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11.06 조회수 | 13,678

<당신이 옳다> 정혜신 박사 “자기 마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돼요”

나의 생각이나 마음의 상태를 잘 아는 이가 누구인지 한 번 떠올려보라. ‘나라는 존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언제라도 ‘당신이 옳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있었나?’, ‘반대로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인 적 있었나?’ 10월 초 <당신이 옳다>(해냄출판사/ 2018년)를 출간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인터뷰 도중 기자를 여러 번 당황케 했다. 예상치 못한 순간 날아온 질문들은 마음에 깊이 박혔다. 정신과 의사로 활동한 30여 년간 정혜신 박사의 이 질문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최근 15년간 진료실 밖으로 나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함께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만든 재단 ‘진실의 힘’에서는 집단 상담을 이끌었고,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서는 심리치유공간 ‘와락’을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경기도 안산으로 가서 ‘치유공간 이웃’을 만들고 참사 피해자들의 치유에 힘썼다. 서울시와 함께 힐링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 시민을 위한 치유 문화조성 프로그램으로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이며 동시에 모두 치유적 존재’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정혜신 박사가 인터뷰를 통해, 또 <당신이 옳다>를 통해 수없이 강조한 ‘개별적 존재’에 대한 집중이 여기서도 강조된다.

이번 책을 읽고 유난히 자기반성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정혜신 박사의 말은 괜한 것이 아니다. 책을 읽는 동안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공감이라 착각해왔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타인의 대한 공감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소홀했던 내 마음에 미안해지기도 한다. 또 하나 새로운 것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소개하는 ‘공감의 방식’이다. 그 안에는 거친 파도 위, 하나의 서핑보드를 타고 있는 듯 온 체중을 실어 상대와 함께 움직여줘야 한다는 공감의 본질이 담겨 있다. 만성적인 ‘나’ 기근에 시다리는 사람들, 관계의 갈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나 소생법’ 일명 ‘심리적 CPR’ 역시 그중 하나다.

단풍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10월 17일, 서울 경운동에 위치한 정혜신 박사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녀는 질문에 귀 기울이고 이따금 자신이 질문하기도 하면서 일상과 현장에서 길어 올린 치유 내공들의 일부를 들려주었다.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 그 사실 스스로 깨닫는 순간 강력한 치유제 된다”

Q 7년 전에 절필하셨다는 사실을 이번 책을 읽고 알게 됐어요. <당신이 옳다>를 출간하신 계기를 묻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늘 마감에 쫓겼던 것 같아요.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는 작가도 아니고 기자도 아닌데 내가 뭐한다고 마감에 쫓기면서 살까 싶더라고요. 늘 세상 돌아가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심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이 에너지를 왜 여기다 쓰고 있지? 난 글쓰는 사람이 아닌데’ 싶었던 거죠. ‘시간을 이렇게 쓰고 싶지 않다. 내가 몸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일, 내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에 내 시간을 온전히 쓰겠다’라는 마음으로 당시에 글쓰는 일을 모두 중단했죠.

<당신이 옳다>를 나는 책 또는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샤우팅하는 가수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쓴 거예요. 목에서 피가 나오도록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고 알리던 걸 전하는 거죠. 그동안 여러 현장에서 사람 살리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들이 자기 행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것에 대한 정돈이 되지 않으면 ‘저 사람은 당신의 그 말 때문에 살았을 거다’라고 말해줘도 그 의미를 잘 몰라요. 자기가 하는 행동을 무엇인지 알면 훨씬 안정감을 갖고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죠. 그래서 ‘당신이 하는 말과 행동에 이런 의미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이고, 그걸 스스로 깨닫는 순간 굉장히 강력한 치유제가 될 수 있어요. 제가 현장에서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그걸 사람들 스스로 발견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난 이 책이 글이라기보다 행동지침서, 말하자면 격문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을 격동시켰으면 해요. ‘내가 그럴 수 있는 존재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움직이게 돼요. 누군가는 또 치유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거예요. 그런 선순환들이 전문가를 중심으로 도는 게 아니라 이 사회에 마구 일어나길 바라는 것. 그게 저의 사회적인 마지막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Q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공간 이웃’,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 ‘진실의 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공간 ‘와락’ 등 15년간 다양한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함께했습니다. 진료실 밖, 현장에서 느낀 치유의 힘은 어땠나요?


내가 만약 어떤 기법의 전문가라고 하면 사람들을 그 기법의 대상자로 보게 되겠죠. 그런데 나는 그게 진정한 전문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줄 수 있는 것 말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그 사람이 일어서거든요. 사회적으로 ‘전문가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깊이 성찰하지 못 하다 보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무차별적으로 무엇이든 주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그 분야에 대해 무언가를 배웠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을 치유하고 구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전문적 시선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어떤 측면에서는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치료의 틀’이 없기 때문에 본래 치유적 존재 그 자체로 사람을 바라보는 경우가 꽤 있어요. 예를 들어, 밖에서 나쁜 짓하는 아빠가 집에 돌아와서 자신을 보고 방긋방긋 웃는 아기를 보며 ‘빨리 손 씻어야 하는데…’ 자기 존재를 성찰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아기가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아기의 시선이 아빠의 치유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거죠.

