘터/ 2017년)을 펴내며 작은 사물에서 느낀 일상의 단면, 고백과 반성의 기도, 법정 스님과 주고받은 편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 세월호 사건을 기리며 추모한 시 등을 엮어 삶의 지혜와 함께 진심 어린 위로의 글을 전하고 있다.

 

지난 5월 1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에 자리한 북파크 카오스홀에서는 이해인 수녀와 함께하는 북잼콘서트 ‘나를 키우는 말’이 열렸다. 이번 자리는 오랜 시간 시를 쓰며 언어를 단련해온 그녀가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말과 관련된 지혜를 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아무리 화나도 극단적 표현은 삼가세요”

 

이해인 수녀는 독자들과 함께 고운 말 차림표를 함께 읽는 것으로 이날의 북잼콘서트를 열었다. 고운 말 차림표는 월간지 ‘샘터’에 연재되었던 이해인 수녀의 글을 간략히 요약한 책자로 북잼콘서트 입장 시 모든 독자에게 무료로 전달되었다. 이 차림표에는 ‘화가 나도 극단적인 표현은 삼가기’ ‘푸념과 한탄의 말 줄이기’ ‘긍정의 맞장구 치기’ ‘인격 비하 표현 삼가기’ ‘농담을 지혜롭게 하기’ ‘자신을 말할 때는 언제나 겸손하기’ ‘기분 좋은 상징어를 자주 사용하기’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해인 수녀는 첫 번째 항목에 수록된 ‘화가 나도 극단적인 표현은 삼가기’에 대한 내용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제가 머무는 수도원에는 120명가량의 수녀님들이 계시는데요. 수도자로서 단체 생활을 할 때도 언어는 굉장히 중요해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이런 복장을 하고 ‘꼭지가 돌겠네’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그래서 어떤 표현을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보통 일이 아니에요’라고만 말해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어떤 신부님께서는 한국에 살면서 그렇게 고운 말만 하며 산다는 게 쉬운 줄 아느냐고 하소연을 하시더군요. 특히 운전을 하다 보면 화가 나는 상황이 많다고, 성직자임에도 막말이 마구 나온다면서요. 그런데 어느 날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포스트잇에 잘 쓰는 욕 5개를 적어서 번호를 매긴 뒤 운전석에 붙여놓으셨대요. 그리고는 욕을 하고 싶을 때마다 번호를 불렀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꼭 욕을 하지는 않더라도 극단적인 표현을 습관처럼 사용할 때가 많아요. ‘골 때린다’ ‘뚜껑 열린다’ ‘환장하겠네’ ‘졸도하겠네’ ‘돌아버리겠다’ ‘죽겠다’ 라는 식으로요. 대부분 지나치게 과격하고 극단적인 표현들인데요. 이런 표현대신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정도로 표현해도 좋을 것 같아요. 만약 이게 어렵다면 ‘미치고 팔짝 뛰겠다’ 대신에 ‘미치겠다’ 정도로, ‘기분이 더럽다’ 대신에 ‘언짢다’로, ‘눈이 뼜다’ 대신에 ‘잘못 봤다’로,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린다’ 대신에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다’로, ‘재미 대가리 없네’에서 ‘대가리’는 빼고 ‘웃기고 자빠졌네’에서 ‘자빠졌네’는 빼는 식으로 순화를 시키는 것도 좋겠어요. (웃음)”

 

이해인 수녀는 이 정도의 다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언어 습관이 우리의 삶을 밝게도, 어둡게도 만들 수 있기에 걸림돌보다는 디딤돌이 되는 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구제 불능’이라는 말까지 써가면서 인격을 깎아내리는 표현을 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좋은 일이 생겼을 때도 ‘땡잡았다’ 대신에 ‘축복받았다’로, ‘뿅 간다’ 대신에 ‘환상적이다’ ‘꿈을 꾸는 것 같다’라는 말로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부산일보에 실린 손택수 시인의 글을 언급하면서 그의 글에 적혀있던 한 초등학생의 시를 소개했다. 한글을 익힌 지 6개월쯤 됐다는 아이의 시 ‘송아지’는 "송아지의 눈은 크고 맑고 슬프다/그런데, 소고기국은 맛있다/난 어떡하지?"로 짧게 구성되어 있는데 그동안 고기를 먹으면서도 이 아이처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며 반성을 했다. 세상을 살아갈 때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한 2017년도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인 ‘나무’와 윤보영 시인의 ‘커피’, 신협 시인의 ‘맹물’, 권영상 시인의 ‘밥풀’ 등 다양한 시를 나누기도 했다.

