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5.23 조회수 | 3,473

소설가 정용준 “살면서 한 일 중 가장 근사한 건 소설 쓰기”

 

살다 보면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작은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사소한 기억이 될 수도 있고, 곁에 있던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상실의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걸 감추면서도 많은 걸 알려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실종이 그렇다. 함께했던 누군가가 갑작스레 사라지는 일은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공백을 만드는 한편, 옆에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감정이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상실의 경험을 두고, 우리는 다양한 가능성의 세계라고 명명해볼 수 있을까.

 

“사람의 발 닿지 않은 심해, 우주보다 먼 외계 같아”

 

최근 정용준 소설가가 펴낸 <프롬 토니오>(문학동네/ 2018년)는 상실로 인한 슬픔에 시적인 상상력을 덧입힌 장편소설이다. 포르투갈의 화산섬 마데이라 해변을 바탕으로 미국인 화산학자 시몬, 일본인 지진학자 데쓰로가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시몬은 해변에서 스물여섯 마리의 파일럿 고래가 죽어가는 기이한 일을 목격하며 수수께끼를 지닌 인물 토니오를 만난다. 토니오는 흰고래수염의 입에서 튀어나온 기이한 인물. 시몬은 그가 고래의 입에서 등장했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애인이자 바다에서 실종되어 죽은 앨런을 만나고 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더욱이 토니오가 오십 년 전 우편 비행사였으며 추락사고로 바다에서 실종된 인물이라는 사실에 거대한 혼란 속에 빠져든다.

 

“이 소설은 제가 갖고 있던 꿈 같은 것이었어요. 제게는 늘 바다 깊은 곳에 또 다른 세계가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거든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보면 하늘의 궁창이 깨지면서 비가 쏟아진다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물이 흐르고 흘러서 깊은 바닷속에 작은 별처럼 모여 있을 거라고 상상했어요. 바닷속 세계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곳이야말로 우주보다 먼 외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바닷속 미지의 세계를 오고 가는 생물로 고래를 떠올리게 됐고, 그 세계를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이 소설의 집필 기간은 구상했던 시간까지 포함하면 6년여에 이른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지구본을 돌려 보며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의 다국적 인물과 함께 포르투갈의 이국적인 배경을 설정했다. 포르투갈의 지리적 요소를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관광청에 게재된 자료는 물론 그곳을 직접 다녀온 이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사진을 숱하게 찾아봤다고. 구글을 통해 위성사진을 관찰하며 이동시간이나 시차까지 철저히 계산해봤다는 그였다. 또한 화산학자, 지진학자, 해양학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책은 물론이고 각종 논문, 영상을 닥치는 대로 봤다는 것이 그의 설명. 어느 순간부터는 취재라는 명분보다 그저 취미처럼 보게 됐을 정도였다고.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묻자 그는 심해의 세계를 찾아볼 때라고 답했다. 태양에 의존하지 않고 먹지도 않으며 배출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그 세계를 보면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고. 특히 누구도 그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피나투보 화산의 풍경을 담은 영상 역시 기억에 남는 것으로 꼽았다. 필리핀에 있는 활화산인 피나투보산은 1991년 폭발해 800명이 넘는 인명피해를 일으켰다. 이러한 영상 속의 풍경은 소설에서 시몬이 실종된 앨런을 떠올리며 느끼는 처참한 장면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인류가 달에는 발자국을 남겼지만 심해에는 아직 발을 디디지 못했어요. 저는 이 사실을 보면서 바다야말로 가장 미지의 세계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세계라는 점에서 좋았죠. 이 소설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고래를 쓰기 위해서도 온갖 것을 찾아봤어요. 고래 도감은 물론이고 고래와 관련된 문학 작품까지도요.

