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2.23 조회수 | 4,827

이상문학상 손홍규 “세상이 아무리 비참해져도 소설가는 쓰기 멈춰선 안 돼”

“사실 나는 절망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 가운데 정말 절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싶다. 멀쩡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인데 깊이 절망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중략) 나는 타인들 역시 무엇을 잃었는지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손 하나를 통째로 잃어버린 사람, 팔 하나를 잃어버린 사람이 보였고 다리가 없거나 허리가 없거나 머리가 없는 사람도 보게 되었다. 누구나 무언가 하나씩은 잃고 사는 것 같았다.”

서두에 언급한 글은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 2018년)에 실린 손홍규 작가의 자서전 중 일부이다. 중편소설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로 42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려보았을 법한 먼 훗날의 꿈, 오늘날을 살며 겪을 수밖에 없는 상실과 아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을 두고 권택영 문학평론가는 “꿈의 언어로 폭력의 기원을 더듬는” 소설이라 일컬으며 “한 가정의 붕괴를 통해 폭력의 기원을 탐색”해 폭력적인 우리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연은 홀로 존재할 때보다 다른 사연과 만났을 때 더 풍부해져”

Q 먼저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는 물론 주변의 기대치 또한 높아져서 어깨가 무거울 것 같아요.

방금 주신 질문에 제 마음이 전부 담겨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저는 지금껏 주목을 많이 받았거나 잘나갔던 작가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으면서 갑작스럽게 많은 관심 속에 내던져진 기분이 들어요. 그동안 나름대로 오랫동안 소설을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회의감이나 절망감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 상은 외롭고 힘들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는 격려와 위로를 준 것 같아요.

Q 가족분들도 정말 기뻐하셨을 것 같은데요. 전에 쓰셨던 글을 보니까 결혼 전에 장인어른이 ‘소설가는 돈이 없는 게 당연하다’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네 맞아요. 장인어른은 시를 쓰시는 분이거든요. 원래 다른 직업을 갖고 계시다가 은퇴를 하시고 지역에서 문인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그래서인지 저를 잘 이해해주세요. 장인어른 아니었으면 결혼도 못 할 뻔했죠. 다들 반대를 했으니까요. 아내에게도 정말 고마워요. 제가 학기 중에는 강의를 나가다 보니까 주로 방학 때 소설을 쓰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을 집필할 때도 아내와 아이를 모두 처가에 보낼 수밖에 없었죠.

Q 와, 그렇게 몰입했을 정도의 작품이라면 이 소설을 쓰는데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사실은 청탁을 받아서 쓰게 된 소설인데요. (웃음) 청탁을 받을 때 단편과 중편 모두 괜찮다고 해서 저는 중편으로 하겠다고 했어요. 보통의 청탁은 단편 위주이고, 장편은 연재를 하다가 아예 단행본으로 출간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상대적으로 중편은 발표할 기회가 거의 없고요. 그래서 꼭 한번은 중편을 써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싶었어요. 그렇게 선뜻 중편을 하고자 했을 때는 아무래도 제 마음에 중편으로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대학 시절부터 품고 있던 화두가 하나 있더라고요. 당시에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을 보면 첫 문장이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딱정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라고 되어 있어요. 저는 그 문장을 보면서 대체 그는 무슨 꿈을 꾸었길래 불안함을 느꼈던 걸까 하고 궁금했어요. 그래서 꼭 한번은 이 소설을 동력 삼아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Q 소설을 보면 인물의 경험이 꿈이나 환상처럼 보이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러한 서술은 그동안 계속해서 현실성을 추구해온 작가님께 일종의 도전 혹은 실험이었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을 쓸 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플롯을 버리고 마음의 구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자 했어요. 보통의 플롯은 행위나 행동,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을 하지만 저는 인물의 마음속에서 흘러가는 것을 따라가면서 그것을 밝혀보고자 애썼죠. 사실 인물의 마음은 관념적이어서 그것을 육체화된 플롯처럼 다루기 위해서는 인물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 했어요. 제게는 그 부분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고요.

