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21.04.02 조회수 | 2,699

심리학자 김태형 “한국인에겐 행복보다 고통 탈출이 시급”

※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김태형/ 갈매나무/ 2021년)이 출간됐습니다. 갈매나무 편집부가 김태형 작가와 진행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Q 한국 사회의 자존감 열풍에 주목한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김태형/ 갈매나무/ 2018년)에 이어 이번에는 ‘행복’에 주목한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를 출간하셨습니다. ‘자존감’에 이어 ‘행복’에 주목해 책을 집필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자존감 열풍, 행복 열풍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인들은 자존감과 행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이것에 힘입어 자존감과 행복을 다루는 저서들이나 처방전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는 자존감과 마찬가지로 행복에 관해서도 잘못된 설명과 엉터리 처방전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인을 포함한 인류는 행복에 관한 책이나 논의, 처방전 등이 차고 넘쳐나는데도 오히려 더 불행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즉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무엇보다 가짜 행복론에서 벗어나 진짜 행복론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Q “소확행은 사회의 변혁이 아닌 적응을 전제로 한다.”, “마음챙김은 사회로부터의 자발적 격리다” 등 사람들이 일상에서 익숙하게 쓰고 있는 유행어들에 대한 문제점을 책에서 날카롭게 짚어주셨습니다. 소확행이 ‘올해의 유행어’로 등극한 해가 2018년입니다. 이 밖에도 ‘욜로’, ‘힐링’ 등 개인의 행복을 강조하는 태도를 담은 말들이 최근 3~4년간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말들의 유행은 어떠한 변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이나 서구의 68혁명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진보운동이 말해주듯이, 20세기 중반기까지만 해도 인류는 나 하나의 행복이 아닌 모두의 행복을 꿈꿨습니다. 다시 말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열망을 간직하고 그것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에 구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어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진보운동이 쇠퇴·몰락하게 되자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 대신 개인의 생존, 개인의 행복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개인주의적 행복론이 득세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려는 열망이 내가 행복해지려는 개인적 욕망으로 대치된 것입니다.


개인 간 경쟁, 개인의 생존과 성공을 강조하고 독려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는 행복을 하나의 상품으로, 경쟁의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그 결과 가짜 행복을 팔아 돈을 버는 행복 산업이 등장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개인주의적인 행복 경쟁이 격화되었습니다.

Q 개인에게는 온갖 미디어와 주류 심리학이 퍼뜨리는 가짜 행복론에 속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팍팍한 현실에서는 ‘소확행’에 기대는 것이 순간이나마 위안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가짜 행복을 계속해서 좇는다면 결국 불행해지는 길이 될 텐데요. 알면서도 가짜 행복론과 결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사실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현실적으로 더 긴급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고통 탈출입니다. 제가 전작인 <풍요중독사회>(김태형/ 한겨레출판/ 2020년)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한국인들은 최악의 불안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나 쾌감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게 되더라도 그것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합니다. 너무나 불안해서 옳은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우선 자신을 짓누르는 불안의 정체부터 직시해야 하고 그것과 맞서 싸워야만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건강한 사회,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마약이 나쁜 줄을 알면서도 그것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약을 탐닉하는 것의 결과는 파멸뿐이라는 것을 명확히 자각하는 것과 함께 마약이 주는 말초적 쾌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 높은 감정, 예컨대 보람을 체험해보는 것입니다. 일단 참다운 행복과 관련된 보람이나 만족 등을 조금씩이라도 경험하게 되면 쾌감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이를 위해서는 행복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져야 하고 진짜 행복론의 처방전을 실천하려는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지구촌을 행복 열풍이 뒤덮은 지 오래고 주류 심리학을 비롯해 미디어가 행복에 관해 목청을 높여온 지도 오래입니다. 물론 그 덕분에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더 행복해진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인류는 과거보다 더 불행해졌고 계속해서 불행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존의 가짜 행복론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과감히 인정하고 그것과 결별해야 합니다.

Q 책에서 ‘노동’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점점 노동의 가치가 홀대받고 한탕주의가 퍼져가는 것 같습니다. 세대를 막론한 주식 열풍과 부동산 투기 열풍까지…… 노동을 통하지 않고 쉽게 이득을 얻으려는 세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노동이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려면 자신의 노동이 사회의 유지, 발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사회에 유익한 노동을 하는 동시에 사회로부터 정당한 평가와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죽어라고 일을 해도 생존조차 버겁고 타인들로부터 천대받는 처지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면 노동은 행복에 기여하기는커녕 고통과 불행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면 노동을 기피하고 혐오하면서 무위도식하는 부자들의 기생충적이고 반사회적인 삶을 부러워하고 선망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위도식하는 삶, 불로소득으로 연명하는 삶은 행복과는 한참 거리가 멉니다. 더욱이 만일 절대다수가 이런 삶을 꿈꾼다면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며,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생존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차별과 무시를 당하지 않는 사회로 시급히 개혁해야 합니다.

