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8.22 조회수 | 3,791

‘헬프엑스’로 유럽여행…김소담이 말하는 ‘모범답안을 찢는 삶’

서점에 가면 한 번씩 들러보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여행 서적이 모여있는 곳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나라와 도시를 다녀온 이들의 이야기로 넘쳐나는 그곳. 대충 눈으로 훑어만 봐도 곧바로 짐을 싸서 여행을 떠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중에서도 유럽여행과 관련한 책은 언제나 눈을 사로잡는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한 번쯤은’ ‘언젠가는’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마음 한쪽에서 늘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 때문일 터.

‘모모’라는 애칭을 가진 김소담의 책 <모모야 어디 가?>(정은문고/ 2018년)는 ‘헬프엑스로 살아보는 유럽 마을 생활기’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헬프엑스(HELPx)’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이들이 많을 터. 이 단어는 여느 검색창에 입력을 해봐도 정보를 구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김소담 저자 역시 지난 2016년, 지인의 소개로 처음 알게 되어 구글을 통해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고.

헬프엑스란 누군가의 일손이 필요한 사람(집주인)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여행자)가 만나 서로 노동과 숙식을 교환하는 형태의 새로운 여행 방법이다. 일반 가정집을 비롯해 농장이나 목장, 산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사는 이들을 만나 주 30시간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들로부터 숙소와 음식을 제공받는 형태인 것. 헬프엑스는 2001년, 영국의 IT 개발자 롭 프린스(Rob Prince)가 만든 것으로 도움을 뜻하는 ‘Help’와 교환을 뜻하는 ‘exchange’가 만나 형성된 이름이다.

“하루 5시간 일하며 즐긴 유럽여행, 나를 믿을 수 있는 기회였다”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외국에서 한 번도 살아본 경험이 없던 저자가 국내에서는 생소하기까지 한 여행방법으로 먼 유럽 땅에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평소에도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먼 곳에 있는 이들은 과연 무엇을 행복이라 여기며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가는지 궁금했다고. 그래서 선택한 여행방법이 바로 헬프엑스였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이 방식을 통해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를 여행할 수 있으며 하루 5시간가량의 노동을 제공하면 남는 시간은 자유롭게 쉬거나 여행을 하면서 보낼 수 있다고. 숙소와 식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일절 없다 보니 여행 경비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 그녀가 5개월 가까이 이탈리아, 영국, 독일, 스페인 등 4개국을 여행하면서 든 경비는 비행기 값을 제외하고 250만 원에 불과했다.

어린이 축제 의상 만들기, 유치원 일일 교사, 한국 요리하기, 장작 마련하고 난로에 불 피우기, 반려동물 돌보기, 아이와 공원에 가서 놀아주기, 텃밭 가꾸기, 손님맞이 준비, 잔디 깎기, 블루베리 덤불 제거하기, 페인트 칠하기······. 앞에서 나열한 것은 모두 저자가 유럽 현지에서 일했던 목록들이다. ‘내가 외국에 나가서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라는 의구심이 있는 이들에게 약간의 희망을 줄 수도 있는(?) 그런 목록이겠다. 그녀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회사원으로 살았을 때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헬프엑스로 여행을 하며 깨달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에서 지낼 때는 제게 어떤 능력이 있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잘 느끼지 못했어요.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한 외국계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게 됐는데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거든요. 업무 대부분을 영어로 처리했던 것은 물론이고 회사에서 끝내지 못한 일을 계속해서 집에 가져오느라 잠을 거의 못 잤을 정도로 삶의 긴장도가 높았죠. 마케팅을 잘하려면 주류의 관심사를 선도하고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따라가기가 벅찼어요. 동기들은 10년간 외국에서 살다 왔거나 영주권자인 경우가 많았던 반면 저는 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영어 실력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어서 버거웠죠. 제게 맞지 않는 큰 옷을 입고 황새를 쫓아가는 뱁새처럼 지냈다고 할까요. 

그래도 3년간 어떻게 잘 버텼는데 회사가 한국 사업을 축소한다는 결정을 한 바람에 결국 희망퇴직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해서 이직한 곳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였는데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을 지원하는 곳이에요. 원래 기업의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아서 가게 된 곳이었죠. 그런데 일반적인 사기업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청년들이 많이 모여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자유로웠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일하다 보니까 제가 그동안 너무 모범답안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퇴직을 하고 헬프엑스로 유럽에 떠나게 된 거예요.”  

“소통과정에서 언어의 벽 생겨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보여주는 게 중요해”

헬프엑스는 주 30시간, 그러니까 하루에 5시간 정도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서로의 사정과 여건에 따라 일의 내용, 노동 시간, 업무 강도 등은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다. 그녀 역시 여러 협의 과정을 거쳤다고. 특히 스페인에서 그러했다. 집주인이 돌을 옮겨 담을 쌓아달라는 일을 부탁했는데 그가 원했던 돌이 황소가 발로 차도 넘어지지 않을 법한 돌이었다고. 게다가 땅속에 묻혀있는 돌을 파서 손수레에 옮겨 쌓는 방식이었는데 그 일을 하고 나니 병이 나겠다 싶어 결국 협의를 통해 잡초제거 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헬프엑스를 하다 보면 집주인과의 소통과정에서 언어의 벽이 생기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인간관계에서 신뢰라는 것이 반드시 언어를 통해서만 형성되는 건 아니라는 말과 함께.

