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등록일 | 2021.05.27 조회수 | 1,014

[인문MD 추천 신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얼마 전 한 치킨집 가게 사장님이 주머니 사정 때문에 치킨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형제를 불러 치킨을 내어주고 돈을 받지 않은 일이 알려졌습니다.

사장님은 '특별한 일,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며 부끄러워했고, 당사자인 고등학생은 따뜻한 손길을 내준 그 분에게 '성인이 되고 돈 많이 벌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겠다'고 재차 감사의 글을 남기며 화제가 되었지요.

누군가는 미담을 지어낸 게 아니냐, 가게 홍보를 위한 억지선행이 아니냐는 등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지만, 실제 그렇다한들 어떨까 싶었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이를 모른척 하기보다는 선뜻 내 한켠을 내어줄 수 있는 것, 그 선의로 인해 다시 그 상대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조금은 나아지게 한 것이 아닐까요.

뉴스를 보다 냉소적인 말들을 툭툭 던지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혼란한 세상에 적어도 나는 '괴물' 이 아닌 것처럼 그 누군가를 향해 비난을 내뿜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고 방구석에 누워 떠드는 헛소리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씁쓸해지기도 하지요.

여기 '찰나의 선의는 그 자체로 귀하며,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고, 쉽게 바뀌지 않을 차가운 현실 앞에서 냉소하거나 무력해지기보다, 미약한 힘으로나마 우리가 서로를 돌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별것 아닌 선의>(이소영/ 어크로스/ 2021년).

2017년부터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오랜 시간 독자들과 만나온 제주대 이소영 교수의 글입니다.

연민을 잃은 분노, 방향을 상실한 정의감을 경계하며 오늘 내가 세상에 보탤 수 있는 작은 실천을 고민해 온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습니다.

어떤 엄숙한 정의나 분노만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취약한 개인들이 서로 약간의 호의를 나눔으로써, 혹은 상대방의 상처를 알아보고 잠깐의 이해와 위로를 나눔으로써도 서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

알지 못하는 스쳐간 사람들이 건네준 친절처럼 순간적이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어쩌면 그냥 위선일 수도 있는 행동들에 의해서도 누군가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그 작은 실천을 냉소하지 말고 계속 이어가자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착한 척한다고 비난하면 달게 받겠다.
나는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
(104쪽)

자정을 넘긴 시각, 어느 젊은 부부가 불 켜진 빵집 문을 거칠게 게 두드린다. 빵집 주인은 그들이 며칠 전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던 손님임을 알게 된다.

전화를 걸어 케이크를 가져가라고 채근해댄 그 며칠 사이에 부부의 아이가 사고를 당해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도.

빵집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를 전하고,
부부에게 따듯한 커피와 갓 구운 롤빵을 내어놓는다.
이럴 땐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라는 말과 함께.
부부는 조용히 그가 내어준 빵을 먹으며 날이 밝아올 무렵까지 그가 풀어놓는 사소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A Small, Good Thing)'의 이야기입니다.

몇 해 전, 칼럼 연재를 제안 받은 저자는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치유할 수도 없는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지요.

빵집 주인이 그랬듯,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덜어줄 수는 없어도 허기는 달래줄 수 있을 거라고, 세상은 이런 식으로도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그렇게 모인 50여 편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냈습니다.

저자는 주변의 사소한 마음 씀에 기대어 생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줍니다. 

전공 시험과 학원 아르바이트가 겹쳐 막막해하던 저자를 대신해 보충 수업을 맡아주었던 선생님, 눈물을 쏟으며 성당으로 가 달라는 승객을 위해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희생하고 성가가 흐르는 클래식 FM을 틀어주신 택시 기사님, 대학원생 시절 지도학생도 아닌 저자에게 ‘네가 어떤 학자로 커나갈지 지켜보고 있다’는 격려의 말을 전해주신 교수님을 떠올리며 기억의 한 조각을 독자들과 나누지요.

별것 아닌 배려나 호의가 누군가에게는 휘청거리는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해 줍니다. 그 자신이 그런 순간을 내어주기 위해 애쓰던 순간들도 소개하는데요. 상담 형식을 빌려 누구에게도 말 못한 고민거리를 꺼내 보이는 학생에게 조용히 ‘듣는 귀’가 되어주거나, 자책과 절망을 반복하는 ‘세심증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본인의 ‘폭망’ 경험을 나누기도 합니다.

서투르고 어설픈 사람이지만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저자의 태도는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선사합니다.

한 챕터씩 읽어나가며 저에게도 과분하게 잘 봐주셔서 근자감을 뿜게 해 주셨던 많은 인생의 스승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뭘 하든 잘 할거라고 늘 믿고 격려해 주셨던 어떤 상사. 너였으니까 이 정도 해 올 수 있었다고 더 잘하면 큰일 난다고 말해주는 무한긍정의 선배, 내가 아는 일등워킹맘이다, 롤 모델이라며 부끄러운 듯 손편지 전해줬던 후배.

한심하고 불완전한 저이지만,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지지해 주었던 그분들로 인해 저 또한 또 그 지점에서 한 발 더 내딛어 왔습니다. 제가 지닌 결함으로 인해 타인의 빈틈을 알아차리고 보듬을 수 있을 듯도 하여, 이제는 누군가에게 저의 한 켠을 내어주려 합니다. 그 기억이 또 그들에게 깃들어, 다음 걸음을 떼어놓게 해주기를 빌면서요.

“그해 겨울 입시학원 교무실이 생각난다. '반짝반짝 작은 별 변주곡'이 귓가에 맴돈다. 가난했던 나는 그 미소한 배려들이 얼마나 세심히 마련되었을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주는 대로 받아 가졌다. 받아 가진 자로서 무얼 하면 될지, 은혜 갚은 까치의 시점에서 골똘히 생각해본다.

생의 여정 중 맞닥뜨릴 고단한 이들에게 몸을 누일 열차 칸을 그때그때 내어놓는 것, 그리고 주는 대로 받아 갖는 누군가를 만나거든 나 또한 ‘그럼에도 재차 뭘 내미는’ 것. 이는 일생을 두고 행해야 할 작업이므로, 일단 오늘 밤엔 하늘의 별처럼 많은 고마움들 가운데 하나를 글로 옮겨 사람들과 나누기로 한다.”
(26쪽)

오늘 하루도 힘드셨지요?

저 또한 요즘 여러 가지 고민에 심란한 마음이 가득한데요. 저는 오늘 '이제 좀 내려놓아도 된다. 지금껏 최선을 다해 오지 않았나…잘 챙겨먹고, 무슨 일이 있거든 언제든! 꼭! 연락하라'며 몇 번씩 당부하는 친구의 메신저가 남겨진 것을 보고 울컥했습니다. 이렇게 또 하루 버티어 낼 힘을 얻습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채 그럼에도 매일의 발걸음을 떼어놓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별것 아닌 것들일지 모르겠습니다. 부조리하고 가혹한 세상을 단번에 바꿀 힘은 없지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서로의 곁이 되어주는 일은 가능하겠지요.

자 여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책 한권을 건넵니다.

지속가능하지 못한 찰나적 온기에 불과할지언정 별것 아닌 순간들의 온기가 우리의 매일에 '하나 더'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봄비에 촉촉해진 날에도, 하늘색 크레파스를 칠한 듯한 맑은 날에도,
소박하지만 따스한 마음 하나 선사해 줄 수 있을 거예요!

- 글 : 공현숙 인터파크도서 인문MD(hsk@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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