이걸 극복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소설 속 인물에 해당하는 실제 인물을 만나는 건데 아무래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으니까 사람들의 에세이나 르포, 자서전 등을 많이 읽어봤죠. 저는 소설을 쓸 때 사람들의 육성이 담긴 자료에서 영감을 받으려고 노력해요. 사소하고 평범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소설가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소설을 쓸 때는 여성 노동자의 삶을 다룬 <나, 여성노동자>(그린비/ 2011년)와 함께 산업재해를 추적한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을 참고했어요.

Q 이번 소설은 1부에서 2부까지, 각각 남편과 아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3부는 둘의 오래전 과거로 돌아가요. 심사를 맡은 권영민 교수는 이 소설의 이야기를 3, 2, 1의 순서로 읽어보는 것도 좋다며 말씀하셨더라고요.  

이야기를 그렇게 구성한 이유는 인물들의 마음을 따라가다 그들이 서로를 가장 순수하게 사랑했던 순간에 도달했기 때문이에요. 비록 현재는 서로를 향해 증오와 적개심을 품고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그 상태를 깨뜨리고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을 하고 있으리라 봤거든요. 저 역시 가장 돌아가고 싶은 때를 꼽으라면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에요. 제게는 고향에서 보냈던 유년기가 그랬어요.

Q 전에 쓰셨던 글을 보니까 “내게 고향은 하나의 고전이다. 소설을 쓰다 막히면 고전을 들춰보듯 살아가면서 난제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고향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했다”라고 쓰셨더라고요. 이번 작품집에서도 보면 수상소감에 고향을 언급하셨고, 자선 대표작으로 고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선보이셨어요. 작가님에게 고향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요.

제가 나고 자란 정읍은 작은 시골이에요. 다른 마을이 보통 100가구가 넘었다면 제가 살던 마을은 20가구가 전부였을 정도로 아주 작은 곳이었죠. 어릴 때는 밤이 되면 마을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그걸 듣고 자라면서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느꼈어요. 사연은 홀로 존재할 때 보다 다른 사연과 만났을 때 더욱 풍부해지니까요. 작가 이상의 산문집을 보더라도 시골에 가면 지루해 죽겠다는 내용이 나오는 데 정말 그래요. 새벽에 들판에 나가 일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는 뉴스보다 잠들고, 다음날이 되면 또 반복이니 얼마나 단조롭고 재미가 없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사연이 정말 많았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소우주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저는 고향에서 지내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글을 쓰다 막히면 고향을 떠올릴 정도로 고향은 언제나 제게 강력하게 남아있죠.

“슬럼프 겪은 적 없어…한번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아”

Q 소설을 쓸 때 원고지에 손으로 쓰신다고 들었어요. 여전히 그러한 글쓰기 방법을 고수하시나요?

지금은 안 그래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다 보니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아져서 최근에는 노트북으로 쓰고 있어요. 원고지에 손으로 쓸 때는 그 방법이 익숙하고 편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결혼 전이라 여유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등단하고 10년 넘게 손으로 썼으니 오랫동안 고수하기는 했네요. 대학 다닐 때도 손으로 쓴 뒤에 복사를 해서 합평 시간에 나눠줬고 등단한 뒤에도 청탁을 받으면 손으로 쓴 다음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했으니까요.

꼭 그렇게 쓰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주어진 조건 속에서 달라지는 방식의 차이일 뿐인 거죠. 다만 펜으로 쓸 때의 잉크 냄새와 손에 박힌 굳은살의 느낌, 원고지 위로 글자가 사각사각 만들어지는 소리가 여전히 제게는 남아있어요. 그렇게 쓰는 방식을 통해 글 쓰는 행위를 훨씬 더 물리적으로 밀접하게 느꼈던 건 사실이죠. 

