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8.17 조회수 | 12,033

공지영 “이를 악물고 악의 끝판왕까지 가려했다”

때로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현실의 잔혹함이 허구를 그리는 손끝을 따라가지 못할 때, 작가는 어떤 마음이 들까. 최근 새 장편소설 <해리>(해냄/ 2018년)를 출간한 공지영 작가는 북받치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30분간 펑펑 울었다고 전했다. 유난히 추웠던 작년 겨울의 어느 날, 대구에서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을까. 그동안은 저를 지배하는 감정이 분노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간에 대한 너무 큰 환멸이 몰려오다 보니 그 분노가 슬픔으로 바뀌더라고요.”

등단 30주년에 나온 공지영 장편소설 <해리>는 ‘광주인화학교’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던 소설 <도가니>를 연상시킨다. 이번에는 작가 자신이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던 ‘전주 봉침 여목사 사건’과 보호시설에서 9년간 309여 명이 사망했음에도 이를 운영하던 가톨릭 대구대교구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대구 희망원 사건’을 얼개로 삼았다. 작가는 선함을 가장하고 끊임없이 가면을 바꿔 쓰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악녀 해리와, 진보의 탈을 쓰고 그녀를 배후조종하는 가톨릭 신부 백진우의 악행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야만의 세상을 날 것으로 보여준다.

공지영 작가는 이 소설을 완성하는 데 꼬박 5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그 어떤 소설보다도 취재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선함을 가장한 악, 그래서 그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21세기 신종 악은 이 소설의 무대인 무진의 안개만큼이나 짙었다. 해가 지고 사물의 윤곽이 어두워지는 무렵에는 저 멀리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공지영 작가는 SNS를 통해 신종 사기가 판을 치고, 진보의 이름으로 선량한 이들이 이용당하는 우리 사회는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21세기 신종 악의 실체를 끝까지 몰아붙이고 싶었다

Q 등단 30주년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소회를 들려주신다면요?

세월이 너무 빠르네요. 30년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느낌은 한 1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제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20대 중반에 등단했는데, 이렇게 오래 소설을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그땐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무슨 깡으로 살았나 모르겠어요. 지금 들으면 안 믿겠지만 그땐 조금이라도 잘살까봐 두려워하던 시절이었어요. 다시 그런 세상이 올까요?

Q 이 책을 쓰는 데 5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소설을 구상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청소년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이 소설에도 나오는 ‘전주 여목사 봉침 사건’ 관련 인물인 가톨릭 신부에게 고소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죠. 고소 때문에 여기에 연루돼 있다 보니 악행이라는 게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악한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자 해서 방향을 선회했죠. 현대의 악한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파헤쳐보고 싶었어요.

지난날의 악당들은 직접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면, 지금 21세기 악한들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교묘하게 사기를 치고 돈을 빼앗잖아요. SNS 공간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완벽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세탁할 수 있어요. 또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거대한 악이 있고요. 개인의 타락은 시대의 타락을 전제로 해요. 혼자서는 이 일을 다 해낼 수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취재를 시작했어요.

Q 소설에서는 처음으로 SNS의 화면을 일러스트로 구성하는 ‘형식 실험’을 하셨는데요.

 

SNS라는 게 전 세계적으로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걸 문학이라는 장르에 도입해본 거예요. 위선과 사기의 도구로 SNS가 활용되는 세상을 독자들에게 실감나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선 활자로 하면 재미없겠더라고요. 출판사에서 디자인하는 분들이 애를 많이 쓰셨어요. 잘못하면 책의 모양새가 이상해지니까요. 여러 번 교정을 거치면서 좋은 느낌을 찾아갔어요. 저는 새로운 트렌드에 전향적이에요. 소설이라고 해서 늘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일 필요가 있나요?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어요.

Q <도가니>와 <해리>의 세계를 잇는 실험도 하셨어요.

