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1.29 조회수 | 2,964

정유라 연행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JTBC 이가혁이 전하는 36.5도 ’현장‘

 

앞으로 역사책에서 이런 단어들을 만날 것 같다. 이대, 정유라, 덴마크, 촛불, 세월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길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낱말들이다. 암울한 현실을 희망찬 역사로 만드는 과정을 함께 하고 지켜봤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한계가 있는 법.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그 역사적 순간들을 기록하는 작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출간한 <그날 그곳 사람들>(자음과모음/ 2017년)도 그 일환으로 세상에 나왔다. 저자는 앞서 소개한 단어들과 누구보다 가까운 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덴마크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을 특종 보도했던 JTBC 이가혁 기자다. 덴마크에 가기 전엔 이대 투쟁을 취재했고, 2016년 겨울 촛불집회 현장에 있었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인양된 뒤엔 목포신항에 80일 넘게 상주하면서 보도를 하기도 했다.

 

이가혁 기자가 그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중앙일보 본사로 찾아갔다. 이 기자는 지금 잠시 현장을 떠나 중앙일보‧JTBC 통합 노조 전임자로 일하고 있다.

 

독일에서 덴마크까지... 오랜 기다림 끝에 본 정유라 모습 "비현실적"

 

Q 기자가 쓴 탄핵 국면의 생생한 이야기여서 독자들이 반가울 것 같아요. 들어가며 제목이 ‘점과 선을 잇다’이던데 어떤 뜻인가요?

 

이 책을 보면 기자 개인으로서 할 수 있었던 건 없어요. 다 제보자나 도와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죠. 그 분들이 다 점들이죠. 그 점들을 보도로 이었다는 뜻입니다. 이은 것 역시 기자 저일 수도 있지만 국면마다 관심 갖고 함께 참여한 분들이 다 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기자도 저뿐만 아니라 언론이 다 열심히 했고요.

 

Q 1장에서 정유라를 찾아가는 과정이 정말 생생하게 그려져 있네요. 독일로 출발할 때 정유라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아니, 못했어요. 언론사에서 해외 출장 보낼 때 갔다는 데 의의를 두는 경우도 많거든요. 정유라를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단서라도 찾자는 심정이었죠. 단서 자체가 수사에도 영향을 주고 궁금증을 푸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퍼즐 몇 조각이라도 가져 와야지 했어요. 근데 독일에도 점들이 계시더라고요. 현지 교민들이 JTBC를 많이 도와주셔서 조금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독일에서 바로 덴마크로 간 게 아니라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다가 덴마크로 선회하셨다고요.

 

처음엔 오스트리아에 있던 로펌에서 최순실 회사인 비덱 스포츠 앞으로 보낸 우편물을 보고 찾아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연말이어서 로펌이 전화를 잘 안 받더라고요. 가도 당장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반면 가는 중에 고속도로에서 받은 전화는 정유라가 있는 곳이라고 거의 확신에 차서 제보를 줬어요. 직접 통화를 했는데 감이 있잖아요. 성의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오스트리아는 연초에 가도 되니 덴마크부터 가자고 했죠.

 

Q 정유라 은신처 앞에서 36시간 동안 기다렸다고 하던데 그때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뭔가요? 무서웠을 것 같아요.

 

무서웠죠. 그때는 보디가드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얘기도 있었고, 무엇보다 제가 지쳐있었거든요. 장시간 차를 타고 왔으니까요. 많이 졸렸는데 ‘졸다가 눈 떴을 때 누가 와서 때리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도 했죠. 또 원초적인 부분이 힘들었어요. 화장실도 가고 싶고 핸드폰과 카메라 배터리도 없고…. 12월 31일이 제 생일이어서 한국에서 문자가 많이 왔어요. 필요도 없는데 미용실 같은 데서 할인해준다고 오고, 검찰, 경찰에서 형식적인 단체 문자 보내고. ‘그만 좀 보내지’ 싶었죠. 배터리가 줄어드는 게 살점이 깎이는 고통 같았죠.

 

가족들 생각도 많이 났죠. 그때 아내한테 생일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고 연락오고. 같이 있던 카메라 기자 형은 둘째 딸이 크리스마스 공연 꼭 보러 오라고 했는데 못 갔고…. 신파가 따로 없었어요. 옆에는 연말을 보내고 있는 행복한 덴마크 가정들이 있었고요.