생각해 보면 사실 존재 자체로 한 인간을 받아들이는 건 내면의 잣대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 모두가 어떤 시기에 해왔던 것들이에요. 어떤 사람이 죽을만큼 힘들 때, 자기 존재를 받아주는 손길이나 눈길, 마음을 만나면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어요. 제가 말하는 공감의 본질적인 속성은 그런 거예요.

Q ‘심리적 CPR’이라는 용어가 중점적으로 언급이 돼요. 존재에 집중하고 자극해서 누구든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책을 읽지 못한 분들이나 이 용어가 생소한 분들을 위해 조금 더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CPR(심폐소생술)’은 교육을 받으면 초등학생도 길가다가 쓰러진 성인의 목숨을 구하는 행위잖아요. 간단하고 단순한 행위로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정리되기까지는 고도의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필요했을 거예요. 어느 부위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압박해야 하는지. 심장은 왼쪽에 있는데 왜 가슴 정중앙을 눌러야 하는지 등 전문적인 의료 지식이 집약돼서 오랜 임상경험의 끝에 ‘여기를 이렇게 누르면 된다’는 단순화 된 원리가 정립된 거죠. 사람들은 그 과정 속의 연구 과정이나 논문 내용 등을 알 필요 없어요. 최종 결과물에 대해 정확하게 알면 돼요. 그러면 사람을 구할 수 있거든요.

‘심리적 CPR’도 그런거죠.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가 지금껏 30여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하며 나름의 시행착오도 겪고 혼란도 겪어가면서 얻은 것이에요. 소리없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나는 사람 마음 들여다 보는 일을 오래 해서 그 소리가 들리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거든요. 고요한 것 같지만 쓰러져 가고 있어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한 것이 ‘심리적 CPR’이에요. CPR이 단순한 것 같지만 그 효과가 굉장히 강력한 것처럼 심리적 CPR도 ‘어떻게 그 정도 가지고 사람을 살리겠어’ 싶겠지만 사람을 살린단 말이죠. 이건 제 경험, 그리고 정신과 의사 인생 후반에서 15년간 진료실을 떠나 사람을 환자가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몸으로 마음으로 익혀가며 찾은 포인트예요.

“내가 줄 수 있는 것 말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Q 공감으로 상처가 치유된 아이의 이야기가 나와요. 어린이집에서 편을 가르고 노는 친구들로 인해 상처를 받은 아이가 가족들의 공감으로 상처를 치유하게 된 후 이런 말을 하죠. ‘엄마 고마워, 난 이제 자유야’. 여섯 살 아이의 말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당시에 아이가 하루에 화장실을 40~50번 갈 정도로 괴로운 상태에 있었어요. 마음이 지옥같았던 거죠. 배신감, 소외감, 외로움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을 거예요. 처음 후배(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이런 일이 있다고 말했을 때 ‘비상상황이니까 어린이집 그만두게 하고 일단 아이 이야기를 들어라. 그러면서 공감해줘야 한다’라고 말했어요. ‘아이가 다 옳은 거다. 이유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공감해줘라’. 그런데 공감을 해줘도 상황이 나아지질 않는다는 거예요. 들어보니까 공감에 체중이 하나도 안 실린 거죠. 책에도 그 말을 썼는데 공감을 할 때는요. 온 체중을 다 실어야 해요. 엄마가 나에게 진짜로 공감해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아이가 느끼니까 변하지 않은 거예요.