네. <도가니>와 여러 부분이 겹쳐요. 우선 두 소설 모두 무진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도가니>의 주인공 서유진이 이 소설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도가니>의 주요 인물이었던 장 경사가 단역으로 잠깐 나오고요. 특별한 의도는 없어요. 그냥 혼자 상상하다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도해봤어요. 쓰다 보니 나중에 연작처럼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두운 부분을 그릴 때 무진이라는 도시를 배경을 하고, 이전에 나온 캐릭터를 활용하면서요. 이런 건 저만 누릴 수 있는 재미예요. 제가 지루한 걸 싫어하다 보니 이런 아이디어가 많아요. 근데 과유불급이 될까봐 많이 자제하고 있어요.(웃음)

Q 소설에 대한 생각이 조금 가벼워진 건가요?

경쾌해진 거죠. 이 소설도 굉장히 무거운 소설인 줄 아는데, 배꼽 잡았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나이가 들면서 인생이 꼭 진지한 상황이라고 해서 심각한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구나, 어이없는 중에도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게 인생이구나 이런 걸 알게 되니까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번 소설도 너무 심각하게 읽지만은 않으셨으면 해서 이전에 비해 제 나름으로는 유머 코드를 많이 넣었어요.

“진흙탕에서 죽어가는 사람 끌어당기면 내 몸에 진흙 묻는 건 당연한 일”

Q 소설 <해리>의 인물들은 ‘악의 끝판왕’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까지 악을 극한으로 몰아붙인 의도가 있을까요?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맨 처음엔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런데 하도 듣다 보니 나중에는 어련할까 이렇게 바뀌어요. 그런 데에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더 심한 걸 보면 화들짝 놀라요.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됐어요. 소설에도 썼지만, 이런 사람들이 사기를 어떻게 치느냐면 역으로 상식에 호소를 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다 거짓말이라고 하면, 그게 너무 심하니까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다 넘어가요. 그러면 이들은 선량한 사람의 상식을 뒤집어 또 사기를 쳐요. 마치 가면을 바꿔 쓰듯 천연덕스럽게 돌변하는 뻔뻔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 이를 악물고 악의 끝판왕까지 가자고 생각한 거예요.

Q 가톨릭의 부정과 부패를 다루고 있기도 한데요. 기대만큼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헤치진 못한 것 같아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걸 파헤치면 책 한 권이 따로 될 거 같아요. 소설에 보면 내부 고발자인 신부님이 한쪽 눈마저 실명하고 조직에서 밀려나 외진 곳에서 살잖아요. 비리를 파헤치기보다는 그런 개인의 비극을 보여줌으로써 거꾸로 거대한 부조리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실 이번에 제일 걱정이 됐던 건 가톨릭 신부들의 타락한 모습을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였어요. 신부님들이 룸살롱에 드나드는 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모습이거든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대답할 말을 준비하고 그랬는데, 사람들이 오히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서 제가 오히려 충격을 받았어요. 지난 10년 간 얼마나 타락했고 부패했으면 이렇게 만성이 됐을까. 우리 사회에 마지막 남아 있던 성역이 진보의 언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사기꾼들이 그것마저 이용하고 있고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악한들의 형태가 아주 교묘해져서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해요.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해요.

Q 소설에서 SNS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실제로 작가님도 SNS를 활발히 하고 계시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늘 집에 있으니까. 뭐랄까 나가서 만나긴 부담스럽고 완전히 혼자 있기엔 심심하고. 그래서 가끔 들여다보는 거예요. 제가 젊었을 때부터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이게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으니까... 저는 기사화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자꾸 기사화 되니까... 그래서 그 부분은 고민 중이에요.

