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20.01.08 조회수 | 2,278

작가 박수현 “정신질환 급증? 사회가 마음을 등한시한 대가”

※ 박수현 작가가 신간 <나는 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봄름/ 2019년)를 펴냈습니다. 봄름 출판사 편집부가 작가와 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박수현 작가는 교육청에서 전 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 건강 검사를 받게 된다. 당시 학년부장 선생님은 반마다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체크하지 말아야 할 항목 - 죽고 싶다, 우울하다 - 을 일일이 설명하고 당부했다. 내 마음 하나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했다. 검사 결과가 일반적인 수치를 벗어날 경우 선생님들께 불려 다니고,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와야 하고, 대학 입시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 때문이었다. 우울은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사춘기라서 그래, 네가 예민해서 그래, 잠깐 그러다 말 거야, 남들도 다 그러고 살아,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누군가가 쉽게 내뱉는 말들 앞에서 나의 ‘괜찮아지려 애쓰는 마음’은 힘을 잃고 만다. 박수현 작가 역시 그랬다. 조언을 빙자한 비난에,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길 바라는 짜증 서린 걱정에 10여 년을 혼자서 우울증을 앓았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너 어떻게 살고 싶어?”

<나는 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감정인 ‘우울’에 관해 이야기한다. 박수현 작가는 “누군가가 이해할 수 없어도, 다만 그런 사람이 여기 있을 뿐”이라며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우울을 고백하고, 혼자라 느끼는 이들의 아픔에 연대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힘찬 어조로 바꾸어 말한다. “나는 내가, 그리고 당신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Q <나는 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어떤 책인가요?

제목은 편집자님의 아이디어였어요. 초고를 읽고 제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라 이를 다듬어 ‘나는 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제목을 제안하셨습니다. 초고를 쓰며 어떤 제목을 붙일지 고민했는데 제목을 듣자마자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깨달았어요.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부터 잘 살아보고 싶어졌다는 걸요. 희망이 비치는 어감이 좋았어요.

이 책은 어둠을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처음부터 제목에서 슬픔, 눈물, 어둠, 우울이란 단어를 배제했을 만큼 ‘다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새롭게 맞이할 오늘을. 어둠에 주저앉아 있던 사람이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담아냈죠. 깜깜한 방의 문을 열고 눈이 부셔도 세상으로 발을 떼는 시작을 담았어요. 누구에게나 있었고 누구에게나 있을 첫걸음의 이야기입니다.

Q 이 책을 낸 계기는 무엇인가요?

돌이켜보면 마음을 기록한 첫날부터 바라왔던 것 같아요. 내 마음이 담긴 글을 언제든지 펼쳐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글이 쌓여갈수록 책으로 한데 모으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와중에 매트 헤이그의 <살아야 할 이유>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고 나의 우울증을 에세이로 엮어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어요.

처음에는 그저 내 얘기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다만 그런 사람이 여기 있다는 소제목처럼 여기서 내가 홀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외치고 싶었죠. 그래서 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하게 쓴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받았다는 분들을 보며 이 책이 힘들 때 곁에서 위안이 된다면 기쁠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 외롭게 아파하지 않길 바랐습니다.

Q 이 책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책을 쓰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책 한 권으로 인생이 짠 하고 달라졌다면 거짓말이지만 책을 쓰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현실의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가 변하니 모든 게 변했어요. 책의 바탕이 되어준 일기를 훑으며 살을 더하고 새롭게 탈바꿈한 글이 시간이 흐르며 또 달라졌죠. 아주 서서히, 차근차근 괜찮아졌어요. 걷지 못하거나 뒤로 밀려나거나 도로 돌아갔다고 느낀 날이 많았지만 매일 한 걸음씩 떼고 계속 걸었습니다. 문득 이만큼 걸어 왔구나 실감했어요. 물론 치료도 꾸준히 받았지만 삶과 나에 대해 생각을 거듭하니 막연한 고통이 명료해졌어요. 하나의 생각을 여러 각도로 살피며 시야가 넓어졌고 관점이 바뀌고 삶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인생이 180도 뒤집어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도 매일 0.1도씩 넓어졌어요. 아직 초심자이지만 멈췄던 자리를 떠나 인생을 여행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 오래도록 넘기지 못했던 인생의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죠.

Q 요즘 우리 주변에서 우울증으로 인한 마음 아픈 일들을 종종 볼 수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독자평 중에서도 유독 ‘공감’의 목소리가 많아요.

아픔은 사회에서 용인되기 어렵잖아요. 아프다는 말이 약점이 되거나 변명으로 치부되기도 해요. ‘불행 배틀'이라는 단어가 생겼을 정도로 “힘들어. 아파”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래서 힘들고 더 아프다는 말이 쉽게 나오죠. 비교당하고 재단 당하며 자신의 아픔을 의심하는 순간 고통은 배가 되고 털어놓으면 안 될 투정이 돼요. 고단한 사회에서 서로의 힘듦을 뻔히 알기에 더 어려워요.

