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7.12 조회수 | 5,368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미워보이던 트럼프 요새 너무 귀여워”

 

일생 모신 보스가 자그만치 대통령과 회장님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증권회사 홍보실에서 기업의 사사(社史) 작성을 떠맡게 된 바람에 인생 항로가 바뀌었다. 그 후로 대우그룹에서 김우중 회장의 연설문을 썼고,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는 연설 비서관으로 일했다. 혹독한 글쓰기 훈련을 거치는 가운데 해가 28번 바뀌었다. 예사롭지 않은 보스를 두었던 탓에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가 수북이 쌓였다. 청와대 생활을 마치고 과거의 글쓰기 경험을 정리해 <회장님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 2014년)란 책을 썼다. 이중 <대통령의 글쓰기>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맞아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생 후반전의 휘슬이 울리고 반전이 시작됐다. 전반전의 삶이 빛을 반사하는 달과 같았다면 후반전은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이다. 대통령과 회장님이라는 거대한 타이틀 아래 가려 있던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올리기로 결심한 것. 그렇게 지난 6월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표지에 내건 <강원국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 2018년)가 출간됐다. 보통 사람들이 글을 쓸 때 부딪힐 수 있는 빈약한 어휘력, 마감 시간, 글 구조 짜기와 같은 40가지 고민을 해결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준 책이다.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 카페에서 만난 강원국은 권위보다 재미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으로부터의 관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을 희화해 일컫는 신조어인 ‘관종(관심종자)’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진지하기보단 조금 가볍게, 낮은 진입 장벽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을 글쓰기의 놀이판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28년간 남의 생각을 성실하게 탐험하고 나온 그는 이제 자신만의 리듬으로 춤을 추고 있다.

 

 

Q 한 인터뷰에서 유시민 작가를 라이벌로 지목했다.

 

우연의 장난인지 몰라도 내 책 <강원국의 글쓰기>가 유시민 선배가 쓴 <역사의 역사>와 발행일, 가격, 쪽수까지 같더라. 어쩌면 저자 사진을 박아 넣은 띠지 디자인까지 흡사하다. 이건, 같이 잘 팔릴 우리 책의 운명을 말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웃음)

 

Q 노파심에 던지는 질문이다. 혹시 유시민 작가와 개인적 친분이 있나?(웃음)

 

나는 물론 그 분을 잘 안다. 그런데 그 분이 나를 아는 지는 잘 모르겠다. 참여정부 때 대통령 지시로 유시민 선배에게 글을 부탁한 적이 있긴 하다. 헌데 그 분이 당시 연락한 연설 비서관과 나를 연결하고 있는 지는 확실치 않다. 이번에 유시민 작가에게 “존경을 실어”라는 메시지가 적힌 책을 보냈더니 “우정에 담아”라는 메시지가 적힌 <역사의 역사> 책을 보내왔더라.

 

Q 유시민 작가를 정면으로 지목해서 몹시 막역한 사이인가 했다.

 

유시민 선배는 그야말로 전국구다. 나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이제 따라잡을 거다. 그런 목표가 있다는 것 자체로 좋은 거다.

 

Q 유시민 작가도 글쓰기 책을 냈다.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 책이 유시민 작가의 책보다 뛰어난 점을 하나만 말해준다면?

 

유시민 선배처럼 원래 글을 잘 쓰던 사람들은 못 쓰는 사람의 생태나 어려움을 잘 모른다. 그에 비해 나는 남에게 맞추는 글을 써왔고, 혹독한 첨삭의 과정을 거치면서 글 쓰는 방법을 학습했다. 그러니 글을 잘 못 쓰는 보통 사람과 역지사지가 된다.

 

Q 그야말로 당대의 글쟁이들로부터 글을 배우고 함께 글을 썼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큰 행운이다.

 

운의 연속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의 글쓰기>가 주목을 받은 것도 그렇고 운이 좋았다. 이번에 유시민 작가의 책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 걸 보면, 유 작가와 나는 이대로 같이 갈 것이다. 우리는 같이 가고 있다.(웃음)

 

 

“남 눈치 보는 ‘관종’의 태도 글 쓰는 데 큰 도움 돼”

 

Q 책을 읽어보면 어렸을 적부터 이미 글쓰기 실력이 출중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에 관해 쓴 글을 교장선생님이 읽고 운 적도 있다고?

 

그 글의 첫 문장이 ‘엄마가 돌아가셨다’인지 ‘엄마가 죽었다’인지 그랬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첫 문장과 같았다.