 

Q 출장 올 때는 만날 줄 몰랐던 정유라가 덴마크 경찰과 함께 나오는 걸 볼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경찰이 “이제 곧 나옵니다” 한 뒤에도 1시간이 걸렸어요. 집 문에서 경찰차까지 50걸음 정도밖에 안 되겠더라고요. 작은 노트에 질문할 걸 쓰면서 ‘뭘 질문하지? 마이크는 제대로 켜졌나, 켜졌나’ 하면서 계속 기다린 끝에 정유라가 나오는데 비현실적으로 보였어요. 한국과 시차에 따른 몽롱함도 있었고, 오후 4시면 해가 지고 오전 10시에 해가 뜨는 덴마크여서 시간개념이 붕괴된 상태였죠. 그런 상황에서 제 눈앞에 독일 출장, 아니 그전 이화여대 취재 때부터 계속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이 지나가니까 ‘이게 뭐지?’ 싶었죠.

 

현실은 그를 비현실 속에 오래 붙잡아두지 않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발부터 정유라가 경찰차에 타기까지 52시간이 담긴 영상을 서울로 보내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찾아간 PC방은 막 문을 닫기 직전이었다. 요금을 정상보다 열 배 많이 내는 걸로 영상 문제는 풀렸지만, 이가혁 기자에겐 다음날 방송 준비를 위한 밤샘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Q 어렵게 보도를 했는데 정유라를 현지 경찰에 직접 신고한 것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어요.

 

끈기가 부족했던 걸까요? 더 기다려야했다는 비판 여론이 있었어요. 당시 독일에서 차타고 온 시간까지 합쳐서 48시간이었죠. 그전 독일에서의 여정도 있었기 때문에 지친 상태였어요. 사실 취재윤리 논란은 생각을 못했고, 인간적으로 그분한테 미안하긴 했죠. 고국에서 잡힌 것도 아니고 타지였으니까. 마음은 복잡했는데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100% 누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취재는 없으니까. 주어진 여건이 똑같다면 다시 가도 똑같이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화여대 가을 졸업식에서 번진 ‘총장 사퇴’ 구호...“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았다”

 

Q 먼저 이대 취재를 했기 때문에 더 감정이입이 됐을 것 같은데 이대 투쟁에서 기억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가장 강렬했던 건 가을 졸업식이었어요. 첫 순서로 최경희 총장이 축사를 하러 나왔는데 소동이 일어난 게 아니라 정말 한 명이 “해방 이화! 총장 사퇴!”라고 외치니까 그 다음엔 강당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거예요. “해방 이화! 총장 사퇴!”가 딱 맞춰서 들리는데 몸이 오싹할 정도였죠. 강당 2층에 있는 부모님들은 그 모습을 연신 카메라로 찍고 연단 위 높은 분들은 당황해 하고. 약간 블랙 코미디 같았어요.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학위를 받으러 나온 한 졸업생 대표가 총장의 악수를 거부하고 뒤돌아서 청중들한테만 인사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죠.

 

Q 이대를 취재한 기자 중 유독 이가혁 기자에게만 ‘가혁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요.

 

그건 JTBC ‘뉴스룸’이 좀 더 비중 있게 보도하고 현장 연결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저희만 보도할 때도 있었으니까. ‘뉴스룸’은 사안에 대해 현장 중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제 리포트 중에도 이대생들이 스마트폰 조명 들고 행진하는 현장 중계도 있거든요. 관심을 가진 데 대한 동질감을 느끼셨나? 근데 이대 벽보들 보면 벗이란 말 많이 써요. ‘벗님들아, 우리 이날 모여요’ 식으로. 같이 하는 동지란 뜻인데 저도 하도 많이 나타나니까 그렇게 붙여준 것 같아요. 이젠 잦아들었죠. 사장님이 추천사에서 이걸 부각시켜서 부담돼요.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무엇보다도 가혁벗이 부럽다. 절실한 누군가의 벗이 된다는 것… 거기에 우리가 때로는 답을 못 구해 허우적대는 저널리즘의 본질이 있지 않을까.’

 

 

“세월호 아직도 하느냐고요? 일단 목포신항에 가보세요”

 

Q 3장엔 목포신항에서 썼던 취재수첩이 많던데 80일 넘게 그분들과 함께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유해 미수습자분들은 진도 팽목항에 3년 있다가 세월호가 인양 돼서 목포신항에 오신 건데 거기가 생활 터전인 거죠. 마냥 울고 그런 건 아니에요. 화초도 가꾸고, 일이 있으면 안산도 잠깐 다녀오시고, 저희랑 장난도 치고. 그러다가도 “유해가 발견됐다” “캐리어가 발견됐다” 그러면 전화가 와요. 얼굴이 사색이 돼 전화를 받으면서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기자들은 못 들어가는 철문 안으로 들어가시죠. 나오면 저희는 붙잡고 뭐가 나왔냐고 물어보고요. “어머니”, “엄마” 하다가도 그때는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가 되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장이에요.

