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6.29 조회수 | 1,434

<경애의 마음> 김금희 "나오는 대로 썼더니, 어느새 이야기가 완성돼 있더라"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 내 마음 나조차 모르는 마음. 하물며 헤아릴 길 없는 타인의 마음.

그동안 여러 단편을 통해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연민으로 ‘마음’을 가만히 응시해 온 김금희 작가가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창비/2018)에서 마음 먹고 ‘마음’에 대해 들여다보았다.

<경애의 마음>은 사고로 소중한 친구를 잃고 마음 한 구석이 부스러진 채 살아가던 경애와 상수가 서로를 통해 ‘경애(敬愛)’의 마음을 배워가며 단단해져가는 과정을 그린다. 김금희 작가는 특유의 섬세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이들의 삶을 곡진하게 담아낸다. 한 사람을 경애하는 마음이란 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며, 상처받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경애의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김금희의 단편들은 흡입력 있지만 쉽게만 읽히지는 않는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서사나 스토리를 따라가기보다는 어떤 상황에 처한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세밀하게 파고드는데, 단편이라는 장르의 제약 속에서 함축된 의미를 독자 스스로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해 슬픔, 설렘, 외로움, 그리움 같은 마음의 결에 대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친 <경애의 마음>은 한결 친절하고, 장편소설만이 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등단 10년째에 접어든 김금희 작가는 소설가의 삶을 “골방과 광장을 오가는 일”에 비유했다. 첫 장편을 완성하느라 1년 6개월 동안 골방에 갇혀 있다가 비로소 독자가 있는 광장으로 나온 김금희 작가를 지난 6월 22일, 서울 서교동 카페창비에서 만났다. 

“등장인물 내 맘대로 안 돼… 소설은 그들이 이뤄낸 것”

Q 우선 등단 10년 만에 첫 장편을 내놓은 소감이 궁금합니다.

첫 장편이다 보니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라서 굉장히 어려웠어요. 최종 원고를 넘기고도 이 상태가 완성이 된 건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이틀 동안 잠을 못 자다가 편집자로부터 괜찮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어요. 이번 소설은 작년 한 해 동안 계간 <창비>에 연재했던 내용과 후속 작업을 통해 완성했는데, 연재할 당시엔 펑크를 내면 안 된다는 부담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어요. 마음이 안정돼야 글이 나오는데 불안하고 긴장이 되니까... 그 불안을 다스리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1년 동안 철마다 보약을 먹으면서 버텼어요.(웃음)

Q 그동안 슬픔, 설렘, 외로움, 그리움 같은 마음의 결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소설을 써왔는데요. 이번에는 아예 제목에 ‘마음’을 넣고 본격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제가 그런 감정들을 다루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어떤 장면을 본 나의 마음이나 감정 상태가 언어적으로 잘 전달됐을 때 소설가로서의 만족감이 커지는 걸 느껴요. 첫 장편이니까, 이야기를 잘 완성할 수 있으려면 제가 가장 즐겁고 좋아하는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소설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긴 했지만 파괴되진 않았습니다" 같은 명문장 탄생의 비밀이 있을까요?

저는 플롯을 다 짜고 나서 글을 쓰는 스타일은 아니라, 미리 구상했던 문장은 아니에요. 장면을 쓰다가 이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 해서 나온, 일종의 얻어걸린 문장이라고 할까요.(웃음) 살다가 부담스러운 감정이 들거나 상처가 되는 마음이 생기면 ‘이걸 없앨 수 있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없애면 안 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무엇을 없앤다는 건 마음의 흐름에 둔감해지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거부하는 건데,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사소한 한두 가지야 괜찮지만, 그게 중요한 일일수록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경험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걸 감당하는 마음을 소설에 넣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저 문장들이 떠올랐어요.

