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8.14 조회수 | 3,730

사회학자 김영선 “장시간 노동 사회는 민주주의 기회를 박탈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지 한달 여가 지났다. 근로자 모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보장되고 있을까. 장시간 근로가 근면과 성실, 성공의 기준이 되는 ‘근면 이데올로기’가 지속되는 한, 저녁이 있는 삶이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먼 이야기다.


2013년 출간한 <과로 사회>를 통해 한국의 장시간 노동 현실을 고발했던 사회학자 김영선이 5년 후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한빛비즈/ 2018년)로 돌아왔다. 장시간 노동의 현실은 왜 5년 만에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확장되었을까.

지난 8월 2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영선 교수는 이번 책에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노라 말했다. 그는 법이 바뀌어도 스스로 야근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근면 이데올로기’의 원인을 추적한다. 일그러진 노동자의 현실을 현장의 언어로 담았고, 그들을 자꾸만 과로하게 만드는 근본적 원인과 이를 해결할 대안들을 세분화하여 정리했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시행되어도 스스로 야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왜, 어떤 이유로 반복되고 있을까. 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김영선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과로 성과사회가 모두를 악인으로 만들고 죽음으로 내몬다”

Q <과로 사회>(2013) 이후 5년만입니다. 근로기준법이 개정됐지만 장시간 근로에 대한 인식 개선은 여전히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를 준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과로사회> 이후 갖게 된 질문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책을 준비하게 됐어요. 장시간 노동에 대한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든지, 인터뷰를 한다든지 현장의 언어들을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보통 장시간 노동을 이야기할 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를 가지고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심각성은 인지할 수 있지만 업종별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노동의 고통을 드러내는 표현들이 업계마다 다른데 그걸 더 충분히 드러냈어야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어요.

예를 들어 간호업계에서는 ‘태움’, 방송업계에서는 어제와 오늘이 구분 없이 스쳐지나간다는 의미로 ‘디졸브’란 용어를 쓰고, IT 업계에서는 ‘크런치 모드’라고 합니다. 직원들을 으깬다는 자조적인 표현들인 거죠. 반면에 이런 상황들을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고 여기는 태도들이 함께 뒤엉켜있는 모순적인 감정구조가 눈에 띄었어요. 이게 과로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의 상태가 아닌가 싶어서 각 업종별 은어들과 상황을 드러내는 작업을 많이 해보려고 했죠.

또 한 가지는 힘들어서 죽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죽음이 반복된다는 것은 분명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거든요. 과로사와 과로자살은 이 구조의 필연적 문제예요. 그래서 책 전반에 죽음의 문제를 앞에 내세우고 싶었어요. (기자 : 그래서 제목도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였군요) 그렇죠.

또 하나는 요즘 ‘일터 괴롭힘’이 많이 이야기되는데, 저는 그 가해자들 모두가 악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성과장치의 중층적인 고리들이 계속 쪼니까, 본인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찍어 눌러야 하는 ‘과로 성과사회’가 모두를 악인으로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죽음이 필연적으로 양산되는 사회인 거죠. 이런 현실을 들춰내고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Q 책을 보니 과로 사회를 악순환시키는 원인들이 참 다양해요. 현재 한국 사회의 노동 환경 안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일까요?

소득을 높이기 위해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저임금 상황도 문제고, 인력을 빠듯하게 설정해놓는 기업의 저비용 전략도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오래 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근면 이데올로기’의 문제죠. 이건 오랜 시간을 거쳐서 계속 버전업되고 있어요. 근면이나 성실을 계속해서 강조하죠. 그래야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물론 근면과 성실이 성공의 전제조건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이 성공의 요건은 아니죠. 근면 이데올로기가 여러가지로 버전업 되면서 재생산되는 것이 장시간 근로 문화를 계속해서 유지시키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이지만 시간 권리 교육이 전혀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릴 때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로 성실성을 교육 받잖아요. 그러나 ‘나의 시간’을 어떻게 주체적이고 온전하고 자유롭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은 거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좋은 제도가 생겨도 어릴 때부터 시간 권리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노동자 스스로가 어떤 선택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아요.

시장 전체로 보면 본사와 자회사, 원청과 하청, 본점과 가맹점 등 기업간 힘의 관계가 많이 벌어져 있는 것도 문제점 중 하나이고요. 저임금 장시간 노동, 무료노동이 이런 힘의 불균형에 의해 반복되고 있거든요. 우리가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 수평을 맞춰야 해요. 장시간 노동 시간 문제의 해결 방법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서도 필요하지만 공정거래법 같은 걸 개정해서 공정한 수익분배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합니다.

Q 산업시대를 거쳐 내면화된 ‘근면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말씀하셨는데요. 여전히 장시간 근무를 근면의 척도로 판단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이런 인식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를 시킬 수 있을까요.

