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20.08.28 조회수 | 9,369

베르나르 베르베르 "내 좌뇌가 과학으로 기울어 있다면 우뇌는 영성을 향하고 있어"

2019년 방한 당시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 시대의 가장 문제적인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는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군림하는 시대에도 흔들림 없는 팬덤을 유지하는 ‘파워 스토리텔러’이기도 하다. 이번에 그는 희곡 <심판>(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20년)을 출간했다. 아나톨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천국에 가서 생전의 삶을 심판받는 내용의 희곡 작품이다. 통상 생각하는 사후세계가 우울하고 절망적인 공간이라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려낸 천국은 일말의 유쾌함과 인간적인 투닥거림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천국 법정에 당도한 인간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삶을 복기하고 대차대조표를 그림으로써 판사에게 생전의 삶을 심판 받는다. 물론 피고인 측 변호사도 있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려 하는 검사도 있다. 이전의 삶이 의미 있었다고 평가받는다면 천국에 머무르게 되고, 그렇지 못했다면 다시 한 번의 삶이란 형벌에 처해지게 된다. <심판>이 우리의 삶과 죽음에 관해 제공하는 통찰은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선물하는 것만 같다.


온 지구가 코로나라는 위기 상황을 지나고 있는 지금, 이메일을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만났다. 신작 <심판>이 구성하고 있는 세계관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 지금의 코로나 상황이 인류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해답.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금 낯설고 두려운 상황은 인간 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계기”

Q 전 세계가 코로나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봉쇄령 조치가 있었죠. 수많은 한국 팬들이 작가님의 안부를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덕분이죠. 이번 일은 저한테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3인류>에서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인간의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상황을 가정했었는데, 5년도 더 전에 상상했던 허구가 오늘날 현실화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네요. 제가 글로 쓰는 내용이 얼마든지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죠. 사실 인류에게 닥치는 지금 같은 낯설고 두려운 상황들은 지구와 인간이라는 종의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Q “개인이, 인류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과거를 통해 실수를 깨닫고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이전에도 페스트나 스페인 독감과 같은 수많은 전염병의 유행이 있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전염병 유행이 반복되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각각의 종은 저마다의 조절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페스트 출현 이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사자와 곰, 늑대 같은 동물들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더 이상의 상위 포식자가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에는 바이러스가 최종적 포식자가 되었어요. 우리를 위협하는 상대가 덩치 큰 동물에서 작은 생명체로 바뀐 것이죠. 이렇듯 인간종의 증식을 제한하는 요소들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어요. 만약 이런 요인이 없다면 인간은 무한한 증식을 통해, 돌이킬 수 없게 지구를 파괴해 버리고 말 겁니다.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자동차처럼 말이죠. 결국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무한정 팽창하려는 인간에게 자연이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환생에 관심 갖는 이유? 인간이 진화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

Q <심판>에 관한 질문입니다. 천국 법정에서는 ‘삶이 형벌’이라는 설정이 의외였습니다. 통상적으로 죽음은 비극적인 것, 삶은 축복이라 생각하니까요. ‘삶은 고통’이라는 설정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영향 받은 건가요? 실제로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당연히 불교의 세계관에서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삶이 고통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환생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인간이 진화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재의 이유는 배움, 경험, 바로잡기, 이 세 가지가 아닐까 해요. 우리는 지난 생에서 알지 못했던 것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삶의 출발선에 서죠. 그러고 나서 전생에서 하지 못했던, 차마 용기를 낼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전생에서 받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고 실수를 바로잡는 것도 현생의 일이죠.

Q 쉽고 편안함보다 현생에서 겪은 고통이 천국에서는 오히려 높게 평가받는 대목도 흥미로웠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고통 역시도 단순한 불행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라 보십니까?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삶의 시련은 카드 게임에서 주어지는 불리한 패와 같은 게 아닐까 해요. 불리한 패를 쥐고 게임을 시작한 대표적인 경우가 아마도 찰리 채플린 같은 사람일 겁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 정신병을 앓았던 편모슬하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기에 스스로 장애물을 뛰어넘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결국 그것을 해냈습니다. 불리한 패를 가지고 인생을 출발했지만 천재적 재능을 빛내며 성공한 삶을 살았죠.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멋진 배우이자 제작자의 삶 말입니다. 물론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모두 그처럼 성공하는 건 아닐 거예요.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는 게 현실이죠. 하지만 채플린의 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는 시련을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더 많이 깨닫고, 더 빨리 진화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어요. 문득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나치 협력자와 레지스탕스들이 생각나네요. 그 시련의 시기를 통해 개개인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되었으니까요.

Q 25%의 카르마와 25%의 유전, 50%의 자유의지가 우리 인생을 결정한다는 설정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이 절반은 정해져 있고, 절반만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50%의 자유의지를 통해 인간은 유전이나 카르마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부모에 의해 미리 정해진 운명이나 무의식에 의해 결정된 운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하지만 자유의지의 존재가 삶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라는 건 틀림이 없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카르마와 유전적 요소의 영향력을 재분배할 수 있으니까요. 가령 어떤 이는 부모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자 할 수 있어요. 또 어떤 이는 무의식이 시키는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할 수도 있죠. 이런 선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영국 찰스 왕세자의 두 아들이 보이는 서로 다른 삶의 행보를 보면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어요. 하나는 왕실에 남았고 다른 하나는 왕실을 떠났죠.

