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1.22 조회수 | 3,523

“마르크스가 소설을 썼다면?” ‘문학동네 소설상’ 황여정

 

스물세 번째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알제리의 유령들>(문학동네/ 2017년)이 출간됐다. 수상의 주인공은 소설가 황여정. 세간엔 소설가 황석영의 딸로도 알려져 화제가 됐다. 그녀가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5년 만에 처음 그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소설은 ‘알제리의 유령들’이란 희곡을 둘러싼 인물의 삶과 마치 운명처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과거 사건을 밝혀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은 부모 세대가 겪은 시대를 자녀 세대는 어떤 기억으로 살아왔는지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고,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건에 압도되어 살아온 인물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이야기 하나가, 여기저기 흩어진 우리가 아직 이어져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작가가 앞으로 들려줄 사랑의 말들,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무척 기다려진다.

 

Q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소감을 여쭐게요.

 

한동안 구름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좀 진정이 됐어요. 공모마다 떨어졌는데 15년 만에 등단했으니 역전도 이런 역전이 없죠. 제가 모르는 누군가 제 이야기를 읽어줬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책을 읽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감격스러워요.

 

Q 이번엔 수상하겠다고 예상하셨어요? 책 쓸 때 “이번 작품은 왠지 될 것 같다!” 이런 느낌이 오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런 기대는 항상 하지만(웃음) 너무 많이 떨어져서 될 거라는 상상조차 못하는 상태였어요. <알제리의 유령들>은 다신 소설 안 쓴다고 다짐했다가 저도 모르게 아주 오랜만에 쓰기 시작한 얘기에요. 공모전을 염두하고 쓴 것도 아니었고요. 이야기를 절반쯤 쓰고 나니까 이건 잘하면 끝낼 수 있겠다 싶은 거예요. 때마침 문학동네 공모전이 떴기에 마감 당일까지 결말을 써서 냈어요.

 

Q 24살에 글쓰기를 시작해서 여러 번 그만뒀다가 다시 쓰게 됐다고 하셨는데, 자꾸 돌아오게 만든 힘이 뭐였는지 궁금해요.

 

계속 공모전에 탈락하니까 너무 지치고 이렇게 불행하게 살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다신 안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저주하면서도 다시 썼어요. 뭔가가 계속 쓰고 싶었고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다른 걸로는 만족이 안 되고요. 그래서 글을 안 쓸 때도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하듯이 마음 한 구석에 소설이 있었죠. 이제 이루어졌네요.(웃음)

 

 

“농담 허용되지 않는 시대, 유머 통하지 않는 권력자 모습을 쓰고 싶었다”

 

Q 3부에서 갑자기 독일 철학자 마르크스 얘기가 나왔을 때 의아했어요.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갈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소설의 탄생 배경이 궁금해요.

 

두 가지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율과 징과 비슷한 일이 어렸을 때 저한테도 있었거든요. 사회적 배경과 맞물려서 첫사랑 얘기를 써보고 싶었고요.

또 하나는 마르크스가 등장하는 부분인데 <자본론>을 읽으면서 마르크스가 문학을 사랑하는 학자라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가 만약 소설을 썼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즈음 국방부에서 불온서적 목록을 발표하는 걸 보면서 아직도 이런 일이 있나 싶더라고요. 아주 재미있는 상황인데 그걸 엄청나게 위험한 것처럼 얘기하는 권력자들 모습을 희곡으로 써보고 싶었어요.

 

Q 마르크스가 쓴 희곡이 진짜 있는 줄 알고 검색해봤어요. 깜빡 속았다 싶었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 얘기 듣고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제대로 뻥을 잘 쳤구나.(웃음)

 

Q 수상소감에서 이 소설을 사랑이야기라고 하셨어요. 등장인물의 말을 빌어 사랑을 ‘자신의 것이 아닌 모든 것들과 관계 맺어나가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하고요. 작가님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듣고 싶어요.

 

사랑이 뭘까 늘 생각을 해요. 잘 안 되니까 그런 것 같아요.(웃음) 누군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경험인데, 사랑이 타인을 얼마나 변형시키는지, 그럼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돼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가 늘 고민이죠.

