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6.05 조회수 | 4,061

비연애칼럼니스트 이진송 “가부장제 속 엄마, 또 다른 타인으로 이해해보길”

 

오랜만에 친구네 집을 찾아갔다. 친구가 최근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에 병문안을 간 이후로는 처음 보는 거라 축하의 의미를 담은 선물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책 한 권과 직접 만든 딸기잼, 그리고 수박 한 통을 들고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친구는 내가 찾아온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고,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었다. 물론 결혼 전에 비교하면 체중이 불어난 것은 물론이고, 임신과 출산으로 허리 디스크가 발병해 고생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러한 수고로움보다는 아이의 탄생에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게 친구와 만난 후 돌아오는 길, 친구에게서 딸기잼을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이런 문자가 도착했다. “친구야, 넌 이제 결혼만 하면 돼”

 

딸기를 사와 몇 시간 동안 손질을 하고 냄비에 끓였던 수고로움이 결국 결혼으로 귀결되다니! 그저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했던 걸까. 결혼하기에 일정 수준의 조건을 갖췄다고 말하는 것을 칭찬으로 생각했던 걸까. 어른들이 툭툭 내뱉는 결혼 이야기에 “일단 남자부터 소개해주고 그런 말씀을 해라”고 응수해왔는데, 오랜 친구의 결혼 공격(?)에는 무어라 맞대응을 해야 할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걱정해주는 친구의 오지랖 넓은 그 마음은 무엇인지 잘 알겠다만 결국 이런 문자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야, 앞으로 결혼 얘기 또 꺼내면 딸기잼 같은 건 없을 줄 알아라” 친구는 아직 답장이 없다.

 

 

“자존감 높거나 자유로운 사람이었다면 이런 책 안 썼을 것”

 

최근 출간된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이진송/ 프런티어/ 2018년)는 여자라서 ‘하면 안 된다’와 ‘해야 한다’ 사이에서 흔들리는 독자에게 건네는 책이다. 그간 독립잡지 ‘계간 홀로’를 펴내며 페미니스트를 자처해온 이진송 저자.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영화와 소설, 드라마, 음악 등의 대중문화를 통해 그동안 문화 권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여성을 억압해 왔는지를 보여주며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한다. 고등학생인 여동생이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미있게 썼다고 밝힌 그녀는 책에서 15kg을 감량하고, 성형수술을 했던 경험까지도 과감히 털어놓았다.

 

“한창 다이어트를 할 때는 잠도 잘 못 자고 많이 아팠어요. 제가 원하는 마른 몸이 저에게는 무리였던 거죠. 종아리에 보톡스를 맞았던 적도 있는데요. 제가 알통이 워낙 커서 부츠가 잘 안 들어가더라고요. (웃음) 부츠를 신어보겠다고 주사를 맞았는데 결국 족저근막염이 생겼어요. 다리의 힘이 약해지니까 발에 부담이 갔던가 봐요.

 

다행히 지금은 예전보다 건강해졌고 스스로 좀 너그러워졌어요. 예전에는 자기 관리의 논리를 내세우면서 매우 엄격했거든요. 그래서 보통의 여성들이 느끼는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요. 화장하지 않은 채로 외출을 꺼린다든지, 살이 찌는 것을 두려워한다든지, 거울을 보면서 성형수술에 대한 충동을 느끼는 마음들이요. 저도 그것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는 않으니까요.

 

한때는 사회가 정한 규범에 한껏 들어가 보려고 애를 썼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사회적 규범이라는 게 한 개인이 완벽히 맞출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고 애쓰다가 황새의 보폭이 보편적인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죠. 오히려 그 보폭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고 부추긴 우리 사회가 잘못됐지, 그걸 못 따라가는 내가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제게 맞는 속도와 자리를 찾게 됐어요. 그 이후에는 혼자서 안절부절못하거나 자책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요. 제가 특별히 자존감이 높거나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이런 책을 못 썼을 것 같아요.”

 

 

“잠깐의 대화로 기성세대 못 바꿔… ‘이런 삶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결의가 중요”

 

저자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이 보통의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투영했던 말을 되짚기도 했다. 이를테면 ‘기가 너무 세다’ ‘상냥하게 말해야 한다’ ‘치마가 너무 짧다’ ‘화장이 그게 뭐냐’라는 식의 잔소리가 그러했다. 한편 독일에서의 교환학생 경험은 그녀에게 새로운 인식의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분명 살이 쪘다고 지적받았을 자신이 그곳에서는 오히려 말랐다고 지적을 받았기 때문. 저자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틀에 누구도 맞출 수 없다는 것과 누군가 억압하고 차별하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관습적, 문화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에 대한 화두가 떠오르면서 많은 여성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 아닐까. 특히 여성이 겪는 부당함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부딪치는 장벽이 바로 기성세대일 것이다. 이에 이진송 저자는 그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모든 것을 한두 마디의 말이나 잠깐의 대화로 바꿀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그들과 정면으로 부딪쳐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압박 대신,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겠다는 결의를 가지라고 조언했다. 물론 그럼에도, 늘 얼굴을 봐야 하는 사람인 경우, 그것도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족인 경우, 더불어 같은 여성임에도 가부장제를 공고히 학습한 탓에 그것을 집요하게 물려주려 하는 어머니의 경우, 문제의 양상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오히려 같은 여성인 엄마와의 소통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오히려 너무 친밀하고 가까워서 엄마를 제대로 못 보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 감정적으로 분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요. 아마 22살 때였을 거예요. 그날 새벽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문화 인류학과 관련한 논문을 읽다가 엄마를 그 시대의 한 인간으로 느낀 때가 있었어요.

