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6.08.08 조회수 | 10,387

소설가 조경란 "이야기가 툭 터져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땀이 흐르고 숨이 막힌다. 정수리 한가운데가 뜨끈뜨끈해진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그렇다. 적도 지방의 새파랗고 탐스러운 열매가 생각나는 계절.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는 이 여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시원한 물놀이를 가는 것도,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지만 사실 거창한 것에만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몸과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잠깐의 휴식만 있어도 한층 더 여유로워질 수 있다. 답답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꾹꾹 눌러왔던 숨을 후, 후, 후 뱉어보는 것은 어떨까.

분야를 막론하고 한 분야에서 20년 넘게 자신의 영역을 지켜온 이를 만난다는 것은 적잖이 부담되는(?) 일이다. 설레고 긴장이 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올해로 등단 21년차를 맞은 조경란 작가를 만나러 가는 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늦을까 서둘러 잡아탔던 택시는 길 한가운데에서 멈추기를 반복했다. 식은땀을 닦으며 간신히 도착한 인터뷰 장소에서 마주친 조경란 작가는 뜬금없는 선물부터 내밀었다. 일본에서 사온 녹차 초콜릿이라고 했다. 조심스레 껍질을 까서 초콜릿을 입안에 넣는 순간, 스르륵 긴장이 풀렸다. 누군가 보이지 않게 토닥토닥 어깨를 다독여주는 느낌이었다.

조경란 작가를 마주한 순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였다. 품이 넓은 흰색의 셔츠를 입고 있어서였을까. 사실 흰옷이 잘 어울리기란 쉽지 않다. 그녀는 피부 역시 흠결 없이 고왔다. 시술이라도 받은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더니 야행성이라 그렇다는 우스갯소리로 답변을 해왔다. 너그러운 눈웃음으로 화답하는 그녀의 속눈썹은 꽤 오랫동안 나비의 더듬이처럼 길고 가늘게 떨렸다.

 

이토록 짧고,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야기들

그녀가 새롭게 펴낸 <후후후의 숲>은 이름만큼이나 존재감이 특별한 책이다. 그간 총 5권의 장편소설과 6권의 소설집을 펴낸 조경란 작가가 펴낸 첫 번째 ‘짧은 소설’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단편소설보다 짧은 분량의 이 소설들은 최대 원고지 20매를 넘기지 않는다. 나뭇잎에 빗대어 엽편(葉片)소설, 손바닥에 비유해 장편(掌編)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조경란 작가는 6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평균 원고지 10매 내외 분량의 이야기를 매주 한 편씩 완성했다. 총 31편이다. 직접 읽어보니 한 편을 기준으로 요즘 유행하는 웹툰 한 편 보는 시간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짧았다. 출퇴근을 하면서 잠깐씩 읽거나 점심시간에 한 편씩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자기한 그림들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다. 

“올해 1월 말부터 6월까지 쓴 이야기인데요. 이 책을 읽고 많은 분이 재미있다고 얘기해줘서 기분이 참 좋아요. 길고 두꺼운 소설에 부담감을 느끼고 계신 분이 많잖아요. 그래서 읽기에 편안하고 부담이 없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실은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동안 어느 책에도 싣지 못한 채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이런 것을 독립적인 형태로 한번 만들어보고자 했던 거죠. 종이책에 익숙하지 않거나 종이책으로부터 멀어진 독자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요.”

등단 21년을 맞은 중견작가에게 이토록 짧은 소설을 써낸다는 일은 과연 어떤 과정이었을까. 짧은 만큼 쉬웠을 것 같기도, 그 안에 재미와 감동과 의미와 여운을 모두 넣으려면 녹록지 않았을 것 같기도 했다. 이에 조경란 작가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했다. 아마 짧은 분량이지만 그 안에 인생의 한 장면을 날카롭게 포착해 풍자와 유머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완성할 때 지나치게 힘을 들이거나 무리를 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매일 두 시간씩 쓰되, 안 써지는 날에는 내일 쓸 것에 대한 구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무리하게 억지로 쓰기보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저 이야기가 툭 터져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후후후의 숲>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 연애부터 결혼에 이르는 사랑 이야기, 음식을 소재로 한 이야기, 적당히 무심해지는 가족 간의 이야기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조경란 작가는 이 책의 이야기를 구성할 때 ‘타자성’에 대한 고민을 오래 했다.

“이 책의 독자들이 가까운 타자, 이를테면 가족이나 이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나만이 아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죠. 제가 써왔던 기존의 소설과 비교하면 다른 방식인 것 같아요. 이전에는 타자와의 소통을 고민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제 소설이 읽기가 어렵고 무거웠던 것 같아요.”

