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03.24 조회수 | 15,145

청소년시 개척자 박성우 “청소년시는 유치해? 새로운 세계 보게 될 것”

중‧고등학교 때 배운 시를 기억하는가. 누구든 칠판에 적힌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 등을 외우긴 했어도 쉽게 감흥에 젖지는 못했을 것이다. 감상에 앞서 ‘시적 화자’, ‘운율’, ‘심상’ 등 어려운 시 용어들이 우리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와 멀어져 왔던 우리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시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혹시 ‘내 아이만큼은 나와 같은 길을 걷게 하지 않겠다’,  ‘시를 가까이 하는 감성 충만한 삶을 살게 하겠다’라고 마음먹은 학부모가 있다면 이 시인을 주목하자. 2010년 시집 <난 빨강>으로 ‘청소년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박성우 시인이다. 청소년들의 일상과 꿈, 고뇌를 시로 엮어 큰 울림을 남겼다. 그 울림의 파장이 멀리 퍼져나가 청소년시가 조금씩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이때, 그가 7년 만에 다시 청소년시집 <사과가 필요해>(창비/ 2017년)로 돌아왔다.


7년 동안 그의 시 속 청소년들은 얼마나 변했을까. 3월 2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카페 창비’에서 만난 박성우 시인에게서 그 변화상을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청소년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청소년을 보여주자”

Q 두 번째 청소년시집을 내셨어요. <사과가 필요해>가 <난 빨강>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난 빨강>에서는 발랄함을 강조했다면 <사과가 필요해>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좀 더 많이 표현하려고 했어요. <난 빨강>을 낸 후에 강연도 가고 청소년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어요. 아이들과 얘기하다 보면 상상 외로 아픈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사과가 필요해>는 겉으로 보이는 청소년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청소년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썼어요. 아마 <난 빨강>보다 한 학년쯤 높아 보이게 읽힐 거예요. 시를 읽다 보면 세상과 나, 가족과 관계, 우정이나 꿈 등에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시인의 말’에 ‘시를 쓰면서 울었던 일만 떠오른다’고 하셨어요. 어떤 시를 쓰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셨나요?


세월호 전시회를 다룬 ‘기억의 힘’은 쓸 때 자꾸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 시를 쓰려고 전시회에 세 번 갔어요. 사진을 한 장씩 다 찍어 와서 보고 또 보고 했어요. 그런데 감정이 너무 과잉되면 시를 못 쓰거든요. 다시 가서 보고 세 번째 갔다 오니까 쓸 수 있겠더라고요.

 
‘눈싸움’이라는 시는 눈싸움 할 때 자기한테 눈을 던지는 애가 아무도 없어서 서운해 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아이들은 그런 사소한 공간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지점들을 발견하고 쓸 때 많이 아팠어요. ‘숨을 크게’라는 시도 한 아이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가 경찰에 신고하는 걸로 끝나는데, 처음엔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걸로 썼어요. 그런데 안 되겠더라고요.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살려야겠다고 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걸로 쓸 때 저도 눈물이 났어요.


‘오토바이’라는 시도 있어요. 아이가 배달하다가 오토바이가 쓰러져서 오토바이를 끌고 갔더니 사장이 오토바이만 쳐다본다는 시인데, 그게 현실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쓰고 싶었어요.

난 알아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니까
학교 대신 가게로 가, 배달을 한다

빈 그릇을 찾아오는데
갑자기 빨간불이 들어왔다

급브레이크를 잡아서인지
순간적으로 오토바이가 빙 돌았다

다행히 사람을 치지 않았고
자동차와 부딪치지도 않았다

나는 절뚝절뚝
오토바이를 세워 가게로 갔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좀 민망해하고 있는데
나를 쭉 흘겨보던 사장님이

가게 앞으로 나가
넘어졌던 오토바이를 살폈다

- 박성우 시 ‘오토바이’ 전문

Q <난 빨강>에 비해 소재도 다양해진 것 같아요.


다문화가정이나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의 이야기도 썼어요. 청소년이 다 학생은 아니잖아요. 실제로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이 해마다 7만 명쯤 된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학교 밖 아이들 이야기도 썼지요. 또 하나, 성적 호기심과 관련해서도 ‘남자아이들이 자위를 하는 건 건강한 거고 여자아이들이 하면 막 나가는 거라는 생각은 이상하지 않나’ 의문을 던지고도 싶었어요. 그리고 ‘별’이나 ‘유월 소낙비’처럼 자연과 관련된 시도 슬쩍슬쩍 집어넣었어요. 아이들이 나중에 시를 읽을 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성인들이 촉수가 10개라면 청소년은 촉수가 100개”

Q 청소년시를 쓴다고 해서 학교 선생님인줄 알았는데 아니시더라고요. 청소년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청소년시가 뭔가요?