 

Q 소설의 주인공은 이야기 마지막에 첫사랑을 만나러 가잖아요. 작가님의 첫사랑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소설의 모델이 된 친구와는 서로 다른 현실에서 살고 있어요. 사회적 사건이 뒤섞인 상태였고 그 때의 아픔을 아직 소화하지 못한 나이에 만났어요. 그래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게 힘들었던 거예요. 그게 나중에 사회적 맥락과 함께 이해되더라고요.

 

 

“사회적 맥락 없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묻는 것 무의미”

 

Q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일들이 나의 일이 되는 게 두려웠다’는 문장이 있어요.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들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는데 작가님은 언제 그 걸 느끼셨어요?

 

제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요, 10~20대에 가장 컸죠. 자의식이 커질 때이기도 하지만 그 시기에 아버지가(작가의 아버지인 소설가 황석영은 1989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방북했다가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에 체류해야했다. 1993년 귀국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간 복역했다-기자 주) 이북에 갔다오고 감옥에도 가고….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압도됐어요. 30대까지도 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내가 원한 게 아닌데 왜 영향을 받아야하는지 갈등이 컸어요.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선 사회적 맥락과 무관한 나만의 독립적인 삶은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버지도 사회적 경험이 뒤섞여 있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니까 비로소 한 개인으로서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면서 제 갈등과도 화해가 됐던 것 같아요.

 

Q 성장기에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압도됐다고 하셨는데, 그 때 광주에 살았다고 들었어요. 1980년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 때의 기억이 굉장히 극단적으로 섞여 있어요. 일테면 함께 모여서 막 웃다가도 갑자기 큰 일이 벌이지는 식이에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총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아버지는 끌려가셨어요. 같이 즐겁게 놀던 삼촌, 이모들이 고문 받아서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고요. 집에서 화목하게 있다가도 갑작스레 그런 일들이 생겼어요. 행복과 불안이 늘 공존했죠.

 

Q 행복과 불안이 공존했다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들리긴 하지만, 엄혹한 시절에도 같이 웃었던 사람과 그 때 기억이 있어서 이후에 아버지를 이해하고 또 개인적인 갈등을 풀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농담이 죄가 되고 그 때문에 고통받아야한다는 게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었지만 제가 살던 광주는 사람들이 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았거든요. 제 기억 속엔 부모님과 삼촌, 이모들이 항상 웃는 얼굴이에요. 집에서 노래 부르고 연극하고 사물놀이도 하고…. 만날 노는 걸 보면서 컸어요. 그리고 그들이 나눈 동지애 같은 정서가 저에게도 느껴졌죠. 그런 경험들이 이후에까지 저를 보호해줬고요.

 

어린 시절에 뭔가 겪긴 했지만 맥락은 잘 모르잖아요. 개인적 상처와 충격인 것으로만 알고 살았는데, 거기에 사회적 맥락이 있던 거죠. 개인의 삶이지만 사회적 맥락에서 보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답은 모호하고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Q <알제리의 유령들>을 읽으면서 소설은 분명 허구이지만 사실이나 진실을 드러내는데 아주 좋은 글쓰기 양식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소설을 짝사랑했다고 하셨는데,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이야기란 어떤 의미일까 묻고 싶어요.

 

제 이야기도 모델이 된 역사적 사건이 있잖아요. 사건은 그냥 검색 해보면 알 수 있는 거란 말이죠. 그런데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건 자체보다 사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전달하는 정서라고 생각해요. 그 정서를 전해주고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건 결국 문학인 것 같아요.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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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영(북DB 객원기자)

낮엔 요가, 밤엔 과외로 밥벌이 하며 르포를 쓰고 있다. 세계평화를 꿈꾼다. 정말이다. 뭐라도 하고 싶어 펜을 들었다.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대본을 썼다. freakss@naver.com

작가소개

황여정

1974년 서울 출생. 전라남도 해남과 광주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이십대 후반에 서울로 돌아왔다.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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