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10.10 조회수 | 841

<게을러도 괜찮아> 임주하, 고현진, 장한라 “게으름은 ‘아무것도 아님’을 견디는 일”

※ 임주하, 고현진, 장한라 세 명의 작가가 신간 <게을러도 괜찮아>(별글/ 2018년)을 펴냈습니다. 별글출판사 편집부가 세 명의 작가와 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왼쪽부터)고현진 작가, 임주하 작가, 장한라 작가

Q 원론적인 질문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게으름은 대체 무엇인가?

임주하 : “털/원래 거기 있을 게 아니면/우리 몸에서/자라지도 않았을 거야.” 캐나다 여성 예술가 루피 카우르가 쓴 한 구절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게으름은 털에 관한 그녀의 생각과 많이 닮아 있죠. 일단 원래 거기 있어야 할 아주 자연스러운 우리의 기질일 테고, 의미를 보태자면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자신만의 속도로 찬찬히 나아가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털을 없애려고 제모 시술 받듯 게으름을 싹 밀어버리려고 하지만 말이에요.

고현진 : 사전에서 게으름은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라고 쓰여 있어요. 솔직히 부정적인 뉘앙스죠. 책을 쓰며 게으름에 대한 제 개인적인 메시지는 온전한 게으름을 용납하자는 의미보단 쉼 없이 달려온 누군가에게 ‘당신의 바쁨 속에서 조금 게으르게 반응하고 유연해지면 좋겠어요’라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장한라 : 게으름은 이미 저와 너무 혼연일체가 된 말이라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두기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꼽아본다면 ‘아무것도 아님을 견디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빈 시간에 뭔가를 해야 한다거나,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뭔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좀 벗어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Q 다른 의미로, 너무 바쁜 삶에 치여 ‘내 삶’에는 나태해진, 피로감이 쌓인 사람들이 많다.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삶의 게으름을 피우게끔 할 수 있는 소확행을 세 작가가 하나씩 추천해준다면?

임주하 : <게을러도 괜찮아> 4장 ‘반짝이는 작은 것들을 위해’에서는 소확행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요. 사진 찍기, 혼술, 문구 수집, 장난감, 소품 사기, 양자 공부 등… 저희에게는 백 퍼센트로 다가오는 행복을 담았죠. 이 행복이 독자들께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예시들을 힌트 삼아 자신만의 소확행을 하나씩 찾아보면 좋겠어요. ‘나는 이런 걸 좋아할까, 아니면 저런 걸 좋아할까?’ 유의미한 고민 끝에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길 응원합니다.

고현진 : 하루 정도 모든 걸 다 잊고 푹 자기. 바쁘다 보면 잠자는 시간도 아까울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몸이 피곤하면 스트레스는 배가 되는 것 같아요. 하루 정도 잠을 푹 자고 몸을 개운하게 만드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이때 너무 잤다고 자책하지 않아야 해요.

장한라 : 소확행이라는 말의 포인트는 ‘확실하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요. 맛있는 것을 거부할 수 없고, 예쁜 것을 부정할 수 없듯, 반박 불가능한 행복이 있다는 얘기겠죠. 그래서 뭐가 되었든 절대적인 영역을 만들면 어떤 상황에서도 소확행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쟁반이나 침대 옆 협탁이 그런 역할을 해요. 쟁반에 가지런히 담아 먹으면 괜스레 대접받는 기분이 들고, 침대 옆 협탁은 곱상한 수면등과 초콜릿처럼 오로지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둡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도, 공간이 넓지 않아도 찾을 수 있는 절대적인 행복이에요.

Q 본인들이 쓴 글 중에 애착이 가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그 글에 숨겨진 이야기나 담겨 있는 자신만의 철학 등이 있다면 풀어내주길 바랍니다.