‘청소년기에 시를 제일 많이 읽어야 하는데 왜 청소년들이 시를 싫어할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어요. 청소년들이 시를 정말 싫어하거든요.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죠. 왜냐하면 성적이 안 나오거든요. 시를 교과서로만 보니까 너무 딱딱하고, 왜 봐야 하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초등학교 때는 동시를 읽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동시도 싱거워지거든요.


그러다가 중‧고등학교 때 갑자기 어른시를 만나면 못 읽어요. 요즘 많이 바뀌긴 했지만 교과서에 나온 시는 내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들어오지 않지요. 계단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계단 블록 몇 개가 빠져버리는 거여서, 스무 살 넘어서 시를 안 보게 되죠. 그때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가 바로 청소년시라고 생각합니다.

Q 왜 청소년시기에 시를 많이 읽어야 하나요?


가장 촉수가 예민한 시기니까요. 성인들이 촉수가 10개라면 청소년 친구들은 촉수가 100개는 된다고 생각해요. 청소년기에 사춘기가 지나가잖아요. 보는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몸도 바뀌고 마음도 바뀌는 그 시기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가출도 꿈꾸고 그러죠. 그럴 때 어디서 위로받기 힘드니까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아요.


그 중 하나가 시이고요. 시가 좋은 친구가 되고, 시를 읽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죠. <난 빨강>을 읽고 자기 상황과 똑같아서 울었다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렇게 울고 나니까 한결 나아졌다고. <사과가 필요해>를 읽고 나면 아마 아이들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다른 애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거죠.

Q 성인으로서 청소년시를 쓰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실수하면 안 되는 게, 청소년시를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안 된다는 거죠. 어른들은 자꾸 어른 입장을 주입하려고 하는데 청소년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주입이거든요. 그래서 읽을 때는 편하게 읽겠지만 쓸 때는 그렇지 않아요. 정말 한 자 한 자 보고 또 보면서 수십 번씩 고쳤어요. 

Q 시를 읽다보면 정말 청소년이 썼다고 착각이 들 정도인데, 그렇게 쓸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그건 쉬워요. 내가 청소년이 되면 돼요. 감동이나 울림을 주는 건 솔직한 거거든요. 온전히 내가 그 아이 상황이 됐을 때 가능하죠. 이를 테면 책상 위로 올라가 셔플 댄스를 추는 걸 묘사한 ‘소나기’ 시를 쓸 때는, 유튜브로 셔플댄스를 계속 보면서 집에 있는 앉은뱅이 책상에 올라가서 해봤어요. 그 마음에 다가가는 거죠. 그렇게 온전히 들어가면 시가 금방 써지고 후련한데, 그게 안 되면 힘들어요.

“엄마 아빠들도 청소년시 읽었으면... 같은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카스텔라 교실에서는 딱딱한 의자와 책상 대신 푹신푹신
보들보들한 카스텔라 침대에 엎드려 카스텔라 칠판을 보며
수업을 받아, 으음 좋겠지


- 박성우 시 ‘카스텔라 교실’ 일부

수업 시간에 졸리면 가방을 열고
가방 속으로 들어가 한숨 자고 나온다

- 박성우 시 ‘멋진 내 가방’ 일부

Q ‘카스텔라 교실’이나 ‘멋진 내 가방’을 읽으면 청소년들이 바라는 판타지를 느낄 수 있어요.


그런 시는 쓰면서도 기분이 좋아요. 시는 기본적으로 상상이잖아요. 시는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거든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정답이 없기 때문에 또 재미있고 신나는 거죠. <사과가 필요해>에서도 자유로운 상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창의적인 인재가 되라고들 하는데 그게 바로 상상력이거든요. 엉뚱하고 발랄한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현실이 되기도 하잖아요.

Q 그런 시들을 읽으면서 박성우 시인의 청소년기는 어땠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저는 굉장히 소심했어요. 특별할 게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그게 오히려 좋았던 것도 같아요. 그때 두꺼운 노트로 시집을 두 권 썼고, 그 중 한 권은 지금도 있어요. 누가 보기 전에 태워버려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런 걸 쓰면서 많이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애들 연애편지도 좀 써주고 윤동주 ‘서시’ 같은 걸 칠판에 써놓고 혼자 외워보기도 했죠.