 

(왼쪽부터) 가수 박완규, 이해인 수녀, 가수 김태원 부인 이현주, 가수 김태원

 

“오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영성에서 도움받았죠”

 

이어서 ‘부활’의 김태원과 그의 아내 이현주, 가수 박완규가 무대에 올라 이날의 자리를 빛냈다. 김태원과 이현주는 이해인 수녀의 시 중에서 ‘우리 집’을, 박완규는 ‘사랑의 길 위에서’라는 작품을 낭송했다. 또한 이들은 반주 없이 즉흥에서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후 이해인 수녀는 객석에 앉은 독자 중에서 자원하는 이를 대상으로 무대에서의 시 낭송 기회를 선사했다. 시 낭송에 나선 독자들은 분당, 동탄, 의정부, 일산, 김포 등 수도권 일대 다양한 지역에서 찾아온 경우가 많았으며 고등학생을 비롯해 주부, 중년 남성, 장년 여성 등 세대와 성별을 넘나들었다.

 

특히 김포에서 왔다고 밝힌 한 20대 여성 독자는 이해인 수녀와의 특별한 인연을 전했다. 태어나서 한 달 동안 이름이 없어 아가라고만 불렸다고 한 그녀. 독자의 어머니는 이해인 수녀에게 이름을 지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고 이해인 수녀의 답장에 적힌 것 중 하나를 골라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한편 중년의 한 남성 독자는 아내의 생일을 맞아 무대에 올랐다며 시 낭송을 생일 선물로 전달하고 싶다고 말해 많은 이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해인 수녀는 독자와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이번 북 콘서트를 마무리했다.    

 

Q 저는 가정 폭력을 비롯해 학교 폭력을 오랫동안 겪어왔는데요. 현재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약을 복용 중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처가 다 낫기도 전에 주변의 어른들은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제게 밥벌이를 하라며 압박을 주고 있어요. 삶의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더욱 강해질 방법에 대해 궁금합니다.

 

박완규 :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는데요. 생후 1년 6개월쯤 바닥에 놓여있던 해충 약을 잘못 마시는 바람에 병원에 가서 14시간 동안 위 세척을 받았어요. 당시 의사는 식도와 기도가 손상되어서 목소리가 안 나올 수 있다고도 진단했고요. 그 이후로 몸이 약해져서 학교 다닐 때 많이 맞기도 하고 가수로 데뷔한 후에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세례를 받으면서 절대적인 믿음이 생겼죠. 그 믿음은 제가 흐려지거나 혼탁해지지 않도록,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아주었어요. 그 믿음으로 참고 견디면서 지금까지 흘러왔던 것 같아요.

 

이해인 : 저는 오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영성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어요. 그래서 암이 찾아와 생존율이 30%밖에 안 됐을 때도 저보다 더 아픈 이들을 생각하며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죠. 삶에 원치 않는 고통이 왔을 때, 그것을 푸념하면서 남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그 시간을 축복의 기회로 삼아 내가 먼저 손을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원한다면 차비를 줄 테니 제가 있는 수도원에 와서 기도를 받고 산책도 하면서 마음을 잘 다스렸으면 좋겠네요.

 

 

Q 그동안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읽으면서 힘을 많이 받았는데요. 수녀님께 있어 시는 무엇이고, 하느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합니다.

 

이해인 : 시는 추상적으로 혹은 낭만적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라 생각해요. 우리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죠. 앞으로 제 시가 민들레의 솜털처럼 더욱 널리 퍼져서 아픈 사람들의 마음속에 위로가 되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에게 있어 하느님은 침묵 속에서 평화로 다가오는 존재예요. 수도 생활을 하는 데 있어 희생과 절제로 인해 인간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느님으로 인해 기쁜 마음으로 지금까지 걸어왔죠.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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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이해인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1964년 수녀원(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 1976년 종신서원을 한 후 오늘까지 부 산에서 살고 있다. 필리핀 성 루이스대학 영문학과,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 업하였으며, 제9회 <새싹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대상>, 제6 회 <부산여성문학상>, 제5회 <천상병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한 이후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 『서로 사랑하면 언 제라도 봄』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작은 위로』 『꽃은 흩 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작은 기쁨』 『희망은 깨어 있네』 『작 은 기도』 『이해인 시 전집 1· 2』 등의 시집을 펴냈고, 동시집 『엄마와 분꽃』, 시선집 『사계절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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