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3.07 조회수 | 4,876

황선미 “지나치게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아이 스트레스 키운다”

 

아이로 사는 건 너무 힘들다. 사사건건 어른 명령에 따라야 하고, 싫은 것도 해야 하고, 말을 해 봤자 통하지도 않고, 힘도 약해서 어른을 이길 수도 없다. 어른 되려면 여태까지 살아온 만큼 시간이 더 걸릴 테니까 미래가 아주 까마득하다.

 

<건방진 장루이와 68일>(스콜라/2017) 속 열두 살 윤기는 이렇게 속으로 투덜거린다. 사춘기로 들어서는 아이들이 입 밖으로 쉽게 내뱉지 못하는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동화이기에 가능한 일. 아이는 “아, 속 시원해” 하면서 읽고, 어른은 “아, 그렇구나” 하며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황선미 선생님이 들려주는 관계 이야기’ 시리즈 중 1권이다. 올 초 2권인 <할머니와 수상한 그림자>(스콜라/ 2018년)가 발간됐다.

 

황선미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다. 전 세대에게 사랑받는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 2000년)으로 유명하지만, 이미 <들키고 싶은 비밀>(창비/ 2001년), <나쁜 어린이 표>(이마주/ 2017년) 등 아이들 심리를 꿰뚫는 동화를 쓰는 작가로 인정받아 왔다. 그가 들려주는 ‘관계 이야기’를 책으로만 만나기 아쉬워서 2월 26일,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으로 찾아갔다. 상상의 세계를 꾸미는 일을 하는 그이지만 현실의 세계를 꾸미는 건 극도로 경계하는 그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존재감 없던 아이가 자기 존재를 깨달아 가다...빛나기 위한 과정 그려


이번 시리즈에는 여러 관계들이 얽혀있다. 같은 반인 5학년 기훈, 윤기, 장루이, 진아, 하나 등이 겪는 사건 속에서 이들을 둘러싼 관계들이 부각된다. <건방진 장루이와 68일>에서는 친구 간 관계, <할머니와 수상한 그림자>에서는 조부모 관계를 조망했다. 앞으로 선생님, 형제자매, 부모 관계를 살핀 세 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도 얽히고설킨다. 1권에 잠깐 나왔던 아이가 2권 주인공이고 2권에 있는 줄도 몰랐던 아이가 3권을 이끌어가는 식이다. 꼭 학교에서 존재감 없이 생활하는 아이들도 그의 인생에선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저는 윤기 캐릭터가 사랑스럽거든요. 완전 존재감이 없던 애가 결국엔 자기 존재를 깨달아 가요. 옆에서 장루이라는 아이가 도와주고 반 친구들도 윤기를 다시 보죠. 그 아이가 빛나기 위한 과정이죠. 그래서 이름도 반짝반짝한다고 해서 윤기로 지었어요.”

 

<건방진 장루이와 68일>에선 그렇게 윤기가 친구와 함께 스스로를 찾았다면 <할머니와 수상한 그림자>에선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기훈이가 아빠를 찾으려다 스스로를 찾아간다. 과정에서 이야기 속 어른들은 황 작가의 다른 동화 속 어른들만큼이나 어설프고 부족하다.

 

할머니는 말하는 내내 한숨 쉬고 눈물을 찍어 냈지만 내 머리는 한 가지 생각으로 분명해졌다. 어른들도 가끔은 바보 같다는 것. 애들처럼 실수하고, 정답처럼 똑바로 살지 못하고, 사과할 줄 모르고, 어리석게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할머니와 수상한 그림자>, 145쪽)

 

그 부분을 언급하자 그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사실이니까요. 저를 비롯해서 어른들이 어린애처럼 허술한 데가 많아요. 늘 후회하고 잘해주려고 애쓰지만 잘 안 되고요. 근데 완벽한 척 하는 것도 힘든 일이잖아요. 나도 좀 안 돼, 하면 편해지는 게 있어요.”

 

 

어른이 꼭 아이 눈높이에 맞춰야 할까? 아이 혼자 문제 해결하는 능력 키워야

 

어른의 부족함이야 늘 느끼는 거지만 어른들 잘못으로 아이들이 힘든 걸 보는 것도 괴롭다. 작품 속에서 아이들이 혼자 감당하는 부분이 너무 많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할머니와 수상한 그림자>에서도 기훈이는 혼자서 아빠의 비밀을 파헤치느라 고군분투한다.

 

“저는 주체자의 문제해결이어야 한다고 봐요. 여기서 주인공은 할머니가 아니잖아요. 할머니 사연이 나오긴 하지만 얘가 어떻게 할지 어른이 결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게 꼭 옳은지도 모르겠고. 아이들이 상황 안에서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야죠.”

 

황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찝찝함이 있었다. 아이 마음을 돌보지 못한 미안함을 표해야하는 거 아닐까. 기자의 의문을 황 작가는 단칼에 잘라냈다.

 

“왜 미안하다고 해요? 어른도 최선을 다해서 살았잖아요. 저는 어른들이 굳이 애들 눈높이에 맞춰야한다고 생각 안 해요. 애들은 어떻게 보면 어른들 삶에 온 거잖아요. 저는 애들 키울 때도 애들 위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 면이 있는데 그러면 애들이 어른한테 자기 책임을 전가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서 오스트리아에서 머물 때 산책하다가 봤던 장면을 들려줬다.

