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2.14 조회수 | 11,904

‘지대넓얕’ 채사장 “만남과 헤어짐, 운명이라 이해하게 될 것”

 

베스트셀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한빛비즈/ 2014년)의 작가 채사장이 신작을 내놨다. 이전의 책들에서 ‘세계’와 ‘자아’를 탐구했던 그는 이번에는 이 둘의 ‘관계’를 다루었다. 그런 만큼 관계라는 주제는 필연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또한 신작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웨일북/ 2017년)는 앞으로의 집필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첫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집중했다면, 이번 책은 객관의 비중을 확 줄이고 주관적인 사유를 펼쳤기 때문이다. 이번 책의 반응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주관의 세계로 한 발 더 나아갈지, 아니면 다시 객관의 세계로 돌아올지 그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것.

 

신작 출간 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채사장과 이메일을 통해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책 내용에 대한 세심한 풀이와 뒷이야기, 대중 작가로서의 중압감 등에 대한 솔직한 답변을 보내주었다.

 


타인, 세계, 죽음을 통해 관계의 꼬인 실타래를 풀다

 

Q 세계와 자아에 관해 다룬 책들에 이어 이번에는 ‘관계’에 대한 책을 내셨습니다. 관계라는 주제로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관계라는 주제는 필연에 가까웠습니다. 앞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과 <시민의 교양>(웨일북/ 2015년)이 ‘세계’에 대해서 다루었다면, <열한 계단>(웨일북/ 2016년)은 그러한 세계에 발 딛고 있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책을 기획하는 초기 단계에서 이제 다뤄야만 하는 것이 이 둘의 ‘관계’에 대한 탐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가 세계와 자아의 관계를 다루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의 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서 다루지 않았던 영역을 탐구하는 동시에 기존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새롭고도 친숙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Q 보통 관계라고 하면 인간관계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 책은 어떤 관계를 다룬 책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세계에 던져진 개인이 맺게 되는 관계 전반을 추상적으로 개괄합니다. 말이 어려울 수 있으니 차근차근 생각해보죠. 여기 던져진 ‘나’가 있습니다. 우선 나는 일차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등이 그들입니다. 다음으로 나는 ‘세계’와 관계를 맺습니다. 눈앞의 사물에서부터 시작해서 문화, 종교, 이념에 이르기까지 내 외부의 것들과 연결되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 부재와도 관계를 맺습니다. ‘죽음’도 우리의 관계 맺음의 한 양식인 것이지요. 이 책은 크게 이 세 가지, 타인, 세계, 죽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고찰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관계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통해 나와 타인과 세계의 의미가 명확하고 투명해지기를 바랍니다.

 

Q 관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주제로 ‘부재와 내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죽음에 대해 다룬 것이 신선했습니다. 유한한 삶에서 우리가 죽음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요?

 

생이 강조되는 일상 중에 우리가 잠시 멈춰 죽음을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살아있음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살아있음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떻게 규정되는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미’ 자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미’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개별 존재의 의미가 마치 가격표나 이름표처럼 그 존재에게 이미 붙어 있는 것이라는 상식적인 관점입니다. 그때의 의미는 국어사전의 정의처럼 이미 규정되어 있는 것이지요.

 

둘째는 특정 대상의 의미가 전체와 부분의 순환 속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난다는 관점입니다. 전체의 의미는 부분들의 의미의 합으로 밝혀지고, 동시에 부분들의 의미는 전체 속에서 규정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24부작 드라마가 있습니다. 12부의 어느 시점에서 주인공이 낯선 사람을 만나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낯선 사람의 의미와 주인공이 처한 곤경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상상해볼 수는 있겠지만 오늘 확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24부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투명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오늘 만나 손잡은 사람들, 처한 고난과 슬픔과 기쁨의 사건들의 의미는 지금 확정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밝혀질 것이고, 그때에야 우리는 ‘아, 그래서 나에게 그런 일들이 벌어진 것이구나’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모순적이고 비극적입니다.

 

죽음에 이르러야 삶이라는 전체의 의미가 밝혀질 테지만, 우리는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지금 나에게 닥친 사건의 의미를 해석해야만 하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죽음을 현재로 끌어와 지금 나에게 닥친 사건의 의미를 불완전하게나마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 그것은 사후 때문이 아니라 오늘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Q “타인과의 관계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분야다. 그리고 이 책은 가장 어려운 분야에 대한 탐구 결과이다”라고 하셨어요. 작가님께 타인과의 관계가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든 관계가 다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자아가 맺고 있는 관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 둘째는 나와 세계와의 관계. 제가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전자입니다. 반면 세계와의 관계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이 두 가지 관계 양상을 모두 다룹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말할 때는 실제로 어렵고 조심스러웠습니다. 특히 사랑과 연애, 이별에서 느끼는 감정의 미묘함을 전달하기 위해서 수필과 소설 등의 다양한 형식을 사용하였습니다.

