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20.01.20 조회수 | 3,043

큐레이터 김한들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우릴 붙드는 건 결국 그림”

※ 김한들 큐레이터가 신간 <혼자 보는 그림>(원더박스/ 2019년)를 펴냈습니다. 원더박스 출판사 편집부가 작가와 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의 표지 그림으로 유명한 독일 화가 팀 아이텔을 아시나요? <밤이 선생이다>뿐만 아니라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를 비롯해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도리스 레싱의 <사랑하는 습관> 등 다양한 책의 표지에서 팀 아이텔의 그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마도 2011년 가을 서울의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팀 아이텔의 아시아 첫 전시가 그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출판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의 뜨거운 반응에 2017년에도 다시 서울에서 개인전이 열립니다. 이 모든 일을 기획하고 조율했던 큐레이터 김한들의 첫 산문집 <혼자 보는 그림>이 나왔습니다.

갤러리와 미술계라는 일터를 배경으로 저자가 20~30대를 지나며 마주한 삶의 인상적인 순간들을 진솔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려 보이는 책입니다. 알렉스 카츠, 팀 아이텔, 박광수, 전병구의 그림이 함께하지만 그림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그림 ‘곁에’ 있는 책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Q 먼저 <혼자 보는 그림>이 어떤 책인지 소개 부탁드릴게요.

<혼자 보는 그림>은 산문집입니다. ‘그림’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어 마치 예술, 인문학 책처럼 느껴지지만요. 지극히 평범한 30대 여성인 제가 청춘이라고 부를만한 시간을 지나며 남긴 기록 또는 흔적처럼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미술 공부와 일을 하며 보냈으니 그림은 자연스럽게 등장했어요. 하지만 그 그림이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이 있는 책이에요.

Q 오랫동안 큐레이터 생활을 해 오신 걸로 압니다. 어떤 계기로 책을 내시게 된 건지요?

열다섯 살에 유학 생활을 시작했어요.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늦은 밤까지 TV를 볼 수 없었어요. 룸메이트가 잠든 뒤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읽었죠. 한글을 읽는 게 나름의 쉬는 방법이었나 봐요. 혼자 하는 타지 생활이 막막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책이 저를 잡아줬어요. ‘나도 언젠가 기댈만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어요.

졸업하고 한국에서 갤러리에 취직을 했어요. 갤러리 안에는 기획, 세일즈, 홍보 등 다양한 부서가 있어요. 저는 기획팀에서 일했고 제가 담당한 업무 중 글쓰기가 꽤 큰 부분을 차지했어요. 십 년이 넘는 시간을 거치니 글쓰기 실력이 느는 것이 눈에 보였어요.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에 용기를 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팀 아이텔, 'Untitled (Observer)', 캔버스에 유화, 35×30cm​, 2011년

ⓒ Courtesy Galerie EIGEN+ART Leipzig/Berlin and Pace Wildenstein

Q 책에는 팀 아이텔, 알렉스 카츠, 박광수, 전병구 등의 작가의 그림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 그림들을 책에 함께 실은 이유가 궁금한데요.

네 작가 모두 훌륭한 작가들이에요. 저는 일할 때 ‘전시해야 할 작품’과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구분을 명확히 하려고 노력해요. 말 그대로 일이기 때문에 개인 취향을 배제하려고 정말 애써요. 그런데 가끔 저 두 카테고리에 모두 들어오는 작품들이 있어요. 항상 같은 크기의 열정으로 일하지만 그럴 때 조금 더 신이나지요.

이 책 기획을 시작할 무렵 네 작가의 작품 덕에 신이 나 있었어요. 특히 팀 아이텔 같은 경우 함께한 두 번의 전시 모두 큰 사랑을 받아 의미가 컸어요. 제 책에 당연히 이 작품들을 포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제 삶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Q 책에서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탄탄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방법으로 ‘그림 보기’를 권하는 것인가요?

 

저는 노년의 삶을 남들보다 조금 더 자주 생각해요. 아마 부모님이 할머니를 모시기 때문인 것 같아요.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는 말과 대책이 필요함을 매일 실감하죠. 제가 이야기하는 대책은 그 무렵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준비예요. 몸이 불편해지면 타인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혼자서도 의미 있게 지낼 방법을 찾아야 하죠.

