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9.11.21 조회수 | 1,792

‘유럽문학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 “‘노벨상’ 페터 한트케, 넘어선 안 될 선 넘었다”

 

 

“독재자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 작가가 유명할수록 더 그렇죠.”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표정에선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 흘렀다. 그의 고국인 알바니아가 독재 정권의 그늘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됐으며, 레닌 찬양시를 쓰라고 강요하는 정부와 타협하지 않고 그에 저항하는 글을 썼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 그가 쓴 <꿈의 궁전>(이스마일 카다레/ 문학동네/ 2004년)은 출판 직후 판매 금지를 당할 정도로 그의 존재는 정부에겐 눈엣 가시였다. 역으로 웃음과 유머러스한 자세야말로 서슬 퍼런 감시 아래 글을 쓰기 위해 꼭 필요했던 무기였을지도 모른다.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을 차용하여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작가에게 세계의 독자들은 공감했다. 세계의 주요 문학상도 받았다. 영국의 맨부커상과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왕자상이 그에게 돌아갔다.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수상자로 거론되며 최근에는 노이슈타트 국제문학상의 2020년 수상자로도 지명됐다. 그가 지난 10월 말 한국을 찾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우리나라 기자들과 만났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유일한 국제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의 제9회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박경리문학상을 타게 되어 기쁩니다. 한국에서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고국에서도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아주 오랜 기간 걸쳐 한국의 문명과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는 알바니아에도 잘 알려져 있지요. 제 생각에 한국은 먼 곳에 고립돼 있던 나라였기에 이번 수상이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수상소감을 전한 작가는 기자들과 자유로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자리에서 그가 가장 자주 말한 단어는 ‘그럼에도(Malgré ça)’였다. 단순한 말버릇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비극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맞서 싸웠던 그의 태도가 만들어낸 언어의 부산물처럼 느껴졌다.

 

 

 

“고립된 국가 출신인 내가 전세계에 알려진 건 아이러니”

 

Q 1992년 프랑스 치노 델 두카상, 2005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2009년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왕자상 등을 탔습니다. 알바니아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소재로 한 작가님의 작품이 세계의 문학상을 휩쓰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중 하나인데, 그런 나라의 출신인 제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단 건 제게도 놀랍고 동시에 매우 역설적인 일입니다. 알바니아는 서방 세계와 동양의 경계점에 있으며, 자유와 비자유 사이에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알바니아는 이탈리아 국경에선 겨우 8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로마에선 120킬로미터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서방 세계 영향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알바니아인은 마치 그것이 보이지 않는 척을 해야했습니다. 서방 세계에 가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금지였거든요. TV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다 지켜보면서도 알바니아에선 그것에 관해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랬습니다.

 

Q 작가님의 조국 알바니아에선 표면적으로 독재 정권이 소멸한 상태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작가님의 작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전과 달리 오늘날 알바니아에선 상당히 많은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기 때문에 더 이상 불편이나 어려움도 존재 하지 않는단 이야기도 들려오죠. 자유가 없다는 게 실존하는 인간에게는 불편한 장애물이 된다는 얘길 하는데요. 역설적으로 이건 늘 맞는 말은 아닙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유롭거나 그렇지 않은 두 가지 상태만을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독재정권과 전체주의가 끝난 후에 자유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깊게 이해한다면 자유를 통해서만 인간이 실존하는 건 아닙니다.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도 인간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실존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게 먼저입니다.

 

Q 작가님께선 조국 알바니아의 현대사를 소재 삼아서 고향 지로카스트라가 무대로 등장하는 소설을 쓰십니다. 이처럼 지역성이 강한데도 많은 나라에서 읽히고 상도 타는 등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지요. 작가로서 지역적 소재를 보편적 주제로 승화시키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측면이 있습니까?

 

일단은 번역이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문학은 매우 자유로운 것이라 이것이 어디엔가 도달하거나 무언가를 이루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문학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훼손되거나 파괴되는 일이 수세기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문학이 제 형태를 잃는 것은 일종의 죄책감을 빚어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알바니아의 작은 마을입니다. 사실 독재자 엔베르 호자(알바니아를 40년간 통치한 독재자)와 같은 마을, 같은 동네, 심지어 불행하게도 같은 골목 출신입니다. 그리고 더더욱 불행하게도 이 골목 이름은 ‘미치광이들의 골목’입니다. 한 번은 스웨덴 출신의 기자가 자신의 기사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스마엘 카다레, 엔베르 호자와 같은 골목에서 태어나다. 그 골목은 미치광이 골목이며 단 한 번도 엔베르 호자의 이름을 따서 이름 지어지지 않았다’ 사실 제게는 굉장히 신경 쓰이는 내용이며, 아마 독재자에게도 신경 쓰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정부는 이 ‘미치광이의 골목’이란 이름을 엔베르 호자의 이름을 따서 바꾸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상당한 잡음을 빚어냈을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분도 알다시피 독재자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 작가가 유명할수록 더 안 좋아하죠.