얼마 전에도 정치적 이슈(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배우 김부선 씨의 ‘진실게임’ 사건)에 휘말려서 시끄러워졌는데 그렇다 한들 별 후회는 없어요. 제가 책을 백만 부를 판들,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것에 비하겠어요? 사회가 나를 30년 정도 먹여살려줬으면 내가 잠깐 손해를 보더라도 그런 정도의 구조 활동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진흙탕에서 죽어가는 사람 손을 끌어당기면 내 손에 진흙이 묻고, 그 사람을 끌어안으면 내 온몸에 진흙이 묻는 건 당연하잖아요. ‘난 살려만 놓으려고 했지 진흙물 들 줄은 몰랐어’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말이잖아요. 돌이 날아오면 같이 맞겠다고 했어요. 내가 선택한 거예요.

삶의 실체는 어두운 부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Q 어두운 사회 문제를 흡입력 있게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사랑받고 있는데요. 이런 작가로서의 능력은 어디서 기인한다고 생각하세요?

<의자놀이>(쌍용자동차 사태를 다룬 르포)를 시작할 때 민주노총에서 자료를 제 키높이만큼 받았어요. 근데 내가 아는 한글이 하나도 없어요. 내가 물어봤어요. 당신들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랬더니 웃어요. 제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자료를 아기에게 암죽 주듯이 씹고 또 씹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요. 어렵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딱딱한 문제들을 내가 굉장히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하늘로부터 받았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감사하면서 그 능력을 써요.

또 하나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다독을 했기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어떤 장면에서 어떤 걸 기대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졸지 않고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하는지에 대한 체득된 감이 있어요. 그걸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요. 우선 내가 1차 독자니까 책장이 빨리 넘어가서 이 책이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로 쓰고 있는지를 내 취향으로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전 원고를 한번 쓰면 수정하는 게 거의 없어요. 한 번 쓰면 거의 다 98퍼센트 가요.

예전에 소설가 장정일 씨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쉽게 읽히는 책은 쉽게 써서가 아니라 작가의 에너지가 엄청나게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 에너지를 받아서 책장이 넘어간다는 거죠. 제가 에너지가 많잖아요. 그 에너지를 밖에 돌아다니는 데 쓰지 않고, SNS 하는 데 아주 조금 쓰고,(웃음) 나머지는 전부 다 책을 쓰는 데 써요. 제 글이 쉽게 읽힌다면 그만큼 제 에너지가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Q 어두운 사회를 고발하는 이야기를 쓰다 보면 인간적으로 지칠 때도 있을텐데요.

지쳐요. 어두운 이야기를 쓰면 나도 지쳐요. 그런데도 뭐라고 할까, 삶이라는 것은 어두운 부분을 잘라서 빛을 비추었을 때 실체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단팥빵의 진수는 단팥이 들어 있는 가운데를 잘랐을 때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처럼요. 이런 악한 행실도 우리 인생의 아주 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사실은 모두 해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우리도 사실은 위선을 행하고, 자신의 악행을 덮은 적도 많고, 자신을 잘 보이기 위해 위해 거짓말 한 적도 많고요. 그런 우리 모습이 극대화된 게 해리예요. 삶을 생각해보는 시간은 그 어둠 속에서 더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소설가들이 재밌고 행복한 이야기는 잘 안 쓰고 심각하고 어둡고 슬픈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닐까요.

Q 앞에서 어두운 얘길 했으니 행복한 얘기도 여쭤보겠습니다. 요즘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인데요. 작가님은 언제 제일 행복을 느끼세요?

시골집 마루나 마당 같은 데 누워서 맥주 잔 옆에 놓고 책 보다가 졸 때요. 그때가 제일 행복해요. 거기다 바람까지 좀 불어주면 완전 짱이죠.

Q 마지막으로 이번 소설과 관련해 독자들께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천천히 읽어주세요. 이번 소설은 복선이 많아요. 스토리만 따라가며 빨리 읽다 보면 놓치기 쉬울 거예요. 천천히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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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공지영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1989년 첫 장편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뤄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다. 1994년에 [고등어][인간에 대한 예의]가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명실공히 독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한민국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착한 여자][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즐거운 나의 집][도가니][높고 푸른 사다리] 등이 있고,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별들의 들판],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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