 

Q 까뮈의 <이방인>을 읽기 전에 그 문장을 썼나?

 

초등학교 3학년이 <이방인>을 읽었겠나? 이미 감각을 타고난 거다.(웃음) 글의 시작, 첫 문장을 낚아채는 힘이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Q 쉬는 시간이면 주변에 친구들이 이야기를 들으러 몰려들었다고?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 눈치를 잘 보는 아이였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남에게 맞춘다는 거다. 남에게 칭찬받고 싶어하고 관심을 가져주면 좋아하는 태도를 어릴 땐 ‘눈치본다’고 하고, 크면 ‘관종’이라고 한다. 눈치를 보는 관종의 태도가 글 쓰는데 도움이 된다.

 

Q 청와대 시절엔 대통령의 입장에 ‘빙의’해서 연설문을 쓸 정도였다. 그만큼 본인 이름이나 정체성보다는 앞에 선 이의 존재가 더 중요했다. 자신의 안에 숨겨진 ‘관종’으로서의 욕망을 깨달은 것은 언제였나?

 

빙의는 눈치의 완결판이다. 내가 없는 상태로 거의 다른 사람 안에 들어가서 눈치를 보는 거라 해야겠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관종인지 몰랐다. 그런데 요즘같이 살아보니까 남에게 관심 받고 남이 날 알아보고, 싸인해 달라고 하는 게 너무 좋다. 그러면서 깨닫게 됐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관종이라고 생각한다. 글로 자기를 내보이려는 사람이다.

 

Q <대통령의 글쓰기>로 얻은 인기가 정체성을 발견한 계기가 되었다.

 

대다수 사람의 마음 속에 관심 받고 싶은 욕망이 다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들 어떤 계기에 투명인간의 삶에서 ‘관종’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관종’은 고상하게 얘기하면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과거에 고스트라이터 생활을 해서 그 반작용으로 더 그런지도 모른다.

 

 

“50대 이후는 ‘쓰기’, ‘말하기’의 삶...명함 없는 시기 내 정체성 보여주는 게 글”

 

Q 글쓰기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 관심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되면서 누구나 글을 써야 하는 시대가 왔다. 옛날에는 60세까지 종신 고용도 됐고 수명도 길어봤자 80세까지 살았다. 그땐 자아가 없어도 됐다. 은퇴 후 길어야 10~20년 더 살면 되니까. 지금은 50세에 직장생활을 끝내고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다. 50세 이전까지는 어디 다니는 사람으로 살고, 그게 자기 정체성이 된다. 명함을 뺏기고 나면 남이 “누구세요?” 물었을 때 내가 누군지 얘기 할 것이 없다. 글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 내 감정이 모두 담기는데 그게 나인 거다. 글을 씀으로써 내 정체성을 확인하고 남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

 

Q ‘인생 2막’에 글쓰기가 값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직장생활은 읽기, 듣기 생활이다. 말 잘 듣고 시키는 걸 잘 하면 된다. 하지만 직장 생활 이후는 말하기, 쓰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글쓰기 책을 부르고 있다. 다들 책 쓰기를 목표로 긴 호흡의 글을 썼으면 좋겠다.

 

Q 이 책을 쓰기 위해 두 달의 시간을 매진했다고. 글을 쓸 때 특유의 습관이 있나?

 

이 책 쓸 때 일주일 중 하루를 온통 글만 쓰는 날로 정했다. 글 쓰는 날은 아침에 편의점에서 막걸리 캔을 하나 사서 마신다. 완전히 취한 상태는 아니고 자기 검열이 없는 상태가 될 정도로만 마신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글 쓸 때만 사용하는 안경을 쓴다. 그러면 글쓰기 모드로 진입이 된다. 전장에 나가면서 갑옷을 입는 병사가 된 느낌이 든다.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올라온다. ‘나는 그렇게 하면 써진다’는 생각 때문에 써지는 것 같다. 프로는 그런 게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Q 책을 준비하면서 100권 가량의 글쓰기 책을 탐독했다고. 이중 어떤 글쓰기 책이 가장 볼만했나?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과 <쓰기의 말들>이 기억에 남는다. 보통 글쓰기 책과는 다르다. 보통은 글 쓰는 기술을 알려주지만 그 분은 본능적으로 쓰고 싶은 욕구를 건드리는 것 같다.

 

Q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보나?

