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09.22 조회수 | 18,105

만화가 김보통 “'행복'은 현혹하는 말… 최대한 불행해지지 않는 게 목표”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진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평범하게 산다는 게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평범함은 그저 적당히 노력해서는 얻어지지 않는다. 죽을 힘을 다해 온 인생을 바쳐야만 겨우 이룰까 말까다.

만화가 김보통의 첫 에세이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문학동네/ 2017년)를 읽고 나면, 김보통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김보통은 평범하게, 사람답게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대학에 갔고, 죽을 힘을 다해 대기업에 들어갔으며, 죽을 힘을 다해 4년 간 버티다가, 이대로 살다간 죽을 것만 같아 결국 대기업을 탈출했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해줄 조직도, 물려받은 재산도, 돈벌이도 없는 상황에서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빈곤과 존엄의 상실이었다.

식빵에 핀 곰팡이를 떼어내다가, 그는 불현듯 생각한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다고. 그는 식빵 대신 브라우니를 구워 먹기로 한다. 그리고 브라우니가 구워지는 시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중학교 이후 17년 만에 연필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는 조직을 등진 이 시대 평범한 청년이 잃어버린 존엄을 회복해가며 왜 ‘김특별’이 아니라 ‘김보통’이 되었는지를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우연히 시작한 만화로 굵직굵직한 상을 휩쓸며 인기 만화가의 자리에 오른 김보통은 이번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첫 에세이를 펴내며 글솜씨 또한 만만치 않음을 보여줬다. 이런 그에게 일각에선 “무늬만 보통인 특별한 사람”이라는 부러움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 ‘진짜 보통 사람’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만화 캐릭터인 ‘고독이’ 탈을 쓰고 본명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사실만 봐도 보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긴 하는데.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 보통인 듯 보통이 아닌 듯한 김보통과의 인터뷰.

“제일 좋아하는 건 아무 것도 안 하는 거예요”

Q 인터뷰 때마다 ‘고독이’ 탈을 쓰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데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에세이 작업이 망설여지진 않았나요?

오히려 제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웃음) 글의 내용이 제 주변 사람들이나 예전 회사에 대한 부분이 많았다면 망설였을 텐데, 거의 제 개인적인 이야기나 고민에 관한 것이다 보니 아주 솔직할 수 있었어요. 또 제가 굉장히 충동적인 성향이 있어요. 출판사에서 책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왔을 때, 별 고민 없이 하겠다고 했어요.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신중하지 못하냐고 하는데, 저는 그렇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3가지 목표를 세우고 2가지를 이루었을 때 성공이라고 한다면, 저는 10가지를 도전해서 2개 성공하는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똑같은 성과거든요. 망설이고 고민하는 것보다 가볍게 시도하고 가볍게 실패하는 게 충격도 덜하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Q 이런 성향에 비춰볼 때 4년이나 회사를 다닌 건 무던히 참은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돼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에 비하면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자잘한 부분에서는 굉장히 생각 없이 살았는데, 진로라든지 정말 중요한 것을 선택할 때는 제 주장을 못하고 부모의 뜻이나 사회 일반적인 통념을 따랐던 거죠. 아마 이런 충동적인 성향은 그에 대한 반동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나머지는 내 멋대로 살겠다는.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던 것도 결과적으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어요. 아마 살아계셨으면 아직도 회사를 다니고 있을 거예요.

Q 대기업 입사와 퇴사에 모두 아버지가 있었네요.

네. 수많은 자영업자들처럼 IMF 때 무너진 저희 아버지도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믿게 되셨죠. 효자인 저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요. 입사한 지 3개월 됐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버지 반대가 심했어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암투병하다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죠. 참고 참아 맞이하게 될 미래가 저 모습일 수 있겠다고요. 어차피 20년 뒤, 30년 뒤에 암에 걸려 죽을 거라면 나머지 시간만큼은 멋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새벽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더라고요.

Q “수족관을 벗어나 바다로 나왔다”고 표현하셨는데요. 그 바다는 어떻던가요?

정말 무서웠어요. 후회도 되고. ‘바다’에 살고 있는 영화감독 친구가 회사로 다시 돌아가라 할 때는 진짜로 돌아갈까 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실제로 경력직 채용도 알아보고 그랬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컸고. 1년은 버텨보자고 했는데, 9개월인가 10개월 만에 우연히 만화가가 됐어요. 만약 이런 게 없었으면 다시 돌아갔을 거예요.

Q 바다에 나와 맞닥뜨린 현실은 빈곤과 존엄의 상실이었죠.

여느 퇴사자들처럼 저도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을 해보자는 생각도 했어요. 그 중 하나가 도서관을 만드는 거였어요. 사서 자격증도 있고, 책을 좋아하고, 어느 정도 조건을 갖추면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겠더라고요. 퇴직금의 반을 투자해 책을 샀죠. 그런데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대학원 준비도 했고, 스피커 유통을 해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돈 없고 경력도 없는 제게는 다 무리였어요. 퇴직금은 줄어들고, 앞은 보이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선택해왔던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인간다움의 영역에서 서서히 배제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죠.

Q 빈곤에 맞서 잃어버린 존엄을 되찾는 과정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팬티 바람으로 부엌에 서서 식빵에 피어난 곰팡이를 뜯어내면서, 어떻게 하면 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했죠. 반도 더 남은 식빵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어요. 맛있는 걸 먹고 나면 내팽개쳐진 존엄이 생길 것 같았어요.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하고 싶은 작은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이니 장사니 한다고 기웃거리지 말고 그저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한 거죠. 달콤한 즐거움을 위해 식빵 대신 브라우니를 굽고, 오래 전 그만뒀던 그림을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싶어 SNS에서 사람들 프로필 사진을 그리다가 지금은 이렇게 만화가로 살게 됐습니다.