헬프엑스의 장점은 여행자에게 독립된 생활공간과 자유시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여행자는 일정한 노동 시간을 마치면 나머지 시간에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일반 가정집, 개인 농장인 경우가 많아 관광 비자로도 충분히 머물 수 있지만 규모가 큰 단체나 법인의 경우 노동 비자가 필요할 수도 있어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헬프엑스를 하기 위해서는 18세 이상이 되어야 하지만 그 위로 상한선은 없다. 다만 18세 미만의 경우 보호자가 동반해야 한다. 헬프엑스의 가입비는 3만 원 가량. 한번 가입비를 내면 2년간 어디든 자유롭게 헬프엑스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헬프엑스와 비슷한 것으로는 ‘우프(WWOOF)’가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주로 농장에서 몸을 쓰며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에어비엔비(Airbnb)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집주인이 여행자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현지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 반면, 헬프엑스는 집주인이 여행자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여행자가 현지에서 잘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여행자는 집주인이 쌓아온 경험과 사람 등을 공유할 수 있다. 저자 역시 현지의 대안학교에 초대받거나 마을의 축제에 참여하는 등 보통의 여행자라면 선뜻 경험하기 어려운 체험들을 할 수 있었다고. 물론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헬프엑스 역시 예측을 빗나가는 상황이 얼마든지 생기기 마련이다.

“두 번째로 만났던 제니네 집이 그랬어요. 제니는 미국에서 건너온 시인이었는데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산속에 살고 있었죠.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녀와의 소통이 어려웠어요. 언어가 안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소통 자체가 좀 막힌다는 느낌이랄까요. 제니는 작가라 그런지 예민한 부분이 많았고 집에서 지켜야 할 규율도 엄격했죠. 첫 번째 집에서 워낙 집주인과 살갑게 잘 지냈던 터라 더 비교되기도 했고요. 나중에는 사무적인 관계처럼 할 일만 해주고 지내려 했을 정도로 제니와의 갈등이 점점 고조됐어요.

다행히도 엄마 덕분에 잘 풀렸는데요. 이탈리아에서는 엄마랑 같이 지냈거든요. 엄마는 영어를 못 하시니까 그냥 부딪치더라고요. 공격적으로 나간다는 게 아니라 ‘설탕은 어디 있냐’ ‘불은 어떻게 켜냐’라고 하면서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하셨죠. 엄마가 철부지 같은 면이 있어서 작은 것 하나까지도 돌봐드려야 할 때도 있지만 또 그런 면이 상대를 무장해제 시킬 때가 많아요. 저는 이성적으로 판단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차갑게 돌아서는 편인데 엄마는 연륜이 있어서 그러신지 ‘그래도 마음을 내 봐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네가 더 힘들다’라고 하시면서 저를 달래주셨어요. 결국 나중에는 제니와 잘 풀려서 서로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고 정말 친하게 잘 지냈죠. 그래서 헬프엑스는 가족이나 부부, 친구와 함께 떠나면 좋은 점이 더 많아요. 낯선 곳에서 일하며 힘든 점을 공유하며 의지할 수 있거든요.”  

“’지금 무엇을 해야 가장 행복한지’를 계속 고민할 것”

이처럼 그녀는 헬프엑스로 여행을 하면서 평소라면 절대 못 하겠다고 생각했던 일도 스스럼없이 시도해볼 수 있었다. 자신을 뛰어넘는 그 과정을 통해 본인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게 됐다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자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생겨났다고. 여행을 다녀온 뒤 그녀는 외국계 기업의 전문직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과감히 내려놓고,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를 거쳐 동네 빵집의 바리스타로 일하며 그동안 애써 모아왔던 모범답안을 찢는 일에 집중했다.

결국 그녀에게 헬프엑스를 통한 여행 경험은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앞으로 그녀는 국내에서도 헬프엑스를 통해 여행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여행하고 싶다고. 무엇보다 어느 곳에 누구와 있든 ‘지금 무엇을 해야 가장 행복한지’를 계속 고민할 거라고 했다.

-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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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김소담

1988년생. 스물일곱 살 가을, ‘외국계 기업 커리어우먼’ 생활을 조신하게 하나 싶더니 인생의 열차가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해 지금은 영 희한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세상은 넓고 볼 건 많다’는 기치 아래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넓어지고 더 나아지는 사람이 되길 항상 꿈꾼다. ‘헬프엑스HELPx’라는, 세계와 만나는 새로운 여행 방식을 알게 되면서 언젠가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미래에는 나만의 새로운 가족을 꾸려, 그들의 손을 잡고 주인과 손님이 되어 여행하길 희망한다. 꼼지락꼼지락 요리하며 몸 쓰는 느낌이 좋다는 사실을 일하면서 살아보는 이 여행을 통해 처음 알았다. 내게 알맞은 몸 노동을 알기 위해 전기 없이 장작 패서 요리하는 적정기술 레스토랑 ‘자연의 부엌, 마음먹기’, 이웃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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