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9.20 조회수 | 3,111

손보미 “소설 쓰기는 운동같은 기록 게임이 아니잖아요”

최근 두 번째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문학과지성사/ 2018년)을 발표한 손보미는 등단 이후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2009년 ‘21세기문학’에 단편 ‘침묵’을 발표한 후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담요’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손보미는 이듬해 ‘폭우’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데 이어 ‘과학자의 사랑’ ‘산책’ ‘임시교사’로 3년 연속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또한 ‘산책’으로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첫 번째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로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첫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으로 제25회 대산문학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손보미 작가가 최근 활약이 두드러진 젊은 여성 작가들 사이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기존의 한국 소설들과는 결이 다른 독특한 작품들을 써내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하는 번역 투의 문장과 특이한 이야기 전개 방식, 묘사가 적은 주석적 서술 등 손보미 작가만의 뚜렷한 개성은 이국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며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한 번 읽었을 때는 뭔지 잘 모르겠다는 모호한 느낌, 그렇지만 그 느낌이 불쾌하고 찜찜하기보다는 묘한 끌림이 있어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은, 그래서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소설. 이것이 손보미 단편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에는 이런 손보미 작가의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들과 더불어 등단 10년을 맞으며 조금씩 변화하는 새로운 느낌의 소설들이 함께 실려 있어 한 작가의 발전 과정을 엿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소설 속 가짜 인물 실존한다 믿고픈 마음…내가 바란 재미”

Q 두 번째 소설집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 책과는 어떻게 느낌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첫 소설집은 등단 후 1~2년 동안 썼던 소설들이 수록돼 있었는데, 이번 작품집은 오랜 기간에 걸쳐 있는 작품들이라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주제 의식도 좀 느슨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을 쓸 때는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부담이 많았어요. 그에 비해 여기 있는 작품들은 저 스스로 즐겁고 의미 있는 작품들을 쓰면서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썼어요.

Q 데뷔 때부터 번역 투의 문장이라든지 특이한 이야기 전개 방식 때문에 한국 소설이라기보다 영미 소설 같다는 평을 많이 들으셨는데요. 실제로 외국 작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고등학교, 대학교 때 당대 유명했던 한국 소설은 거의 다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어떤 사람의 내면을 깊이 있게 묘사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꼈어요. 사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거의 안했어요. 저는 너무 평범한 아이였거든요. 우연히 국문과에 들어가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소설이라는 걸 처음 써봤는데 문장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 재미있고 신기해서 어영부영 계속 쓰게 됐어요. 이런 과정에서 내가 가장 쉽고 재밌게 접근할 수 있는 세계를 찾아나갔는데 그게 영미 소설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어떤 것들을 묘사한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던 거죠. 이렇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Q 패리스 싱어와 이사도라 던컨을 소재로 한 이번 소설집의 단편 ‘고귀한 혈통’이나 의류 디자이너 랄프 로렌의 삶을 소설로 구성한 장편 <디어 랄프 로렌> 등을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헷갈리는 느낌이 들어요.

어릴 적에 미스터리를 다룬 책이나 만화책 같은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때 읽었던 책 중에서 여러 가지 미스터리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면서 마녀에 관해서도 다룬 게 있었어요. 마녀를 다룬 부분에서는 마녀가 의식을 치르는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실제로는 마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나온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다 보니 마녀 사진도 진짜 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한쪽 마음으로는 진짜일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쪽 마음은 또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이런 마음이 너무 커서 낮에는 그 책을 끼고 살다가도 밤에는 무서워서 거실에다 내놓고 잠을 자곤 했어요.