임주하 : ‘압도적 권태주의자’를 좋아해요. 사실 이 글은 제 남자친구 이야기인데요. 도입부가 가장 공감이 가요. 보통은 누군가가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하면 쉬이 거절하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남자친구는 “아니 거절한다고 문제가 생길 사이라면, 친구로 지낼 필요도 없지”라고 딱 잘라 말해요. 상대에게 억지로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라는 거죠. 저도 남자친구처럼 앞으로는 남 눈치 보는 일에 조금만 더 게을러지고 싶어요.

고현진 : ‘소란하지 않은 평범한 맛’에 애착이 가요. 음식 에세이를 쓸 때 즐겁기 때문입니다. 평범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평양냉면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장한라 : ‘뒷담화를 권장합니다’라든지, ‘눈물을 참지 않는 방법’ 같은 글에 좀 마음이 가요. 은연중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던 것들에 작은 빛을 비춰주는 내용이라 좋아합니다. 보통은 영화 보다 눈물 나오면 남들이 볼까 몰래 삼키고, 사람 만나고 사회생활 하는 것 피곤해도 애써 아닌 척 의연하게 굴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이 꼭 그렇게 부끄럽고 나쁜 건가 싶어요. 뭐든 묻어두고 삼키면 응어리지게 마련이니까요. 눈물이 나오면 그냥 흘려도 보고, 사람 만나기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지내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Q <게을러도 괜찮아> 책은 본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임주하 :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일이 잡지 기자였어요. 기사를 써서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일들이 무척 즐겁더라고요.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구체적인 방향은 없었지만 내가 쓴 글이나, 또는 사진과 그림 등을 모아 책으로 엮고 싶다고 생각했죠. 『게을러도 괜찮아』는 첫 수필집이라는 벅찬 감동이 스민 책이랍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어느 시의 구절처럼, 앞으로 평생 아직 쓰이지 않은 가장 근사한 글을 쓰기 위해 늘 애쓰며 살고 싶어요. 

고현진 : 일상 옆에 마련된 정원 같아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글을 보완해주는 작업을 하면서 예쁜 정원이 만들어진 느낌이에요. 책이 나온 후엔 일상을 살다 간간히 만나서 책 얘기를 나눌 때 정원에서 휴식하는 것 같아요.

장한라 : 제게 이 책은 어이없게 이뤄진 꿈 같은 거예요. 책을 쓰는 건 막연히 뭔가 위대한 사람들이나 할 법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책이란 걸 만들고 말았어요. 알게 모르게 품고 있던 바람 하나가 이뤄져서, 인생이 갑자기 널널해진 기분입니다. 이제 훨씬 더 느긋하게 목표 없이 살아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어요(깔깔).

Q 게으르면 어찌 먹고 사나? 저자들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

임주하 : 우스갯소리로 좋은 상사 유형을 분류한 걸 본 적이 있어요. 가장 좋은 상사는 ‘똑게’, 똑똑하고 게으른 상사를 뜻한대요. 바로 이점을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요. 잘못된 방향을 잡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능률이 오르지 않잖아요? 그냥저냥 일하는 8시간보다 몰입해서 일하는 2~3시간이 효과적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전 필요한 만큼만 집중해서 똑똑하게 일하고, 또 대부분의 시간은 느긋하게 오래오래 쉴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어요. 이것이 바로 게으르면서도 잘 먹고 잘 사는 법 아닐까요? 

고현진 : 처음 질문에서 답했듯, 저는 온전한 게으름을 용납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당연히 먹고 사는 일에 게으를 순 없을 것 같아요. 다만 마음의 게으름을, 여유를 갖고 싶어요. 균형을 이루기 힘든 일이겠지만요.

장한라 : 게으르면 게으른 대로 적당히 먹고 살게 되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 옷을 입고 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이 생긴 옷을 입지는 않는 것처럼,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 딱 하나뿐인 건 아니니까요. 나의 욕망의 지형도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파악하고 나니, 선택과 집중이 수월해졌어요. 만약에 그 지도가 넓고 방대했다면 좀 더 바삐 살았을 테지만, 일단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욕망이 비대하지 않고, 딱 가진 욕망만큼을 채워가며 안녕히 지냅니다.