 

독자를 위하는 마음, 독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 그게 절실하면 글도 잘 쓸 수 있다.

 

Q 책에서 좋은 한국어 문장을 20가지만 외워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어떤 문장을 외우면 좋을까?

 

고등학교 교과서만 봐도 좋은 문장이 많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같은 문장. 그런 문장 안에 문형이 다 들어가 있다. 문장을 외우면 다양한 문장 형식을 뇌가 학습하고 글 쓸 때도 써먹을 수 있다. 영어 공부 할 때 문장 외우는 게 최고이듯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미워보이던 트럼프 대통령, 요새 너무 귀여워...말과 글도 삶으로 평가 받는다”

 

Q 누군가의 뒤에서 중압감을 느끼며 쓸 때와 지금 자신의 이름으로 하는 글쓰기를 비교하면 어떤가?

 

그때에 비하면 지금 스트레스가 덜한 편이다. 다만 그때는 그 분 뒤에 숨었고 그 분만 생각하면 됐는데 지금은 내 이름을 달고 나를 보여주는 거니까 여기서 느껴지는 중압감은 있다.

 

Q 청와대 일을 그만둔 후에도 국경일 중계 방송은 안 본다고 했다. 아직도 그런가?

 

요즘엔 대통령이 워낙에 너무 잘 하고 있고, 괜히 방송을 보면 ‘나는 왜 이렇게 못했나’ 하는 기분이 들까봐 안 보게 된다.

 

Q 요새 전세계가 주목하는 두 명의 지도자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이들의 연설도 본 적이 있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서 초등학교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은 길게 얘기하지 않고 간결하고 쉽게 핵심만 얘기하잖나. 그가 처음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되게 미웠다. 북한과 미국이 전쟁 불사 직전까지 갔을 때 트위터에 올린 메시지를 보면 화가 났다. 그런데 요즘에 보면 너무 귀엽다. 그걸 보면서 ‘말이나 글이나 그 사람이 중요한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말과 글이 평가를 받는다. 글을 잘 쓰려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 한 마디 한 마디가 좋게 들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같은 말을 한 걸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특수한 지도자 훈련을 받은 건지, 아니면 김일성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진짜 머리가 좋고 똑똑하다”고 하셨다. 노무현 대통령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판단력도 좋고 영민하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것 같다.

 

Q <회장님의 글쓰기>,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그 이후엔 어떤 글쓰기 책이 나올지 궁금하다. 일단, 계속 글쓰기 책을 쓰는 건가?

 

출판사에서는 인문학의 다른 쪽으로 외연을 넓혀서 책을 내보자고 했지만 나는 글쓰기 책을 쓸 계획이다. 스티븐 킹, 이오덕처럼 글쓰기 책 하면 우선으로 떠오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지금은 아마 유시민 선생이 떠오를 거다. 그것부터 바꾸어야 한다.(웃음) 이제는 타깃을 정해서 각론을 써나가려고 한다. 다음 목표는 <공무원의 글쓰기>다. 요새는 공무원도 승진 시험을 글쓰기로 한다더라. 이밖에 SNS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이나 논술 시험을 대비하는 고등학생처럼 글쓰기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을 하나하나 써나갈 예정이다.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혜진(북DB 기자)

1983년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kiwi@interpark.com

작가소개

강원국

남의 글을 쓰다가 남의 회사를 다니다가 우연히 출판사에 들어갔고, 난데없이 베스트셀러 저자가 돼서 지금은 저자 겸 강연자로 살고 있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쓴 건 아니었다. 30대 중반까지는 증권회사 홍보실 사원으로 열심히 술 약속을 따라다녔다. 대우그룹 회장의 연설을 쓰다가 김대중 정부 때 연설비서관실로 옮겼다. 그리고 운명처럼 노무현 대통령 연설비서관을 맡았다. 지금도 책에 서명을 할 때에는 ‘김대중처럼 노무현같이’를 즐겨 쓴다. 누구처럼 누구같이 살고 싶었으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고, 지금은 그냥 글 쓰는 사람 강원국으로 살고 있다. 걸출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 보니 평생 신경성 위염을 달고 지냈다. 글쓰기로 지식 자작농을 이룬 뒤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어떻게 써야 창피는 안 당할지, 어떻...

30대 백만장자 롭 무어 “스티브 잡스든 ‘노 잡(no job)’이든 출발점은 같다” 2018.07.13
요조 “책방주인 4년 차, 영업비밀을 공개하자면” 2018.07.09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