제가 소설을 쓰면서 바랐던 것은 그런 종류의 즐거움이 아닐까 해요. 사실 여부를 떠나 진짜인가, 가짜인가 헷갈리는 묘한 느낌.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가짜죠. 그러면서도 진짜 살아 있는 사람들이면 좋겠다는 마음,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이면 만나고 싶다거나 편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이런 게 제가 바란 소설의 재미예요. 이런 맥락으로 읽었을 때 모든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보다는 어떤 상황이나 장소에 계속 머물러 음미하고 싶고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을 좋아해요. 이를테면 헤밍웨이의 단편이나 앨리스 먼로 같은 작가들요. 저 또한 그런 소설들을 쓰고 싶은데 아직은 많이 부족해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겠죠.

Q 실제로 작가들은 모든 걸 다 알면서도 감추는 건지, 실제로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쓸 수 없는 건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사실 알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그렇지만 아마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쓰는 걸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사람의 모든 걸 다 알아서는 소설을 쓸 수 없어요. 소설이 재밌어지는 건 잘 모르는 데서 나오는 거거든요. 작가조차도 그걸 모를 때, 그래서 간극이 생길 때 소설이 재밌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인물들을 잘 알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해요. 그래야만 겨우 그 인물이 어디에 갔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답을 알려주니까요.

“기승전결 정해놓고 쓰는 스타일…세세한 부분은 쓰면서 채워나가”

Q 이번 책에서 제일 애정이 가는 소설을 한 편 뽑아주신다면요?

애정이 간다기보다 ‘임시교사’를 쓸 때 제 마음이 조금 애틋했다고 할까요. 계간 ‘문학동네’ 20주년 발간 특집호로 청탁을 받았는데 그때 장편을 준비하고 있기도 했고, 또 소진된 느낌을 많이 받고 있어서 못 쓸 거 같다고 거절을 했어요. 그런데 한번 쓰려고 노력해보고, 정 못 쓰겠으면 펑크를 내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배려를 해주신 거죠. 겨울호에 실릴 거라 마감이 10월 말이었는데 셋째주까지도 시작을 못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 주에 용기를 내서 써보자 해서 완성된 작품이라 당시를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이 있어요.

Q '상자 사나이'나 ‘고양이의 보은-눈물의 씨앗’ 같은 작품은 마치 동화 같아서 기존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아요.

‘고양이의 보은’은 ‘문학동네’에서 자전 소설 특집을 할 때 쓴 거예요. 그때는 제 이름과 사적인 정보도 많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번에 책을 내면서 실명을 빼고 개인적인 정보도 수정을 했어요. ‘눈이’라는 고양이는 제가 실제로 길에서 주워 길렀던 고양이 이름이에요. 그때 어떤 이유로 길에서 살다가 저에게 온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자전소설을 청탁받고 ‘눈이’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저에 대해 생각해봤던 작품이에요.

‘상자 사나이’는 데뷔 전에 썼던 소설을 수정해 발표한 거라 어릴 적 기운이 남아 있을 수 있어요. 이 소설은 제가 재미있어 하는 모티프가 있어서 좋아하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이 상자를 받게 돼 있는데, 다음번 상자를 받을 사람을 이전 사람이 정하는데 정작 그는 누구를 정했는지 기억을 못한다는 모티브가 재미있었어요. 이 두 소설은 어떤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자 해서 썼던 건 아니고, 재미있게 써보고 싶었던 마음이 훨씬 더 컸던 작품들이에요.

Q 수신인을 내가 정하는데 정작 나는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상상이 독특해요.

그런 게 소설을 쓰는 즐거움이에요. 저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승전결을 거의 다 정해놓고 쓰는 스타일이에요. 어떤 분들은 쓰면서 떠오른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거 없어요. 단지 쓰는 과정에서 세세한 부분이 채워질 뿐이죠. 수신인이 정해지지만 나는 그걸 모른다는 디테일은 쓰는 과정에서 갑자기 떠올랐어요. 이런 게 떠오르면 소설을 쓰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져요. 반면 잘 안 되는 작품들은 힘들고 지루하고 그렇죠.

