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20.07.27 조회수 | 3,442

<지옥> 연상호 감독 “불확실성을 못 견뎌하는 인간의 모습에 관심이 있다”

감독이 의도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관객들은 영화 ‘부산행’에서 세월호 참사를 봤고, 영화 ‘염력’에서는 용산참사를,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반도’에서는 난민문제를 연상했다. 물론 이 영화들은 모두 주류 대중영화이고 장르영화여서 영화적 쾌감이 크고 사회 현상을 전면에 드러내지도 않는다. 심지어 ‘부산행’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을 반박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상호 감독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 소외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송곳>의 최규석 작가와 닮은 지점들이 있다. 지난해 8월부터 네이버 웹툰을 통해 연재를 시작한 웹툰 ‘지옥’은 연상호X최규석 공동작품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연상호의 세계관에 최규석의 연출과 그림이라니. 사실 이 둘의 협업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연상호 감독을 처음 세상에 알린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년작)의 원안도 최규석 작가가 맡았다.

연상호 감독이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는 세계관은 결국 ‘연니버스’라고 이름 지어졌다. 정의하는 건 쉽지 않지만 어둡고 염세적이고, 어느 순간에 이성이 전복되는 어떤 세상이다.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된 <지옥>(연상호, 최규석/ 문학동네/ 2020년)은 연니버스의 세계를 이해하고 들여다보기 좋은 작품이다. 몰입감이나 속도감도 엄청나다. 많은 이들이 웹툰을 소비하지만 지옥은 단행본으로 볼 때 그 재미와 공포가 더 크게 느껴지는데 아마도 그 동인은 최규석 작가의 힘일 것이다. 감독이 바라보는 현실의 지옥은 어떤 세상인지, 스토리의 근원은 무엇인지 여러 가지 궁금증을 안고 연상호 감독을 만났다.

“최규석과는 공동작업자이자 친구…작품 성향은 비슷하지만 작업 방식은 달라”

Q 최규석 작가와 오랜 인연을 갖고 계신데 <지옥>의 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최규석 작가와는 대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 사이다. 졸업하고도 매일 한두 번씩 통화할 정도로 친한 친구사이인데 나이 먹고 작업하면서 서로 바쁘다 보니 만남이 뜸해지더라. 2년 전인가 맥주 한 잔 하면서 이런 대화를 했다. '이렇게 나이 먹다가 일 년에 한두 번 밖에 못 보겠다, 우리가 같이 작업하면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지옥>이라는 작품을 다시 한 번 리부트 해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큰 스토리 라인을 갖고 최규석 작가와 의논하면서 발전시키게 되었다. (네이버 웹툰으로 2019년 8월 25일부터 연재된 ‘지옥’은 원래 연상호 감독이 2003년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Q 최규석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두 분의 작품 성향이 비슷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최규석 작가와는 성격도 잘 맞는 편이고 그러다 보니 같이 대화하는 것도 재미있다. 작품 성향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작업을 같이 하면 수월하겠다 싶긴 했는데 작업 방식 자체는 서로 많이 다르다. 최규석은 방대하게 취재를 해서 이야기를 찾는 편이고 나는 스토리라인을 먼저 구상하고 그것에 맞추는 방식이다. 공동작업자 이외에도 친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업하고 있다.

Q <지옥>에서 다루는 건 사후세계의 지옥이 아니라 현실의 지옥이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현실의 지옥이란?

사후세계에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다. 불확실성을 못 견뎌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현대 사회는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계기로 원시사회나 신권 사회로 순식간에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이성에 의해서. 이런 상상을 하면서 작업을 했다.

Q 통제된 사회(타인을 통제하기 위해 공포를 주입하는 사회)는 그것이 설사 선을 향한다 하더라도 지옥일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지옥>에는 큰 화두가 몇 개 나오는데, '평균적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소수의 희생이 정의로운가',  '우리가 여기 나오는 신의 존재를 해석할 권리가 있는가', 또 좀 나은 해석을 해서 (세상을) 낫게 만들려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의 모습이 모두 다르고 그것들이 강하게 충돌하는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Q 인간이 선악의 결과가 아닌 무작위로 지옥에 간다면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삶을 선택할까? 정진수 의장은 공포가 선행을 만들 거라고 믿는 쪽이고 경찰은 공포가 아닌 인간의 자율성, 자유의지를 믿는 쪽이다. 감독님의 생각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일단 내 생각이 중요한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책을 보시면서 엔터테인먼트로 즐겨 보셨으면 좋겠다.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는 자유롭게 책을 보고 느끼는 게 나을 것 같다. 특히나 장르만화에서는 작가의 의도를 밝히는 게 작품 관람에 좋은 방향인 것 같진 않다. 어떤 분은 정진수의 사상에 더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고, 어떤 분은 다른 인물에 다가갈 수도 있다.

