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20.06.05 조회수 | 1,429

[역자 인터뷰] 숲해설가 장세이 “숲은 일생을 살아갈 철학의 밑거름이 그득한 곳”

※ 신간 <산림욕의 행복>(리커 판데르포르스트/ 이봄/ 2020년)이 출간됐습니다. 이봄 출판사 편집부가 이 책의 번역자인 장세이 숲해설가와 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편집자 말

이번에 장세이 작가가 들고 온 이야기는 ‘산림욕’입니다. 장세이 작가는 뉴욕 여행 중 <산림욕의 행복>을 발견하고 국내 독자에게도 이 책을 소개하고 싶어서 번역자로 나섰습니다.

<산림욕의 행복>은 한마디로 ‘자연과 멀리 떨어져 사는 현대인을 위한 산림욕 가이드’입니다. 또 이 책은 동식물학자이자 산림욕 가이드인 멜라니 추카스브래들리의 따뜻한 글과 숲을 주요 소재로 작업하는 그림작가이자 국내에서도 신세계백화점의 푸빌라 곰 캐릭터로 유명한 리커 판데르포르스트의 그림 덕분에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실제 ‘산림욕’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장세이 작가는 일상에서 산림욕하는 방법을 설득력 있게 알리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만의 야생의 집'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숲 해설가이자 이 책의 번역자, 장세이 작가가 이 책을 읽으며 숲에 대해 새로이 느낀 점을 독자 여러분에게도 전하고자 합니다.

"뉴욕 서점에서 마주친 책...번역 의뢰에 놀라고 반가웠어요"

Q 장세이 선생님은 <서울 사는 나무> <엄마는 숲 해설가> 등을 펴낸 저자이자 숲 전문가이신데요, 선생님의 생각을 풀어내는 저술과 다른 이의 책을 번역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 책 <산림욕의 행복>을 번역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맨 처음 이 책을 만난 곳은 뉴욕이었습니다. 어느 서점에 가든 자연과학 분야 책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 우연히 첼시마켓의 작은 서점에 들렀다가 빨간 목도리를 두른 채 숲으로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을 담은 표지 그림과 제목에 단번에 끌렸죠. 대강 훑어보니 책 속에도 초록빛 그림이 가득하더라고요.

이후 잊고 지냈는데 얼마 뒤 이봄 출판사 편집자 분이 이 책을 건네며 번역 의뢰를 해 적잖이 놀라고 반가웠습니다. 번역은 처음이라 망설였지만, 좋은 인상을 받았던 책이고 원고량이 그다지 많지 않아 제안을 수락했(으나 훗날 두고두고 후회했)습니다. 역시 이국의 말을 우리말로 매끄럽게 옮기는 일은 수월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쓰는 일에 보다 매진해야겠구나, 굳은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이 책은 뒤늦게 번역이라는 단어의 뜻을 처음 찾게도 했는데, 번(飜)이라는 한자가 무척 흥미롭더군요. 새가 방향을 틀 때 몸을 뒤집는 모습을 표현한 데서 시작해 ‘새가 몸을 뒤집듯 외국어를 모국어로 바꾼다’는 뜻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여 알 듯 모를 듯한 그 단어와 번역가가 주인공인 소설 <두 해 여름>에서 본 ‘(번역은) 나룻배를 부리는 뱃사공의 일’이라는 표현을 오래 곱씹곤 했는데, 늘 첫맛은 단 듯하다가 뒷맛은 씁쓸했답니다(웃음).

Q 선생님은 숲해설가로서 산림욕이 보다 친근하셨을 것 같습니다. 평소 가지고 있던 산림욕에 대한 관점과 <산림욕의 행복>이 말하는 산림욕 간에 다른 점이 있을까요?

숲 산책과 산림욕이라는 말보다 저는 ‘숲에 든다’는 표현을 애써 쓰곤 합니다. 시점 상 숲과 인간이 수평을 이룬다는 점, 자연의 일부인 사람이 대자연에 잠시 들른다는 점에서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마음이 보다 겸허해지는 듯도 하고요. 하여간 이전에 산림욕에 대한 확고한 관점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듯합니다.