Q 예전에 인터뷰하셨던 걸 보니까 글을 쓰다 막히면 옷을 다 벗고 춤을 춘다고 하셨더라고요. 이런 독특한 의식을 여전히 치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하하, 이것도 결혼 전까지는 그랬어요. 혼자서 살다가 가족이 생기니 그렇게 할 수가 있나요. (웃음) 예전에는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소설을 쓰기도 했어요. 오죽하면 그때 당시 친구들이 제 자취방에 오는 것도 싫어했으니까요. 방에 찌들어있는 담배 냄새 때문에요. 글을 쓰다 막히는 순간은 여전히 많지만 그래도 한번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마무리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다른 일에 주의를 돌리거나 신경 쓰는 일은 없죠. 정 안 된다 싶으면 안톤 체호프 같은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극을 받고요. 그래서인지 슬럼프라고 할만한 건 겪어보지 못했어요. 제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도 좋은 작품을 많이 읽으라고 늘 얘기하고요.

Q 작가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나요?

수업을 마칠 때면 물어봐요. 정말로 소설가가 되고 싶으냐고요. 그렇다고 대답하는 학생들에게는 소설가가 되지 말라고 얘기해줘요. 소설을 쓰다 보면 보통 사람도 약간 이상한 사람이 되고, 약간 이상한 사람은 폐인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니까요. 하지만 그런데도 소설가가 되고자 마음먹었다면 세 가지를 각오하라고 일러주죠. 첫째, 기꺼이 가난할 것. 둘째, 기꺼이 손가락질 받을 것. 셋째, 기꺼이 외로울 것. 사실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걸 누가 무슨 수로 말리겠어요. 저는 다만 글을 쓰면서 힘들고 좌절할 때마다 늘 초심을 기억하라는 말과 함께 진정한 재능이란 열정에 일치하는 능력이라서 꾸준히 쓰다 보면 반드시 응답이 올 거라는,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해줄 뿐이죠. (웃음)  

Q 이번 작품집에 실린 자서전을 통해 “오래전 내 꿈은 소설가였고 지금 나는 소설가인데 여전히 내 꿈은 소설가이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사실 매번 소설을 쓰려고 할 때마다 앞이 깜깜해져요. 지금껏 썼던 소설을 다시금 읽어 보면서 대체 이 소설을 어떻게 썼던 것인지 생각이 안 날 정도로요. 전혀 해본 적 없는 일을 시도하는 것처럼 막막해지죠. 물론 그런 걱정과 불안을 견디고 탈고를 하면 정말 뿌듯해지고요.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역시 난 소설가구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다시금 제 마음을 사로잡는 건 소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이에요. 쓰고 나서 ‘난 정말 최고의 작품을 썼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런 후회는 계속 남는 것 같아요. 사실 단 한 편이라도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자 하는 건 모든 소설가의 은밀한 욕망이기도 하고요.

Q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이렇게 여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소설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어느 날 아모스 오즈의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라는 소설을 읽고 너무 좋아서 아내에게 그랬어요. ‘여보 새삼 깨달았어. 내 책이 왜 안 팔리는지를!’ 아내는 의아하게 쳐다보았고 저는 이렇게 말했죠. ‘내가 못 써서야.’ (웃음) 저는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지만 그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가가 지녀야 할 자세나 태도로 말하자면 그래요.

소설가는 이 세계가 아무리 비참해질지라도 소설 쓰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부딪혔을 때 문학을 찾거든요. 그래서 소설가인 제가 할 일은 당장 저를 찾아주는 이가 없다고 할지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거예요. 언젠가 사람들이 소설을 찾을 때, 허탕을 치지 않도록요.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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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손홍규

1975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사람의 신화][봉섭이 가라사대][톰은 톰과 잤다][그 남자의 가출],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청년의사 장기려][이슬람 정육점][서울], 산문집 [다정한 편견] 등이 있다. 백신애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채만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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