Q 그래서 만화가로 살아가는 지금은 행복한가요?

책에도 썼지만 만화 그리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디서든 항상 말씀드리는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돈을 제일 많이 주니까 하고 있는 일이지 좋아서 미칠 것 같지 않아요. 제일 좋아하는 건 아무 것도 안하는 거예요. 이 책을 쓰면서도 조심한 게 제가 마치 만화를 그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비치는 거였어요. 그냥 밥벌이 수단이지 여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글을 써서 돈을 더 많이 벌면 글을 쓸 거예요. 다른 걸 해도 상관없어요. 그렇다고 돈이 최우선 기준은 아니지만, 그나마 덜 싫은 일 중에서 할 만한 게 만화 그리는 거, 글 쓰는 거라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죽을 것 같은데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망쳐보라 말하고 싶어요”

Q 책 제목을 <지금, 행복합니다>가 아니라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행복이라는 말은 대중을 현혹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책에서도 예를 들었는데, 경주마는 우승을 위해 달리잖아요. 우승을 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해서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데, 말을 기다리는 건 죽을 때까지 달리다가 성적이 안 나오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을 거치는 동안 새로운 골인 지점이 생겨요. 여기까지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만 하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했는데, 끝은 점점 멀어지기만 하거든요.

이런 것들이 저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남들이 정해놓은 공식과 서열과 리스트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행복이라는 말 자체에 얽매이지 말아야 해서, 불행해지지만 말자고 목표를 세웠죠. 행복해지자는 마음을 먹는 순간 또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거든요. 저는 지금 제 책의 순위를 잘 안 봐요. 그걸 볼수록 계속 불행해지거든요. 잘 팔리면 더 잘 팔리고 싶어서 더 괴로워져요. 저는 그냥 즐겁게 살고 싶어요.

Q 많은 젊은이들의 희망사항이 대기업 입사인데, ‘배부른 소리’라는 지적도 있을 듯해요. 책을 쓰면서 가장 염두에 두신 부분이 있다면요?

퇴사 후 생활에 대한 책이 많아요. 대부분 성공한 분들의 이야기이고요. 그러다 보니 퇴사만 하면 모든 게 일사천리로 풀릴 것처럼 쓴 책들이 많은데, 실제로 제가 겪었던 것은 그렇지 않거든요. 물론 저도 꾸미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어요. 굉장히 비장하게, 계획했던 대로 모든 일이 풀려서 만화가가 되고 상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건 대중을 현혹하고 기만하는 거잖아요. 그런 책을 보고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 퇴사해서 겪게 될 현실은 정말 만만치가 않아요. 그 원망은 누가 해결할 거냐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겪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계속 염두에 뒀던 것 같아요. 퇴사 후의 삶이라는 게 정해진 루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식화할 수 없는 거기 때문에 막연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일반화에 대한 경계를 계속했던 것 같아요.

Q 이 책을 읽고 회사를 그만두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사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너무 괴로운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그런 고민 정도면 다닐 만한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못 견디는 사람이면 그런 생각조차 못해요. 그냥 뛰어나오는 거죠. 예를 들어 구토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나온다 싶으면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저처럼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사람이 계속 그 일을 하면서 버티면 죽어요. 죽느니 도망치는 게 차라리 나아요.

죽을 것 같은데도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쳐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일단 죽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더라는 희망 정도는 주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도망치는 것을 굉장히 수치스럽게 생각해요.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해요. 활로를 많이 만들어 도망친 사람도 잘 살게 해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에요. 저는 도망자예요. 앞으로 또 어디로 도망칠지 몰라요.

“제가 어떻게 사는지 목격자가 돼 주세요”

Q 인터뷰 때 늘 ‘고독이’ 탈을 쓰는데, 본인 얼굴을 공개 안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처음엔 얼굴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 썼어요. SNS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동영상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탈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썼던 게 시초예요. 이제 4~5년 되니까 김보통 하면 저 탈이 됐기 때문에 제 얼굴을 보여주면 오히려 실망할 거예요. 인터뷰든 뭐든 저 탈을 봐야 반가워해요. 제가 연예인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굳이 얼굴을 알릴 필요도 없고요. 누구나 열심히 하면 이 정도는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운이 좋은 거죠. 만약 제게 능력이 있다면 꾸준히 하는 거예요. 회사 다니듯 컨디션 유지하며 슬럼프 없이 그냥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Q ‘고독이’ 캐릭터 판매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그래요. 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야 될까?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남는 거는 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시스턴트를 계속 늘리는 이유도 제가 번 돈을 어시님들에게 돌려드리고, 일자리를 창출해 세금을 늘려 부족한 곳에 쓰이는 게 더 보람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어떤 사람이 몇 십억 원, 몇 백억 원을 갖고 있는 게 납득이 안 가요. 지금 당장 굶어죽는 사람이 있고, 버려진 아이들이 있고,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걸 외면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저는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그 외 수입은 다 나눠주고 싶어요.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것도 그런 의미예요. 정보 격차를 해결하고, 혜택이 닿지 않는 곳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한 말씀 해주세요.

인터뷰 할 때마다 무의식중에 거짓말을 많이 해요. 저를 너무 믿지 마세요. 포장이 반, 뻥이 반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사는지 지켜봐주세요. 제가 어떻게 사는지,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지 목격자가 돼주세요. 그럼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게 될 테니까요.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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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김보통

만화가 수필가 라디오 게스트 [아만자](전5권) [DP 개의 날](전4권)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살아, 눈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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