열 손가락을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혹시라도 가장 애착이 가는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해서 몇 편 있어요. (웃음) 우선 ‘후후후의 숲’을 써놓고는 내심 이 원고가 표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후후후의 숲’이야말로 제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모두 들어가 있거든요. 그런데 마침 출판사 측에서 책의 제목으로 정해줘서 정말 기뻤고요. 아버지가 토끼로 변한다는 내용의 ‘변신’을 써놓고는 이 책을 계속 써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목에 ‘집’이라는 문신을 새긴 청년이 등장하는 ‘문신 이야기’는 저의 실제 경험담에서 비롯된 것이었고요. ‘백설 공주 유모와 (몇 번째인지도 모를) 난쟁이’를 통해서는 조금 더 살아본 언니로서, 이모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죠. ‘내가 살아보니까 이러면 좋겠더라’ 하는 이야기요.“  

 

‘후후후’ 숨 쉬며 걸어보는 낯선 여름의 숲

 

조경란 작가는 책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주제 단어로 세 가지를 꼽았다. 바로 ‘치유’, ‘소통’, ‘타자’ 였다.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자신의 꿈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 큰 상처를 겪었거나 세상으로부터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괜찮아’라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말이다. 사실 그녀 역시 그랬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끊임없이 다가와 ‘괜찮아’라면서 어깨를 다독여주었다고 했다. 이 책을 쓰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고 했다. ‘글쓰기는 이래야 해’, ‘소설은 저래야 해’라고 갖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동안 타성에 젖은 적은 없었지만 잘 쓰고 싶은데 안 써지니까 힘들고 우울했던 시간은 있었어요. 그런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는데 지금까지 딱 두 번 정도 있었죠. 그때는 정말 몇 년간 책을 전혀 못 냈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잘 쓰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소설을 쓰려고요. 잘 쓴 소설과 좋은 소설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이제는 좋은 소설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등단한 지 20년이 넘은 작가에게도 소설을 쓸 때 여전히 두려운 것이 있을까 궁금했다. 이에 조경란 작가는 상식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 상식적인 문장으로 글을 쓰는 것을 가장 두렵고 무서운 일로 꼽았다. 그래서 덩어리째로 놓인 이야기를 회전판 위에 놓고 빙글빙글 돌려 옆이나 뒤에서도 보려 노력한다고 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생길 수 있는 고정관념이나 편견, 고집에 대해 조심한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눈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는 불확실한 확실 역시 경계한다고 했다.

조경란 작가에게는 언제나 ‘매일’이라는 화두가 중요하다. 규칙적인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은 그녀는 규칙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규칙적으로 먹고 걷는다. 늘 편한 신발을 가방 속에 갖고 다니면서 삼사십 분 거리 정도는 걸어다닌다고. 요즘 같은 여름에는 주로 밤 시간대를 이용해 걷는다. 그녀에게 있어 ‘걷다’라는 동사는 곧 ‘생각한다’라는 동사와 같은 의미라고. 걷는 동안 다양한 감각들이 맞부딪치는데, 이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최근에는 독일의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의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듣고 있다. 평소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알렉시 머독(Alexi Murdoch)의 노래도 즐겨 듣는다고. 조경란 작가의 취미는 음식 관련 서적 모으기다. 각종 요리를 비롯해 커피, 빵, 맥주 등 종류별로 사 모은 음식 서적만 해도 100권이 넘는다. 심각하게 우울해질 때면 침대 위에서 음식 책을 하나씩 펼치게 된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 책을 보면서 그 재료를 만질 때의 촉감, 향기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다고. 평소에 요리를 즐긴다는 작가에게 그녀만의 요리법 하나를 얻어보기로 했다.

“저만의 우유식빵 만드는 법을 소개해드릴게요. 여러 책을 보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완성한 요리법인데요. 일단 몸에 좋은 우리 밀 강력분 300g을 준비해주세요. 보통 많은 책에서는 소금을 7g 정도 넣으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간이 좀 짜고요. 5g만 넣고 설탕 대신 꿀 24g을 넣어주세요. 가능하면 향기가 없는 것으로요. 버터 대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27g, 드라이 이스트 5g, 우유 120mL를 넣으시고요. 그럼 아주 맛있고 건강한 식빵이 나온답니다. 저는 이렇게 만든 우유식빵을 냉동실에 넣어 놓고 구워도 먹고 피자 토스트도 해먹어요. 요즘 같은 여름에는 맥주를 자주 마시고요. 거의 맥주의 힘으로 사는 것 같아요.(웃음) 특히 공복에 맥주를 마시면 기운이 나거든요. 저의 작은 냉장고에는 항상 세계 맥주가 가득 갖춰져 있죠.” 

조경란 작가는 인터뷰 중에도 빨리 책상으로 돌아가 글 쓰는 일에 몰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바쁜 일정으로 인해 글 쓰는 일에 잠시 소홀해졌다는 고백과 함께. 그녀는 얼마 전부터 새로운 책을 위한 구상에 골몰해 있다. 나이 든 아버지와 나이 든 딸의 이야기라고 했다. 사회로부터 밀려나 주류가 되지 못한 부녀의 이야기라고. 자신의 개인적 삶과 닿아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귀띔도 해주었다. 쓰고 있을 때야말로 정신적인 충만함을 느낀다는 그녀. 나이가 들어서도 영원한 현역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녀. 늘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앞서 주저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나 역시 후, 후, 후, 숨을 고르며 새로운 시작을 꿈꿔본다.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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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조경란

1969년 서울 출생.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일요일의 철학』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중편소설 『움직임』,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복어』, 짧은 소설집 『후후후의 숲』,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 『백화점』 『소설가의 사물』 등이 있다. 1996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2002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3년 현대문학상, 2008년 동인문학상, 2014년 고양행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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