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9.09.03 조회수 | 5,132

소설가 윤이형 “우리 사회는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 안 하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많은 한국 여성들은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윽고 그들을 억압하던 사회의 곪은 부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새로운 피해자와 새로운 가해자가 등장했다. 이 싸움이 영화 ‘와호장룡’ 속 중국 무술처럼 아름답다면 좋겠지만 이 투쟁은 개싸움에 가까울 때가 많았다. 때로는 패배하기도 하고, 또 스스로의 모순에 갇히거나 서로 충돌하기도 하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래도 이 싸움은 이제 멈출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소설가 윤이형도 여느 여성들처럼 이 물결의 어딘가에 있었다.

총 11편의 단편을 모은 윤이형의 소설집 <작은마음 동호회>(윤이형/ 문학동네/ 2019년). 여기엔 이제껏 흔히 이야기 되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던 다양한 국면이 정성스레 기록돼 있다. 기혼 여성과 미혼 여성(‘작은마음 동호회’),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레즈비언과 워킹맘(‘승혜와 미오’), 비혼 여성 언니와 성전환자 동생(‘마흔셋’), 미투 폭로자와 연대자(‘피클’) 윤이형의 작품은 페미니즘을 지향하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주장하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다. 다만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고, 듣지 못한 목소리를 듣게 하는 렌즈이며 확성기이다. 덕분에 그녀의 이야기는 거대한 ‘사상’이 아니라 더 다양한 ‘작은 마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지난 8월 23일, 늦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던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 그녀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실은 여전사와 같은 모습의 작가를 상상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본 그녀는 예상과 달랐다. 작년에 사랑하던 고양이와 소중한 친구와 헤어진 뒤 많이 아팠다고 했다. 잘 대답하다가도 자신 없는 대목이 나오면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을 중단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격없이 경쾌하고 유쾌하게 웃어보였다.

“기혼/미혼 여성, 서로 왜 그러는지 안다면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것”

Q <작은마음 동호회>는 2015년부터 발표한 단편을 모은 책이다. 읽으면서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터져나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6년(강남역 사건이 벌어진 해)부터 자연스럽게 그런(여성) 이슈에 관심 갖게 됐다. 특별히 다른 이들보다 더 그런 것 같진 않고, 내가 여자라는 걸 자각하게 되면서 점점 그런 이슈가 내 이야기로 다가왔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다 보니 그게 소설에 자연스럽게 배어나오게 된 거다.

Q 표제작인 ‘작은마음 동호회’의 앞부분은 정치 활동에 암묵적으로 배제돼왔던 기혼 여성들의 울분 섞인 선언문처럼 읽히기도 했다. 이런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2016년 촛불집회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광장에 나왔는데 아기 엄마들은 못 나가고 있더라. 물론 무리를 하면 나갈 순 있는데 가는 길에 허들이 여러 개 놓여 있는 거다. 다들 촛불, 정권, 시국에 대해 얘기하지만 광장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엄마들에 대해선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 번 해볼까 하며 쓰기 시작했다. 선언처럼 들리는 건 내가 막 여성 이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라, 당시에는 약간 비장하고 격양되어 있었던 것 같다.

Q ‘작은마음 동호회’는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 간의 미세한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현재 페미니즘 논쟁 과정에도 실제 존재하는 이런 대립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나도 결혼이란 제도 속에 있긴 하지만 그것의 나쁜 점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웃음) 그 분(미혼 여성)들이 그렇게 말하는 게 다 이해가 된다. 밖에서 보면 되게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기혼 여성들도 나름대로 싸우고 있다. 안에서는 많이 싸우고 있는데 그게 잘 안 드러날 뿐이다. (미혼 여성이든 기혼 여성이든) 다들 싸우고 있지만 서로 이해가 안 되는 지점에 있을 뿐이다. 서로 왜 그런지 알면 같이 모든 걸 다 할 순 없어도 서로 미워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작가의 말에 ‘우리가 함께하다 이젠 함께가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슬프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라는 대목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인지는 안 밝혔지만 최근의 페미니즘 논쟁이 남긴 상처 때문에 쓴 문장 같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내 인생에서 헤어지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면 고양이가 죽기도 했고 친구와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다. 내 주변 여성들도 조금씩 다 그런 경험이 있더라.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서로 관점이 다르거나 진영이 달라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친구도 많이 있다. 여기 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이다.