제 다른 시를 보면 알겠지만, 어머니는 제 모교 청소부였고 아버지도 막노동 일을 하셨기 때문에 가정형편이 안 좋았어요. 참고서를 본다거나 학원에 가는 것, 어떤 꿈을 꾼다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죠. 그런 상처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아이들에게 더 애정이 가는 면도 있어요. 중요한 건 꿈을 꾸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표지 디자인할 때 파란색을 골랐어요. (빨간, 파란, 초록, 보라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표지를 가리키며) ‘파란 꿈을 보라, 이 안에 있는 빨간 끼를 보라, 또 풋풋한 연두를 보라.’라고 표지를 보면서 제 나름대로 해석했죠.

Q 청소년시집이라고 하지만 어른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사과가 필요해>는 어른들이 더 많이 봐야 해요. 엄마 아빠들도 빵집 가서 미팅 하고 다 했어요. 그런데 엄마 아빠들이 한 건 추억이고 우리 애가 하면 안 된다는 게 문제죠. ‘그때그때 달라’ 시에도 나오지만 다른 집 애가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면 축하한다고 하면서 막상 우리 애가 여자친구 사귄다고 하면 “바로 당장 학원 옮겨”라고 하거든요.


엄마 아빠들도 청소년시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같은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거든요. 또 청소년들한테 배울 점도 많아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앞뒤 재지 않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정의, 솔직함, 선과 악을 구분하거든요. 청소년시니까 유치할 거다? 절대 아닙니다.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시는 아침밥이다... 먹어두면 평생 든든한 것”

Q 표제시가 ‘사과가 필요해’인데, ‘나도 외롭고 힘들다는 걸 알아달라’는 아이들의 외침으로 들렸어요. 어른들의 어떤 사과가 필요할까요?


인정해주는 거죠. 아이들을 아이들 자체로 인정해주는 거요. 엄마 아빠가 보는 아이, 혹은 선생님이나 어른이 보는 청소년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 삶을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만 해주면 되는데 그걸 인정 안 해주죠. 또 중요한 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죠. 공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아이들 자체에 대한 관심이요.

Q 박성우 시인이 생각하는 사춘기는 어떤 시기인가요?


책에 ‘대나무 성장통’이라는 시도 있는데, 사춘기는 대나무가 되기까지의 과정 같아요. 처음엔 대나무가 혼자 쑥 올라와서 단단하지도 않고 물렁물렁하잖아요. 왠지 그늘이 있고 외로운 과정이죠. 그러다가 스스로 단단해지잖아요. 속이 없는 게 아니라 속을 비우는 거죠. 그 속을 비우는 과정까지 가는 게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아픈 얘기거든요. 상처가 많기 때문에 속을 비우는 거니까요. 아이들도 그 과정을 똑같이 겪지 않을까 싶어요.

Q <난 빨강> 독자 후기 중에서 ‘이 시집은 좋은 시집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시로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라는 글을 봤어요. 박성우 시인에게 시는 무엇인가요?


시는 멀리 있으면 안 돼요. 같이 있어야 하죠. 언젠가 누가 시가 뭐냐 묻기에 “시는 아침밥이다”라고 답했어요. 별로 생각은 없지만 아침밥을 먹어두면 하루가 든든하잖아요. 시는 먹어두면 평생 든든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를 가까이 두면 외롭거나 힘들 때 시집을 넘기면서 견딜 수 있죠. 또, 쓰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거든요. 저는 쓰는 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한테 낙서라도 하라고 하죠.

 

Q <난 빨강> ‘시인의 말’에서 ‘청소년 친구들이여, 너무 철들지도 마요’라고 하셨어요. 그 까닭은 뭔가요? 또 마지막으로 청소년 친구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너무 빨리 철들면 안쓰럽죠. 그처럼 안쓰러운 게 없어요. 중학생이 알바를 서너 개까지 뛰는 걸 봤어요. 그 애들이 할 수 있는 알바가 뭐겠어요? 다 허드렛일이거든요. 그렇게 힘든 친구들 보면 “일 조금만 하고, 욕심내서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요. 스스로 살아야 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제 조언이 얼마나 짜증나겠어요. 그럼에도 너무 철들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상상하고 꿈도 꾸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청소년이 되면 좋겠어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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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임(북DB 객원기자)

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꿈꾸는 글장이. jjung9110@naver.com

작가소개

박성우

1971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면서 아동문학을, 200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저작 및 출판지원 사업에 청소년시가 당선되면서 청소년문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으로 [불량 꽃게] [우리 집 한 바퀴] [동물 학교 한 바퀴], 그림책으로 [암흑식당]이 있으며 산문집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를 냈다. 2010년에는 청소년시집 [난 빨강]을 출간하며 청소년시를 개척했다는 평을 얻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 젊은 작가상 등을 받았다. 한때 대학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더 좋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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