2019년 방한 당시 베르나르 베르베르

“운명의 일과 사랑을 찾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세요”

Q 누구나 운명의 사랑, 운명의 일을 성취하고 싶어 하지만 아나톨처럼 현실적 조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자신이 꼭 하고 싶어 하는 일, 자신이 이루고 싶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여행을 떠나세요. 이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언인 것 같습니다. 여행에 오르면 모든 것이 상대화되어 눈에 들어오죠. 만남의 외연이 확장되고, 거리를 두고 현실을 바라보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거예요. 자신의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는 기존의 좁은 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행은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주죠. 앞서 제가 우리 존재의 이유 중 하나가 경험이라고 했는데, 새로운 만남과 직업, 생경한 삶의 방식을 경험하게 해주는 게 바로 여행이에요. 루틴에서 벗어나게 해주죠. 삶이 불만족스럽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루틴이에요. 기존의 좁은 틀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죠.

Q 아나톨이 다음에 태어날 존재의 성별, 부모, 강점과 핸디캡, 직업, 사랑, 에필로그를 선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작가님께서도 다음 생의 조건들을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고 싶으십니까?

저는 지금의 삶에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다음 생의 조건들을 결정할 수 있다면 지금의 삶과 최대한 비슷한 삶을 고르고 싶어요. 적어도 저한테는 작가라는 직업이 최고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작가의 삶을 사는 덕분에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이 모든 것은 제게 늘 큰 배움을 주었습니다.

Q <심판>은 <인간>(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09년) 이후로 오랜만에 출간된 희곡입니다. 소설과 달리 희곡을 쓸 때 유념하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우선 희곡은 소설과는 달리 공간적 제약이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무대가 수시로 바뀔뿐더러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배경이 펼쳐지기도 하죠. 하지만 희곡은 제한된 장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희곡의 또 다른 제약은 메시지의 주요 통로가 대화라는 점이에요. 액션이 사라진 자리를 대화가 채우는 게 이 장르의 제약이자 특징이죠. 세 번째로 제가 생각하는 희곡과 소설의 큰 차이는 웃음에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희곡은 그래요. 저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게 할 수 있을까 고심해요. 제 희곡 글쓰기의 초점이 언어의 리듬과 유머에 맞춰지는 이유죠. 놀라움과 충격을 선사할 수 있는 재치 있는 표현을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게 할 수 있을지 고심해요”

Q 과학적 소재를 주로 다루던 작가님의 작품 세계가 점점 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흥미롭습니다. 점차 측정 불가능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제 좌뇌가 과학으로 기울어 있다면 제 우뇌는 늘 영성을 향하고 있습니다. 걷기 위해 두 다리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사람들 눈에는 제가 과학에서 출발해 영성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제 책들을 자세히 읽어 보면 세 가지 철학적 질문에 변함없이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세 가지 화두를 풀기 위해 때로는 과학을, 때로는 영성을 끌어와 이야기를 쓰는 것뿐이에요.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나이가 조금은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퇴행 최면의 발견도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영성이야말로 발견해야 할 것이 무수히 많은 미지의 영역이란 생각을 하게 됐죠. 오늘날 우리는 과학 분야에서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됐어요. 하지만 영성은 개척되지 않은 황무지로 남아 있죠.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수풀을 헤치며 작은 길을 내는 심정으로 도전하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집필 중인 작품이나 향후 출간 계획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프랑스에서 올가을 출간되는 <고양이 행성>(가제, 원제는 La Planète des Chats)은 지능을 가진 또 다른 종이 우리 인간종의 자리를 대체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작년에 출간된 <고양이 폐하>(가제, 원제는 Sa Majesté des Chats)의 후속작이자 고양이 시리즈의 완결편이죠. 우리 인류가 지금 상태로 지속 가능할까, 혹시 언젠가 다른 종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을 허구적 상상력에 담아 보았습니다. 앞서 말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제 나름의 대답을 시도한 책이에요. 뉴욕을 무대로 펼쳐지는 광대한 스케일의 소설입니다.

지금은 <기억>의 후속작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기억>에서 퇴행 최면을 주로 다뤘다면 이번 책에서는 선행 최면을 활용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앞서 있었던 전생들이 아니라 앞으로 오게 될 후생들에 대한 흥미와 궁금증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죠. <기억> 속 등장인물들의 후생이 펼쳐질 이 소설은 2021년 가을에 프랑스 독자들과 먼저 만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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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북DB 기자)

1983년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kiwi@interpark.com

작가소개

베르나르 베르베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났다. [별들의 전쟁] 세대에 속하기도 하는 그는 고등학교 때는 만화와 시나리오에 탐닉하면서 [만화 신문]을 발행했고, 이후 올더스 헉슬리와 H. G. 웰즈를 사숙하면서 소설과 과학을 익혔다. 1979년 툴루즈 제1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하고 국립 언론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과학 잡지에 개미에 관한 평론을 발표해 오다 드디어 1991년 120번에 가까운 개작을 거친 [개미]를 발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대작가로 떠올랐다. [개미]는 베르베르가 개미를 관찰하기 시작한 열두 살 무렵부터 시작된 소설로 무려 20여 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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