 

한 시대의 어떤 조건 속에서 살았던 사람으로 객관화해서 보니까 엄마를 향한 제 감정이 다소 과잉되어 있었다는 걸 알았죠. 충실한 며느리, 착한 아내로 살아온 엄마를 원망할 때가 있었거든요. 엄마는 나에게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니까요. 이건 페미니즘의 중요한 화두이기도 하고요.

 

가부장제의 피해자이자 다시 가해자가 된 엄마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저는 엄마가 살았던 시대의 여성을 다룬 여러 논문이나 글을 보면서 엄마를 또 다른 타인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엄마가 나에게 말해줄 수 없었거나 엄마도 차마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을 제3자의 언어로 이해한 거죠.

 

굳이 논문을 찾지 않아도 엄마를 주인공으로 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지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엄마의 출생조건과 고향을 수집해서 하나의 소설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거죠. 사실과 달라도 괜찮아요. 엄마도 자신의 인생을 100% 알거나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왜 우리도 어릴 적에 학교에서 벌어졌던 부당한 폭력이나 차별을 당시에는 잘 모르고 겪기도 하는 것처럼요.

 

작년 생일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내가 취직 걱정으로 정신없을 이 나이에 엄마는 나를 낳았구나’ 하면서 그 당시에 엄마가 겪었을 기분과 상황을 생각해봤어요. 엄마 말씀으로는 딸을 낳았다고 친척들이 안 찾아왔다면서 저를 낳고는 너무 더워서 3일 만에 이불 빨래를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만약 아들을 낳았으면 그렇게 더운 방에 방치되지는 않았겠죠. 저희 집은 4남매인데 딸 셋에 막내가 아들이거든요. 제가 중 3 때 막내가 태어났는데 당시에는 분노가 매우 컸어요. 엄마가 가부장제에 비겁하게 굴복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분노는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계속됐고요. 그런데 이제는 엄마를 무조건 원망하기보다 어떤 점에서는 저보다 강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해요.”

 

 

“'친구 같은 딸’이란 말은 여성을 또다른 방식으로 억압한다”

 

이진송 저자는 책을 통해 ‘친구 같은 딸’이 주는 우리 사회의 기만을 폭로하기도 했다. 아들은 친구같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지만 딸의 경우에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야만 그 필요성이 충족된다는 것. 그래서 엄마의 친구가 될 의무는 딸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엄마와 딸은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친구 같은 딸’이라는 말이 많은 여성을 또 다른 방식으로 억압했다고 설명했다. 딸에게 기대하는 친구의 역할은 감정 쓰레기통 혹은 정서적 학대로 기울어지기 쉽고, 이는 여성의 희생에 기대는 현재의 결혼 제도와 관련이 있다고 꼬집었다.

 

일본의 가족 심리전문의 가야마 리카 역시 책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걷는 나무/ 2018년)를 통해 가까울수록 상처를 주는 모녀 관계의 심리를 밝힌 바 있다. 가야마 리카는 ‘친구 같은 모녀’라는 말에 담긴 사회의 기만을 지적하며 여성 독자들에게 엄마를 타인으로 받아들이라고 권유했다. 새로운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우리의 뇌가 그것을 진짜 기억으로 인지해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도 전했다.

 

이진송 저자가 올해 1월부터 출근했다는 회사는 파주에 있는 한 드라마 제작 회사. 그녀는 앞으로 드라마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라며 일이 너무 재미있다고. 지금껏 발행해왔던 독립 잡지 ‘계간 홀로’는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미뤄오다 최근 12호를 발간했다고 전했다. 이번에는 후원 없이 오직 독자들의 예약을 받아 발간했다고. 이제는 다른 단체에 후원금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운영되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녀가 건넨 잡지에는 ‘너무 세련되어져 속상하다’, ’계간 홀로’의 지면에 내 사진이 올라가는 그 날을 위해 유명인이 되고 싶다’ ‘죽을 때까지 보고 싶다’등의 평이 실려있기도 했다. 이진송 저자는 이번 책을 계기로 독자들이 여성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자신의 책이 병따개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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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이진송

"재기발랄"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만든다면 1988년생 이진송이 따-란 하고 등장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물에 뜨면 주둥이만 동동 뜰 것"이라는 소리를 들어온 저자는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코드 안에서 드립인 듯 천재인 듯 현실 비판과 분석을 해내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이다. 지성과 유머의 재기발랄한 결합. 사회의 부조리를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날카로운 비판의식. 문학, 역사,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문학적 분석으로 깊이를 더하면서도, 덕후 세계의 B급 유머 코드를 구사하며 어떤 지루한 주제도 유쾌하게 풀어내는 균형감각 또한 저자의 매력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여성학을 함께 전공했고, 동대학원에서 한국현대소설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비연애칼럼니스트로서 2013년부터 비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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