 

반면 세계와의 관계를 말할 때는 재미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계에 던져져 있고, 세계의 끝으로서의 죽음과는 어떻게 관계 맺어 있는지,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독자들이 편안하고 흥미롭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독자들이 하고 싶었던 질문을 대신 해주는 작가이고 싶다

 

Q 앞서 말씀하셨듯이 이 책은 이전 책들에 비해서 자전적 에세이 형식을 많이 도입한 게 특징인데요. ‘소년병 이야기’는 소설 같기도 하고요. 다양한 형식을 빌려온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40개의 단편 중에서 수필이나 소설의 형식을 도입한 이유는 그 형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적절히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필이나 소설을 써야지 하는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콘텐츠가 우선이었고, 그것에 대한 효과적인 표현 방식으로 다양한 형식을 차용한 것입니다. 특히 ‘소년병 이야기’는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관계의 보편성을 담아내기 위해 계획했습니다. 소년병과 여인의 만남부터 헤어짐 그리고 재회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될 것이고, 스스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독자에게 이런 경험을 주기 위해 이 소설은 모호성과 구체성 사이를 가로지르며 전개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을 그려내듯 최대한 배경을 단순화하고 인물들의 전형적인 특징을 드러냈습니다. 인물들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소년병, 여인, 남자, 그림자, 군의관 등으로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구성에는 니체의 영원회귀의 개념을 차용했습니다. 그것은 만남과 헤어짐 등의 관계 양상에 질량감을 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을 생의 반복이라는 무거움 속에서 이해한다면 오늘 나와 손잡은 이들이 새롭게 보일 것이고, 운명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가늠하기 어려운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Q 어떤 인터뷰에서 “옷을 다 못 입었는데 머리끄덩이 잡혀 나온 기분”이라고 하셨고 “잔이 너무 비워 다시 채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도 하셨던데요.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작가로서 중압감이 있는 듯합니다.

 

가끔은 대중 작가로 불리는 스스로가 재미있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합니다. 의식이나 신비, 현대철학, 티벳 불교 등 책과 강연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콘텐츠가 전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그건 제가 무언가 특별하고 대단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독자들 각자의 마음속에 오래 전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질문들을 제가 대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말하고 싶었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각박한 분위기 속에서 쉽게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들. 나는 무엇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오랜 시간 우리의 깊은 심연을 뒤흔들고 있었지만 겉으로 꺼낼 수는 없었습니다. 부모와 국가와 사회의 핀잔과 꾸중 속에서 먹고살기 위한 이야기 외에는 말하기 미안했던 까닭입니다. 마음 깊이 이러한 아쉬움을 간직한 분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기 위해 열린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제 책이 그러한 공간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이후부터 이것이 하나의 중압감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무언가 더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를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쉬면서 다시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생각을 하고, 먹고살기의 고단함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동안 잔을 채우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Q 지금까지 4권의 책을 쓰셨고, 이것이 5번째 책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어떤 의미를 가진 책인가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시작으로 <열한 계단>을 거쳐 이번 책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주관의 비중을 늘려왔습니다. 첫 책이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서술했다면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객관의 비중은 줄이고 주관적인 사유를 중심으로 전개했습니다. 독자들과 진정으로 나누고 싶었던 내면의 이야기였기에 글을 쓰는 과정이 즐거웠고 동시에 조심스럽기도 했습니다.

 

주관적 사유가 단지 개인의 지엽적인 사고에 머물거나 허황된 무엇이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구조화하고, 표현을 정돈하고, 정성스럽게 다듬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아와 세계, 존재와 부재, 의식과 신비라는 비일상적인 주제들이 마흔 개의 이야기로 차분히 정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저에게 기점입니다. 독자들과 함께 주관의 세계로 한 발 더 나아갈지, 아니면 다시 객관의 세계로 돌아와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눌지. 다음 책은 독자들이 알려주시는 방향을 따라 걸어갈 예정입니다.

 

사진 : 웨일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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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채사장

2014년 겨울에 출간한 첫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밀리언셀러에 오르며 2015년 국내 저자 1위를 기록했다. 차기작으로 현실 인문학을 다룬 [시민의 교양]과 성장 인문학을 다룬 [열한 계단]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15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책과 동명의 팟캐스트 [지대넓얕]은 장기간 팟캐스트 순위 1위를 기록하며, 정치 내용 판도의 팟캐스트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2015년 아이튠즈 팟캐스트 1위를 기록, 현재까지 누적 다운로드 2억 건으로 여전히 지적 대화를 목말라 하는 청취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중이다. 성균관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학창시절 내내 하루 한 권의 책을 읽을 정도로 지독하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문학과 철학, 종교부터 서양미술과 현대물리학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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