 

Q 작가님께서는 알바니아 및 발칸반도의 관습,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 등을 작품 속에 적극 끌어들이는데요. 그를 통해 작가가 얻고자 하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그런 허구는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사실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건 저 혼자만 하는 문학적 시도가 아닙니다. 늘 그런 문학 작품이 있어왔으며, 저 역시 수세기에 걸쳐 작가들이 해온 것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공된 역사를 통해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위협적으로 느껴진다고 해서 많은 비난과 위협을 받기도 했어요. 글 쓰는 걸 중단하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겠다는 협박을 받았으며 개중에는 실제로 감옥에 가야만 했던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풍자는 권력 억압에 대항해 표현하고 묘사하기 위해 도달한 방법”

 

Q 이번에 한국에 출간된 <잘못된 만찬>(이스마일 카다레/ 문학동네/ 2019년) 같은 작품에서도 풍자를 활용한 현실 비판이 도드라집니다. 풍자를 즐겨 사용하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풍자란 저뿐 아니라 알바니아 동료 작가들, 공산주의 독재 정권 아래에 있던 모든 작가들이 권력에 의한 억압에 대항해서 표현하고 묘사할 방법을 찾아내다가 도달한 방법입니다.

 

Q 혹시 북한 문학에 대해 들어봤나요? 이 곳에서 21세기까지도 문학과 예술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 상황과, 북한에서 문학이 계속되고 있다는 건 알바니아에도 잘 알려져 있지만 아무도 북한 문학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수용하진 않고 있습니다. 사실 서방 유럽 국가에서 알바니아는 알 수는 없지만 두려움을 자아내는 나라로 존재하는데, 기묘하게도 알바니아에서는 북한을 서방세계가 알바니아를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은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단골 후보로도 거론됩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가 1990년대 유고 내전 중에 발생한 알바니아계 인종 청소를 두둔하고 이것을 주도한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전력으로 논란이 됐는데요. 이에 대한 작가님 입장이 궁금합니다.

 

저 역시도 서방 세계 언론에서 나온 비판과 같은 맥락의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페터 한트케는 개인적으로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 적도 있을 정도로 인간적 친분이 있는 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가 작가로서 수용할 수 있는 한계점을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알바니아에서도 작품과 정치적 색채를 따로 봐야한다는 의견이 대세인데요. 그럼에도 저는 문학이 넘어서는 안 되는 한계, 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옹호한 밀로셰비치가 저지른 인종 학살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수용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페터 한트케를 안다고 해도 작가로서 그를 옹호하는 건 알바니아뿐 아니라 발칸반도 전체 사람에게 가져선 안 될 태도입니다.

 

Q 현실 참여적인 소설을 써왔습니다. 분단 상황에 놓여있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 있습니까?

 

특정 작품을 추천하는 건 어렵습니다. 다만 저는 문학이 인간 고귀함의 근원이자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결국 늘 인간성을 향해 가기 때문입니다. 작가라는 존재는 그의 작품이 사랑받을 나라를 선택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오히려 전세계에 걸쳐 사랑받기를 바라죠. 물론 (작품의 소재인)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계 어디서든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어디서 사랑받을지 모른다는 게 작가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북한에서 그들만의 문학이 따로 필요한 이유는 그들에게 낙원이나 천국의 개념이 자주 말해지고 사용되지만 그것이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기에 문학이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 사진 : 토지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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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북DB 기자)

1983년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kiwi@interpark.com

작가소개

이스마일 카다레

1936년 알바니아 남부 지로카스트라에서 태어났다. 티라나 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모스크바의 고리키 문학연구소에서 수학했다.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카다레는 [꿈의 궁전] [부서진 사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 등 많은 작품을 통해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 등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독재정권 아래 놓여 있던 알바니아에서 몇몇 작품은 출간 금지라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카다레는 전제주의와 독재 체제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잃지 않았고,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우스꽝스러운 비극, 기괴한 웃음을 만들어내며 세계적인 작가로 입지를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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