Q 이제껏 가장 바빴던, 게을렀던 때는 언제인가? 그리고 바빠서, 게을러서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임주하 : 올해 연초에 회사를 다니면서 이 책을 쓸 때가 가장 바빴어요. 그때는 시간을 분 단위로까지 쪼개서 생활했거든요. 그래서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어요. 또렷한 목표가 있는 유의미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바빠도 좋아요. 다만 너무 무리하면 건강을 망칠 수 있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소홀히 대할 수 있으니 바쁨조차 똑똑한 게으름으로 극복해야 해요. 또 우리 모두에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한데요. 그래야 진짜로 원했던 삶의 방향이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그 시간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마냥 흘려보낸다면 하루하루가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그때그때 바쁘거나 게으르면서, 중도(中道)를 지키며 사는 게 가장 현명한 일 같아요.        

고현진 : 저 역시 회사를 다니며 이 책을 준비하던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땐 의욕이 넘쳐서 이것저것 배우기도 했거든요. 뭐든 할 수 있겠단 자신감이 있었던 반면에 체력적으로 지치니 예민했던 것 같아요. 대학 시절에 게을렀죠! 게으른지도 모르고 마냥 즐거웠던 게 좋았고, 단점은 내일이 없었다는 점?(웃음)

장한라 : 고3 때 제일 바삐 지냈어요. 학교와 입시 모두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단칼에 끝내버리고 싶어서,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했죠. 그리고 지금은 그때 미뤄둔 밥과 술을 먹으면서 가장 게으르게 지냅니다. 바쁘고 빡세게 살아서 좋았던 건, ‘나는 뭘 해도 하겠구만’이라는 확신을 얻은 것. 하지만 그 뒤론 확 질려버려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함정이에요. 그래서 딱 필요한 만큼의 공만 들이고, 나머지 시간엔 순두부처럼 퍼져서 지냅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게으른 나날이 계속되다 보면 무뎌져서 여유의 귀중함을 때로 까먹는다는 것 정도?

Q 어떤 독자들에게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임주하 : 책 제목은 “게을러도 괜찮아” 하고 말하고 있지만, 단순히 유행 따라 ‘게으름’을 말하는 책은 아니에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이삼십 대의 다양한 일상과 고민이 함께 담겨 있거든요. 얼핏 보면 장과 장, 글과 글 사이의 연결고리가 약해 보일 수도 있는데요. 꼼꼼히 읽어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의 고민으로 시작해, 잠시 멈추고 현재를 돌아보고, 남들 말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을 하고,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보자는 게 이 책의 핵심 메시지예요.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행복을 찾는 법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이 아주 약간의 힌트가 되어줄 거라 믿어요.

고현진 : ‘게으르고 싶다’면 그만큼 바쁘게 지내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생각으로 지쳐온 분들에게 건네고픈 위로예요. “게을러도 괜찮아.”

장한라 : 책의 제목을 놓고 보자면 ‘게으름’도 좋지만 ‘괜찮아’ 역시도 마음에 듭니다. 가끔 가는 카페 사장님의 말버릇이 있는데, 바로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이에요. 어쩌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주문처럼 “그럴 수 있지”라고 읊조리면, 어떤 일이든 그러려니 넘길 수 있는 능글능글함이 충전됩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는 안심 멘트가 필요한 프로 걱정쟁이나 소심 대마왕들께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 사진 : 별글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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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임주하

중앙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졸업 후 몇 년간 [좋은생각] [샘터] 등의 잡지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더 재미있는 일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전직을 감행, 헬스조선·웅진씽크빅 등 출판사에서 에디터로도 일했다.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면서, 반려묘 ‘카후’ ‘카라’의 집사로 살고 있다. 2017년 1월부터 ‘고전 독서 모임’이라는 아주 정직한 이름의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정은길 아나운서의 돈말글]에 북 큐레이터로 고정 출연 중이다. 저서로는 동화 [내 이름은 모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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