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9.06.21 조회수 | 1,020

소설가 임선경 “‘괜찮다’고 독자들이 등장인물 쓰다듬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 임선경 작가가 신간 <나는 마음놓고 죽었다>(뮤진트리/ 2019년)를 펴냈습니다. 뮤진트리 출판사 편집부가 작가와 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등장인물이 모두 착한 이유? 그들이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뿐”

Q 이번에 두 번째 소설을 출간하셨는데요. 어떤 책인가요?

<나는 마음 놓고 죽었다>라는 제목의 소설이에요. 다섯 살짜리 딸을 남겨 두고 죽은 엄마의 이야기이고, 남겨진 딸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제목만으로는 우울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귀신이 주인공인 밝고 따뜻한 이야기예요. 가끔은 웃기기도 하고요.

Q 읽어보니 1970년대를 매우 꼼꼼하고 세심하게 묘사하셨던데 자료조사를 많이 하셨겠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1970년대의 자료들을 눈에 띌 때마다 수집했어요. 무엇을 하겠다, 어떤 이야기를 쓰겠다는 생각조차 없을 때부터 자료를 모았죠. 힘들게 찾지 않아도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자료가 저절로 오기도 해요. 자석을 높이 쳐들고 있으면 자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와서 달라붙는 것처럼요. 자료조사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에요. 이런 저런 디테일들이 모여서 어떤 구성물이 되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워요. 블록놀이 같은 거죠. 보통은 그 때의 신문들을 찾아보고 그 시대가 배경인 책과 영화를 보고 그리고 인터뷰를 하죠.

이 소설을 준비하면서 아버지랑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대화가 그리 많은 부녀는 아니었는데 이 소설 쓸 때는 자주, 길게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옛날 얘기 물어보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줄도 처음 알았어요. 소설에 나오는 하숙집 풍경들은 다 아버지한테서 들은 것이고요. 양복을 ‘우라까이’해서 입은 이야기, 계엄 하에 시낭송회 했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아버지가 내가 늘 알던 아버지가 아니라 또 다른 어떤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사실 사람마다 당연히 자기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는 그 이야기를 잘 듣지 않죠. 하지만 책이 나오기 한 달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책을 보셨더라면 당신이 했던 이야기가 책에 많이 나와서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Q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착해요. 겉으로는 드세 보이는 사람조차 의리가 있고 도리를 다 하려고 애쓰더군요. 등장인물들을 모두 ‘착하게’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착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고 그들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한 거죠. 작가들은 흔히 ‘작중에 인물을 만들어놓으면 그 인물이 알아서 움직인다. 작가는 그들을 따라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요. 그게 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싶겠지만 쓰다 보면 실제로 그렇습니다. 어떤 인물의 성격을 만들고 그 인물을 어떤 상황에 처하도록 만들어놓으면 인물은 가장 자연스럽고 개연성이 있는 선택을 합니다.

제 작품에서 예를 들어보면 숙이엄마는 거칠고 사납지만 한편으로 강단 있는 사람이에요. 숙이엄마는 자기 아이를 잃었죠. 그런데 옆집에 엄마를 잃은 아이 연이가 이사를 옵니다. 자기 딸과 비슷한 또래인 연이를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시끄럽겠어요. 속도 상하고 괜히 미운 마음이 들었다가 짠하기도 하고, 복잡하겠죠. 그런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위악을 부리기도 합니다. 괜히 시비도 걸고요. 그렇지만 막상 연이가 어떤 위기에 처하면 순식간에 연이와 자기 딸을 동일시해요. 그건 ‘착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동생의 실종에 책임감을 느끼는 희철이도 마찬가지고요.

사람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동기가 있는데 깊게 들어가 보면 바탕에는 ‘약한’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강하지 않고 약해서, 서로 심리적 지지나 위안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알아봐주고 살펴봐주고 서로 마음을 돌봐줘야 하는 거죠. 서로를 ‘약하고 가여운 존재’로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돕고 싶은 ‘착한’ 마음이 우러나와요. 제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상처가 있고 살기 힘겨운 사람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두 다 착한 사람’이 되었나 봐요.   

“제때 밥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감정이기에 옳다 그르다 따질 일 아냐”

Q 하나의 작품에 대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과 독자가 읽어내는 것이 다를 때가 있지요. 이 책 출간 후 혹시 특이한 해석이나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 있었나요?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면, ‘이런 면에서 내가 올드한가? 구세대인가?’라고 생각하게 된 반응이 있었어요. 작중에 연이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제때 밥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무척 자책하거든요. 배고팠을까봐 눈물 나고 보름달 빵으로 끼니를 대신하는 것이 가슴 아프고…. 그것을 ‘구시대적인 모성’이라고 지적하는 의견이 있었어요. ‘엄마가 밥 주는 사람이냐?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는데 진의가 뭔지는 알겠더라고요. 엄마가 제 때 밥 못 줄 수도 있죠. 일하느라 바쁠 수도 있고 연이엄마처럼 아플 수도 있고. 그리고 밥을 꼭 엄마만이 챙겨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아이는 꼭 엄마가 돌봐야 하고 제때 밥 못주는 엄마는 엄마도 아니’라고 비난한다면 저 역시 맞서고 싶어요.

