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6.10.31 조회수 | 17,785

“정의는 즐거울 수밖에 없다” 목수정과 세상의 연대

목수정의 새 에세이집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이 나왔다. 진보정당이 해산되고 노동자가 끌려가고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지는, 한국사회를 어떤 눈으로 읽고 있을까 궁금했다. 안 그래도 SNS를 종종 드나들며 작가의 시선을 엿보던 차였다. 진실은 조각나고 정의는 폐기됐다는 날선 비판에 가슴이 휑해지다가도, 언제나 기쁨을 주는 타자가 있었다는 말에 책을 들여다보는 눈이 초롱해졌다.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이 작가를 만났을 때도 비슷했다. 사람에게서 희망을 느꼈다고 말할 때 유난히 눈동자가 반짝거렸고, 그 진지한 눈에 어쩔 도리 없이 빨려들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할 때도 웃음이 그치질 않았고, 포장 없는 소탈한 표정에 긴장이 풀렸다. 또 ‘기쁨을 주는 타자와 연대하자’며 손을 내밀 때, 정직하고 정겨워 보이는 그 손을 닮고 싶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며, 나 역시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누구에게나 기꺼이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나도, 그 누구도 무릎 꿇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Q 프랑스에서 1년 만에 한국에 오셨는데, 매일 바쁘게 지내고 계신 것 같아요. 오랜만에 한국에 온 소감이 어떠신가요?

프랑스에 있으면서 연대활동이라고 할 만한 일들을 했어요. 총선도 있었고, 세월호 유족분들도 만났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도 하고. 그러면서 한국에 있는 분들과 손잡는 계기가 됐어요. 한국에 와서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서 기쁨이 샘솟아요. 악조건 속에서 살더라도 내가 발 딛는 곳이 어딘가에 따라 상황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둠의 시대지만, 살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희망을 느꼈어요.

Q 한국에 오자마자 한상균 위원장을 만나고 왔다고 들었어요. 책에서도 한상균 위원장을 녹두장군이라고도 표현하시고 무한한 애정을 보이셨는데요.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한상균 위원장은 저와 아이 아빠에게 영웅이에요. 저런 표정을 가진 사람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해고 노동자의 피곤한 삶을 살아가지만, 오늘의 비극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구치소에서 한상균을 만났을 때 모두가 유쾌했어요. 어떤 시공간이나 주어진 조건이 그 사람의 멘탈리티를 지배하지 않는… 거인인 거죠.

 

“한국인, 예기치 않은 무질서가 주는 해방감을 너무 두려워해”

Q 한상균 위원장을 보고 그런 표정을 오랜만에 봤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니 연대활동을 하면서 어떤 피로감이나 아쉬움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이분법 때문에 서로를 갉아먹는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진보진영 안에서도 계파가 다르면 무시하고, 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면 어느 쪽인가 판별하려고 애를 쓰잖아요. 너무 숨이 막혀서 그런 걸 뛰어넘고 싶더라고요. 한상균 위원장의 말은 어떤 집단의 어휘를 비껴나 있어요. 일상의 어휘로 마음을 사로잡아요. 가슴이 트이는 느낌이었고, 그 사람이 한 모든 말을 가슴에 새기고 싶더라고요. 손잡고 싶은 기쁨을 주는 사람이에요.

Q 프랑스에 살기 때문에 한국 사회와 비교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만큼 한국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특별히 어떤 점이 다르게 느껴지시나요?

처음 프랑스 왔을 때 그런 걸 느꼈어요. 애들도 어른이랑 얘기를 할 때 애기처럼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해요. 애들이라고 재롱을 떨지 않아요. 자기 존재 자체로 키 큰 인간을 만나는 거예요. 권위적이지 않은 사회에서 풍길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보게 됐죠. 그러니까 아이들이 뭔가 부당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면, 그냥 순응하는 게 아니라 저항을 하거든요.

그게 파업에 대한 관대함으로 이어져요. 파업을 마치 비가 오는 자연현상처럼 생각해요. 비가 온다고 하늘을 원망하지 않잖아요. 판사도 파업하고 경찰도 파업하는데요, 뭐. 세상이 한 달 정도 멈춰도 망하지 않아요. 예기치 않은 무질서가 주는 해방감을 경험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두려워하죠.

무엇보다도 저는 파업은 노동자들이 해주는 것이라도 생각해요. 파업은 욕 먹을 걸, 어쩌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걸 각오하고 하는 거고요. 그렇게 파업하면서 노동자 권리를 1mm씩 쟁취해 나가는 걸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는 끝없이 밀리는 거예요. 프랑스는 19세기 말부터 싸워서 얻어냈잖아요. 1936년에 노동자들이 어마어마한 파업을 했고, 그때 2주 유급휴가가 결정됐어요. 그게 교과서에 두 페이지에 걸쳐 나와요. 하나하나의 싸움이 삶의 질을 만들어준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에 파업을 해도 군소리 못하는 거죠.

우리는 연결 짓지 못하는 것 같아요. 싸워서 얻은 게 아니잖아요. 사회적 가치들이 체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어져버린 거죠. 어찌 보면 그 과정을 우리는 지금 밟아가는 중일 수 있어요. 우리만의 리듬에서 민주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겠죠.