‘편파적으로 아이 편에 서야 한다. 엄마가 가서 혼낼까? 어떻게 해줄까? 계속 물어봐라’ 그랬어요. 그렇게 대응하기 시작했더니 아이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거든요. 공감이라는 건 그 사람이 타고 있는 서핑보드에 함께 올라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아이가 물 위에서 위태로운데 나는 물 밖에 서서 ‘어~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이러는 건 공감이 아니라고요. 같이 서핑보드 위에 올라타보면 정말 말도 안 나오거든요. 같이 중심 잡고, 리듬도 타야 되고요. 나와 함께 그래주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해요. 그게 공감의 힘이에요. 나중에 아이의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 나서서 온 몸으로 공감을 하고 나니까 아이가 괜찮아지기 시작한 거죠. 그러고 나서 ‘엄마 고마워, 난 이제 자유야’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아이가 마음으로, 몸으로 자유라는 걸 온전히 이해하게 된 거죠. 그래서 그 말이 본능적으로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Q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에게 말한 것처럼 가족들이 정말로 친구들을 혼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책에 ‘거짓 공감도 공감인가’라는 챕터에 이 아이의 사례를 소개했는데요. 비록 거짓 공감이었을지라도 가족들의 공감으로 아이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아이 엄마도 처음에 ‘거짓말 해도 되냐’고 물어봤는데요. 거짓말해도 돼요. 괜찮아요. 아이에겐 거짓말이 아니에요. 그건 어른의 판단이에요. 거짓말이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왜 거기에 걸려서 중요한 걸 못 하냐는 거죠. 아이에게는 이 일이 죽고 사는 문제거든요. 체중을 실어서 ‘네 마음을 알고나서 엄마는 정말 화가 났어. 엄마는 잠을 못 잤어. 어린이집에 가서 선생님이 말리는데도 누구는 이렇게 해줬고, 누구는 이렇게 혼내줬어’라고 공감하면서 아이의 공감 상태에 함께 올라탄 거예요. 상처받은 만큼 확인과 공감을 퍼부어야 되는 거죠. 도덕적인 거? 거짓말? 그런 건 무가치한 고민이에요. 공감이란 건 그런 거예요. 무게를 실어야 하고 공감의 과녁을 정확히 발견할 때까지 들어가야 해요. 그렇게 공감의 힘이 어떤지 내가 경험을 하면 ‘도움을 준다’라는 자각도 없이 이미 누군가를 돕게 돼요. 자연스럽게 그걸 터득하게 되는 거죠.

Q 책에 굉장히 많은 사례가 나오는데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갑을 관계’에 대한 것이었어요. 을의 입장일 때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고 언급하신 부분이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기 존재를 지우며 살아가는 때가 많은데 존재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을의 입장에 있는 많은 분들이 갑질 당하고 억울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할 때 ‘저 인간 잘못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잖아요. 억울하고 모멸감을 느끼니까요. 점점 그러다 보면 어떤 분들은 그런 생각을 하세요. ‘내가 망가져 간다. 내가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내가 어떻게 사람에게 그런 생각을 가질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 자책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일을 멈춰야 해요. 이게 중요해요.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서 을로서 모멸감을 느끼고 억울할 때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은 당연한 거예요. 상황 대비 정상적인 리액션이에요. 오히려 그런 취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이 안 든다면 그게 이상한 거죠. 그건 정말 병적인 거예요. 책에도 제가 언급을 했어요. 아이 잃은 엄마가 ‘내가 점점 미친년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서 제가 화를 냈던 이야기. 아이를 잃었는데 일상적으로 생활을 잘할 수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자신을 그렇게 함부로 미쳤다고, 이상하다고 규정하면 안 되는 거예요. 험한 생각을 매일매일 하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그런 마음이 들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에게도 물어봐줘야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 요즘 왜 그렇게 험한 생각이 들지?’ 그렇게 한 번이라도 물어봐주면 ‘그 인간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데’ 그런 대답이 나오지 않겠어요? 자기 마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돼요.

일생 우리는 그런 공기 속에서, 그런 문화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책하고 스스로 규정하는 것에 자연스럽죠. 그게 유해환경이고 반치유적이고 반공감적이고 사람을 무너뜨리는 공기예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아픈 거에요. 단 한 번도 ‘왜 저렇게 됐지? 쟤 왜 저럴까?’ 물어봐주지 않고 그 이유에 대해 공감하려 하지 않고 그저 ‘미친 놈, 나쁜 놈’ 그렇게 충조평판 해버리는 것. 그게 사람들을 아프게 해요. 타인에게 그러니까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해버리는 거고요.

‘당신이 옳다’는 말은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표현이에요. 함부로 판단하고 규정하지 말라는 의미예요. 그게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에요. 나 자신에게도 그래줘야 해요. 어떤 이유든, 본인의 행동이나 마음에는 그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옳다’는 말은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표현”

Q 이 책에는 정신분석학 이론이 등장하지 않을뿐 아니라 학자들의 말을 인용한 내용들이 없어요. 이와 관련해 프롤로그에서도 언급을 하셨죠. 최근 일상의 불편이나 심리적 어려움의 원인을 뇌에서 찾는 추세가 도를 넘었다는 이야기요.