 

제게 있어 고래는 가장 아름다운 생물이에요. 그렇게 큰 몸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빨이 없고, 누구보다 강력하지만 식물성을 가졌죠. 독립적이면서 누구도 다스리려 하지 않고, 마치 산 같은 존재랄까요. 저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자기중심적이지만 남을 해치지 않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단독자와 같은 사람이요. 제가 느끼는 고래의 아름다움을 이번 소설에 전부 담았어요.”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 절대 헛되지 않아”

 

소설을 읽다 보니 그의 첫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가나'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마도 바다에서 익사한 인물이 고향을 향해 가는 이야기의 설정 때문일 것이다. 그는 바다에서 실종된 인물 앨런의 마음을 그리면서 '가나'의 내용을 차용했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실종된 인물의 입장에서 마냥 슬프고 억울하다는 감정보다는 지상에 남겨놓고 온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그는 서로에게 함께한 기억과 추억이 있으면 애도하는 마음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그렇기에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절대 헛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의 소설은 감각의 세계를 넘어 다양한 층위의 것들을 사유하게 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갑작스럽게 잃은 뒤 깊은 상실감에 빠진 시몬은 소설 <환상의 빛>을, 고래의 입에서 등장한 인물 토니오는 영화 ‘붉은 거북’을, 화산(불)·지진(땅)·바다(물)를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바슐라르의 4원소론을 떠오르게 했다. 한편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전개된다는 점과 평면적인 인물, 비교적 단순한 어휘로 처리된 그들의 감정 등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터. 아마 그런 점으로 인해 소설의 긴장이 느슨해진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삶과 죽음, 과학과 초자연의 영역을 절묘하게 병치하면서도 미지의 세계를 환상적인 감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두려움’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정용준 작가 역시 이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감정으로 두려움을 꼽았다.

 

 

“작가의 삶보다 중요한 건 독자의 삶”

 

등단한 지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꾸준히 소설을 써온 그였지만 글을 쓸 때는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그래서 무력한 기분이 들거나 쓰기가 싫어질 때면 쓰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다만 책상에 앉아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낙서를 하는 식으로 딴짓을 한다. 어떻게 보면 딴짓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아 보이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늘 소설에 대한 궁리로 가득 차 있다.

 

에게 있어 글쓰기는 언제나 싫고 어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나 좋고 근사한 일이다. 그가 언제나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는 일. 그에게 있어 쓰고 싶다는 욕망은 소설의 가장 큰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늘 좋은 책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가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추천도서로 꼽은 것은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 ‘시로 쓴 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시와 소설의 장르적 구분을 모호하게 한 것으로 이번 소설을 쓸 때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제게 작가의 삶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의 삶이에요. 모든 작가는 독자로부터 태어나기 마련이죠. 다른 소설을 읽으면서 그 세계에 매료되는 동안 계속해서 소설을 쓸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좋은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감동과 자극을 받아야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유지되거든요. 사실 소설을 쓰면서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어요. 누가 쓰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걸 쓴다고 대단한 물리적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죠. 그렇게만 생각하면 소설을 쓸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사실 문학을 좋아하는 삶은 불편한 게 많아요. 누군가는 소설을 읽고 쓴다는 것을 헛된 취미로 보기도 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하죠.

 

하지만 소설을 쓴 것은 제가 살아오면서 한 일 중 가장 근사하고 가치 있는 일이에요. 작가라는 지위로 인해 만족스러운 게 아니라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소설가로 살아온 것에 만족하고 앞으로도 소설가로 살고 싶어요. 그래서 제게는 문학적 과제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거대한 문학사를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도 없고요. 다만 제가 쓴 소설만큼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소설에 등장하는 삶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제 소설은 남다른 의미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는 부드러운 인상에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었다.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듯했다. 한 대학의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에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몹시 쑥스러워하던 그. 자신의 소설에 대단한 주제의식은 없다며 포장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던 그. 어떤 질문에서는 다소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편하게 대답하고 넘길 수 있는 말에도 시종일관 진지하게 반응하던 그.

 

인터뷰가 어색한 것일까, 소설에 대해 말하는 자리가 불편한 것일까, 내성적인 성격 때문일까, 긴장을 많이 한 걸까. 기존에 만나온 여러 소설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어 그와 대화를 하는 내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의 생각이 맴돌았던 것이 사실. 하지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가 꺼내놓은 우직하면서도 진솔한 다짐을 들으며 그의 진지함에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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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정용준

1981년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했다. 200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소설집 [가나], 장편소설 [바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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