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9.06.05 조회수 | 2,194

‘성인 ADHD’ 정은이 “특별함이라고 말하는 내 모자람이 너무 좋아요”

※ 정은이 작가가 신간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밤>(봄름/ 2019년)을 펴냈습니다. 봄름 출판사 편집부가 작가와 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아픔을 방치만 하지 않는다면 나아질 수 있어요”

Q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밤>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어떤 책인가요?  

 

저의 아픔을 마주하고 극복하기까지 지난 4년 동안 써온 마음 일기입니다. 육아 휴직을 끝내고 회사에 복귀하면서 이런저런 긴장과 스트레스로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어요.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만성적인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마음에 걸리는 게 수두룩했던 밤이 3년째 이어지던 어느 날, 단순히 잠을 자고 싶다는 그 이유 하나로 처음 병원을 찾았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진단을 받게 돼요.

심리 검사도 했는데, 그 결과지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다 나라는 거예요. 그 정도로 자신에 대해서 몰랐던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고, ADHD를 받아들이고 나를 알아가며 마음의 편안을 찾는, 지난 4년간의 이야기를 쓴 책이에요. 저와 비슷한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불안하고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Q 성인 ADHD를 다룬 책이 건강서 외에 많지 않아요. ADHD란 무엇인지, 이 에세이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DHD 치료 때문에 병원을 갔다가 ADHD 확진을 받은 아이와 그 엄마를 목격하면서 책을 쓰겠노라 결심했어요. 내 아이가 ADHD라는 사실에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펑펑 우는 아이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어요. 저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누군가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슬퍼하니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렇게까지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내가 그 증인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고, 그 시작이 저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거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ADHD인줄 모르고 단순히 우울하거나 사는 게 힘들어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해요. 그러다 ADHD라는 걸 알게 되고 당황하지만, 정신과에서는 익숙한 일인 거죠. ADHD 성향인 사람들은 주의력 결핍 때문에 살아가는 데 여러 불편함을 겪어요. 부주의해서 실수도 많고, 때로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참는 것이 힘들고, 산만해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약속이나 중요한 일을 자주 까먹는 탓에 신뢰를 잃기도 하죠. 살다보면 이런 실수는 누구나 한 번쯤 하지만, 그런 실수를 자주 하는 캐릭터인 거죠. 그런데 ADHD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에요. 성격이나 실수가 아니라 장애죠. 그러니 자신의 아픔을 방치만 하지 않는다면 나아질 수 있어요. 책을 통해 그 희망을 전하고 싶었어요.

Q 처음 심리 검사에서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애초에 여기(병원)를 오는 게 아니었다”라고 말해요. 이후 본격적인 상담 치료를 받기까지 14개월이 걸릴 만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당시 ADHD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었나요?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어요. 고작 몇 시간 봐놓고 나에게 장애라고 말하다니, 일단 병원에 왔으니 환자로 만드는 게 아닐까, 하며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했어요. 아홉 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팀원을 이끄는 중견사원으로서 ADHD 진단은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선고와 같았어요. 암울하고 막막한 이 상황이 싫어서 애써 외면하느라 14개월을 그냥 흘려보냈어요. 그런데 일상에서 저는 자꾸 실수를 하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물음표가 생겼죠.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일까?’ 물음표가 많아질 때마다 싫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제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고 싶었고, 더 늦기 전에 바로잡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전문가와 치료제가 있으니 지금보다 더 나빠지진 않을 테니까요.

4년간 ADHD라는 아이를 데리고 살면서 이게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고뭉치이기는 하지만 누구도 살 수 없는 특별한 인생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남들과는 다른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죠. 내 자아를 형성하는 데 엄청 개성 있는 녀석 하나를 가지고 태어난 느낌이에요. 특별함이라고 말하는 내 모자람이 너무 좋아요. 

책에서도 쓴 것처럼 많은 위인들도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들처럼 좋고 아름다운 것에 빠지려고 해요. 안창호 선생님이 매끈한 돌도, 거친 돌도 제각기 쓸모가 따로 있는 법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나의 모난 부분을 알고, 그 부분을 잘만 쓰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성 신화’는 정답 아냐…모든 역할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 깨야”

 

Q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여서일까요. 친정어머니에 관한 기억, 딸과의 일화가 인상적이었어요. ADHD를 ‘자존감’의 각도에서 접근하고, 나아가 ‘엄마의 자존감’이라는 화두를 다룬 이유가 무엇인가요?