좀 민감한 얘기일 수 있는데 저는 뇌과학이 실제로 기능적인 질환들. 예를 들어 신경의 문제나 혈관의 문제, 뇌 자체에 손상을 입었을 때 회복이 되는 질환들을 치료하는데 획기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러나 뇌과학의 연구 결과들이 별처럼 굉장히 많은데, 실제로 사람의 마음에 도움을 줬다는 확실한 결과는 지금까지 거의 없어요. 이건 팩트예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것이잖아요. 상황이나 마음이 모호하면 사람은 불안해져요. 불안하면 눈에 보이는 무언가에 집착하게 돼있어요. 예를 들어, 내일이 시험인데 불안하면 공부를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공부를 해서 시험 성적을 높이는 것은 나중일이니까 일단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리하는 거죠. 책상 정리하고 서랍 정리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정돈함으로써 내 일상과 내 일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거예요. 사실은 그게 의미없는 일이잖아요. 마찬가지로 마음의 문제는 모호하기 때문에 이걸 정리하기 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뇌를 연구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고 물리적으로 손에 잡히는 식의 결과를 많이 갈구할 수밖에 없는 분야예요.

뇌과학에 많은 연구비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별처럼 많았지만, 실제로 그 영향을 받아서 마음이 도움 받은 사례는 없어요. 그뿐아니라 나는 뇌과학의 발전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에서부터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마음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많은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Q 시대가 변하면서 고민의 대상, 불안의 대상도 함께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 30여년 간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들을 느끼셨을텐데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고민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셨나요?

내가 진짜 누군지,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 혹시 주변에 누가 있는 것 같으세요? (기자 : 없는 것 같네요. 저부터도 이야기를 잘 안 했던 것 같아요.) 지난 한 주간 누군가 내 상태에 대해 깊이 집중한 사람이 있나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없다’고 말해요. 그게 심리적 허기, 결핍, 심리적 취약점의 근원이에요. 어떤 존재에 온전히 주목하고 집중한 적이 없다는 자각, 그렇게 살아가지 못 한다는 자각이 너무 많아요. 이런 상태에서는요. 사람이 온전하게 살기가 어려워요. 마치 산소가 부족한 사람에게 스테이크 시켜주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산소 부족한 건 잘 티가 나지 않거든요. 겉으로 보면 화려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어느 날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나가는 거죠. 숨을 제대로 못 쉬니까.

Q 그럴수록 타인에게 또 나 자신에게 물어봐줘야 되는 거군요. 내 존재를 인정해주는 물음, 이것은 한 사람이 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자기 존재로 수용되는 경험은 인간의 심리적 생존을 위한 산소 공급 같은 거예요. 산소 공급은 죽을 때까지 필요하거든요. 아주 기본적인 거죠. 우리가 젊을 때 인정 받고 성취하고 사랑 받으면서 젊은 시절을 탄탄히 보내면 노년기에도 잘 살 수 있느냐? 살 수 없어요. 죽기 직전까지 자기 존재가 수용되는 경험이라는 게 필요해요.

존재에 대한 집중은 심리적으로 힘들 때만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근원적으로 우리가 한 생을 건강하게, 왜곡되지 않고 내 인격이 비틀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죽기 직전까지 필요해요. 노인도 노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봐야 해요. 그런 시선들이 어디서든 작동해야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병들지 않아요. 병들면 반드시 사고를 치게 되거든요. 산소가 필요하니까 몸을 날린다고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러다 보면 추한 일도 생기고 무리한 일도 벌어지는 거죠.

정치적으로 봐도 나이 들어서 갑자기 확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난 그게 외로워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들 개개인의 상황은 알 수 없으나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해요. 노인이 되면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잘 주목하지 않거든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거나 그럴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 해요. 자기 존재에 대한 수용은 죽기 직전까지 필요한 건데, 그것이 멈추니 몸을 날려서라도 자기 존재에 대한 주목을 받고 싶은 거죠. 존재가 주목받고 집중받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든 몸을 날리는 거예요.

제가 책에도 태극기 집회 노인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분도 자기 존재가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몸을 날린 거예요. 그 집회가 무엇인지는 이분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산소를 마시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들인 거죠. 내가 당장 숨이 넘어가는데, 그런 게 중요하지 않죠.

우리 사회는 다른 건 많은데 근원적인 산소가 부족해요. 그래서 다른 것이 많아봐야 소용이 없어요. 그리고 이건 우리 존재 전체적인 문제여서 같이 공유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책이든 뭐든, 내가 공유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당신이 옳다>는 그런 제 생각을 공유하는 한 방편이었던 거예요. 앞으로도 편안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논의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책이든 무엇이든 크게 상관없어요.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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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영(북DB 기자)

취재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탐색 중입니다. iylim@interpark.com

작가소개

정혜신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1만2천여 명의 속마음을 듣고 나누었다. 최근 15년은 정치인, 법조인, 기업 CEO와 임원 등 자타가 인정하는 성공한 이들의 속마음을 나누는 일을 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함께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만든 재단 ‘진실의 힘’에서 집단상담을 이끌었고,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심리치유공간 ‘와락’을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으로 이주해 ‘치유공간 이웃’을 만들고 참사 피해자들의 치유에 힘썼다. 또한 서울시와 함께하는 힐링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를 통해 시민들에게 공감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엔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 등 전문가에 의지하지 않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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