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9.11 조회수 | 3,827

탐사취재 전문기자 김당이 밝힌 ‘흑금성 시크릿’

※ 김당 탐사취재 전문기자가 신간 <공작>(이룸나무/ 2018년)을 펴냈습니다. 김당 기자는 영화 ‘공작’의 소재가 된 ‘흑금성 사건’을 최초로 취재한 인물입니다. 이룸나무 편집부가 김당 기자와 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김당 기자 ⓒ프레시안(최형락)

Q 책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기자라는 직업의 생리상 사실을 검증, 확인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박채서 씨가 2016년에 출소한 뒤에 대학노트 4권에 쓴 수기를 건네면서 “흑금성 사건을 가장 잘 아는 김형이 알아서 해달라”고 하더군요. 내용은 단편적으로 다 들은 것이지만 수기를 보니 전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졌지요. 문제는 흑금성 공작의 무대가 대부분 국내가 아니라 북한과 중국이어서 교차확인이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흑금성의 북측 파트너인 리철(영화 ‘공작’에선 리명운으로 등장) 참사를 잘 알고, 재판 기록과 국정원의 대외비 자료 등을 확보해 최대한 검증했습니다. 그래도 검증이 안 되는 부분은 박채서 씨의 양심을 믿는 수밖에 없었어요.

Q <공작> 1, 2권 중 독자들이 꼭 읽었으면 싶은 부분은?

저자로서는 독자들께 1, 2권을 다 읽기를 권하지만, 영화와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끼려면 <공작> 1권을 읽고, 영화에서 자막으로 처리한 흑금성의 드라마틱한 반전 인생이 궁금하면 <공작 > 2권을 읽을 것을 권합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데 충실하다 보니 내러티브가 약해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1권의 ‘에필로그’를 먼저 읽으면 좋을 겁니다.

​단독 방북 취재시 평양에서 찍은 사진

Q 북한 단독 취재도 했던데, 그 당시 어떤 내용을 취재했는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여서 가능했어요. 방북단 수행 취재나 언론사의 단체 방문 취재가 아니고 남한 기자가 1인 단독으로 취재 목적 비자를 받아 방북 취재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의 실태를 취재한다는 목적으로 비자를 받아 방북 취재했습니다.

Q 책에 보면 리철 참사를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했던데 만났을 때 느낀 북한 고위공직자에 대한 느낌은?

리철은 김일성종합대 정치경제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해 주석궁에 초대되어 김일성 주석을 접견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일성대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90년대 중반에 해외자본 유치를 심사하는 정무원 대외경제위 산하 합영총국 심의처장으로 옮겼지요. 그때부터 리철 참사를 스무 번 가까이 만났는데, 제가 만나본 리철은 외화벌이를 가장 중시하는 경제-무역일꾼이었습니다. 기자인 내게도 기업인 소개를 요청할 정도였어요.

Q 박채서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리호남’은 대남공작기관인 정찰총국 소속의 공작원이자 박채서 씨의 ‘상부선’으로 돼 있던데?

리호남의 본명은 리철입니다. 리철은 90년대 중반부터는 ‘리철운’이라는 가명을, 2000년대 중반부터는 ‘리호남’이란 가명을 주로 썼습니다. 공작원인 박채서의 상대역(보위부 연락책)을 맡다 보니, 영화에선 대남공작에도 깊이 관여한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사실과는 다르지요. 그는 대외경제, 남북 경협 등 주로 경제와 무역에 관한 일을 했습니다. 북측 경제사절단으로 남한을 방문한 적도 있고,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는 경제인 회담에 대표로 참석했어요.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검찰은 국정원이 수사한 대로 그를 대남공작원으로 단정했지요. 그렇게 해야 공작원인 그에게 정보를 제공한 박 씨를 간첩 혐의로 기소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흑금성 사건으로 이미 신분이 드러난 그가 대남공작원이라는 게 말이 되지 않지요. 북한은 ‘대외경제’와 ‘대남공작’ 영역이 구분돼 있습니다. 그의 본업은 대외경제입니다. 리철은 지금도 중국 단둥(丹東)과 선양-베이징을 오가며 대외경제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저자를 ‘국정원 저격수’라는 별칭으로도 부르던데, 이런 별칭을 얻게 된 이유는?

93년 ‘시사저널’ 기자 시절 이른바 ‘남매간첩’ 사건을 처음 보도하면서 국정원(당시는 안기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때 정보기관은 누구나 취재할 수 있지만 아무도 취재하지 않는 언론의 ‘사각지대’이자 ‘틈새시장’이었어요. 그때부터 국정원 직원 40~50명 정도를 만나서 98년 2월 ‘안기부 조직표’를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그 때문에 안기부로부터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당해 ‘안기부 조직표’를 실은 ‘시사저널’은 희귀본이 되었어요. 인터넷에서도 그 기사는 검색이 안 되지요.