다만 이 책을 번역하기 전 산림욕은 특정한 장소, 이를테면 휴양림이나 산림욕장이라 이름 붙은 곳에 가서 따로 시간과 마음을 내어 하는 일이라 여겼는데, 이 책을 번역하면서는 저자의 말대로 사는 데나 일하는 데서 가까운 장소에 ‘야생의 집’을 마련해 수시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산림욕을 대하는 마음이 보다 편해지긴 했어요. 추카스브래들리의 말처럼 산림욕이란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에 모든 감각을 몰입하는 일’이라는 데도 공감합니다.

"숲의 아름다움, 그 이면의 큰 섭리, 작은 원리를 깨우치려는 마음 가져야"

 

Q <산림욕의 행복>을 보면 나만의 ‘야생의 집’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마련하신 야생의 집이 있나요?

지난해 여름, 서울 옥수동에서 운영하던 생태책방 ‘산책아이’를 서울숲 옆 성수동으로 옮겼습니다. 서울숲은 사는 데서 그리 멀지 않은데도 자주 들던 숲은 아니었어요. 한창 숲 해설가 공부를 할 때는 공원보다는 궁궐을 많이 찾아다녔거든요. 책방을 옮긴 후로는 서울숲에 자주 듭니다. 이 책을 번역하던 중에는 서울숲에 아예 ‘야생의 집’을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워낙 아름다운 숲이라 딱 한 군데 장소를 정하기가 힘들더군요.

마음과 발길 따라 정처없이 숲을 걷곤 하는데 요즘 가장 자주 찾는 곳은 메타세쿼이아길입니다. 작은 흙길 한쪽에 큰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살고, 그 아래 나무 의자가 띄엄띄엄 놓인 길로 떠오르는 해와 지는 해의 양감과 질감을 고루 느끼는 자리입니다. 그 의자에 앉아 정면의 너른 숲을 바라보며 좌우로 오가는 잔잔한 바람을 맞으면 마음의 먼지가 쓸려가면서 어딘가 씻기는 기분, 그야말로 숲에서 목욕하는 기분이 듭니다.

‘야생의 집’이라는 말을 받아들인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그러한 공간을 정하는 기준은 아직 없습니다. 그저 요즘에는 숲해설가 공부할 때와 달리 숲에 들면 어딘가 정주할 자리를 찾긴 합니다. 늘 숲을 걷거나 관찰하는 데 집중하느라 그저 가만히 앉아 있던 적이 별로 없더군요. 막상 그리 앉아 있으니 숲의 소리와 향기가 더 잘 들리고, 같은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달라지는 숲의 광경을 지켜볼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서울숲에 자주 들면서 깨달은 바는 ‘야생의 집’이 반드시 크거나 멋져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나무에 비하면 물리적으로 그리 큰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한 그루의 나무 아래에만 있어도 그 기운과 그늘은 다 누리지 못할 정도로요. 자주 오가는 길목의 나무 한 그루 아래, 둬 평도 안 되는 자리도 얼마든지 ‘야생의 집’으로 알맞을 듯합니다.

Q 한국에서 산림욕을 하기에는 어떤 계절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제 여름이 다가왔는데 특히 여름에는 산림욕을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요?

<산림욕의 행복> 저자가 쓴 대로 계절마다 숲의 매력은 무척 다릅니다. 숲에 들기에 어느 계절이 더 좋다고 엄지를 치켜들 수 없을 만큼 모든 계절, 숲의 매력은 대단하지요. 봄의 보드라운 신록과 솟아나는 기운, 여름의 짙디 짙은 녹음과 절정에 이른 풍요, 어디론가 수렴되는 가을과 또 다른 생을 위해 내려앉는 겨울 모두 찬란합니다.

다만 한 가지 조언한다면 언제라도 숲에 들었을 때는 계절의 변화, 자연의 섭리와 그 흐름에 보다 집중하면 어떨까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계절의 매력을 만끽하면서 지금 계절과 앞선 계절, 뒤이은 계절의 변화를 곰곰 짚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지금 계절의 윤곽이 보다 명확해지는가 하면 앞뒤 계절과 이어지는 시점, 서서히 흐릿해지다가 다시 짙어지는 윤곽을 오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숲에 들어서 하는 일 또한 계절별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숲에 들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자주 그리긴 합니다. 그 많던 꽃술과 꽃밥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봄바람과 여름 바람의 결은 어찌 다른가, 나무에 기대 살던 새는 어디에서 죽음을 맞는가 같은. 어느 계절이든 당장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나 풍요로움도 좋지만 그 이면, 자연을 움직이는 큰 섭리와 그 섭리가 반영된 작은 원리를 깨우치려는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합니다.

