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20.11.05 조회수 | 926

정은주X신솔잎 “6박 7일 시베리아 횡단 열차,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

※ 정은주, 신솔잎 작가가 <한 번쯤 시베리아 횡단 열차>(다시문학/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작가가 구성한 셀프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편집자 말

<한 번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스물아홉의 두 여자가 삼십일 가까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여행한 에세이입니다. 같은 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십여년 동안 친구로 지냈지만 이들이 처음으로 함께 떠난 장기간 해외여행. 여행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담긴 게 아니라,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국립 묘지, 이르쿠츠크의 바이칼 호수 등 서로 다른 풍경에 대한 두 사람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미지의 그곳을 향한 세 번째 시선을 기다립니다.

3월의 바이칼 호수 중심에선 철과 쏠

여행의 시작

Q ‘스물아홉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스물여덟의 우리는 못했고 서른의 우리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떠났습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스물아홉 살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을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정은주(이하 철) : 어렸을 때만 해도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했던 거 같아요. 열아홉에는 스무살이 되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작이 기다릴 줄 알았고, 스물아홉 때는 서른이 되면 원하는 꿈을 이룬 어른이 될 줄 알았던 것처럼요. 그런데 기대했던 ‘멋있는’ 어른도, 큰 변화도 없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몰랐고요. 무언가를 더 많이 보고 느끼는 게 아니라 오로지 어딘가로 떠나기 위한 여행을 가고 싶었어요.

신솔잎(이하 쏠) : 무언가 운명적으로 꼭 스물아홉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여야 하는 이유는 없었어요.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연초에 마감되고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가까운 나라들을 여행하고 있었던 중에 철이에게 루블(러시아 화폐 단위)이 반 토막 났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 함께 가지 않겠냐는 제안이 여행의 시작이었죠. 돌이켜보면 스물아홉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4년에 한 번씩 덤처럼 있는 것 같은 2월 29일에 기차에 탄 것도 무언가 운명 같은 느낌이 들어요.

3월에도 패딩에 히트텍과 손발난로는 필수

하나면서 둘인 여행기

Q 오래된 친구사이라고 해도 긴 여행을 하게 되면 사소한 일로 다투기 마련인데, 두 분은 잘 싸우지 않더라고요. 두 분은 어떤 관계이고, 여행 메이트로서 장기간 여행에도 싸우지 않았던 노하우가 있다면요?

철 : 쏠은 고등학교 때부터 1n년 간 알고 지낸 친구에요. 같은 학교를 다닌 것 외에 저는 시를 썼고 쏠은 소설을 쓴 것부터 활동하는 동아리나 사는 동네도 달랐던 것까지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은 사이죠. 서로의 다름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장점 같아요. 예를 들어, 저흰 여행 중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데 각자 하고 싶은 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아서죠. 물론 잘 걷고, 새로운 경험을 즐기고 맥주를 좋아한다는 여행 맞춤형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긴 하겠지만요.

쏠 :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학창시절 친구였지만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 이전에 함께 해외여행을 함께한 적이 없었어요. 여행 괴담처럼 10년 절친도 절교하게 만든다는 장

거리 해외여행이었지만 기본적으로 비슷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노하우라면 노하우였던 것 같아요. 신체적으로 지치는 속도가 비슷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한 사람이 훨씬 더 무리해서 일정을 진행하지 않았거든요.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을 보아야 하는 박물관, 미술관, 서점 같은 장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 여행 메이트라는 점도 좋았던 것 같아요.

Q <한 번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하나의 장소나 사건을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보는 특이한 형식입니다. 어떻게 보면 서로가 상대방 글의 첫 독자가 된다고 볼 수도 있는데, 서로의 글을 어떻게 읽었는지 말씀해주세요.

철: 이 책은 ‘여행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걸 우리 두 사람의 글로 나눠 보면 제가 ‘여행’을, 쏠이 ‘에세이’를 맡은 느낌이에요. 제가 주로 실제 공간과 시간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한다면, 쏠은 그곳에서 자신의 기억이나 감성에 집중하는 느낌이라 같은 곳을 가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행하는 두 개의 여행기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쏠: 초고를 확인하면서 서로도 무척 놀랐어요. 물론 같은 것을 쓴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 다른 것에 초점을 두고 있더라고요. 편견일 수도 있는데 저는 소설을 전공했고, 철이는 시를 전공했기 때문에 서술하는 방식에 차이가 나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물론 한 권의 책이고, 같은 곳을 여행했지만 마치 두 권의 책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실 거예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 만난 뜻밖의 동반자, 꼬마 니키타

블라디보스톡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러시아

Q 책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 3등석을 고른 이유도, 무례한 러시아 경찰을 만나게 된 것도 여자라는 이유가 크다고 했었는데요. 여성으로서 직접 여행해 본 소감은 어떠셨나요?