Q 최근 테러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프랑스에서 극우 정당 인기가 높아지고 난민이나 이민자 문제도 갈등이 심해지고 있잖아요. 일상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헬게이트 열린 것처럼 테러가 계속 일어나는데, 그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올랑드는 IS에 포격을 했고 비상사태를 선포했어요. 일상적으로 무장 군인이 시내를 활보하고, 처음에는 모든 집회를 제한했어요. 경찰국가같이 만들기 좋은 시스템으로 갔죠. 실제로 올랑드 인기가 치솟았거든요. 그런 효과를 누리면서 상황을 계속 그렇게 몰고 가요. 그걸 보면 이슬람은 프랑스의 ‘종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종북이란 말로 떠넘기잖아요. ‘종북몰이’ 하듯이 여기선 ‘이슬람몰이’ 하는 거예요.

주류언론은 권력의 목소리를 답습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목소리만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은 테러의 근본 원인을 사회 불평등이라고 느껴요. 테러를 했던 주체는 우리 이웃이었던 사람들이거든요. 프랑스 안에서 소외계층으로 내몰리고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극단적인 이슬람 세력에 손을 댄 거라는 이성적인 목소리도 있어요.

 

“인생의 어느 한때 즐겁게 손잡고 함께 갔다는 것에 의미 두었으면”

Q 책에도 유럽 역시 신자유주의 덫에 걸렸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프랑스 안에서는 테러 이후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불평등이 완화돼야 테러 문제도 해결되는데, 정부는 정반대로 슈퍼 부자들 이윤을 극대화시키고 있어요. 한국에서 노동법 개악 때문에 총파업 하고 있는데, 프랑스도 똑같이 노동법 바꾸려고 했어요. MEDEF(프랑스 전경련)와 노동부 장관이 의회도 거치지 않고 합의한 걸 대통령이 헌법 특수조항으로 통과시켰어요.

어마어마한 반발이 있었고, 프랑스 전역에서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을 보내면서 시위를 했어요. 거대 자본이 자유경제와 자본 통합을 요구하고 정부와 언론은 그것만이 정답인 것처럼 선동을 해도 사람들의 살아있는 이성이 저항의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죠. 음... 이런 점은 부러워요. 권력에 충성하기보다 공화국의 가치를 우선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데에 모두가 동의하거든요. 적어도 여기선 부정선거는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웃음)

Q 프랑스에 살고 있지만, 책을 보면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관련한 내용이에요. 계속 한국 사회에 관심을 갖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이유가 있는 건가요?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에요. 변화무쌍하고 뭐든지 양극단이 가능한 사회거든요. 시민들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겠죠. 그러니까 늘 관심은 한국에 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외국에 살더라도 한국인으로서 사는 거예요. 놀랍게도 프랑스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한국만큼 영향을 끼치지 않아요. 프랑스에서 사는 경험을 책으로 쓰더라도 한국 사회와 비교하게 되고요.

첫 책이 그런 내용이었고 그 책을 계기로 계속 글을 쓰게 됐는데, 그런데 제가 쓰는 언어가 한국어니까 한국 사회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죠. 피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외국에 살더라도 한국과 관련이 있는 일들을 해요. 한국이 아비규환이 되면 여기서도 힘들어지는 거죠. 모어라는 게 내 운명이고 뿌리라서 바꾸는 건 불가능하더라고요.

Q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책 제목처럼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은 제가 희구하는 밤이에요. 무릎 꿇지 않아도 한 인격체로 인정받았으면 해요. ‘기쁨을 주는 연대를 하라’고 썼는데, 그 메시지를 드리고 싶어요. 책을 쓰는 3년 동안 세상에는 손을 뻗으면 기쁨을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 승리해서가 아니라 정의이기 때문에 즐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웠어요.

우리는 항상 싸우고 또 어느 때인가 헤어지지만, 언제나 손을 잡아주는 타자가 있어요. 어느 순간은 좋고 어느 순간 나빠지더라도 만남 자체를 후회할 필요는 없는 거죠. 우리가 인생의 어느 한때, 즐겁게 손을 잡고 함께 갔다, 여기에 의미를 두었으면 해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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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영(북DB 객원기자)

낮엔 요가, 밤엔 과외로 밥벌이 하며 르포를 쓰고 있다. 세계평화를 꿈꾼다. 정말이다. 뭐라도 하고 싶어 펜을 들었다.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대본을 썼다. freakss@naver.com

작가소개

목수정

한국과 프랑스의 경계에 서서 글을 쓰고 있는 작가, 번역가다. 이 책은 한국에서 대학까지의 교육과 사회생활을 경험한 저자가 프랑스에서 프랑스 남자와 함께 낳은 아이를 키우고 학교에 보내며 경험하고 관찰한 바를 기록한 이야기다. 어느새 중학교 2학년이 된 딸 칼리의 학교와 가정에서의 성장 과정을 차곡차곡 정리한 성장 기록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월경독서], [파리의 생활 좌파들], [당신에게, 파리],[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등이 있고, 역서로는 [문화는 정치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자발적 복종], [10대를 위한 빨간책], [부와 가난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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