또 97년 대선 전에 보도한 북풍 공작 추적보도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 사실로 드러나 6급 직원부터 권영해 안기부장까지 줄줄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당시는 인터넷과 SNS가 없어서 2012년 대선 ‘댓글 공작’처럼 대서특필 되진 않았지만, 북한과 거래했다는 점에서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과 위법성의 정도로 치면 더 큰 사건이었지요. 이런 탐사보도를 계기로 국정원에서 ‘요주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디어오늘’과 <시크릿파일 국정원>(메디치미디어/ 2016년) 책을 낸 출판사에서 나를 ‘국정원 저격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단독 방북 취재시 해당화 식당 복무원들과 찍은 사진

Q 북한에서도 “김당 모르면 간첩”이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국정원 직원들도 모르는 조직표를 공개한 탓에 국정원에서 ‘김당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국정원 신입교육을 할 때도 ‘시사저널’의 ‘안기부 조직표 공개’ 기사를 내부 보안누설 사례로 예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기부 조직표’를 공개해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니 북한에서도 ‘안기부 조직표’에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취재차 방북했을 때 나한테 직접 그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북측 인사도 만났어요. 그래서 당신들이 내 머릿속에 있는 조직표를 꺼내갈 수는 있겠지만, 내가 그려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또 청와대 출입기자일 때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원을 방문해 간부들과 찍은 기념사진을 ‘오마이뉴스’에 공개해 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후배기자가 남북 민간행사 취재차 방북했는데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소개하니 국정원 간부 기념사진 유출 건을 거론하며 “북에서도 김당 기자 모르면 간첩”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Q 기사로 인해 국정원이 관리하는 호텔 안가와 서울 내곡동 본청 대공수사국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던데, 그때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이로 인해 보도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요?

1997년 10월에 이른바 ‘부부간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북한이 직파한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인데 고정 간첩을 검열하고, 김순권 박사의 ‘슈퍼 옥수수’ 종자를 입수하고, 386운동권 인사를 포섭하는 임무를 띠고 남파되었거든요. 그런데 울산에서 한 재야단체 인사한테 “북에서 왔다”고 순진하게 신분을 밝히고 포섭하려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서울로 압송된 강연정은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는 중에 독약 앰플을 깨물어 자살했습니다. 민감한 사안이지만 나는 대선 직전에 터진 간첩 사건이라서 정치적 이용을 우려해 ‘시사저널’에 그런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했지요.

그 때문에 안기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대공수사국 안가에서 보도경위에 대해 조사를 받았는데,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은 이들이 체포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무선 교신으로 이들이 복귀할 간첩선을 유인해 일망타진할 작전을 전개 중이었는데 내가 체포 및 자살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차질을 빚었다는 논리였어요. 그런데 내부에 알아보니, 자살한 강연정이 남편 최정남의 상부선이었습니다. 강연정은 교신이 안되고 최정남만 교신을 하니 북측에서 이를 수상히 여겨 간첩선을 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위축되지 않고 사실을 근거로 조사에 응했어요.

북풍 사건과 ‘이대성(안기부 전 해외실장) 파일’ 때문에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면, 권영해 부장이 직접 실행을 지시한 ‘아말렉 공작’(북풍 공작)에 대한 사법처리는 당시 서울 남부지검의 김오수 검사가 재미교포 윤홍준 씨에 대해 출입국 통보요청 조치를 취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정권 교체가 되었기에 그런 수사가 가능했지만, 검찰이 6급 직원부터 5급 팀장, 3급 처장, 2급 단장, 1급 실장, 안기부장까지 줄줄이 구속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 김오수 검사가 나에 대한 조사를 마치면서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고백했어요.

“내가 검사이지만 안기부 직원들을 구속해 조사하는 동안 내내 안기부 지하실에서 고문받는 악몽을 꿨다. 그런데 북풍 탐사보도와 ‘안기부 조직표’ 공개 기사를 보니 김 기자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비화를 나중에 꼭 책으로 쓰길 기대하겠다.”라고요.

그때 흑금성 비화를 책으로 쓸 것을 권유한 검사가 현재 김오수 법무무차관입니다.

- 사진 : 김당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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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김당

‘팩트’(fact)의 위대한 힘을 믿는 기자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 안전기획부 시기부터 국정원까지, 한국 정보기관의 폐쇄적인 조직 운영과 정보 독점의 폐해와 불법 행위를 추적해왔다. 20여 년 동안 정보기관을 탐사취재해온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정보기관에게 최고의 개혁은 민주적 정권에 의한 올바른 ‘국정원 사용하기’다. 실제로 국정원이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정권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정보기관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회복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제자리 찾기’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다시금 ‘권력의 눈과 귀’로 회귀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한편으로는 국정원이 부당한 비판에 직면할 때는 국정원의 편에 서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정권 안보가 아닌 국가와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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