 

“한 부부가 이야기하면서 걸어가고 그 앞에 조그만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장난을 치면서 가고 있었어요. 아이가 반듯한 길이 아닌 수풀 같은 길로 가다가 넘어졌죠.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수업 때 물으니까 다들 그래요. ‘빨리 가서 일으켜야죠. 미안해야죠. 네가 위험한 걸 못 봐줘서 미안하다고.’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부모 역할인데 그 부부는 가만히 있더라고요. 아이도 엉켜들어간 풀 빼내고 낑낑대면서 자전거를 세우고요.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애는 울지 않았고 부모 탓으로 돌리지 않았고 일으켜달라고 떼쓰지 않았어요. 아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니 부모는 아이가 해결하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건 그 아이 문제인 거예요. 너무 냉정한가요? 하지만 그 아이는 그런 상황이 또 일어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요. 울면서 누가 도와주길 기다리지 않을 거고요. 그런 연습이 돼야 자기가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고 나중에 누구 탓을 하는 일이 안 생겨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안 키워놓고선 그런 연습도 안 된 아이한테 ‘이제 네가 해결해. 너 다 컸잖아.’ 하잖아요.”

 

부모들의 그런 양육 방식 때문에 요즘 아이들이 의존성이 커진 것 같으냐는 질문에 황 작가는 “의존성보다는 아이들이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고 걱정했다.

 

“우리의 잣대가 ‘공부만 잘해라. 노는 건 나중에 해도 된다’잖아요. 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한 압력을 가하니까 애들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고 힘들어하는 거죠. 어른들은 그게 안타까우니까 ‘대학생 될 때까지만 참아라’하는데 그때가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잖아요.

 

사실 애들은 놀아야죠. 그것도 즐겁게! 근데 요즘은 너무 어릴 때부터 놀 수가 없어요. 우린 노는 걸 보면 너무 불안하죠. 저도 그랬어요. ‘왜 중요한 걸 안 하고 시간을 낭비해’라고 생각했는데 애들이 크고 보니 그게 다가 아니구나, 뒤늦게 알게 된 거죠. 애들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분노가 쌓이고 자기를 공격하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상처 주죠. 놀아야할 때 놀지 못하는 게 가장 문제인 거예요. 논다는 게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 놀면서 배우는 건데도….”

 

 

누가 시키는 일만 하면 자신이 싫을 수밖에...자신이 원하는 걸 해봐야 자기가 누군지 알 수 있어

 

29개국에 작품이 번역돼 출간돼 있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등 해외 유명 대학에서도 강의를 해본 황 작가에 언제 작가가 된 보람을 느끼느냐고 물었다. 역시 그는 담백했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에 만족해요. 좋아하는 걸 계속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저는 운이 좋죠. 문창과에 다니면서도 저 같이 허술한 사람이 작가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이보다 재미있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취미이자 특기였죠. 그래서 경험도 부족했지만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작가가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뭐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성공은 못해도 후회는 안 하겠죠.”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첫째인 네가 희생해서 동생들을 가르치자”는 엄마 말에 중학교도 가지 못해 “진짜 시키는 대로 안 하는” 엄청난 반항으로 사춘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 그 곁에 “단 하나의 내 편”인 책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쓰고 있는 일기가 보여주듯 글쓰기도 친구로 삼고,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잘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해오니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되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말을 할 때면 그는 슬프다. 언젠가 강연을 부탁했던 한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도 전했다.

 

“아이가 안타까워서 뭐라고 얘기하면 ‘죽으면 돼요. 죽으면 다 끝나요’ 이렇게 말한다는 거예요. 열몇 살 밖에 안 된 애들이.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이런 말 밖에 할 수 없게 만든 사회인 거죠. 갓난아이가 우는 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에요. 안아달라고 하는 거죠. 문제아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문제아가 된 거죠. 반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고, 편안하지 않았다는 거죠. 너무나 당연한 건데 우리는 어쩌면 안 보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죠. 불편하기 때문에….”

 

20년 넘게 동화를 써온 작가가 전하는 진심이 그대로 다가온다. 작품 이야기보다 세상 이야기를 더 많이 한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으면 불편하실까요?”라고 물었다. 인터뷰 중 기훈이처럼 애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해줄 말씀이 없으시냐고 물었을 때 그가 “저는 문학을 하는 거지, 기능동화를 쓰는 게 아니다. 상황을 설정해서 그 상황에 적합한 얘기를 충실하게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우리를 마치 교육가처럼 생각하시는 거 아닌가 싶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는 사람으로”라고 말하면서 “저는 최선을 다해 쓸 뿐이고 해석은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역시 그는 문학보다 세상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저는 아이들이 남을 사랑하기 어려운 이유가 자기 자신이 귀한 줄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자기가 얼마나 이유가 있는 존재인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봐야 자기가 누군지 알 텐데 누가 시키는 것만 하면 자기가 싫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걸 먼저 느껴야 조금은 행복해지려고 하고, 다른 사람도 보지 않나 싶어요.”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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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임(북DB 객원기자)

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꿈꾸는 글장이. jjung9110@naver.com

작가소개

황선미

1963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교와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1995년 중편 [마음에 심는 꽃]으로 등단한 후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0년에 출간한 [마당을 나온 암탉]은 16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미국 펭귄 출판사를 비롯해 해외 수십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2012년 한국 대표로 국제 안데르센 상 후보에 올랐고, 2014년 런던 도서전 ‘오늘의 작가’, 2015년 서울국제도서전 ‘올해의 주목할 저자’로 선정되며 전 세계가 사랑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지은 책으로 [내 푸른 자전거], [나쁜 어린이 표], [푸른 개 장발],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틈새 보이스], [건방진 장 루이와 6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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