Q 이번 책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독립 잡지를 만드는 기혼 여성, 마흔 세살의 비혼 여성, 레즈비언, FTM(트랜스 남성, Female to Male)…따로 취재를 했나?

할 수 있는 한에서는 했다. 레즈비언 친구들은 주위에도 많이 있어서 내게 원래 이질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FTM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공부도 하고 취재도 했다.

“선하고 무력한 피해자? 피해자도 누군갈 미워할 수 있다”

“저건 저렇게 접근해선 안 되는 문제야. 누군가가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손을 들어 누군가를 지목한다고 해서, 그 상대가 가해자임이 곧바로 증명되지는 않아. 피차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두 개의 서사가 죽어라 상대편을 밀고 있는 거잖아. 그냥 힘겨루기일 뿐이야. 사랑과 폭력은 고기에서 비계 도려내듯 그렇게 선명하게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데 그걸 분리해서 한쪽에선 사랑이라고 밀고, 다른 쪽에선 폭력이라고 밀면, 당연히 사람들은 폭력이라는 말에 귀를 더 기울이겠지.” <작은마음 동호회> ‘피클’ 중

Q 개인적으로는 이번 소설집에서 미투 폭로 과정을 그린 ‘피클’이 가장 좋았다. 작품 전반부에 ‘저건 저렇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문제야’로 시작하는 주인공 남편의 말이 참 현실성 있게 다가왔다.(웃음) 따로 참고한 모델이 있는지? 

주위 모든 남성들이 모델이다. 인터넷을 둘러봐도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

Q 실생활에서 주변인과도 페미니즘 관련해 많이 논쟁하나? 

 

한동안 집에서도 싸우고 많이 싸웠다. 그런데 대화가 어떤 선 이상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별 생각이 없다. 남성들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Q 다시 ‘피클’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유정과 선우의 연대는 올드 페미니스트들과 영 페미니스트의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전보다 더 당당하게 발언하는 ‘영 페미니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몸을 움직여서 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걸 잘 안 해봤고 주로 생각을 하는 세대였다. 기혼 여성이 지지한다고 해서 그들로선 달갑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젊은 여성들이 시위도 하고 정치 세력화도 하려는 모습이 고무적으로 보이는 건 사실이다.

Q 직접 집회에 나간 적도 있나? 

2017년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 집회에 나갔다. 그 뒤에도 간간히 어딘가 가보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되진 않았다. 나를 대신해 시위에 나가주신 분들께 미안하고 감사했다.

Q ‘피클’에서 젊은 인턴 기자 유정이 편집장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선배인 선우에게 이메일로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무 응답도 받지 못한다. 그 뒤로 유정의 블로그에 사실과 다른 망상 같은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는 대목에선 살짝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피해자에게 선하고 무력한 이미지만을 적용시킨다. 하지만 피해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를 미워해서 블로그에 비방글이나 망상 같은 걸 쓸 수도 있다. 그것과 피해 경험을 고발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거다. 보통은 그걸(피해 경험과 그 밖의 일) 섞어버려서 이 사람은 거짓말쟁이이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기 쉽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다른 여성을 조금만 이상해도 이상하게 보도록 교육을 해왔기 때문에 신뢰가 안 간다고 생각하기가 더욱 쉽다. 피해자를 신뢰하기에는 장벽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Q 선배 기자인 선우가 후배 유정에게 ‘미투’ 고발에 연대를 요청하는 메일을 받았을 때 선우는 ‘왜 하필 나야’라고 한다. 그건 피해를 입었거나 거대한 불행을 당한 사람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공동체 모두가 다 거기에 관심을 가져서 각자 같은 양의 책임을 나눠가진다면 그 고통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피해자가 고립돼 있고 피해자 주변에 연대자가 있는데 그들도 고립이 심하다. 하중이 피해자 쪽에 확 쏠려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온도차가 큰 거다. 게다가 처음에는 지지자가 많지만 싸움이 길어질수록 나중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두 사람만 남아서 법정 싸움으로 가버리면 나머지 사람이 도와줄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더 고립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여성형 로봇에 대한 착취, 여성에 대한 착취와 다르지 않아”

Q ‘이웃의 선한 사람’ 이야기를 해보자. 부끄러운 얘기지만 여러 번 읽었는데도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있는 약간의 단서를 준다면?