Q 외피는 남녀 간의 애틋한 연애 이야기지만 해고와 파업, 노동 윤리 등 묵직한 사회적 주제와 부모 세대와의 갈등, 살아 남은 자의 슬픔 등 개인적 아픔이 다층적으로 얽혀 있는 소설입니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을 다루기도 했고요. 많은 이야기들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글이 마음먹은 대로 써지는 게 아니라 그냥 나오는 거더라고요. 쓰는 과정에서 저도 기획을 해야 할 거 같고, 이렇게 쓰면 안 될 거 같아 멈추기도 했는데, 그렇게 하면 글이 아예 안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나오는 대로 썼어요. 끝나고 보니 이런 이야기가 완성돼 있었어요.

Q 상처를 가만히 응시하던 이전 소설의 인물들에 비해서, 경애와 상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상처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부당함에 맞서며 타인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위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인데, 사실 초반에 설정했던 인물들은 이 정도의 적극성을 갖고 있진 않았어요. 그런데 쓰는 과정에서 이들이 그냥 그렇게 이뤄냈어요. 굉장히 신기했어요. 단편은 제가 예정한 결말대로 가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전혀 제 말을 듣지 않더라고요. 당황했는데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걸 제어하려고 하면 안 써져요. 그걸 포기해야 써지는 느낌이었어요.

제 소설의 인물들이 이전에 비해 좀 더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했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분위기도 작용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연재를 시작할 무렵에 겪었던 광장의 촛불과 그 이후 변화의 과정들이 제가 소설을 쓸 때 큰 힘이 되었어요. 이 소설이 그런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는 건 아니지만, 저 또한 이 사회의 시민이기 때문에 저를 둘러싼 세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 사회를 불편하게 하는 인물들 보며 희망 느낀다"

Q 경애와 상수처럼 무리에서 떨어져 주변으로 밀려나 있지만, 자신만의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일관되게 그리고 있는데요. 이런 인물들에게 특별히 애정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기존 질서에 약간 불화하는 인물들인데, 제가 그런 면이 좀 있어요. 왜 불화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내 안의 어떤 질서들과 상충되는 지점이 있어서거든요. 그러면 그 불화에 대해 굽히질 않아요. 저는 자기 질서에 충실하고 그걸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순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인물들에게 자연스럽게 애정을 갖게 되고요.

사실 그런 인물들은 이 사회라는 맥락 안에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죠. 하지만 작가로서는 그런 인물들에게 흥미를 느끼고 일말의 희망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는 편이에요. 다만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런 마음의 상태를 모를 뿐이에요. 소설이란 장르는 어떤 인물을 내밀하게 드러내기 너무 좋으니까, 소설가인 제가 할 수 있는 건 현실에 있는 그런 맥락들을 가져와서 잘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현실로 돌아가서 그런 인물을 바라볼 때 그에게 고유의 세계와 질서가 있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거, 그것이 제가 이런 인물들을 그리는 게 목적이에요. 더 나아가 내 안의 불화하는 마음이 불순한 것은 아니라는 위안이나 안도감, 나도 내 안의 질서를 지키며 나대로 살아도 되겠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

Q 현실에선 이런 사람들이 비하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살고 있고요.

자신을 꺾고 순응한 채 살아가지만 그 마음이 아예 없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미뤄둘 뿐이지. 아마 일상을 살아가는 24시간 중 적어도 몇 시간쯤은 그런 나로 돌아와 살아가는데, 그런 것을 드러낼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소설에서는 상수가 회사 생활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밤의 시간으로 돌아가면 연애 상담 SNS를 통해 사랑에 상처받은 여성들을 위로하며 자기의 세계를 마음껏 펼치고 원하는 방식의 연대를 이뤄나가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만의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Q “마음이 끝난 게 아니라면 끝난 게 아니”라면서 경애는 구 남친인 산주를 잊지 못합니다. 그런 ‘경애의 마음’이 조금은 답답하게도 느껴지는데, 경애가 그렇게까지 산주를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경애는 어떤 사건들로 인해 계속 고립된 위치에서 버티며 살고 있잖아요. 그런 조건이라면 자기가 가둬두었던 과거의 기억이나 사람에게 좀 더 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현재의 조건이 열리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주변에 조력자들이 있을 때 과거에서 현재로 자리를 이동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아요.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경애가 과거에 연연하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좀 세밀하게 그렸어요. 사람이 상처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현재의 조건이 굉장히 중요해요. 고립감 때문에 현재 자기를 흔드는 감정들이 아주 단순화돼 있는 경애에게는 여러 결의 감정을 두었던 산주와의 기억이 굉장한 힘이에요. 그걸 놓치고 싶지 않은 거죠.

