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7.27 조회수 | 4,276

소설가 이도우 “책방의 낭만 그린 신작…내겐 ‘로맨스’라기 보단 ‘판타지’”

바야흐로 ‘바깥은 여름’이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요즘 같은 날씨에는 많은 것이 유보된다. 우리들의 만남도 자꾸만 미뤄진다. “날씨 좀 시원해지면 만날까?”

하지만 이도우 작가는 말한다. 날씨가 좋은 날은 좀처럼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 그래서 맑아도 흐려도, 더워도 추워도 지금 만나야 한다고. 이도우 작가의 새 장편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 가겠어요>(시공사/ 2018년)는 서로에게 많이 미안한 이들이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세월이 흐른 후 비로소 용기를 내어 전하는 이야기다. 지금 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용기에 대해 작가는 특유의 다정다감한 문장과 깊이 있는 시선으로 전하고 있다.

2004년 발표한 이도우 작가의 첫 장편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시공사/ 2016년)은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이라는 문장으로 회자되며 25만 부가 팔린 롱 스테디셀러다. 라디오 작가 공진솔과 라디오 PD 이건의 ‘현실 연애’를 아릿하게 그려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신작 <날씨가 좋으면 찾아 가겠어요>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잇는 로맨스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는 방송사에서 강원도의 작은 독립 서점으로 옮겨졌다. ‘굿나잇책방’을 운영하는 은섭과 미술학원 강사인 고교 동창생 해원의 사랑, 이 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하며 해원을 키운 소설가 이모 명여와 엄마의 비밀, 책방을 드나드는 ‘굿나잇클럽’ 회원들의 따뜻한 사연이 눈 덮인 강원도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여름과 겨울만 있었던 계절에 관한 이야기

소설의 배경은 강원도지만 이도우 작가는 초고를 제주도에서 썼다. “또 제주도야?”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도우 작가에게 제주도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타는 그녀가 큰맘 먹고 떠난 곳이자, 그곳의 날씨와 생활이 소설을 완성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며칠을 집에 혼자 있어도 전혀 심심하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로 제가 고독과 외로움을 안 타는 성격이에요. 그런데 제주도에서 살았던 6개월 중 마지막 한두 달은 정말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제가 사는 원룸에서 2시간 정도 걸어가면 법환바다가 있었어요. 매일 그 바다에 있는 카페에서 원고를 쓰고 다시 두 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했는데 그 길이 제게는 마치 골고다의 언덕 같았어요. 관광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간 여행이 아니라 5년 간 쓰지 못했던 원고를 완성해야 했으니까요.”

이도우 작가는 ‘과연 마감을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썼다 지우고 다시 쓰면서 3천 장의 초고를 썼다. 하지만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처럼 소설의 답은 보이지 않았다. 5월에 제주도에 갔던 그녀는 11월 지친 몸을 이끌고 파주 집으로 돌아왔다. 작년 여름은 지독히도 더웠고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제주도는 11월에도 여름 같았다. 그런데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첫눈이 내렸다. 사라져버린 가을에 대한 상념에 잠겨 있을 즈음 '날씨가 좋으면 찾아 가겠어요'라는 제목이 포르르 떠올랐다. 가제였던 '밤의 벨롱'(벨롱은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의미의 제주도 방언)에서 제목이 바뀌는 순간, 3천 장을 써놓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주제가 선명해지니 무엇을 버리고 어떤 것을 보충해야 할지 답이 드러났다. 작업은 속도를 냈고, 제주도에 간 지 딱 1년째 되던 날 탈고를 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 가겠어요>는 은섭과 해원의 사랑 이야기이자, 해원과 엄마 그리고 이모 사이에 오랜 세월 쌓여 있던 오해와 갈등 그리고 용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귀포 바다로 내려가는 길목에 ‘시스터 필드’라는 아담한 빵집이 있었어요. 무화과 파칸 파이를 점심으로 사 먹곤 했죠. 간판 아래를 오갈 때마다 입속으로 ‘시스터 필드’라고 중얼거렸어요. 자매의 들판이라... 어느 날 어떤 이야기가 아지랑이처럼 떠올랐어요. 아마 제주도가 아니라 다른 곳에 갔더라면 미묘하게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 거예요. 이게 인연인 것 같아요.”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리는 건 너무 아프다"

2004년의 첫 장편 후 두 번째 소설 <잠옷을 입으렴>이 8년 만에 나왔고, 이번 소설은 6년의 기다림 끝에 완성됐다. 이도우 작가의 소설들은 한결같이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정작 실제의 그녀는 소심하고 예민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는 결벽증 때문에 힘들고 아프게 원고를 쓴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보니 공백 기간이 길어지고, 이번에도 6년 만에 소설을 완성해내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고 한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손으로 만져보는데도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마감을 못할 줄 알았거든요. 그러다가 독자들의 리뷰가 한두 개씩 올라오는 걸 보고 실감이 나면서 3일을 꼬박 앓아누웠어요. 다행히 반응이 나쁘진 않았어요. 오랜만에 돌아온 작가가 감이 떨어졌으면 어쩌나 불안해하면서 읽었는데 이 정도면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기다려주는 독자들이 있으니까 힘을 내야죠.”