나는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가 되게 중요하고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든 해나가려는 마음이 되게 중요하다. 주인공은 자기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의 사람이다. 어떤 시점 이후에 나도 좀 그랬던 것 같다. 사회 안전망이 하나도 없고 내가 이 사회에서 우연히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힘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세상이 망할 것 같았다. 그것과 싸우는 사람 이야기인 거다. 혐오에 찬 시선이 많아졌잖은가. 그런 걸 어떻게 견디고 세상을 어떤 쪽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분투하는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Q 주인공은 그 이상한 청년이 자신의 아이를 트럭 사고로부터 구해준 것에 보답을 하기 위해 함께 오리고기를 먹으며 이야기를 듣다가 마지막에는 버럭 거칠게 화를 낸다.

그 청년은 미래가 결정되어 있고 바꿀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어두운 미래를 얘기한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고, 결국엔 무슨 일을 당한다는 얘길 한다. 주인공은 그런 마음이랑 싸우고 있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화가 나는 거다.

Q ‘수아’라는 작품에서는 도서관에 배치된 여성형 로봇 최근 검색어에 온통 성적인 내용이 가득한 걸로 나온다. 여성의 형태를 한 무생물이라는 점에서 로봇과 같은 맥락인 리얼돌에 대해서도 최근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여성 형태로 로봇을 만들면 어쩔 수 없이 착취에 이용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형 로봇에 대한 착취가 여성에 대한 착취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사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인간으로 취급받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위용 로봇이라고 하면 되게 특수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인간 여성들이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같은 이유로 리얼돌은 안 된다.

Q 작품 속에서 보통 구체적인 정보는 명기를 안 하는 편인데 마흔 둘, 서른일곱 하는 식으로 나이는 구체적으로 묘사를 했다.

내가 지금 나이에 민감한 시기인 거 같다. 말하자면 현재 갱년기다. 몇 년 동안 몸이 안 좋아지면서 힘들었고 작년에 내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노화되고 있다는 걸 절감했다. 정말 바닥에 붙어서 겨우 숨만 쉬는 느낌이었다. 고양이가 죽기도 하고 여러 일이 겹치면서 나이 드는 몸이라는 게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정말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느낌이 나더라. 그때 몸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Q 이번 소설집에는 밀푀유 나베도 나오고 피클도 나오고 음식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실제 요리를 좋아하는 편인가?

요리는 나를 살아있게 해주는 여러가지 중의 하나다. 채소를 만지는 걸 좋아하고, 내가 뭔가를 만들어서 남을 기쁘게 해주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요리소설집 <파인 다이닝>에도 내 작품이 있다.

Q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 편인가?

지금은 따로 스트레스를 풀 시간이 없다. 그래도 글 쓸 때가 가장 덜 불안한 시간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불안도 있고 마음이 항상 좋지만은 않은데 쓰고 있을 때는 안 불안하더라. 그래서 그냥 쓰고 있다.

Q 쓰고 있거나 앞으로 발표할 작품이 있는지?

올 가을에 중편소설이 하나 더 나올 것 같다. 그것도 여성에 대한 얘기다. 여자 사이에 복잡한 감정, 우정의 가능성에 대한 짧은 중편소설이 될 것 같다.

- 사진 : 임준형(카탈로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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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북DB 기자)

1983년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kiwi@interpark.com

작가소개

윤이형

1976년 서울 출생. [검은 불가사리]로 2005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로 2019년 제43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셋을 위한 왈츠], [설랑], [작은마음 동호회]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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