 

나와의 시간은 내면을 바라볼 때 더 빠르게 흘러요. 거울로 외모를 살피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내면을 바라보는 활동은 그림 보기, 음악 감상, 독서, 요가 등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본인에게 잘 맞는 활동을 선택하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아무래도 그림 보기가 좋더라고요. 하나의 그림을 두고 한 시간 넘게 보내기도 하거든요. 그것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이 알고 싶은 이유예요.

 

 

 

Q 책을 보면 그림 이상으로 시(詩) 역시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시와 그림의 공통점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 시만이 갖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과거 미술은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누가 더 똑같이 그려내느냐가 중요한 평가 요소였죠. 그래서 미술 작가를 창작자가 아니라 기술자로 여기던 시대도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미술은 재현을 뛰어넘어 의미를 포함하거나 생성하게 되었죠. 저는 그것을 읽어내는 일에 커다란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 흥미를 시를 읽을 때도 느껴요. 시 역시 재현을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품고 있기 때문이겠죠.

 

시가 가진 그 넓은 세상이 좋아요. 그것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저 너머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 안에서는 익숙한 단어들도 새로운 존재로 다가오지요. 요즘은 특히 시어를 하나씩 읽어내는 것이 재미있어요. 단어 하나 읽고 생각하고, 그 다음 단어 하나 읽고 또 생각하고, 멍도 때리고 이런 식이죠. 그렇게 각각의 시어를 만나고 전체를 읽으면 오래 걸리지만, 그 시간이 소중해요.

 

Q ‘삶을 지키는 것은 결국 마음이고 마음은 이런(온기 있는) 기억에서 온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작가님의 삶을 지켜 온 기억들은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제 삶을 지켜 온 기억들은 혼자였을 때예요. 혼자라는 것이 의미가 있기보다 혼자일 때 그 시간을 더 잘 즐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바다 냄새 나지 않는 바다로의 여행’에서 이태리 중부의 한 해변으로 여행 간 이야기가 나와요. 그 여행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친구가 잠든 사이 바다를 조용히 바라보았던 일이에요. 

살면서 무엇을 온전히 즐길 기회가 드물더라고요. 온전히 즐겼던 순간만이 기억에 오래 남고 그때 배운 마음이 삶을 지키게 만들어요. 저에게 삶을 지킨다는 것은 휘둘리지 말아야 할 것들로부터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에요. 아로새겨진 것은 비바람이 몰아친 후에도 남아있죠.

 

Q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얼마 전에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 관련 일을 했어요. 제가 삽화 작가를 섭외해서 문학 비평 글을 넘겼어요. 그림이 도착했는데 책이 잔뜩 쌓여있고 책등에는 ‘괜찮아’, ‘괜찮지?’, ‘괜찮을 거야’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요즘은 마음 지칠 일이 많으니 그 마음을 위로하는 책도 많은 것 같아요. 그중 일부는 SNS용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저 역시 그걸 보며 ‘이걸 왜 아직 몰랐지?’라며 무언가를 깨닫기도 해요.

 

그런 책들에 비하면 제 책은 친절하지 않은 책일 수도 있어요. 정답 같은 문장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조용한 시간이 필요한 날 천천히 읽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청춘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만나는 보통의 경험과 생각에 공감해주셨으면 하고, 거기서 위로를 받아주셨으면 해요. 각자의 답을 찾았으면 좋겠고요.

 

덧붙여, 그림과 연계해 생각을 피워내는 제 모습을 보며 그림 감상에 관해 생각까지 해주신다면 더 바랄 바가 없을 것 같아요. 개인적인 감상 역시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까 주저하지 말았으면 해요. 거기서 비롯한 관심이 결국 미술사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가만히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 역시 그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 사진 : 김한들 큐레이터, 원더박스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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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김한들

큐레이터. 학고재, 갤러리현대 등에서 전시 기획을 해 왔다. 주요 전시로는 팀 아이텔, 이우성, 윤석남 등의 개인전이 있다.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로 현대 미술사와 비평 강의를 한다. 현재 <세계일보>와 (웹)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월간미술>에 비평 연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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