Q 주류 심리학에 대해 가감 없이 비판하는 2부 4장 ‘심리학이 건네는 행복에 관한 거짓말’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주류 심리학이 기존의 한계와 문제점들에서 벗어나 진정한 과학적 학문, 사람들에게 진짜 행복을 알려줄 수 있는 학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류 심리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 비과학적인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주류 심리학은 인간을 머리에 컴퓨터를 달고 있는 동물로 간주합니다. 즉 인간을 동물보다 똑똑하기는 하지만 동물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생물학적인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가 아닌 생물학적인 존재로 보기 때문에 주류 심리학은 철저히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고는 사회를 거의 쳐다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 심리를 연구하면서 사회 그리고 인간 심리와 사회와의 연관성을 배제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여러 기회에 걸쳐 올바른 심리학, 과학적인 심리학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진리에 기초해야 심리학은 인간 심리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연구하는 과학적인 심리학, 오직 사회적으로만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을 연구하는 올바른 심리학이 될 수 있습니다.

Q 책의 에필로그에서 참다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주셨는데, 실생활에서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하나 더 제안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인간적인 삶의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야 하지만 부분적인 행복의 견지에서 보면 목적, 목표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무조건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의지력을 발휘하여 목표를 향해 나아가거나 그것을 달성했을 때 체험하는 만족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항상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는 습관을 키우면 좋을 것입니다.

Q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한국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어놓은 것 같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한국 사회의 행복론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코로나 사태는 사람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타인들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으며, 모두가 협력해야 방역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자각이 모두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모두가 협력해서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열망으로 표출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비록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사람들은 점차 가짜 행복론에서 벗어나 진짜 행복론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Q 마음챙김, 힐링 등을 내세운 심리학, 행복 관련 책은 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진짜 행복’을 말하는 책은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짜 행복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참다운 행복을 추구할 수 있으려면 단지 행복에 관한 책만이 아니라 다양한 책들을 통해 세계와 자기 자신(인간)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 올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을 정립하고 그에 기초해 인간다운 삶의 목적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복에 관한 심리학 책이라면 행복의 본질이 인간본성을 실현하는 것에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는 에리히 프롬의 저서들 그리고 비록 주류 심리학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지만 행복 연구에서 ‘사회’를 연구 주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제임스 B. 앨런의 <행복심리학>(제임스 B. 앨런/ 시그마프레스/ 2019년)을 추천합니다. 철학자나 사회학자 등이 집필한 행복에 관한 저서들은 그나마 주류 심리학에 비해서는 행복에 관해 진지하게 논하고 있거나 행복의 본질에 접근하는 편입니다. 물론 독자들은 책을 읽을 때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하고 독자적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Q ‘자존감’, ‘행복’에 이어 다음에는 어떠한 주제에 주목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향후 집필 계획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주류 심리학을 소개하는 입문서들은 굉장히 많지만 올바른 심리학 이론을 소개하는 입문서는 없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미국 심리학, 즉 주류 심리학이 아닌 올바른 심리학, 과학적인 심리학 이론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심리학 입문서를 집필하려고 합니다. 그 후에는 올바른 심리학 이론을 폭넓고 심도 있게 설명하는 전문적인 심리학 이론서를 집필할 계획입니다.

Q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을 읽은 독자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비록 오늘날 행복이라는 말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왜곡되어 있지만, 우리는 행복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며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다고 해서 참다운 행복,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이상사회로 나아가려는 희망과 꿈마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마음을 합치고 힘을 합쳐 모두가 행복해지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되기를 강력히 희망합니다.

- 사진 : 갈매나무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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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김태형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심리학자로서 기존 심리학의 긍정적인 점을 계승하는 한편, 오류를 과감히 비판하고 극복함으로써 올바른 심리학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 병든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쏟고 있다. 현재 심리학 연구 및 상담, 집필, 강의를 활발히 하며,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2014년)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자살공화국](2017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실컷 논 아이가 행복한 어른이 된다](2016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불안증폭사회](2011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베토벤 심리상담 보고서](대한출판문화협회 선정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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