철 : 횡단 열차 안에서 일어난 어떤 일도 1등석이나 2등석처럼 폐쇄된 공간에서가 아니라 모두에게 오픈된 3등석을 고르면 덜 위험할 것이라 생각해서 골랐어요. 확실히 여자 분들이 여행할 때 안전을 더 고려할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횡단 열차는 딱히 안전하다고 할 순 없지만 또 여행해보면 특별히 무서운 곳도 아니었어요.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도 있고, 인종이나 여성 차별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거든요.

쏠 :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에게 친절하기도 했지만 무관심했기 때문에 기차에서 계속 긴장하며 가지는 않았어요.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 기본적으로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수칙을 지킨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종종 기차 안에서 술에 취한 사람들 때문에 무서울 때가 있었지만, 그럴 때는 객실 차장님 근처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도 안전한 기차 여행 방법 중 하나입니다.

Q 책을 읽다 보면 특정 장소나 음식, 사람에 대한 에피소드 보다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감정은 러시아에 대한 애정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러시아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철 : 저한테 러시아는 하나의 이미지로 정의가 되지 않아요. 압도적인 경관을 가진 소련 시대 건축물이 있는가 하면, 낡은 목조 건물의 느낌도 동시에 떠올라요. 황금으로 칠해진 유럽식 궁전이 떠오르다가도 돔 건축물은 서남아시아나 다른 나라가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 어딘가 모르게 뒤섞인 것들이 주는 불완전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좋아요.

쏠 : 책에도 적었지만 러시아의 어떤 적당함이 좋은 것 같아요. 너무 유럽 같지도 아시아 같지도 않고, 너무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으며, 너무 자본주의 같지도 그렇다고 이전의 사회주의 같지도 않은 그런 적당함이요. 러시아 문학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도시의 모습이나, 시골 별장 다차 같은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Q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무리되는 여행이 시간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총 4개의 도시를 여행하셨는데 그중 한 도시만 다시 갈 수 있다면 어디를 꼽아보시겠어요?

철 : 상트페테르부르크요. 여행 중 가장 기대했던 곳이기도 했고, 아마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의 종착지여서 더 큰 아쉬움이 남아서기도 할 거예요. 그땐 매일같이 여름 궁전,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에르미타시 미술관에 갔었는데, 마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매 순간 이곳에 있는 게 좋았고, 이곳에 있는 제가 좋아질 정도였어요. 이번 여름 휴가에 가려던 곳이었는데 못 가게 되었네요.

쏠 : 한 도시만 갈 수 있다면 저는 모스크바에 갈 것 같아요.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대성당은 아침에 보아도, 저녁에 보아도, 여름에 보아도, 겨울에 보아도 온종일 앉아서 보고 싶은 건축물이에요. 이 성당만으로도 모스크바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참고로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인데 이즈음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풍경은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아름다우니 가보시길 추천할게요!

TO. 독자들에게

Q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지만 많은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고대하고 있을 여행자들에게 귀띔해줄 만한 팁이 있을까요?

철 :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또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어요. 창밖에 몇 시간이고 계속되는 자작나무 숲이나 눈밭을 보는 일은 누군가에게 지겨울 수 있으니까요. 스마트폰 데이터도 잘 안 될 테고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은 호기심, 한번도 읽지 못한 장편 소설책처럼 평소 잘하지 않았던 것들을 해보는 걸 추천해요. 6

박 7일간 달리던 열차가 멈추면 어느 것 하나는 끝이 나 있을 거예요.

쏠 : 기차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아마도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6박 7일간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에게만 쓸 수 있는 준비를 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저처럼 작은 노트와 <안나 카레니나> 소설집 한 권이 될 수도 있고 카메라나 향이 진한 티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한편으로 다른 기차 여행객들과 친해지기 위해 간단한 러시아어를 연습해가는 것도 횡단 열차를 즐길 수 있는 하나의 팁이 될 것 같습니다.

Q 독자들이 어떤 키워드에 집중해서 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철 : 이 책을 읽고 러시아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거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싶어졌다는 마음이 생기진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평생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아니라 ‘한 번쯤’은 해볼 수도 있는 여행의 느낌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쏠 : 아마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 열차, 스물아홉과 같은 주제에 흥미가 있어서 이 책을 읽으실 것 같아요. 이미 다녀오신 분은 자신의 여행 경험을 추억하고 아직 가보지 않으셨다면 그 장소를 상상하면서요. 어떤 키워드를 느끼셔도 작가로서는 즐겁겠지만,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세 번째 시선이 되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이 책을 통해 독자분들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셨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 사진 : 정은주, 신솔잎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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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정은주

<은하철도 999>의 철이 분신. 고등학교 때부터 7년 반 동안 문학 전공자로 살았고, 디자인, 여행, 라이프스타일 에디터로 일했다. 지금은 한국의 아까끼 아까끼예비치(고골 소설 「외투」의 주인공으로, 평범한 하급 관리)중 한 명. 중학교 때 처음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존재를 안 뒤, 무조건 첫 해외여행은 러시아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지금까지 가장 많이 가 본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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