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5.30 조회수 | 2,346

차세대 ‘페이지터너’ 작가 정해연 “스릴러는 인간 본질에 천착한 장르”

 

스릴러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이야기야 언제나 대환영이지만,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는 오싹함은 아무래도 무더운 여름에 가장 환영받는 법이다.

 

‘놀라운 페이지터너’ ‘한국 스릴러 문학의 유망주’라 불리는 정해연 작가의 신작 <지금 죽으러 갑니다>(황금가지/2018년)는 스릴러 소설의 미덕인 읽는 재미를 흠뻑 안겨주면서도, 그 안에 동반 자살과 가족의 해체라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녹여내 독특한 한국형 스릴러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사고로 기억을 잃고 병원에서 깨어난 태성은 부모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기초수급자가 되어 판자촌에서 하루하루 희망도 없이 살아가던 그는 우연히 인터넷 자살 카페 ‘더 헤븐’을 알게 되고, ‘메시아’라는 닉네임을 가진 한동준의 주선으로 5명이 함께 동반 자살 여행을 떠난다.

 

 

강원도 깊은 산 속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도착한 한동준은 일행에게 이대로 죽기는 억울하니 5일 동안만 원 없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다가 죽자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이들은 어차피 죽을 거 5일 후 행복의 정점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모두 동의한다. 한편 김진성 형사는 그동안 강원도에서 일어났던 두 건의 집단 자살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한 명의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을 수가 기록에서 발견하는데...

 

스스로 죽음을 택할 만큼 절망에 빠진 이들의 사연이 서서히 밝혀지며, 5일 동안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또 이들은 애초의 목표대로 ‘무사히’ 자살에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속도감 있게 사건이 전개된다. ‘놀라운 페이지터너’라는 수식어가 과장된 문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작가는 때로는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때로는 독자들의 허를 찌르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책 날개의 저자 소개란에 '소심한 O형, 덩치 큰 겁쟁이’라는 문구가 공포와 전율을 안겨주는 스릴러 장르와는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여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더블>(사막여우/ 2013년)이라는 소설로 스릴러를 쓰기 전에는 7~8권의 로맨스 소설을 썼다는 이력도 흥미로웠다.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작가를 만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자살 전까지 삼겹살 구워먹고 노는 사람들… 이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Q 우선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소설을 구상하고 초고를 쓴 게 2014년이었어요. 제가 강원도 춘천에 살고 있어서인지 어느 날 뉴스에서 강원도 홍천이 자살지 1위라고 기사가 나오는데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더라고요. 펜션 주인이 단순한 여행객으로 알았을 정도로 자살하러 온 사람들이 삼겹살을 구워먹고 놀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고기를 먹었을까’, ‘내일 죽을 텐데 고기가 제대로 넘어갔을까?’ 심리가 궁금하면서도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졌어요. 한편으로는 분명히 그 죽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는데, 작년에 일본에서 비슷한 사건이 터졌더라고요. 저는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아주 센 설정이라고 쓴 건데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니 굉장히 슬펐어요.

 

Q 동반 자살과 가족이라는 두 소재의 접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집단 자살이라는 소재를 생각하고 나서 구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이 가장 죽고 싶은 순간은 언제일지를 상상해봤어요. 가장 가까운 것도 가족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도 가족이거든요. 세상이 모두 등을 돌려도 마지막까지 내 편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던 가족이 실상은 내가 죽기를 바랐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무서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충분히 죽고 싶은 이유가 될 거라고요. 이렇게 해서 동반 자살과 가족사가 엮어진 거예요.

 

Q 5명의 동반 자살 멤버 중에는 작가도 있습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자살 카페를 취재하신 경험이 있나요?

 

자살 카페는 취재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료를 찾기 위해 누군가의 죽음이나 슬픔을 훔쳐보는 것은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블로그 서평을 보면 소설 속 작가를 저와 동일시하는 독자도 있더라고요.(웃음) 소설 속에 작가라는 인물을 설정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관찰이 될 수도 있고, 개인의 욕심에 의해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어요.

 

Q 사실 소설의 초반부터 악인으로 등장하는 한동준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저는 이질적인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 소설도 죽으러 갔다가 살기 위해 도망쳐 나오는 지점이 새롭고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연쇄 살인마의 스토리도 저는 좀 다르게 써보고 싶었어요. 보통의 스릴러에서는 연쇄 살인마가 되기까지의 서사가 자세히 나오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어요. 그냥 완전한 괴물로 쓰고 싶었어요.

 

자기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사람들을 모아서 죽여가며 그 과정을 즐기는 이 정도의 사람은 이유를 막론하고 공감이 전혀 안 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래야만 주인공이 이 사람한테 도망쳐 나오기까지의 공포가 더욱 극대화될 거라고 믿었고요. 대신 저는 주인공인 태성의 감정에 굉장히 집중했습니다. 주인공이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감정이 계속 급변하는데, 이러한 감정 변화에 개연성을 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Q 소설을 읽으면서 가족이 그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동반 자살한다고 자식을 먼저 죽이고 살아난 부모들이 있거든요. 자식을 버리는 사람도 있고요. 모든 사람이 다 부성애나 모성애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가족은 당연히 내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형제 자매들도 조금씩 경쟁하면서 크잖아요. 이런 것들이 왜곡되고 잘못된 쪽으로 발현되면 가족이 가족을 죽이는 비극으로까지 치닫는 거죠. 이 소설은 그릇된 가족애를 경계하는 작품이라고 보시면 될 듯해요.