제도 변화가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지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주 52시간 상한제는 그런 변화를 이끌어낼 만큼 강력한 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중장기적이기는 해도 동시에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시간 권리 교육을 의무화하는 거예요. 권리 교육, 권리 실천, 권리 체험 같은 것. 직업 체험이나 시간 관리 교육보다 시간 권리에 대한 교육이 절실합니다. 한 팀은 노측이 되고 한 팀은 사측이 되어서 토론하는 거예요.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사회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권리의 지점과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이런 교육이 전무한 상태에서는 장시간 노동은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시간 노동은 역사적, 규범적, 구조적 폭력…시간 권리 교육 의무화해야”

Q 책에 다양한 용어들이 등장합니다. 앞서 언급하신 ‘시간 권리’를 포함해 ‘시간의 민주화’, ‘시간 기근’ 등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시간 기근’이라는 건 우리의 존재 상태를 드러내는 말이거든요. ‘시간 부족’, ‘시간 압박’ 등 여러 표현이 있지만 너무나 메말라서 뭔가 싹을 틔울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기근’의 느낌이 현재 한국 사회 노동자들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라고 봅니다. 정서적 메마름 상태가 이 과로사회의 일반적인 상태이기도 하고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지향의 언어로 ‘시간의 민주화’가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되기도 합니다. 여유롭고 주체적인 시간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지향의 언어이기 때문에 ‘시간의 민주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이고 사회 조직적인 실천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겠죠. 제도 개선,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건 형식적 차원의 시간 민주화인 거예요. 제도와 현실의 격차가 큰 게 한국 사회거든요. 실질적인 차원에서 민주화를 위한 조직의 과감한 제도가 시행되어야 ‘시간 기근’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장시간 노동을 일컬어 구조적 폭력이자 규범적 폭력, 역사적 폭력이라고도 설명을 해두셨어요. 장시간 노동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는 걸 인지시켜주는 지점 같습니다. 각각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신다면요?

전방위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기 위한 교육이나 장치, 이데올로기, 폭력 등이 맞물린 결과가 오랜 상태로 켜켜이 축적되어 왔다는 의미로 ‘역사적 폭력’이라 말할 수 있죠. 폭력의 상태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둔감해져요.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시간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쟤는 별나게 왜 저래’, ‘그냥 다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별나게 여기고 규정하는 ‘규범적 폭력’이 있죠. 이런 상황에서는 마치 장시간 노동이 정상처럼 여겨지죠. 그리고 한 사람의 장시간 노동은 다른 사람의 일할 여지를 박탈하는 지점과도 맞물려 있어요. 오래 전부터 많이 제기되어 온 문제입니다. 그 지점에서 ‘구조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교수님께서는 <과로 사회>(2013)부터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2015),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등 끊임없이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과 근로환경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왔습니다. 최근의 한국 사회는 노동 환경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과정을 지나고 있다고 판단하시나요?

어떤 사람들은 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과거와 비교해 노동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굉장히 협소한 시각입니다. 노동 시간 단축의 역사를 놓고 보면 당연히 100년 전보다는 줄어들었으니까요. 다만 이 단축이 유의미한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한 상태라고 봐요. 국가별 차원에서 볼 때, 노동 시간이 줄어든 속도나 폭이 여느 국가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자유시간에 대한 기대와 열망에 비해 장시간 노동의 개선 상태는 굉장히 지체되어 있죠. 개선의 정도가 너무 느려요. 전보다 좋아졌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좋아짐의 낙수 효과’가 넓게 퍼지지 않은 상태라고 봐요. 노동자를 발목잡고 있는 시장 구조적 요인 등이 해결되지 않았고요. 지금 우리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요구할 게 아니라 주 35시간제를 요구해야 합니다. 노동 환경에 대한 기대와 개선의 간극이 너무 크고 그 개선의 속도가 너무 지체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노동 단축으로 과로사회 개선? 구조적 문제 해결 안 되면 무의미”

Q 장시간 노동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토대가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면서 미국의 정치사상가 더글라스 러미스가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으로 ‘자유시간’을 강조했던 것을 인용하기도 했어요. 장시간 노동 사회와 민주주의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설명해주신다면요?

민주주의는 어떤 절대적 상태를 의미한다기보다 사회 구성원이 사회에 발을 딛고 ‘좋은 사회’, ‘평등한 사회’, ‘행복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말하는 ‘워라밸’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 과정을 위해서는 시간과 정성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참여해야 하고 무엇이든 눈 여겨봐야 하고요. 그런데 장시간 노동 사회는 이런 시도의 기회를 애초에 박탈한다는 거죠. 시간을 들여야 문제를 풀어나가고 대화를 하고 지역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고 풀어갈텐데, 시간이 박탈된 상태에서는 일상적 차원에서 뭔가를 꾸리고 개선해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성가시게 여기게 돼요. ‘누군가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제껴버리게 된다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일상적으로 매일 물을 줘야 하는 작업이에요. 분노가 치밀어오른 상태에서 폭발해 한 번에 바꿔내는 방식보다, 분노가 차오르기 전에 매일 물을 주고 가꾸면서 유지해야만 건강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후퇴할 위험에 있어요. ‘시간 기근’ 등이 그렇죠. 장시간 노동 사회를 건강한 민주주의와 연결하는 건 아주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Q 책에 일본의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요. 흔히 일본을 ‘우리나라보다 10년 앞선 경제 모델’로 자주 언급해 왔는데요. 일본의 장시간 노동 근로의 행태 역시 우리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로사’라는 말도 일본에서 처음 생겨난 말이고요. 현재의 일본 노동 환경이 한국 노동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요?