 

모든 아픔과 상처, 노력과 희망은 ‘자존감’과 연결돼요. 제가 엄마에게 받은 상처로 눈물 젖은 유년시절을 보내서인지, 내 아이만큼은 상처 없이 행복하게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ADHD가 남들보다 더 좌절로 다가왔는지도 몰라요. 이런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이만 보면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죠. 하지만 아이는 제 걱정이 무색할만큼 건강하게 자기 나름의 인생을 펼쳐 나갔어요. 그 모습을 보며 소위 말하는 ‘모성 신화’가 정답은 아니란 걸 깨달았죠.

 

한국 엄마들은 모든 역할을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어요. 가족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집 안팎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죠. 하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되지 않아요. 그래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거예요. ADHD뿐만 아니라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도 마찬가지예요. 엄마의 희생은 숭고한 것이지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요구하는 엄마의 역할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를 덜 사랑하거나, 이기적인 게 아니에요. 엄마가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받고,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균형 있는 가족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나의 모습이 세상이 정해준 틀에 맞지 않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 없어요.

 

Q 나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 잊지 말아야 할 태도로 ‘기대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마음’을 강조해요. 무슨 뜻인가요?

 

내가 힘들 때는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내가 처한 부정적인 상황밖에 안 보이죠. 하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 눈물을 품고 살아가요. 나만 특별하게 힘들고 삶이 어려운 게 아니라, 모두가 그러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어요.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알고, 상대도 나와 같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습관처럼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닿았으면”

 

Q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주면 좋을까요?

 

습관처럼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닿았으면 좋겠어요. 분명 괜찮지 않은 상황인데도 애써 웃어넘기는 사람들이요. 남들이 보기엔 별 일 아니더라도 내가 힘들면 힘든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나의 아픔을 외면하고 숨기는 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어둠 속에 자신을 방치시키는 시간이 길어지면 왜 우울한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와요. 하지만 자기가 그늘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해야만 빛으로 나올 수 있어요. 나의 아픔을 덤덤하게 고백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Q 이 책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책에도 나오듯, ADHD라는 걸 고백했을 때 주변의 시선이 어떨지 걱정하셨어요. 이 책을 본 지인들, 특히 딸 유나의 반응이 궁금해요.

 

ADHD 때문에 힘들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오히려 고마운 점도 분명 있어요. 내 인생을 돌아보게 해줬고,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ADHD 덕분에 책을 쓸 수 있게 됐고, 그 과정은 영광스러울 만큼 감사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면서 설렘을 잊고 살았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충만한 행복을 느꼈어요. 내 생에 이런 기쁨이 또 찾아올까 싶을만큼 값지고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쓸 때 아이가 “엄마가 책을 쓰는 건 멋지지만 나와 놀아주지 않는 건 하나도 멋지지 않아”라고 말해서 미안했어요. 하지만 책이 나오자 아이는 저보다 더 기뻐하며 당장 읽어보고 싶다고 했죠. 딸이 나오는 부분만 읽어주면서 다른 이야기는 네가 어른이 되어 힘들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니까 “엄마가 부끄러우면 그렇게 할게”라며 웃더라고요. 정말 뛰는 엄마 위에 나는 딸이에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걱정됐던 것도 사실이에요.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홍글씨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응원해주셨어요.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는 후배도 있었고요. 나의 아픔을 고백했을 때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아요.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면 되니까요.

 

Q 요즘은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밤을 보내고 계신가요?

 

네!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어요. 예전에는 침대에 누우면 걱정거리들만 떠올랐는데 요즘에는 감사한 일들을 더 많이 생각해요. 의식적으로 노력한 것도 있고, 실제로 감사한 일이 많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도 넓어지고, 타인을 이해하는 폭도 깊어지더라고요. 힘든 일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그런 일 앞에서 저를 지킬 수 있게 됐어요. 예전에는 타인의 시선, 표정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렸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 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을까’에 대해 더 고민해요.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은 나와 함께하는 인연들이 모두 소중하고 감사해요.

 

- 사진 : 정은이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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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정은이

아홉 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서울시 공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직장, 가정, 육아 트라이앵글 속에 우뚝 선 슈퍼우먼을 꿈꿨지만 ‘성인 ADHD’ 판정을 받으면서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며 재미나게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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