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9.02.19 조회수 | 9,888

<플라이 백> 박창진 사무장 “나는 개가 아닌 사람이다”

2014년 12월 5일 터진 ‘땅콩회항’ 사건. 가끔 그날의 박창진 사무장처럼 비행기에서 내린 내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혼자서 되돌아가는 발걸음은 얼마나 아득하고 무섭고 외로운 것이었을까? 박창진이 겪어야 했던 상황은 한 개인이 겪은 특수한 것이 아니다. 종종 생계를 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협받곤 하는 모든 노동자의 것이기도 하다.

사건 터지고 4년 3개월이 흐른 지금, 비로소 박창진 사무장이 두 손으로 직접 쓴 기록이 세상에 나왔다. ‘회항’이라는 뜻의 제목을 단 책 <플라이 백>(박창진/ 메디치미디어/ 2019년)은 박 사무장의 입사 시절부터, 우수한 실적으로 활약하던 직원 시절, 불합리한 경영 실태, 땅콩회항 사건 그리고 최근의 직원연대 노조 결성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덧붙여 권력의 ‘갑질’에 대항해 조금씩 존엄성을 회복해 나가는 한 개인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박창진 사무장은 <플라이 백> 출간 후인 2월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항공사 승무원 특유의 정중하고 친절한 말투로 그의 책을 소개했다. 그가 헤쳐나가야 하는 열악한 상황과 서비스직 특유의 예의 바른 음성이 대비되어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냈다.

“(이번 책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사회가 저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평범하고 작은 사람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서 누군가에게는 이정표가 되고 알림판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박창진 사무장은 이번 책의 사상을 잘 집약한 구절로 아래의 대목을 골라 직접 낭독도 했다.

혹자는 내게 약자를 위한 보호막조차 없는 사회에서 왜 굳이 외롭고 질게 뻔한 싸움에 나섰냐고 묻는다. 내가 아무리 투사가 되어 사회를 변혁하자고 외친들 무엇이 바뀌고,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적어도 나라는 한 사람은 바뀌었다”고. 또 다른 사람들은 다시 그날 그 순간 뉴욕공항의 비행기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또 그럴 것이라 답한다. 한 인간이 힘의 우위를 내세워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강탈해선 안 된다는 신념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플라이 백> p.244

“지난 4년은 불 꺼진 무대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박 사무장은 땅콩회항 사건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더 이상 개가 아니다, 사람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처지가 주인에게 충성을 보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충성스런 애완 동물(loyal pet)’의 입장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고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땅콩회항’ 당시에도 비행기에서 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용주 일가에 “죄송하다”, “미안하다” 연발해야 했던 직원이었다. 그런 박 사무장이 지난 4~5년의 기간을 거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노동자의 권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플라이 백>에는 알알히 담겨있다.

박창진 사무장은 건강 상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 트라우마 극복 중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정신적인 충격은 그대로인듯 했다. 책을 쓰며 돌아본 지난 4년은 기쁨보다 아픔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집필 과정에서 울분이 되살아나 고통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 과정을 거쳐 일종의 정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여태껏 많은 선후배들이 스스로 포기하고 갔지만 나는 다른 선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게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됐고요. 3년차가 됐을 땐 제가 좀 많이 힘들었어요. 언론에 나온 것처럼 머리에 15cm 가량 되는 종양이 생겨 제대로 누워 잘 수도 없을 정도였죠. 신체적으로 의학적 이유가 있을 테지만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였던 것 같아요. 매일 회사에 출근하며 현관문을 여는 순간 지옥문을 열고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노동자 개인과 회사라는 집단을 등에 업은 경영진의 대립. 과연 체급 비교가 되지 않는 싸움이다. 항공사 복직 이후 박 사무장은 팀장급에서 일반 팀원으로 역할을 강등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 보도는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때때로 그의 투쟁에 힘을 보태기도 했지만 세상 관심이 시들해져 화제성이 시들해지거나 가짜뉴스, 단순 선정성 보도로 치우칠 땐 그의 힘을 빼앗아 갔다.

“지난 4년간은 불 꺼진 무대 위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언론이라면 대중의 생각과 철학을 읽어내는 역할도 해야 하는데 뉴스로서의 소모 가치가 끝나면 아무런 관심이 없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 이 자리에 왔어요. 어떤 언론 인터뷰를 하면 “잘 지내셨나봐요” 이렇게 얘길 해요. 그때까지의 과정은 모조리 무시를 하는 거죠.