“등단 10년… 소설가는 광장과 골방 왔다 갔다 하는 존재”

Q 소설은 분명히 비참한 생의 일면을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읽다보면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되고, 주인공들에게 강하게 감정이입이 됩니다. 이게 김금희 표 소설의 힘일까요?

공을 들여 전달을 하면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당연히 사랑받는 인물들을 그리는 게 소설의 작업은 아니에요. 밉고, 답답한 면도 있고, 이해가 잘 안 가는 결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인물을 그려요. 사실 우리가 그렇잖아요. 우리란 사람들이 모두 그런 면을 갖고 있잖아요. 그렇게 그리면, 어떤 인물을 가지고 오든 세밀하게 그려내면 독자들이 그 결을 받아서 읽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현실에서 어떤 사람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있으면 그걸 소설에 가져와서 써요. 여러 가지를 한 인물에게 입혀주죠. 소설에서 인물의 톤을 정할 때 내가 느꼈던 그 정도만 그리려고 해요. 현실이 그러한 거니까요. 너무 과장하고 싶지 않아요. 소설적으로 캐릭터를 너무 강하고 특이하게 설정해 얻는 효과에 회의적인 편이랄까요. 그래서 제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것 같고 진짜 인물 같다고 느낀다면, 제가 그 정도의 인물을 그리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봐도 될 거 같아요. 소설에서의 인물이란 대체로 그런 느낌을 줘야 된다고 믿고 있어요.

Q 2009년 등단해 10년이 됐어요. 소설가의 삶이란 어떤 거라고 생각하나요?

광장과 골방이라는 두 공간을 왔다 갔다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글을 쓸 때는 어느 정도의 고립이 너무 필요해요. 이 작품 쓸 때도 오랫동안 고립한 채로 있었고요. 하지만 이 결과물을 들고 결국에는 광장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읽어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어요. 이 두 공간을 얼마나 적절하게 오가면서 작업을 하는가가 중요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가로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소설의 틀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다고 느껴요. 그러면서도 좀 더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요즘은 제 소설에 대한 피드백을 바로 바로 접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서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도 하고요. 이제 세 권째 책을 내니까 이 일에 대해 앞뒤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아요.

Q 연재할 당시 소설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는 찬사가 이어졌는데요. 소설의 궁극적 목표가 위로인가요?

처음에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한국의 작가들이 제게 위안을 주었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작업에서 위로나 위안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떤 ‘결’에 대해서는 우울하고 매섭다는 말들도 해주시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살자’라는 거예요. 이제 살아보자. 힘들지만 살아보자. 이런 느낌 정도는 주고 싶어요. 그것이 아주 풍부한 위로나 위안은 아닐지라도, 뭔가 살아보자는 느낌이 왔다면 제가 바란 게 맞아요. 저는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기에게 있었던 좋은 기억이든, 힘든 기억이든 떠오르면 떠오른 대로 마음껏 느꼈으면 좋겠어요. 책을 덮고 났을 때 그 기억과 환기의 힘으로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된다면, 제가 첫 장편을 쓴 목적은 다 이룬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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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김금희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했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너무 한낮의 연애]가 있다. 문학동네젊은작가상,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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