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3.21 조회수 | 3,050

마음의 공복 달래주는, 문태준 시인의 ‘리틀 포레스트’

 

사랑하는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 이 둘은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차근히 그 결을 따라 살펴보면 분명 다른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사랑”, 하고 발음하면 저절로 입이 동그랗게 벌어지면서 가슴 속에 있는 열렬한 마음을 훤히 보여주는 것만 같다. 반면 “사모”, 라고 발음하면 입이 동그랗게 모이면서 입안이 감춰지는데 이는 그립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다. 사랑이라고 하면 뜨거운 물이 김을 뿜어내는 것 같고, 사모라고 하면 따뜻한 물이 종이에 스윽 번지는 것 같다. 사랑의 물에서는 진한 바다 냄새가, 사모의 물에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난다.

 

봄을 맞아 새로운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문학동네/ 2018년)로 우리 곁을 찾아온 문태준 시인. 그는 시집 곳곳에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특히 자연을 대하는 시선이 그러하다. 도심의 속도와는 다른 차원의 호흡과 사유와 세계, 그리고 우주. 그는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과 잔잔히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에 마음 주는 것을 서슴지 않으며 우직하게 멈춰선 돌에게까지도 나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이런 마음에 도저히 끝이란 없을 것만 같고 아니, 있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문태준 시인이 말하는 '아름다움'...존재가 고유의 빛깔로 빛나면서 하나를 만드는 것


Q 시집의 연분홍색 표지와 ‘사모’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연정의 마음이 가득할 거라 짐작했는데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웃음) 시집에 담긴 자연의 풍경은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지금까지 나온 제 시집 중에서는 가장 긴 제목인데요. 편집자의 추천으로 이번 시집에 수록된 ‘호수’라는 시에서 가져온 구절입니다. 아무래도 고향에서 가져온 풍경이 많은데요. 경북 김천에 있는 고향 집에는 여전히 부모님이 살고 계세요. 그 집은 저뿐만 아니라 저희 아버지, 또 할아버지가 나고 자란 집이기도 하죠. 논과 밭과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인데 거기서 오는 정서적 안정감이 있어요. 고향 집 뒤에는 바로 산이 붙어 있고요. 

 

Q 저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서인지 이 시집에서 마주한 자연을 경험하려면 여행을 떠나야만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작가님의 유년시절은 축복처럼 느껴지네요. 한편, 이 시집에서 보여주는 자연의 풍경이 현실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영화의 장면처럼 느껴졌는데 최근에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요. 아,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시집에는 먹는 이야기가 빠져있네요. (웃음) 

 

저에게 고향은 새의 하얀 알이 놓여있는 둥지 같은 곳이에요. 살림 공동체이면서 생명 공동체이죠. 낱낱의 존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많은 것이 밀착되어 있으면서 정으로 얽혀있는 곳이에요. 저수지를 함께 쓰면서 내 논과 이웃의 논이 하나의 수로로 연결된 그런 곳이죠. 또 생명 공동체로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부분도 많아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무언가의 태어남을 목격하고, 그것이 자라는 것을 관찰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을 관망할 수 있죠. 그렇다고 이 시집에서 보여주는 자연이 도시와 상반된 곳으로서 시골은 아니에요.

 

Q 이번 시집에는 유독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 많은데요. 작가님에게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이번 시집에 실린 ‘그 위에’라는 시로 답을 하고 싶은데요.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하나의 존재가 고유의 빛깔로 빛나면서 전체적인 하나를 만드는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해요.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위협하지 않고 대등하면서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관계요. 새싹이 돋은 나무와 무덤, 쓰러진 나무와 풀, 비탈이 모여 봄 산의 신록을 만드는 것처럼요.

 

Q 시집에 수록된 ‘병실’이나 ‘소낙비’와 같은 시를 보면서 작가님의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어머니를 통해 한 사람의 존재를 보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병을 앓고 고통을 겪는 그런 존재요. 고통의 바다 가운데 있는 인간의 아픔을 느끼죠. 제가 유년시절 생사를 오가며 아팠을 때, 살아날 수 있도록 맨발로 들쳐 엎고 뛰어다니시던 분이라 제게는 더 각별해요.