일본의 전체적인 경제상황이나 노동시장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80년대에 일본에서 ‘과로사’라는 언어가 사회적으로 부상됐습니다. 그 즈음 과로자살 문제도 함께 두드러졌는데요. 일본의 산재 통계를 살펴보면 이미 1990년대부터 과로 자살의 산재 신청 추이가 과로사의 산재 신청 추이를 앞질렀고, 현재는 과로 자살의 산재 신청 추이가 2배 가량 더 많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이러한 경로와 딱 맞아 떨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수치로부터 한국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일본은 과로사와 과로자살에 대한 개념과 통계가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은 아직 법적인 개념과 실태조사에 대한 의무사항이 없어요. 한국은 2003년부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입니다. 그런데 자살의 원인이 업무 때문이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는 개념과 지표는 없죠. 그렇기 때문에 자살의 원인을 경제 빈곤이나 가족 갈등의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시켜버리는 상황이에요. 자살의 모든 원인이 과로는 아니지만,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자살의 원인이 제대로 진단되지 않는 것은 굉장한 문제죠. 이건 저 혼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고 노동 시민 단체에서 함께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지점이에요.

특히나 이 죽음이 반복되는 사업장이 있습니다. 만성화된 장시간 노동과 성과 압박이 지속되는 사업장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져요. 현재, 과로사를 인정하는 산재의 기준이 굉장히 높게 잡혀 있습니다. ‘발병 전 12주간 1주 평균 60시간 또는 4주간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로 돼있어요. 산재 기준이 너무 높으니 자살의 원인을 노동자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죠. ‘그 사람이 건강관리를 못 해서’, ‘정신이 나약해서’, ‘심신이 미약해서 죽은 거다’라고요. 기업은 개인의 문제를 법적으로 보장할 의무가 없다고 이야기를 해요. 이 악순환을 퇴출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과로사의 산재 기준을 낮추는 건 물론이고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비극적 사건을 보호하고 보상하는 방식도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Q 노동 환경의 변화를 거부하는 기업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신 부분도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더불어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셨는데 기업적 측면에서, 그리고 개인의 측면에서 ‘시간의 민주화’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개인적 차원에서 기대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누군가 ‘시간 권리’에 대해 용기를 낸다면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한 지지와 관용을 베풀어야 해요. 본인은 정시퇴근해도 괜찮고, 남이 정시퇴근할 때는 ‘회사에 뼈를 묻겠다며~’ 또는 ‘역시 신세대네~’ 같은 비아냥거림은 시간 권리를 무력화 시키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시간 권리 교육이 더더욱 중요해요. 공동의 이해가 밑바탕될 때 개인적으로도 시간 권리에 대해 더욱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회사에서도 업무 교육이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시간 관리 교육보다 시간 권리 교육을 앞서서 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겠고요. 물론 쉽지는 않겠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문제라는 건 기업들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모르는 게 아니에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요구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죠. 쉽게 말하면 법을 준수하는 것보다 법을 위반했을 때의 이득이 더 크다는 거거든요. 법을 위반해도 패널티가 크지 않으니까요. 이러니 기업들이 법을 준수할 수 있나요. 크게 문제되지 않을 걸 알고 있으니까 준수하는 척 하면서 일을 더 시키죠. ‘초장시간 노동사회’에서는 강력한 패널티가 가해져야 기업들도 위험성을 느끼고 개선의 움직임을 보일 겁니다.


Q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는 노동 환경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한 사람들 누구나 정독해야 할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을 가장 권하고 싶은 사람들 있으신가요?

이 책에 소개한 내용은 기업들도 다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기업 관계자분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청년들, 확대하면 청년 노동자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어요. 현재 우리의 존재 상태나 관계 방식, 감정 양식을 메마르게 하고 시간을 박탈하는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계발이나 치유로도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에 있어서 청년들이 더욱 공감해서 ‘시간의 민주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를 바라고요. 세대 인식이 함께 바뀐다면 좋겠지만 그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아요. (웃음) 젊은 세대가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지점을 인식하고 자기 목소리로 표출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해요.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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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영(북DB 기자)

취재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탐색 중입니다. iylim@interpark.com

작가소개

김영선

고려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이화여대 등에서 사회학, 노동과 여가문화 등을 강의하고, 노동(시간) 문제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대안연구모임인 노동시간센터에 참여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연동된 시간의 문화/정치에 관심이 많다. 최근 과로사/과로자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잃어버린 10일》 《과로 사회》 《정상 인간》을 쓰고,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민주노조, 노학연대 그리고 변혁》 《여가와 문화》를 함께 쓰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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