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산책

등록일 | 2020.01.09 조회수 | 2,121

“이거 정상 맞아? 너도 그래? 다행이다”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녔던 나의 까마득한 기억을 하나 꺼내어 보겠다. 체육시간 100미터 달리기를 해야 할 때, 나는 체육복 웃도리 허리춤을 한 웅큼 움켜 지고 달렸다. 옷 안에 바람이 펄렁 들어오게 해 뛸 때 출렁거리는 가슴을 감추려고 했던 의도였던 것 같다. 비단 나만이 아니라 다른 여자 친구들도 그랬다. 어떤 친구는 100미터 달리기 30초가 나오거나 말거나 거의 걷다시피 하기도 했다. 발육이 또래보다 좀 더 빨라 가슴이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친구를 다른 친구들이 놀렸던 기억도 있다. 성인 여자로 바뀌는 과정의 낯선 몸의 변화를 부끄러워했고 감춰야 할 것으로 인지했다. 대음순이 뭔지 소음순이 뭔지 내 몸의 정확한 용어를 알게 된 것도 청소년기가 지나서였다. 성교육이 있기는 했지만 아이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2차 성징에 대한 그야말로 생리학적인 설명이었다. 우리 여성의 몸에 대한 정확한 용어는 부재했고, 어디까지가 정상인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내 몸을 사랑하거나 자부심을 느낄 수도 없었다. 성기의 모양이 조금 다르게 생겼다고 정상이 아니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란 사실도 당연히 몰랐다.

여성의 몸, 생각, 경험, 느낌 등 개인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아커다란 여성 서사를 만들어낸 책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스칼릿 커티스 외/ 윌북/ 2019년)이 출간되었다. 시얼샤 로넌, 키이라 나이틀리, 엠마 왓슨, 자밀라 자밀, 앨리슨 수돌, 장수연, 은하선 등 여성 54명이 참여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배우부터 저널리스트, 무슬림 여성활동가, 트랜스젠더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국적도 나이도 다르고 저마다 이야기도 다르지만 모두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직업군, 나이, 국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들와 스타일이 개성이 있고 빠르게 읽힌다. 특히, 자신의 출산 경험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키이라 나이틀리의 이야기는 출산 7시간 후 완벽한 헤어와 화장, 하이힐까지 신고 풀세팅한 모습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난 영국의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과 대비되어 메시지를 던진다. 현실적으로 출산 직후 여성들은 평소의 자신의 외모, 몸 상태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출산 직후 걷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출혈이 심해 수혈을 받기도 하며, 흐르는 젖으로 환복 상의가 젖어 버리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바로 내 경험이기도 하다)

‘워싱턴 포스트’는 케이트 미들턴의 모습에 대해 “이런 이미지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왜곡된 환상을 만들 수 있다”며 “특수 계층이 출산 후 모습을 이상화 할 수록 보통 여성들은 무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케이트 미들턴보다 하루 먼저 아이를 낳은 여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출산 후 여성들이 겪는 상황을 그려냄과 동시에 우리가 그것을 감추어야 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맞닥뜨리는 불의와 불편함, 불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그대로 털어놓는다.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사회학 분야), 2018년 영국 내셔널 북 어워즈 수상작이기도 하다.

- 글 : 김선경(uncanny@interpark.com)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파크도서 북DB

인터파크도서에서 운영하는 북디비(BOOKDB)는 국내외 작가, 출판사 DB를 총망라한 도서 정보 사이트로, 작가 랭킹 서비스로 새로운 도서 선택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가 인터뷰, 연재, 리뷰, 만남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싫다!” 언제 왜 시작되었나? <혐한의 계보> 2020.01.13
[가정MD 추천 신간] 당신은 좋은 부모입니까? 2020.01.03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

    작가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