 

할 일 없을 때 일반 방문객들 위해서 틀어놓고 있는 다큐를 멍하니 봤어요. 지금 내 옆에 있는 단발머리인 영석 엄마가 삭발하고 있는 모습이 나오죠. 나는 2014년에 잠깐 취재하고 다른 거 할 때 이분들은 3년 동안 계속 이렇게 했구나, 머리를 띵 맞는 느낌이었어요.

 

Q 한 꼭지 제목이기도 하던데 기사에 ‘세월호 아직도 해?’라고 댓글 다는 분들에게 답을 준다면요.

 

음, 목포신항엔 지금도 유가족분들이 계시니까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셔서 말씀드린 다큐도 보고 그러면 답을 찾지 않으실까 싶어요. 근데 “아직도 해?”라고 말하는 분들이 100% 틀렸다고는 생각 안 해요. 자기 삶에 비춰봤을 때 맞는 말일 수도 있어요.

 

목포신항에 있을 때 어떤 할머니가 와서 엄마들에게 “찾아서 뭐하게?”라고 다그친 적이 있어요. 술 마신 상태도 아니었어요. 그 할머니를 보면서 할머니는 아마 광복과 전쟁을 겪었을 거다. 어쩌면 일찍 아이도 잃고 세월호 엄마 아빠들보다 더 풍파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분 입장에서는 이제 잊고 빨리 생활로 복귀해서 잘 살라고 격려할 수도 있겠다고 혼자 소설을 썼죠.

 

Q 기자로서 2016년 촛불 국면 현장에 있었어요. 그 겨울이 이 기자에겐 어떤 의미로 남았나요?

 

의미요? 그걸 찾기 위해 일단 이 책으로 정리를 해본 거예요. 나중에 더 구체화돼서 답이 나오겠죠. 지금 제 단계로서는 젊은 기자로서 운 좋게 좋은 취재 경험을 했다는 거죠. 영화 ‘1987’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버스에 올라 87년 6월 항쟁 당시 시청광장에 있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나와요. 그게 바로 중계차 위에서 보는 풍경과 같아요. 언론사 아니면 못 보죠. 그때는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잖아요. 물리적으로 기운이 와요. 느낌이 아니라 진짜 몸이 (몸을 뒤로 젖히면서) 이렇게 돼요. 매주 깜짝 놀라는 거죠.

 

Q 촛불 국면이 지난 지 1년이 넘었는데 과정 중 사람들이 잊지 않고 간직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 결정날 때 TV 보셨을 때의 느낌이요. 촛불을 드셨던 분이라면 염원이 이루어지면서 그 뒤 앞으로 펼쳐질 일은 처음이었던 순간이었잖아요. 우리 현대사에 없던 일이죠. 그때 안정적으로 차분하게 하면서 대선까지 이어갔잖아요. 이 책도 소중한 자산을 잘 기억하고 간직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날 그곳 사람들>의 부제는 ‘JTBC 이가혁 기자가 전하는 현장의 온도’다. 그래서 이 기자가 느낀 현장의 온도는 몇 도였냐는 느끼한 질문을 던지니 “36.5도라고 해야 하는데 그건 낯간지러워서…”라고 말을 흐리던 이 기자는 “그냥 따뜻했죠. 촛불집회 때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그런지 다른 데보다 기온이 높다는 보도도 있었어요”라고 답했다. 올해 7월, 이 기자는 그 따뜻한 현장으로 돌아간다. “이대나 촛불집회나 제가 이건 꼭 해야겠다고 한 게 아니듯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담백한 포부를 안고서.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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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임(북DB 객원기자)

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꿈꾸는 글장이. jjung9110@naver.com

작가소개

이가혁

198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인천으로 이사해 중학교까지 졸업했다. 배재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서울로 이사했다. 출신지를 잘 따지지 않는 세상이 됐다지만 가끔 누가 물으면 “고향은 부산, 마음의 고향은 인천, 제2의 고향은 서울”이라고 답하곤 한다.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재학 당시 전공 공부보다는 밴드 보컬 활동에 매진했다. 공연을 마치면 “노래 잘한다”는 말보다 “멘트 잘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2011년 중앙일보·JTBC 통합 공채 1기로 입사해 기자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사회부 경찰팀과 산업부 자동차팀을 거쳐 2013년부터 지금까지 JTBC 기자로 일하고 있다. 법조팀, 경찰팀 등 사회부에서 주로 일했다. 2016년 겨울, 정유라를 찾아 23일 동안 독일과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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