하지만 때에 맞춰 아이에게 따뜻한 밥 먹이고 싶은 마음과 어떤 이유로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들이 다 컸지만 지금도 ‘엄마 늦으니 알아서 밥 먹어라’고 할 때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그건 감정이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를 따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애가 만일 연이처럼 종일 보름달 빵 하나만 먹는 상황이라면 저는 엄마로서 엄청 자책했을 거예요. 저의 이런 감정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저도 알아보고 싶어요. ‘구시대 여성상’이다 ‘강요된 모성’이다, 이런 의견을 가진 분들과 더 진지하게 깊게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Q 작가님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주면 좋겠어요?

소설은 쓸 때는 작가의 것이지만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는 읽는 사람의 것이죠. 이 소설을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읽는 분도 있고, 죽음과 죽음 이후의 이야기로 읽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는 여성이 연대하는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죠. 저는 이 소설을 그냥 사람의 이야기로 읽어주면 좋겠어요.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을 실제로 있는 사람, 내 주변의 어떤 사람으로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소설의 등장인물에게 작가가 가지는 애정은 형용할 수 없죠. 제 등장인물들 중 누구라도 독자들이 마음 깊이 이해해주고 ‘너는 그럴만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쓰다듬어준다면 저는 더 바랄게 없어요. 그 누구라도 말이에요. ‘연이 엄마’, ‘숙이 엄마’ 아니면 ‘교감 사모’한테 미소라도 한 번 지어주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Q 작가로서 평소 영감을 얻는 방법이나 습관이 있나요?

작가로서의 ‘영감’이라는 게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책 읽는 것도 영화 보는 것도 여행도 다 좋아하지만 작가로서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제가 재미있으니까 하거든요. 뉴스를 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이걸 소설로 쓴다면 엔딩을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은 하죠. 독특한 분위기,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볼 때 이 공간에 어울릴만한 장면을 상상해보는 습관이 있어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다 그럴 거예요. 그래서 작가들과 함께 여행을 가면 엄청 재미있어요. 가는 곳마다 스토리들을 짜고, 그야말로 영화 한 편 찍거든요.

작가로서의 습관이라면 저는 사람을 유심히 보는 편이에요. 어떤 문제적인 인물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말투, 사소한 행동거지들을 관찰하고 기억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묘하게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엄청 열심히 기억하고 기록해요. 나중에 캐릭터를 묘사할 때 ‘기분 나쁜’은 쉽지만 ‘묘하게 기분 나쁜’은 어렵거든요. 묘한 것을 표현하려면 그 말을 할 때의 어감이나 골라 쓴 어휘, 표정 같은 것의 디테일이 필요해요 ‘아, 이거 나중에 어딘가에 써먹어야지’라고 생각하면 내게 기분 나쁜 말을 해도 그렇게 많이 기분 나쁘지도 않아요. 어떨 땐 막 신이 날 정도예요.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스토리의 의미는 점점 커진다”

Q 소설을 쓰는 작가님께 여쭙고 싶은데요, 이 시대에 문학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 겨우 두 번째 소설을 내는 입장에서 문학을 더군다나 이 시대의 문학의 역할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사람에게 문학적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사람을 형성하는데 문학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는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컸고 사람과 세계를 이해하는 기초를 거기서 다졌다고 생각하니까요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사람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나와 가까운 사람은 나와 이해관계가 있고 내게 어떻게 해주는 사람이냐에 따라 내 평가와 감정이 달라지니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볼 수는 없고요, 멀리 있는 사람은 멀리 있으니 그 사람의 내면을 잘 알지 못해서 당연히 이해가 어렵죠. 저는 오로지 문학만이 사람이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문학 속에서의 인물은 나와 직접 관련이 없지만 그 사람의 내면, 진실을 우리는 알 수 있으니까요. 문학적인 체험, 문학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했던 경험이 현실에서도 타인을 이해하는 토대가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도 문학을 통해서 발견하고 체득하죠. 사람이 모든 일을 다 겪어볼 수 없는데다 어떤 일을 겪는다 해도 그 속에는 나의 이해가 걸려있으니 일의 선후좌우를 다 따져볼 수는 없거든요.  

세상이 복잡할수록 그래서 무엇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해질수록 문학, 그 안의 스토리가 갖는 힘과 역할, 의미는 점점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 사진 : 뮤진트리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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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임선경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방송작가로 일했습니다. 청소년 드라마와 휴먼다큐멘터리, TV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생활의 소소한 정보들을 담은 책 외에 동화와 소설을 썼습니다. 고등학생, 중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 [기억력도 스펙이다](공저), [몸살림 먹을거리], [빽넘버]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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