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등록일 | 2020.08.12 조회수 | 711

성폭행 저질러놓고 ‘합의된 관계’ 주장하는 이들, 무엇이 문제일까? <여기부터 성희롱>

“A님은 다리가 예뻐서 치마가 어울려”
“내일은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까 치마 입고와”
“나랑 바람 필래?”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상사가 내뱉는 상황에,

“부장님, 지금 성희롱 하셨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치자. (성희롱을 당했을 때 그 즉시 정색하고 화를 내며 말하는 것 조차 당연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매우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만진 것도 아니잖아”
“너 같은 여자 관심 없다” 

이런 적반하장식 태도가 돌아온다면?  

상대방이 오히려 “만진 적도 없는데 성희롱이라고 난리 치다니!” 라며 되려 화를 낸다면?
(다음은 더 심하니 혈압이 오르지 않도록 주의하자)

“성희롱당하고 그럴 때가 좋을 때지”
“못생기면 치한도 도망가”

설마 요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직장 내에 한두 명쯤 이런 말을 하거나 혹은 속으로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단호하게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부터 성희롱>(무타 가즈에/ 나름북스/ 2020년)을 쓴 무타 가즈에는 몰상식해 보이는 이런 상황은 ‘여성은 남성에게 성적 존재로 보이고 싶어 한다’, ‘성적인 평가를 받으면 기뻐할 것이다’ 등의 황당무계한 통념과 일방적인 오해에서 나오며 이를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도 성희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우리가 기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권력형 성추행, 성폭행 사건을 마주할 때, 가해자가 ‘합의된 관계였다’, ‘사실과는 다르다’와 같은 한결 같은 답변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왜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지, 어떠한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는지 예리하게 지적한다.

모종의 권력을 가진 남자에게 딱 부러지게 NO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나중에 보복을 당할까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치 않는 성적 접근에도 대들지 않고 무시하는 것으로 거부의 뜻을 전해야 하는 여성의 상황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침묵은 여성 쪽이 상대를 배려해 일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필사적 노력의 표현이다. “딱 잘라 NO라고 말하지 않은 사람이 잘못이지”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논리다. 여성이 고통 속에서 쥐어짜낸 침묵이나, ‘Yes’도 ‘No’도 아닌 모호한 태도를 밀당 등으로 착각하는 남자가 많아, 이런 인식 차를 수정하거나 조정하는 일이 좀처럼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밝힌다.

저자인 무타 가즈에는 오사카대학교 인간과학연구과 교수이자 역사사회학과 젠더론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로 2018년 발생한 재무성 차관의 성희롱 사건과 그것을 둘러싼 주변 공직자들의 실언, 망언 등의 행태를 보며 충격을 받고 이 책을 집필했다. 소위 고위급 엘리트 집단의 이러한 몰이해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분석, 비판한다.

- 글 : 김선경(uncanny@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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