“우주 빅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우리의 삶…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Q 2014년 발표한 ‘대관람차’에 ‘죽은 사람들’이라는 메모가 나오는데, 2년 뒤에 쓴 단편 제목이 ‘죽은 사람들’에요. 이 밖에 여러 소설에 같은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나 소설 제목이 나오는 등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죽지 않아도 됐는데 사람들이 죽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제 마음속에 남아서 죽은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관람차’를 쓸 당시에는 아주 조그맣던 것이 ‘죽은 사람들’을 쓸 때는 커져 있었던 것 같아요. 나도 죽은 사람들 속에 포함될 수도 있었는데, 지금 살아서 무언가를 하고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게 굉장히 우연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 돼 있고, 나는 지금 살아서 이걸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우주에 비해 우리 삶은 찰나이기도 하고 살고 죽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죠. 내가 느끼는 많은 감정들도 우주의 빅뱅 같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게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예요. 어떤 사람의 삶에 대해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태도들이 싫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썼어요.

Q 예전 인터뷰를 보니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좋아하는 소설을 계속 쓰는 게 목표라고 하셨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

 

그건 아마 쓰는 내내 그렇겠죠. 외부라는 것은 소설가 친구의 한마디일 수도 있고, 크게는 평론가 독자의 평일 수도 있고, 혹은 또 다른 나의 목소리일 수도 있을 텐데요. 예전에는 제가 쓴 작품들이 읽는 사람들 마음에 그대로 전달이 안 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답답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렇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건 미학적으로든 내용적으로든 재미적으로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는 없더라고요.

저는 데뷔 때부터 관심을 많이 받은 작가 중 하나예요. 엄청 운이 좋은 일이죠. 그런 만큼 더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소설을 쓰는 일은 운동처럼 기록 게임이 아닌데 계속 기록을 갱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좋은 소설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주관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데 오래 쓸 거라면 어떤 작품을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 실패 안에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 거죠.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니까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었고, 좀더 편하게 작품을 대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나온 건가요?

원래 처음엔 ‘대관람차’를 표제작으로 하려고 했어요. 2014년 봄에 발표한 작품인데 당시 이 작품이 스스로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에요. 친구들이랑 다음에 단편집을 내면 ‘대관람차’로 하겠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로요. 그런데 편집부에서 제목이 심심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특별한 제목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편집부에서 정한 제목이에요. 이번 소설집의 첫 수록 작품이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이고 마지막 수록작이 ‘고양이의 보은 - 눈물의 씨앗’이에요. 처음 나오는 고양이는 ‘침입’으로서의 의미이고, 마지막 작품의 고양이는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이렇게 고양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제 소설 중에 밤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동한 소설들이 다수 있어요. 그리고 저도 잘 몰랐는데 제가 ‘우아한’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더라고요. 이렇게 조합된 제목이에요.

Q 다소 원론적인 질문을 드려볼께요. 작가님이 소설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옛날에는 재밌으니까 썼어요. 결국 지금도 재밌으니까 쓰는 것 같아요. 제가 경희대학교 졸업생이라 경희대 도서관에서 소설을 쓰는데, 그날 조금 썼든 많이 썼든 작업을 하고 집에 가려고 가방을 막 쌀 때 가끔이지만 내일 또 와서 쓰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제일 행복해요. 내일 또 와서 어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쓸 수 있고, 내가 그 사람들의 삶을 살아볼 수 있고, 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그 인물의 삶을 살아보겠지 하고 상상하면 행복해져요. 그게 지금의 저한테는 소설을 쓰는 가장 큰 원동력이에요.

Q 이 두 번째 소설집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주길 바라나요?

사실 제 소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에요. 덮고 나서 마음이 후련해지는 종류는 아니기 때문에요. 바람이 있다면 소설 속에 조금만 더 머물러줬으면 하는 거예요. 소설 속 인물들이 했던 이야기나 행동에 조금만 더 귀 기울여 들어주거나 마음을 열고 읽어주면 좋겠습니다.

-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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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손보미

1980년 서울 출생.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침묵]이,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년, 2014년 젊은작가상,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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