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9.10.24 조회수 | 2,872

‘야구계 레전드’ 선동열 “야구 위해 손가락 찢는 수술까지 고민했다”

‘야구계 레전드’ 선동열이 기자들 앞에 섰다. 전설의 투수이자, 전임 국가대표팀 감독이던 그가 책을 내고 작가로서 세상에 선 모습은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표정 변화가 많지 않은 얼굴. 조금의 움츠러듦이나 군더더기 없이 공간과 좌중을 압도하는 게 영락없는 스포츠맨의 태도다. 잔잔한 미소를 띄운 채 담담한 인사말로 기자간담회를 시작한다. “책은 나이 들어서 써도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주 일요일에 있을 딸 결혼식에 맞춰서 한 번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웬 딸 이야기냐고? 책을 보면 의문이 풀린다. 늘 그라운드의 ‘홈’을 지키기 위해 정작 아빠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미안함이 담뿍 담긴 편지가 실려 있다. 읽어보면 알게 된다. 선동열은 좋은 아빠다.

공을 던지는 데 쓰이던 그의 손은 이번에 책을 쓰는데 사용됐다. <야구는 선동열>(선동열/ 민음인/ 2019년)이란 제목의 책이다. 표지엔 1990년 선동열의 해태 투수 시절 LG와의 경기에서 7회말 기습번트를 허용하고 허탈해하는 표정의 사진이 실렸다. 책은 400페이지로 꽤 두껍다. 물리적인 면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그렇다. 야구와 인생의 거장, 선동열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문체는 그의 공처럼 곧으면서 힘이 있다. 선동열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공정’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면서도 ‘승리’를 남에게 쉽사리 내어주지 않았던 선동열이라는 사람이 겪어낸 삶의 굴곡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고스란히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청년들에게 좌절 극복할 실패담 전하고파”

‘최고’, ‘전설’, ‘국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선동열. 그의 야구 인생을 기록한 책은 어쩐 일인지 1996년 일본 프로 리그 진출에서 겪은 좌절의 추억에서 시작한다. "'왜 이렇게 야구가 안 됩니까. 저는 왜 이렇게 야구를 못 합니까. 정말 괴롭습니다.”(p.22, 일본 리그에서 부진을 겪던 선동열이 김성근 감독을 만나 한탄하며 한 말) 이런 말을 선동열이 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는 “팬들이 선동열이라고 생각하면 순탄하게 야구만 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일본에 가서 실패했을 때 엄청난 좌절과 실패를 맛봤는데 그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요즘 어렵게 사는 청년들에게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는 경험담을 전달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부진, 그 후의 이야긴 다들 알 것이다. 선동열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멋지게 컨디션을 회복하고 ‘나고야의 태양’으로 등극한다. 마침내 1999년 센트럴리그에서 소속팀 주니치드래곤스를 우승으로 이끈 주역이 된다. 그가 성공적으로 일본 진출 물꼬를 튼 덕에 이후 한국선수의 일본 프로 리그 진출이 본격화되기도 했다. 책에서는 이 당시 선동열이 느낀 위기감과 절망감, 극복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선동열을 칭하는 별명 중 ‘국보 투수’가 있다. 그는 책에서 극구 ‘나는 국보가 아니다’라고 부인한다. “호시노 감독님(주니치 드래곤스 전임 감독)이 해준 ‘선, 너는 항상 등 뒤에 태극기를 짊어지고 야구를 하는 것 같다. 선동열이 야구를 어느 정도 잘하는지에 집중해 편안하게 생각했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좋지 않았겠느냐’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스스로 국보라고 말하기엔 야구팬들에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책에서도 국보가 아니란 표현을 썼다.”

"최동원은 나의 우상이었다...류현진은 배울 점 많은 후배"

이 날 그는 선수 시절 갖고 있던 콤플렉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키에 비해 손과 발이 작은 편이다. 손가락 사이에 살이 많아서 이곳을 찢게 되면 포크볼을 잘 던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병원에 간 적도 있다. 의사 선생님이 이걸 찢게 되면 기존에 가진 스피드나 제구력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후배 선수 류현진의 플레이에 대해 “완급 조절, 제구력에 있어서는 선배지만 보고 배울만한 점이 많다”고 말하며 겸손함을 보인다.

오늘날 선동열이 최고의 투수, 최고의 야구 지도자의 길에 오르기까지는 여러 인연도 큰 몫을 했다. 그 중에서도 이젠 고인이 된 최동원 전 한화 감독의 존재는 각별하다. 선동열에게 최동원은 우상이자, 절호의 라이벌이었다. 이들의 선후배, 라이벌 관계는 ‘퍼펙트 게임’이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최 선배 덕분에 다듬어졌고, 최 선배 때문에 야구 선수로서의 나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인다.'(p.243)

“동원이 형과는 4년 나이 차가 나다 보니 같이 훈련 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1982년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때 같이 합숙 훈련했다. 동원이 형은 나에게 우상이었다. 불펜에서 동원이 형, 김시진 형, 임오균 형 등 대 선배들이 볼을 던지는 걸 보고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 생각하곤 했다. 특히 동원이 형 던지는 걸 보면 감탄스러워서 입을 항상 벌리고 있었다. 제구력이나 변화구가 저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동원이 형을 보면서 항상 따라했던 것 같다. 동원이 형은 프로에 입단하고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맞대결 할 당시에도 그 자체가 꿈만 같았다. 오늘날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도 동원이 형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그 형을 따라잡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에 계시지만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인생의 남은 3분의 1, 야구 발전 위해 쓰고파"

선동열은 그의 책에서 야구 9회까지 세 번의 찬스가 있듯 인생에도 세 번의 찬스가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선수로서의 기회, 두 번째는 지도자로서의 기회였고 나머지 세 번째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국내야구와 일본야구를 두루 경험한 그는 선진 시스템을 배우러 내년에 뉴욕 양키즈로 연수를 떠난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3분의 2 정도 살지 않았나 생각된다. 야구 때문에 선동열이 있었고 앞으로 남은 3분의 1은 야구 발전과 팬들을 위해 쓰려 한다. 좀 더 공부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선진 야구를 배워와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좋은 모습 보이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그는 야구를 "밀물과 썰물" 같다고 표현했다. “수비와 공격이 있”는 야구를 바다에서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조수 현상에 비유한 것이다. 9번의 공격과 9번의 수비. 이것은 야구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것일 테다. 무수한 실패와 무수한 승리. 여러 겹의 노력과 여러 겹의 성공. 지금, 절망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야구 영웅’의 진솔한 기록은 작은 위안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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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북DB 기자)

1983년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kiwi@interpark.com

작가소개

선동열

한국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선동열은 광주 송정동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해 무등중, 광주일고를 거쳐 고려대를 졸업했다. 1980년 대통령배·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최우수투수상, 1981년 제1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MVP, 1982년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MVP를 수상했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한국 프로야구 KBO리그에서 뛴 11시즌 동안 통산 367경기 146승 40패 132세이브를 기록했고, 정규시리즈 MVP 3회, 투수 골든글러브 6회를 차지했다. 특별히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는데, 데뷔한 85년부터 91년까지 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0점대 평균자책점을 3번 기록했다. 11시즌 통산 평균자책점은 1.20이었다. 1996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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