 

 

서정시도 늘 진화해야…정적으로 보이는 대상에 담긴 격렬함까지 보고파

 

그이의 뜰에는 돌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 돌을 한참 마주하곤 했다
돌에는 아무것도 새긴 게 없었다
돌은 투박하고 늙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나는 그 돌에 매번 설레었다
아침햇살이 새소리와 함께 들어설 때나
바람이 꽃가루와 함께 불어올 때에
돌 위에 표정이 가만하게 생겨나고
신비로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리하여 푸른 모과가 열린 오늘 저녁에는
그이의 뜰에 두고 가는 무슨 마음이라도 있는 듯이
돌 쪽으로 자꾸만 돌아보고 돌아보는 것이었다

- 문태준, ‘입석’ 전문

 

Q 작가님을 두고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이라고 평가하는데요. 서정시라고 하면 낡았다는 인식도 여전히 많은 것 같아요. 혹시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전통 서정시의 맥락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결을 찾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서정시를 쓴다고 해도 늘 새롭게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보통 하나의 풍경을 바라볼 때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평면적으로 이해할 때가 많은데 저는 정적으로 보이는 대상에 담긴 격렬함까지 보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이를테면 ‘입석’같은 시가 그렇죠. 사실 돌은 얼핏 봐서는 생명이 없는 싸늘한 물체와 같은 존재인데 저는 그러한 존재에게도 마음을 입히거든요. 또 이번 시집에는 기존 시집과 달리 바다에 대한 풍경도 많이 들어가 있어요. 겹겹의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자란 저에게 바다는 생경한 공간이에요. 유년기에 큰물을 본 기억이 있다면 비가 많이 내려 마을에 홍수가 날 때였을 정도니까요.

 

Q 이번 시집에는 소리 내며 읽거나 암송을 하기에 좋은 시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시집의 시를 보면 너무 길거나 장황해서 낭송하기에 버거운 경우도 있거든요. 물론 그러한 시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또 다른 재미를 줄 수도 있지만 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성을 놓치는 부분도 있다고 느껴졌어요.

 

시를 쓸 때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사이에서 항상 고민하는데요. 그 양쪽의 언덕을 두고 어느 한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둘 사이의 계곡에서 흘러가는 것이 중요하죠. 저 역시 시의 음악성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최근에 보면 신석정 시인의 시도 낭송하기에 참 좋더라고요.

 

 

시는 노동하듯이 쓰는 것…부족하지만 계속 보여준다는 즐거움

 

Q 어느 인터뷰에서 보니까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시를 읽고 짓는다고 하셨는데요.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유지하면서 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키시는지 궁금해요.

 

매일 새벽은 못 하고요. 더러는 그렇게 해요. (웃음) 시적인 순간이 찾아오면 그것을 알아차리기 위해 근육을 단련시키듯 좋은 시를 계속해서 읽어요. 언어로 만들어진 시의 세계가 저의 일부가 되도록, 그 상태에 있도록 좋은 시를 계속 읽는 거죠. 최근에는 프랑스의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를 읽고 있어요. 불교방송의 라디오 프로듀서로 있다 보니 생업과 시 쓰는 일이 충돌하는 경우는 적은 편이에요. 오히려 서로 도와주는 관계인 것 같아요.

 

Q 혹시 시를 쓸 때 도움을 받는 습관이 있나요?

 

많이 걸어 다녀요. 걷다 보면 시야도 넓어지고 시의 구절이 봄의 새순처럼 돋아나죠. 최근에는 제주에 가서 따라비 오름을 걸었는데 엄청나게 강력한 해풍을 맞고 왔어요. (웃음) 강한 바람이 불면서 무질서하게 흩어지는 자연의 모습을 보는데 저 역시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죠. 피아니스트 백근우의 연주곡을 자주 듣는데 공연을 찾아다닐 정도로 좋아해요. 

 

Q 2000년에 첫 시집을 내시고,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시면서 이번에만 6번째 시집을 내셨어요. 이런 작가님에게도 시가 잘 안 써지는 때가 있었나요?

 

그럼요. 슬럼프는 수시로 와요. 그래서 시가 어떤 것은 부족한 상태로, 또 어떤 것은 좀 더 나은 상태로 나오는데 나무에 매달린 귤이 각각의 높이로 매달려 있듯 발표하는 시의 편차를 그저 받아들이는 거죠. 부족하지만 계속해서 보여준다는 즐거움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번 시집에 ‘세계는 노동한다’라는 말을 썼는데 계속 노동하듯이 쓰는 거죠. 하나의 기미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시로 만들어가야 할지는 늘 어려워요. 조각가가 돌이나 반죽 덩어리를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 것 같아요. 하지만 좋은 시를 썼을 때의 느낌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충만하죠.

 

Q 등단을 하시고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고 싶으신지 궁금해요.

 

어떤 존재가 태어나서 머무르고, 헤어져서 흩어지는 시간을 계속 생각할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하나의 질문처럼 갖고 있을 거예요. 앞으로 또 어떤 시를 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가장 갖고 싶은 시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를 읽고 짓는 시간일 거예요.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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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곳]이 있다. 시 해설집으로 [포옹],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이 있다. 산문집으로 [느림보 마음]이 있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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