 

Q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지라고 하는데요, 도시에 살면서는 막상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추천하실 만한 숲이나 자연 공간이 있으신가요?

<산림욕의 행복> 저자의 말처럼 주변에 사는 작은 자연물과의 관계에서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숲의 정의를 어찌 내리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산뿐 아니라 강과 개천, 아파트 화단이나 마을 어귀 쉼터에도 숲이 있습니다. 대도시 서울 한가운데 자리한 궁궐 숲을 떠올리면 단박에 이해가 될 듯합니다. 궁궐에는 지형과 기후, 전통과 문화가 반영된 오래된 나무가 많습니다. 더불어 도심 한가운데 사는 나무, 대표적으로 가로수와 달리 무척 공들여 보살핍니다. 차에 치여 부러지거나 간판 가린다고 가지치기를 당할 일이 없지요. 그 같은 이유로 궁궐 숲은 잘 보존된 깊은 숲이자 역사성까지 갖춘 자연 유산이죠.

궁궐이 거의 없는 서울 외 지역, 그리고 해외에 가서도 오랜 종교 시설이나 유적 등을 애써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곳에는 그만큼 유서 깊은 숲이 있으니까요. 서울 외 도시에서 제가 가 본 숲으로는 금정산 자락의 부산 범어사, 무등산 자락의 광주 증심사, 팔공산 자락의 대구 팔공사 등 사찰 숲, 강릉 선교장, 진주성과 고창읍성 등의 유적 숲, 남해 물건리 방조림, 담양읍의 관방제림 등 기후와 지형에 따라 조성한 유서 깊은 인공림 등이 있습니다. 그 숲에는 그 지역의 자연사와 문화사가 두루 배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도시와 고을의 지역성과 역사성이 두루 깃든 숲을 찾는다면 보다 깊은 여행, 알찬 일상을 이룰 듯합니다.

Q <산림욕의 행복>을 꼭 읽었으면 하는 독자가 있다면요? 이 책은 어떻게 즐기는 게 좋을까요?

수년간 숲 공부를 하면서 지금을 사는 현대인, 특히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숲과 자연을 배우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숲에는 일상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지천이고, 일생을 살아갈 철학의 밑거름도 그득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이 책을 시작으로 수많은 생태 고전과 생태 수필 등의 양서 또한 널리 읽히기를 바랍니다.

자연은, 부박한 도시에서 갖가지 번다한 일로 우울감과 무기력, 피로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넉넉히 품어 주고 무엇이든 거저 내어 주는 천혜의 공간입니다. 자연에 깃들면 글이나 말이 아닌 빛깔, 소리, 향기, 감촉 등 무수한 무형의 언어에 위로 받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자연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데 작은 길잡이가 될 듯합니다. 하니 숲에 들기 전, 잠시나마 푸른 글과 그림을 나직이 읊조려보기 바랍니다. 아예 숲에 들고 가 나무줄기에 기댄 채 탐독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요.

- 사진 : 장세이 작가ㆍ번역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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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장세이

지율이 이모. 나무와 풀이 궁금해져 숲 공부를 시작했다가 얼결에 숲해설가 자격증을 얻었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쭉 잡지기자로 살며 [서울 사는 나무[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생태 창작 공간, 산책아이를 운영하며 ‘생태 이야기꾼’으로도 활동합니다. 때때로 도서관과 미술관, 대안학교 등지에서 아이들과 ‘숲에서 글 짓고 놀기’ 판을 펼칩니다. 이 책에서 생태놀이 예순 가지를 소개합니다. 이야기꾼. 한여름 한낮, 부산에서 삑 첫울음을 울었다. 쑥 자라 수학 책에 근대소설 쓱 끼워 읽는 국어 만점 이과생이 되었다. 사범대학에 딱 붙은 뒤로는 내내 시를 읽었다. 졸업 후 고향에서 뚝 떨어진 서울로 와 15년 동안 잡지기자로 살았다. 나무 수필 [서울 사는 나무] 등 꼭 일곱 권의 책을 썼다. 쭉 글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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