 

Q 어둡고 잔인한 이야기를 쓰다 보면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스릴러를 쓰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범죄 장면을 많이 묘사하게 되잖아요. 이번 작품은 이전에 비해 잔인한 장면이 많았는데, 그걸 현실감 있게 쓰기 위해서는 계속 머리에서 떠올려야 해요. 시체를 부검하는 책도 많이 보고요. 살인이나 잔인한 장면을 쓸 때는 그걸 행하는 범죄자의 기분으로 쓰는 거예요. ‘빙의한다’고 하죠. 그러다 보면 악몽을 많이 꿔요. 밤길도 무섭고요. 주변 사람들이 그러는데, 이런 장면을 쓰고 있을 때는 실제로 제 눈빛이 무서워진대요. 대낮에 카페 같은 데서는 잘 써지지도 않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밤에 쓰는데, 그러다 보니 악몽을 더 많이 꾸는 것 같아요. 직업병이고 산재예요. (웃음)

 

 

“자살 다룰 때는 자살하지 말아야 한다는 코드 반드시 들어가야”

 

Q 이번 작품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 있다면요?

 

아쉬움은 항상 남아요. 특히 이번 작품은 아쉬움이라기보다는 걱정이 많았어요. 이렇게 어둡고 잔인하게 표현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 끝까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자살하러 가는 사람에게 경고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죠. 저는 자살을 다룰 때는 자살하지 말아야 된다는 코드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 같은 데서는 이런 메시지를 자살자 가족의 피폐함이나 고통을 통해 주로 보여주는데, 저는 스릴러다 보니까 표현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결국 이런 그릇된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그 쪽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있었기에 이 소설을 쓸 수 있었어요.

 

Q 로맨스 소설을 오랫동안 쓰다가 스릴러로 전환한 계기가 있었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이십 대 중반부터 로맨스 소설을 써서 7년 동안 7~8권의 책을 냈어요. 그러다가 2012년에 생각난 소재가 스릴러여서 <더블>이라는 작품을 썼는데 운좋게 출간되면서 스릴러로 자연스럽게 전향을 하게 됐어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로맨스와는 접점이 없었어요. 오히려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 같은 추리 소설을 너무 좋아해서 끼고 살았죠. 그래서인지 어느 날 오빠가 ‘너 좋아하는 걸 써봐’ 라고 해서 소설을 구상했는데 소재가 딱 떠오르고 쓰는 게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게 <더블>이었던 거죠. 지금은 스릴러에 대한 매력에 푹 빠져 있어서 당분간은 다른 장르로 바꾸지 않을 것 같아요.

 

Q 스릴러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흥미가 계속 이어지는 게 스릴러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또 작가 입장에서는 로맨스는 인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스릴러는 좀 더 인간의 본질에 천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인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 상상을 풀어나가는 데 스릴러만큼 적합한 장르도 없거든요.

 

Q 스릴러를 잘 쓰는 비결이 있을까요?

 

확실히 소재가 독특하거나 충격적이어야 이목을 끌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전 소재 발굴에 시간을 가장 들이는 편이에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뉴스라든가 여러 가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놓치지 않고 수집을 해요. 소재 노트에 작은 사건이라도 신기하고 독특하다 싶으면 다 적어놔요. 그게 하다못해 코미디나 웃픈 이야기라도 지나치지 않고 다 써놔요.

 

그게 나중에 다른 이야기와 접목하면 오히려 더 섬뜩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거든요. 지금 당장은 한 가지 소재로 장편소설의 분량이 나올 수 없다 하더라도 신작을 구상할 때 소재 노트를 죽 보다 보면 하나로 엮이는 지점이 있기도 하고요. 뉴스나 신문, 책 등을 가리지 않고요, 요즘은 SNS에서도 좋은 소재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Q ‘놀라운 페이지터너’ ‘한국 스릴러 문학의 유망주’라는 수식어가 있어요.

 

<더블> 때부터 유망주이인데 아직도 그런가요?(웃음) 사실 너무 감사하죠. 페이지터너라는 말은 과분한 칭찬이고요. 신간이 나오면 블로그 평들을 찾아보는 편인데, 책이 잘 넘어간다는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많이 해주시는 것 같아요. 순문학에서는 문장이 너무 좋아서 책이 안 넘어가면 그것도 찬사지만, 스릴러 소설에서는 책이 잘 넘어간다는 말만한 찬사도 없다고 생각해요.

 

Q 차기작을 준비 중인가요?

 

카카오페이지와 CJ E&M이 공동 주최한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은 <내가 죽였다>가 카카오페이지에서 곧 연재될 예정이고요. 장르 소설을 쓰는 선배 작가님들과 함께 망원동에 있는 추리 카페를 소재로 엔솔로지를 계획하고 있어요. 장편 쪽으로는 이번 작품이 많이 잔인하고 어두웠기 때문에 조금 더 훈훈하고 밝고 유머 코드가 들어 있는 이야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책을 선택해주시고 귀한 시간을 읽는 데 써주시는 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책임지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제 작품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국내 스릴러 작품이 많이 나오니까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작가의 한 문장을 골라주신다면요?

 

첫 문장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살아야겠다고 느낀 적이 없는 인생이었다.' 이 한 문장 안에 주인공 태성이 처한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다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책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인데, 다행히 이번 소설의 첫 문장은 좀 괜찮은 것 같아요.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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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정해연

1981년생. 어느 날 느닷없이 작가의 꿈을 키우고 이뤘다. 로맨스 소설 작가로서 여러 권을 출간하며 활동하다, 추리·미스터리 장르로 전향, 첫 추리소설 더블(DOUBLE)을 집필하였다. 더블의 출간을 준비하던 도중, 갑자기 청소년을 위한 스토리를 집필하여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한 2012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에서 [백일청춘]으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언젠가는 느닷없이 조카들을 위한 동화책을 쓰고 싶은 꿈 많은 작가. 장르를 구분 짓지 않고 그 시대, 그 순간에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로 만들어 내고 싶은 것이 최종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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