Q 근대 사회는 사적 보복이 금지된 사회다. 법적인 처벌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저주하는 것뿐. 그런데 <지옥>에서는 천벌이 물질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내용상 정진수 의장이 그런 생각을 받아 들일 수 있게 열어준 측면이 있다. 인간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그것이 끔찍하게 느껴지는지 오히려 정의롭게 느껴질지는 개인의 차이인 것 같다.

“갑작스러운 불행이나 행운은 왜 닥쳐오는가?”

Q 1권 이후 전개된 웹툰을 보면 추상적 존재가 단죄를 내리는 고지나 시연의 이유가 무엇인지보다는 그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 고지가 실제로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느낌이다. 마치 좀비처럼. 그냥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우리가 살면서 겪는 행운이나 불행의 근원에 어떤 게 존재하는지 알 수가 없다. 과거에는 선행의 결과가 행운을 가져다줬다, 악행의 결과로 불행이 온다, 혹은 전생의 선행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근원을 알 수 없는 것에 이유를 붙이려는 것 같다. 아마도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텐데. 어느 순간에는 불확실성을 나름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끝을 알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작가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도 그 질문 안에 있는 사람이다. ‘갑작스러운 불행은 또는 행운은 왜 닥쳐오는가’라는 질문을 여전히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계속 이 작품을 이어나가는 거다.

Q 불확실성에 대한 당위성을 찾기 위해서 사이비 종교를 찾게 되는 것일까, 감독님 작품 속에 사이비 종교가 자주 등장하는데 사이비 종교의 작동 원리가 불확실성 때문에 나오는 건가?

당연히 사이비 종교 같은 경우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위들도 다 어떤 것에 기대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들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양극단화 되고 의견의 중간지대가 없는 사회도 지옥이다”

Q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살촉은 종교적 극단주의의 모습을 보인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의견을 추종하고 양극단화 되는 의견의 중간지대가 없는 사회도 감독님이 생각하는 지옥인가?

음... 지옥이다. 신권 사회로 진화해가는 모습이 이성적인 사회에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그것을 바라보는 게 꽤나 당황스럽고 그 동력이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고, '과연 우리는 이성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대한 좋은 소재이고 장치라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반도' 스틸컷​

Q ‘지옥’ 웹툰을 보고 단행본을 보고 다음날 ‘반도’를 보니 무섭더라. 초기작 ‘돼지의 왕’도 쇼킹했다. 감독님 특유의 세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연니버스’라는 말도 생겨났는데, 연상호 감독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일정한 세계관을 만들고자 작업하는 건 아니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과 어렸을 때 보던 서브컬처들을 재현해보려고 하는 것 같다. 만화라든가 여러 가지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역량들이 나오는 것 같다. 이제 보통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고 직업인으로서 계속 생각해내려고 하는 거다.

Q 스토리 영감은 어디서 받는지.

온갖 것에서 다 (영감을) 받는다. 여러 가지 장르가 있지만, 그 장르 안에 녹일 수 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또 어떤 장르 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요소들을 결합해서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편이다.

Q 감독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고민하다) 건강검진?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는데 대장내시경이 가장 두렵다.

Q <지옥>이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 중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단계인가.

프리 프로덕션을 하고 있다. 곧 촬영에 들어가기 때문에 매일매일 시간에 쫓기면서 단계별로 프리 프로덕션을 준비하는 단계다. 내년에는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아무래도 최규석 작가의 연출 방식이 지류로 볼 때 힘을 발휘하는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출판만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최규석의 연출과 그림을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감상할 수 있는 형태가 책이다. 온전하게 소장하고 감상할 수 있는 매체이니 관심 가져주시고 부지런히 작업해서 다음 작업으로 찾아오겠다.

- 글 : 김선경(uncanny@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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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연상호

애니메이션 감독, 제작자, 영화감독이다. 상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서울역] 등을 연출했다. 그가 연출한 실사영화 [부산행]은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현재 웹툰 [지옥]의 스토리, 드라마 [방법]의 대본을 쓰고 영화 [반도]를 연출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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