아날로그적이고 빈티지한 감성이 녹아 있는 그녀의 소설들은 맑고 순하다. 갈등을 야기하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은 소설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고 하는데, 이도우 작가의 작품에선 세월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다. 나이 쉰의 작가가 어떻게 이토록 젊은이들의 사랑을 담백하게 그릴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저는 스스로 맑고 순수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제 속에 있는 어두운 면, 나쁜 면, 지저분한 면 때문에 제 자신이 혐오스러울 때가 많아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란 영화 보셨어요?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강박증인 ‘호더 증후군’ 환자에 관한 이야기예요. 저도 그런 강박이 있어요. 가족과 살고 있는 집에서는 예의상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글을 쓸 때 제 작업실을 보면 아마 저랑 아무도 놀아주지 않을 거예요. 저는 어쩌면 그게 제 본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을 제 손끝으로 그리는 건 너무 아파요. 제 안에 있는 여러가지 중에서 그나마 빈티지하고 서정적이고 따뜻한 것들을 꺼낼 때는 제가 좀 아프지 않게 쓸 수 있어요. 이렇게 어두운 면을 회피하다 보니 이쪽이 남은 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전 사회성 강한 소설 쓰는 분들을 동경하고 존경해요. 그분들은 글을 쓸 때 아프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그걸 극복해내는 것이거든요.

저는 나가서 촛불은 얼마든지 들 수 있는데, 그걸 제 작품으로 끌어오면 감당을 못해요. 사회가 작가에게 요구하는 시대정신에서 보면 저한테는 결격 사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것이 제 한계인데, 그 한계가 남아서 지금의 제가 됐는지도 몰라요. 빨강을 못 견디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 붉은 기운을 다 배제할 거예요. 그 그림에선 빨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겠죠. 하지만 빨강에 지친 사람이 가끔 와서 쉴 수는 있을 거예요. 제 소설은 그런 소설이 아닐까 해요.”

 

이 소설의 장르는 내게 '로맨스'가 아니라 ‘판타지’

이도우 작가는 이번 소설의 장르는 자신에게는 로맨스가 아니라 ‘판타지’라고 말한다. 작가의 오랜 꿈이기도 한 독립 서점이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데, 요즘 세상에서 소규모 영업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도 작은 책방의 순기능과 낭만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을 왜곡했다기보다는 순기능에 초점을 맞춘 게 자신의 입장에서는 판타지였다는 것. 이 작품을 쓰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도 이 부분이다. 독립 책방을 운영하는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가능하면 현실을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독립서점을 하시는 분들과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를 맺고 있는데, 제주도에 가서 글을 쓰고 올라온 사이에 문 닫은 곳이 많더라고요.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은 은섭이가 서점으로 쓰는 빈 기와집을 주인의 허락을 받아 월세를 안 내는 거예요. 중간에 월세를 내야 하니까 당장 스쿠터를 팔잖아요. 그게 현실이거든요. 어려운 줄 알면서도 서점을 시작해 힘들게 영업하시는 데 무지개색으로 채색되는 느낌은 싫었어요.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세 군데 독립 서점에서 추천사를 써주셨어요. 제 책에서 ‘키핑 제도’ 같은 아이디어도 얻었다고 말씀해주시고, ‘책방 영업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낭만적인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써주신 대목에서는 감동이 밀려왔죠.”

많은 작가들이 책을 사랑하듯이, 이도우 작가도 예외는 아니다. 대놓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쓴 이번 소설뿐만 아니라 이전의 두 소설에서도 책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몇 년 전 만든 인스타 아이디는 ‘bookbutler’(책집사)이고, 현재 준비 중인 다음 작품의 제목은 아예 '책집사'다.

“<책집사>는 머리 속에서 8년 정도 굴러다닌 이야기예요. 제목대로 ‘책을 모시는 사람’의 이야기를 3권짜리로 구상한 판타지 소설이에요. 이건 진짜 판타지예요.(웃음) 제가 스무 살 때부터 유럽을 그렇게 가고 싶었는데 고소공포증 때문에 한 번도 가보질 못했어요. 책을 쓰려면 유럽의 도서관과 서점들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필요해서 올해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꼭 가볼 계획입니다. 제가 5년마다 작품을 낸다고 해도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다 쓰려면 300년이 필요해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다 읽기 위해 함께 30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상한 적도 있어요.(웃음). 어차피 300년까지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저한테는 쓰는 일이 아주 절박해요.”

이도우 작가는 자신의 소설은 모호하게 경계에 서 있다고 말한다. 현실을 많이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너무 낭만적이고, 본격적인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심심하다. 그래서 ‘당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자신의 기준에 <날씨가 좋으면 찾아 가겠어요>는 판타지 소설이지만, 판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판타지적인 요소가 아무것도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현재 구상 중인 <책집사>도 자신에게는 판타지 장르지만, 나중에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이 ‘이도우 소설’이고, 그 자체로 좋아해주는 독자들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명품 거울이 있어요. 24시간 박물관 안에 걸려 있어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아무도 그 앞에 가서 서지 않으면 비치지 못하잖아요. 그거보다 명품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 걸려 있으면 비칠 수 있잖아요. 읽히지 않는 소설은 비치지 않는 거울과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뭔가를 비추고 싶어요.”

이도우 작가가 내민 거울 한 조각을 들어 비추어본다. 뽀드득 뽀드득 비누로 깨끗이 세수한 말간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하루 종일 세상에 찌들고 먼지로 더럽혀진 것들이 씻겨나간 얼굴. 나 자신으로 돌아가 나만의 아름다움을 가진 얼굴.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얼굴이 거기에 남았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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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이도우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구성작가,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라디오 작가 공진솔과 PD 이건의 쓸쓸하고 저릿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종사촌 자매 수안과 둘녕의 아프고 아름다운 성장과 추억을 그린 소설 [잠옷을 입으렴]을 썼다. e-mail_ snerpk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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