게다가 어릴수록 그들의 아픔은 가볍게 치부되는 경향이 있어요. 우울을 호소하면 뭐가 그리 힘드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죠. 화를 내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일도 다반사예요. 최근 몇 년 사이 정신질환이 화두가 되고 어린 연령층에서 SNS를 통해 정신질환을 토로하는 비율이 급증한 것도 이 사회가 마음을 등한시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중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픔은 치유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고 세상을 배회해요. 한국이 관대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하게 아픔을 말해도 토 달지 않고 ‘그렇구나’ 하고 경청하면 지금처럼 터부시되진 않을 거예요. 아픔을 조소하지 않고 호들갑 떨지 않는 자세가 필요해요. 아픔에 관대하고 치유가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면 모두가 조금은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Q 작가님만의 ‘내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법’, ‘내 마음을 돌보는 법’이 있으신가요?

저의 경우 마음을 알아차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쓰기예요. 생각이나 감정에 압도될 때마다 메모해요. 생각나는 대로 쓰되 타인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적확한 표현을 쓰려고 해요. 추상적인 형태였던 마음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작업은 언제나 도움이 됩니다.

감정 일기도 좋습니다. 감정에 무디거나 많은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는 상황에 유용한 방법이에요. 느낀 감정을 전부 쓰고 점수를 매겨보면 내 마음이 어떤지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죠. 이 방법이 어렵다면 잠들기 전 하루 동안 가장 많이 든 감정을 색칠하는 마음 기록표를 작성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행복은 노랑, 우울은 파랑, 분노는 빨강 등 매일 감정을 칠하는 연습을 통해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 능숙해질 거예요.

마음을 돌보는 방법은 계속해서 찾고 있어요. 훨씬 더 많은 방법이 있을 테고 앞으로 발견할 거예요. 평소에 기분을 괜찮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던 방법을 적어놓고 따라 해요. 행복의 루틴을 만드는 거죠. 가장 확실한 두 가지 방법은 ‘걷기’와 ‘샤워’예요. 나무와 하늘을 보며 한참이나 걸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순간에 집중해 삶의 리듬에 발맞춘다는 느낌을 받아요. 뜨거운 물을 맞으면 어지러운 마음과 시끄러운 머릿속이 씻겨 내려가고 행복이 들어올 틈이 생기죠. 둘 다 즉각적으로 ‘좋다’는 감정을 솟아오르게 한답니다. 글쓰기 역시 좋은 방법이고요. 마음을 명쾌하게 파악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돼요.  

마음을 돌보려면 생각을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게 중요해요. 몸을 움직여 굳은 마음에서 탈피하면 만족스러운 현재가 느껴져요.

Q 블로그를 통해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시나요?

블로그는 공개된 일기장이라 말할 수 있겠네요. 우울의 단상을 기록하고 정신질환과 관련한 정보를 나눕니다. 수정할 여지가 많지만 사람들에게 제공받은 각 지역의 정신과 리뷰를 익명으로 게재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우울증과 관련한 질문을 받거나 고민 상담에 응했지만 전문가가 아니기에 현재는 하지 않습니다. 요즘엔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 활동을 줄이고 있어요. 블로그에 알리진 않았지만 책을 쓰며 고비가 많았어요.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응원을 되새기며 ‘그래도 해보자!’ 하며 힘을 낼 수 있었어요. 그동안 받은 위로, 응원, 도움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오랜 시간 마음에만 품었던, 좁은 방 안에 갇혀 돌고 돌아 메아리가 울리던 말이 형태를 입게 되었습니다. 아픔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식으로 완결지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인생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등을 맞대고 함께하듯 자신을 왜곡 없이 수용하고 살아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옮겼습니다. 수년에 걸쳐 절망을 토할수록 희망이 생기고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지금이 없으면 다음이 없어요. 부디 제가 디딘 걸음이 마음과 공명하여 명암이 교차하는 인생길에서 작은 안식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너무 나쁘지 않게, 점점 괜찮은 느낌으로 걸어가기를.

- 사진 : 박수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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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박수현

마음속 이야기를 견디지 못하게 된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어느덧 4년이 흘렀다. 13년 동안 함께했던 우울증, 사회불안장애와 이별하는 중이다. 감정에 끌려 다녔던 시절을 지나 감정의 주인이 되어 하루의 기분을 선택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지금을 살고 순간의 행복을 발견하여 간직한다. 매일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무탈하게 살아가길 꿈꾸며 오늘도 한 발을 내디딘다.​ instagram.com/deambuler_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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