사건의 발로도 어떻게 보면 제 입이 아닌 언론의 입에서 나왔는데 우리나라 언론이 무책임한 것이 많더라고요. 사건 후 네다섯 군데도 안 되는 매체와 인터뷰를 했고 나머지 기사는 그냥 복사해서 붙이기 수준이었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 볼 땐 어쩔 수 없는 가짜뉴스죠. 거기까진 좋지만 클릭 수를 위해 ‘박창진, 허걱 또 쓰러짐…’ 같은 제목을 붙인 자극적 기사나 찌라시를 소개하는 기사는 제게 직접적인 가해를 한 셈이에요.”

“나와 서지현 검사처럼 '살아남은 자' 많아지면 사회 더 건전해질 것"

이 모든 싸움을 포기해야겠다는 유혹이 온 순간도 있었다. 그러던 중 2018년 4월 ‘물컵 갑질’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번엔 다른 직원들도 용기를 내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회사를 변화시키는데 뜻을 모으는 새로운 노조인 ‘대한항공 직원연대’도 결성이 됐다. 현재 박 사무장은 이곳의 지부장 역할을 맡고 있다.

“제 사건 때는 한 명도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얘기를 한 사람이 없었기에 당시 제게 지지를 보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도 있었어요. 하지만 ‘땅콩회항’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용기가 발현된 것 같고, 그 용기를 져버리고 간다는 건 또 다른 제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다고 여겨서 직원연대 시위와 노조로 나가는 과정에 동참을 하게 됐어요.”

처음 500명으로 시작한 대한항공 직원연대노조는 인원이 줄어 현재 300명 정도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박 사무장은 결성 이후 노조 간부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졌고, 가입자 명단이 기존 노조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등 노조 와해 공작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사무장은 새로운 노조 결성 이후 8개월 동안 집약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도 말했다.

“예전엔 전문 경영보다는 오너 일가의 그때 기분에 따른 명령에 의해 일이 진행되면서 이뤄진 일이 많았어요. 기존 노조가 회사에 개선을 요구하거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 상태에 있었던 일들이 외부에 드러나게 됐죠.”

가령 기존에 기내에 60%만 실렸던 승무원의 식사가 충분한 수로 채워졌고, 승무원들의 휴식 공간에 소홀하게 비치되던 담요도 보완되는 등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기존 직원들이 부당하다고 알고 있지만 누구에게 얘기할 수도 항거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비로소 요구되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울지 않는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듯, 과거에 보장되지 않던 당연한 권리들이 보장되기 시작한 건 당신들(노조)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많이들 이야기 하고 계시고요. 그런 씨앗이 (다른 직원들) 마음 속에 자리잡기 시작하면 나중에 (노조에 가입할) 용기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사무장은 갑과 을, 노동자 권리 문제뿐 아니라 자연스레 족벌 경영을 인정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우리 직원들은 다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서 입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경영진 일가) 자제분들이 과연 그런 시험을 통과했나요? 연계된 재벌의 족벌이라는 권한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인정해주는 문화. 지금 대한항공 내부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문경영인이 와야 하고 그게 안 된다고 하면 그들이 정말 전문 경영인의 자격이 있는지 검정을 철저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박창진 사무장은 주변에서 끊임없이 포기하라, 그만하라는 요구가 들려온다고 했다. 하지만 “저나 서지현 검사님같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살아남는 게 보이면 사회가 건전해지는데 도움되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이번 책 출간도 목소리 내기의 일환임을 밝혔다.

- 사진 : 메디치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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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북DB 기자)

1983년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kiwi@interpark.com

작가소개

박창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자랐고 부산 동아대학교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뱃사람인 아버지가 타지에서 보내온 엽서를 보며 먼 이국을 동경해오다가 우연히 접한 항공사 모집 공고에 매료돼 대한항공에 승무원으로 입사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VIP 담당 승무원직을 수행하고 회사 홍보 모델로도 활동하는 등 한동안 탄탄대로의 삶을 살았다. 2005년 사무장으로 진급했고, 2010년에는 객실 전체를 책임지는 팀장이 되었다. 하지만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땅콩회항 사건 이후 삶이 바뀌어버렸다. 나쁜 짓 하지 않고 회사 일만 열심히 하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깨져버렸고, 자신도 그저 남들처럼 회사의 부속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동안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했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내면의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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